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권) 중에서


제1장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에서

1.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기발아래

저택에서 만나신 서울청년들 

옛적부터 동양에서는 《립지》라 했고 서양에서는 《소년들아, 대망을 가지라.》고 말해왔다. 거기에는 인생의 청춘시절에 《뜻을 크게 높이 세워야 한다.》는 의미와 함께 그 뜻을 실천하기 위해 분발하고 또 분발하라는 뜻이 깃들어있다.

청춘은 꿈의 시절, 열정의 시절이다. 세계의 미래는 청춘의 그 꿈속에서 설계되는것이며 세계의 개조는 꿈의 실천을 위한 청춘의 불같은 정열이 낳은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새것에 민감하고 진취성이 강하며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는 씩씩하고 생기발랄한 청년대중을 하나로 결속하는것은 해방직후 나라의 복잡한 정세하에서 새 사회건설, 통일적인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해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나서고있었다.

하기에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해방직후 광범한 청년대중을 민주주의기발아래 튼튼히 묶어세울데 대한 현명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해 온갖 로고와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주체34(1945)년 11월 19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기 위해 김시대, 김윤제, 박동원 등 남조선청년일군들이 평양으로 찾아왔다.

그날 그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저택에 들어섰을 때였다.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현관복도로 마주 걸어오시더니 《아, 서울동무들이 왔구만. 이렇게 먼데서 찾아와주니 반갑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일행의 손을 하나하나 따뜻이 잡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감격에 겨워 머뭇거리고있는 그들에게 추운데 들어가자고 하시면서 손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서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방안에 들어선 그들에게 어서 앉으라고 하시면서 평양에 언제 도착했는가, 숙소는 어디에 정하였는가, 이곳에 와서 불편한것은 없는가고 다정하게 물으시였다. 그이의 다정한 물으심에 저으기 긴장해있던 그들의 마음은 봄날의 눈석이마냥 녹아내리였다.

이날 남조선청년들이 그이께 올리는 편지를 반가이 받아보시고 그들에게 자신의 인사를 전해달라고 이르신 수령님께서는 높은 애국적열정을 가지고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에 궐기한 청년대중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데서 나서는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북조선에서는 모든 애국적청년들을 결속할수 있는 대중적청년조직인 민주청년동맹을 결성할데 대한 방침을 내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전개하고있습니다. 남조선청년운동도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지금 남조선청년들은 북조선에서 민청을 창립한다는 소식을 듣고 남조선에서도 그런 조직을 내오려고 한다는데 응당 그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당시 여러 갈래의 청년단체가 있어 청년대중의 단결을 이룩하지 못하고있던 남조선청년운동의 실태를 념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광범한 청년대중을 망라할수 있는 민주주의적청년조직을 내오는데서 어떤 강령을 내세우며 규약은 어떻게 만들며 간부대렬은 어떻게 꾸려야 하는가에 대하여 상세히 가르쳐주시였다. 그리고 종파주의는 지난날 민족해방운동뿐아니라 청년운동에도 극히 해로운 영향을 미쳤다고 하시면서 당시 남조선의 공산주의운동자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파벌적경향을 단호히 배격하고 종파주의와 비타협적으로 투쟁하여 청년대렬내에 파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남조선청년일군들의 가슴은 크나큰 격정에 휩싸여있었다. 금시 답답하던 가슴이 환히 열리면서 하늘에라도 날을것만 같은 힘과 용기가 솟구쳐오름을 느끼였다.

남조선청년일군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 한마디한마디 놓칠세라 자자구구 새겨가면서 새로운 결의에 넘쳐있었다.

민청결성준비위원회에 들려 강령과 규약도 보고 동맹을 조직하는 방법도 배운 이들은 11월 25일 오후 2시경 서울로 떠나기에 앞서 위대한 수령님께 인사를 올리기 위해 그이의 저택으로 찾아갔다.

다시금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헤여지기에 앞서 《그럼 통일된 다음 꼭 다시 만납시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고는 다음과 같은 친필편지를 들려주시였다.

 

애국투사후원회 위원장동무 앞

서울동무들이 오늘 떠나겠는데 려비와 도중식사를 잘 준비해주면 좋겠습니다.

차표도 사주시오.

                           김 일 성

 

위대한 수령님의 귀중한 가르치심과 따뜻한 은정을 새겨안고 38°선을 넘은 이들은 그이의 말씀을 지침으로 삼고 남조선의 애국적청년들을 결속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하지만 마음뿐이지 애국적청년들을 하나로 결속해나가는 투쟁은 어려움과 시련을 동반하지 않을수 없었다. 남조선청년대표들은 또다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고저 북행길에 올랐다.

1946년 1월 2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온 조선청년총동맹대표들인 리호제, 구연행, 조히영을 몸소 만나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청년운동을 옳은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현시기 남조선청년운동의 기본방향은 광범한 청년대중을 민주주의기발아래 조직적으로 튼튼히 결속하는것입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

당시 북반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1946년 1월 17일 공청을 발전적으로 해산하고 민주청년동맹을 결성하였다. 민주청년동맹은 북조선의 모든 애국적청년들을 망라하는 대중적인 민주주의청년조직이였다. 민청이 결성되자 로동청년, 농민청년, 지식청년들을 비롯한 모든 애국적청년들이 통일적인 민청조직에 집결되고있었다.

하지만 남조선청년운동은 아직 옳바른 방향을 잡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서 모든 애국청년들을 하나로 굳게 묶어세우기 위하여서는 하루속히 공청과 청총을 해산하고 북조선에서와 같은 민주청년동맹을 내와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과 요구에 맞는 새로운 형태의 대중적청년조직인 민청의 성격과 사명, 민청조직로선의 정당성, 앞으로 내올 조직의 명칭에 대해서까지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새겨가는 남조선청년일군들의 감격은 컸다.

그이의 말씀에 무한히 격동되여있던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 남조선청년사업을 이끌어줄 경험있는 청년일군들을 북조선에서 보내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들의 의견을 주의깊게 듣고나신 수령님께서는 물론 남조선청년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면 일군들을 보내줄수도 있다, 그런데 동무들이 북조선에 들어오면 모든것이 생소한것처럼 여기 청년일군들도 남조선에 나가면 모든것이 다 생소할것이다, 그러므로 여기 사람이 나가서 남조선청년사업을 지도하기보다 동무들자신이 잘 배워서 남조선청년운동을 이끌어나가는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사업하는 과정에 모를것이 있으면 아무때든 북조선에 들어와서 배워가지고 가면 될것이다, 앞으로 북조선에서도 청년대표단을 남조선에 파견하여 동무들과 사업경험을 나누도록 하려고 한다, 이렇게 남북청년일군들이 호상 련계를 가지고 일해나간다면 청년사업이 잘될수 있을것이다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이날에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은 남조선청년일군들로 하여금 무한한 힘을 배출하게 한 거대한 활력소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이 있어 각 지방에서 산발적으로 진행되여오던 남조선청년운동은 1946년 봄 서울에서 드디여 통일적청년운동을 위한 민청의 창립을 맞이하게 되였다.

남조선에서 청년학생운동이 고조되자 반동들은 창립된지 두달도 못되는 민청을 강제로 해산시키는 탄압행위를 감행했다. 이로 하여 남조선청년운동앞에는 새로운 엄중한 난관이 조성되였다. 남조선의 민주정당지도자들과 청년일군들은 이 심각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전권대표를 위대한 수령님께 파견하기로 하였다. 그 전권대표로 고찬보가 뽑히게 되였다.

고찬보로 말하면 해방전 운명의 쪽배에 몸을 싣고 이국땅을 방황해온 불우한 식민지청년이였다.

늘 학비난에 쪼들리며 신문배달도 하고 인력거를 끄는 속에서도 반일애국을 지향하여 비밀독서회에도 들었고 시위투쟁과 삐라살포에도 참가하였다가 3년간이나 형무소에 감금되였던 그였다.

감옥문을 나와 현해탄을 다시 건너온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 동북땅을 방황하던중 남의 나라 군대에 들어가 총을 잡고 항일전쟁에 더운 피를 뿌리기도 하면서 나라없는 설음과 인생고초를 뼈저리게 겪어왔었다.

해방을 맞아 남녘땅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나라의 절반땅이 또다시 미제의 식민지로 전락되는것을 보고만 있을수 없어 통일적인 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투쟁에 나섰으나 옳바른 투쟁방략을 알지 못하여 좌왕우왕하고있었다.

그러던 그가 오늘은 남조선청년운동이 나아갈 앞길을 밝혀주시는 절세의 위인이신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는 대표로 선출되는 행운을 지니였던것이다.

그해 9월 29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배낭을 메고 비에 푹 젖은 몸으로 찾아온 고찬보를 만나시고 뜨겁게 포옹해주시였다.

남조선의 청년대표로부터 구체적인 형편을 보고받으신 수령님께서는 반동들의 민청해산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을 통하여 애국적인 청년들을 더욱 튼튼히 묶어세울데 대한 구체적인 방도에 대하여 밝혀주시면서 난관이 앞을 막아설 때일수록 신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이께서는 동무가 청년부장인데 청년운동을 책임진다는 립장에 튼튼히 서면 방도가 생길것입니다, 부득이하게 민청을 해산해야 할 정황이 조성되면 새로운 청년조직을 또 내와야 합니다라고 청년운동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명시하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고찬보는 너무 기뻐 벌떡 일어서며 장군님, 눈앞이 환합니다, 오늘 밤으로 당장 서울로 돌아가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위인은 인재를 볼줄 알고 인재를 쓸줄 안다는 말이 있다.

키도 늘씬하고 눈에서 청춘의 열정이 넘쳐나는 고찬보를 기대에 넘친 눈길로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를 찾으시여 속내의 한벌을 가져오도록 하시였다.

속내의를 받아안을 때 그 사랑이 너무나 뜨겁고 고마와 그는 인사말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어깨를 들먹이였다. 그는 총탄도 뚫지 못할 무쇠갑옷을 입은듯, 준마에 날개가 돋친듯 두려움없이 그밤으로 길을 떠났다.

서울에 달려간 그는 각 도 청년핵심들을 모이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김일성장군님의 가르치심을 전달하였다.

청년핵심들은 《김일성장군 만세!》의 환호를 올리며 두주먹을 부르쥐고 투쟁결의를 다지였다.

그후 남조선에서는 청년들은 물론 대학가와 학부모들 그리고 정당, 사회단체들이 들고일어나 반동들의 민청해산책동을 반대하는 투쟁을 세차게 벌렸다. 북반부의 청년들과 정당, 사회단체들도 이 투쟁에 합세하였으며 세계민청에서도 남조선당국에 항의문을 보냈다. 이에 질겁한 반동들은 하는수없이 민청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1947년 6월 서울에서 민주애국인사들의 축복속에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민애청)결성식이 열리게 되였고 여기에서 고찬보는 민애청위원장으로 선거되였다.

그후 고찬보와 그의 가족들은 1947년 가을 공화국북반부로 들어와 위대한 수령님의 따사로운 품에 안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북반부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성업에 한몸 다 바칠수 있도록 해주시고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영생의 언덕에 세워주시였다.

청년시절은 꿈의 시절, 열정의 시절이다. 하지만 우리 조국의 미래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이 없이 어찌 청춘의 참다운 꿈이 있을수 있었으며 청년들을 위해 바치신 수령님의 로고를 떠나 어찌 수많은 이 나라의 아들딸들이 자기의 미래를 아름답게 가꾸어나갈수 있었겠는가.

애국적청년대중을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기발아래 하나로 뭉쳐나가도록 이끌어주시며 청년들의 가슴에 애국의 넋을 심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뜻이 어려있는 내 조국의 미래는 영원히 저 푸른 하늘처럼 밝고 창창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