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2. 《세기와 더불어》의 세계화 담론

 

MB식《실용주의》 알고보니 사대주의

 

리명박《정부》 1년 반이 지나가는즈음 그의 국정시책의 지표였던 《실용주의》가 그 정체를 거의 드러내고있다. 즉 그가 말하고있는 《실용주의》란 사대주의의 다른 표현임이 분명해졌다. 《잃어버린 10년》을 《실용주의》로 되찾겠다던 그의 약속은 미국에 《퍼날리기외교》로 그 전모가 드러나고있다. 그가 적용한 《실용주의》는 어느 하나 제대로 된것 없이 그 모습이 드러나고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을수 있는 남북경협을 파산 내지 파탄지경으로 내몰고는 걸핏하면 미국에 전화하고 일본에 전화하고, 전화하다 안되면 안달박달 달려가고, 실로 이것이 그의 《실용주의》외교방식이라면 우리는 참담함을 금할수 없다.

백남주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의 리명박《정부》의 대결정책이 부른 《한국경제손실》에 의하면 남북경협이 완전 차단되면 《한국》경제가 입을 손실이 무려 7 4천억원에 달하고 8 800명이 일자리를 잃을것이라고 했다. 개성공단사업이 중단되면 총손실이 1 3 600억원이라고 한다. 이것은 직접적인 손실이고 간접적인 손실 역시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외신인도추락은 말할것 없고 미국이 강요하는 군수물자를 사들이자면 국방비를 증액해야 하는데 만약에 남북화해협력을 하면 총 181. 6억원을 줄일수 있다. 중소기업이 입을 손실은 여기서 계산도 안한것이다. 여기에 남북철도를 련결했을 때에 가져올 리익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계산에 누구보다 밝을 리명박은 왜 이 엄청난 효과를 내는 남북교류에 그의 《실용주의》를 적용하지 않는것인가? 삼척동자도 의문을 가지지 않을수 없다. 그러나 리유는 있었다. 그의 《실용주의》의 적용대상이 딴 곳에 있었기때문이다. 다름아닌 리명박《정부》는 자꾸자꾸 《정권》을 재창출하고 다시는 《좌파빨갱이》들에게 《정권》을 넘겨주지 않으려면 보수우익지지층을 차돌같이 단단하게 묶어놓아야 하고, 그 방법은 북에 강경대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미국과 일본에 철저하게 매달리는 사대주의외교를 펴는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리명박의 《실용주의》는 헛발질을 하고있는것이 아니라는것이 분명해진다.

그의 《실용주의》는 서민경제를 위하자는것도, 민주주의를 지키자는것도, 남북화해를 하자는것도 아닌 철저한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것임이 그 용도가 분명해졌다. 우리는 지난 1년동안 바로 이것을 확인한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실천과제는 무엇인가. 강희남목사님의 유언말씀 《리명박을 내치자.》대로 하는것이다. 우리 나라 《대통령》의 외교는 어떤 면에서 간단하면 간단하다. 그것은 일본이 하자는 그 반대로만 하면 되고 민초들이 퍼뜨린 《미국 믿지 말고 쏘련에 속지 말라, 일본이 일어난다.》이다. 이 한구절만 머리속에 명심하고 실천에 옮기면 그것이 우리 외교의 전부이다. 그러나 리명박《정부》는 사사건건 그 반대로만 하고있다. 도대체 그 지독한 사대주의가 어디서 유래한것일가? 《삼국사기》에는 《류명환-리명박 조》와 일란성쌍둥이같은 조가 있었으니 바로 《김유신-김춘추 조》다.  

 

류명환-리명박 조는 김유신-김춘추 조와 닮았다

 

류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PSI(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참가를 해낸것이 무슨 큰 공로나 세운것처럼 자랑하고있다. 그리고 한수 더 떠 유엔안보리결의안을 성사시킨것도 자기 실력때문이라고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아마도 리명박주변에서는 이런 일들이 모두 수훈과 전공감으로 여겨지는것 같다. 대부분의 우리 국민들은 류명환-리명박을 한심하게 보고있는데도 말이다. 지금 리명박과 류명환이 한조가 되여 노는 꼴은 마치 김부식이 써놓은 《삼국사기》에서 김춘추와 김유신이 한조가 되여 노는 꼴과 너무 흡사하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돼있는 김유신과 김춘추의 사대주의 행각을 류명환-리명박의 그것과 대차대조표를 만들어 한번 읽어보자. 625년 당태종이 즉위할무렵 신라는 김유신과 김춘추가 모든 실권을 한손에 거머쥐고있을 때이다. 김춘추는 진평왕의 외손으로 나중에 태종무렬왕이 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무왕조에 의하면 김춘추는 나이 60이 되였는데도 중국황제앞에 무릎을 꿇고 백제와 고구려를 칠것을 요구했는데 그 모양이 측은하기 그지없다고 기록하고있다. 신라는 임금을 당나라 황실친척으로 바꾸라는 요구까지 수용하면서 당의 군대파병을 간청한다. 이 사대주의의 DNA 1 500년이 흐른 지금에도 수시로 출몰하고있는것이다.

그러자 당은 두가지 조건을 내건다. 고구려를 칠 경우는 료동지방을 당에 내주고 백제를 칠 경우에는 신라의 임금을 당나라황제의  친척으로 바꾸고 동시에 당나라군대의 신라파견이 이루어져야 한다는것이였다. 648년 김춘추는 직접 당태종을 찾아가 고구려뿐만아니라 백제까지 치도록 애걸한다. 이에 둘사이에 비밀협정이 이루어져 평양이남 백제땅은 신라가, 그 나머지 모든 땅은 당이 차지한다는 밀약이 이루어졌다.

나라를 분단해서라도 단독정부를 세우려는 오늘날 보수우익들의 유전자가 이렇게 1 500여년전에 만들어졌던것이다. 《한》반도분할통치의 력사는 사실상 이때부터 거론되지 않았나 여겨진다.

 

옷을 바꿔입고 스스로 사대를 청해

 

참으로 되돌아볼 때에 이 모든 하나하나의 사건이 모두 오늘 우리 후손들이 짊어지고있는 수난의 씨앗이 되고말았다. 당태종이 죽고 그의 아들 고종이 황제가 되자 사대주의외교는 더 극성을 부린다. 법흥왕이후 115년간 사용돼오던 년호를 당의것으로 바꾸고 옷도 당의것을 착복하기 시작한다. 복종, 복속, 항복 등 모두가 옷에 관계되는 말이고보면 옷을 바꾼다는것은 굴종을 의미하는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김춘추는 당나라를 찬양하는 사대주의의 극치인 오행시 《태평송》을 지어바친다. 태평송의 내용은 당나라황제의 위업을 훼손하는 고구려를 《오랑캐》라 지칭하며 단칼에 쳐물리쳐달라는 내용이다. 651년 김춘추는 모든 제도를 당나라의것으로 바꾸고 지명도 순 우리 말에서 한자로 바꾸는 동시에 유교를 적극 도입하여 국학이란 교육기관을 세운다. 성균관의 전신과 같은것이다. 유생들이여, 이런 력사를 알고있는가?

드디여 당고종은 소정방을 최고지휘관으로 하여 10만대군을 이끌고 660년 백제를 향한 대공격을 단행한다. 김유신은 신바람났으며 이에 대하여 《삼국사기》는 《내가 지금 죽기를 서슴지 않고 험난한 판에 달려온것은 큰 나라()의 힘을 빌려 두 나라를 없애버리는데 있다.(《삼국사기》 42권 김유신렬전)라고 의기를 토하고있다.

진평왕은 원광법사에게 출사표를 지으라고 했다. 그러나 《자기가 살기 위해 남을 없애버리는것은 승려의 길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왕의 나라에 살면서 어찌 명을 어길수 있겠습니까.》 하면서 지식인의 고뇌를 토로한다. 원효는 회삼귀일(會三歸一)을 주장하며 신라만이 아니라 세나라가 같이 살아 평화공존을 해야 한다고 력설한다. 저 유명한 원효의 《불난 집의 비유》는 집에 불이 났는데도 방안에서 어린아이 셋이 철모르게 놀고있다면 수레를 사준다고 소리쳐 다 밖으로 나와 위기를 피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원효의 이 말을 듣지 않고 자기만 살겠다고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만을 방에 남겨두고 뛰쳐나왔고 그래서 나머지 두 친구는 불에 타죽게 하고말았다는 비유이다. 그렇다. 류명환-리명박은 들어라. 파산당하는 배안에서 축배의 잔을 드는 어리석음을 회개하고 민족앞에 대오각성하라.

이러한 김춘추와 김유신을 두고 현대《한국》의 학자들은 천추에 남을 명외교관 그리고 충신으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양에 찬양을 하고있다. 처녀가 아이를 낳아도 할 말이 있다는 속담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660년 소정방의 10만대군은 백마강을 타고 올라와 무방비상태에 있던 백제를 단숨에 함락시켰다. 고구려도 668 9월 이 땅에서 사라지고말았다. 그후 당은 백제에 웅진도독부, 고구려에 안동도독부 그리고 심지어는 신라에까지 계림도독부를 설치하려 한다. 김유신과 김춘추는 사대주의의 결과가 빚어낸 뼈저린 교훈을 그제야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막상 당나라군대를 몰아내는데 선봉장이 된 사람들은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들이였다. 대당 10년항전끝에 고작 찾은 땅이란 대동강이남의것이였다. 그조차도 신라의 령토령유권이 인정된것은 60년후인 736년이였다.

 

사대주의는 민족의 존립을 위협

 

이 얼마나 생각하고싶지 않고 한줄의 글로 남기고싶지도 않은 우리 력사의 처참한 시기인가. 어찌 이 시기를 《통일신라시대》 운운하면서 칭송할수 있단 말인가? 그때 우리 피속에 만들어진 사대주의 DNA는 지금 온몸에 퍼져있다. 전직《국방장관》들이 지금 늘어놓고있는 장광설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가 물려준 《한국》사대주의세력의 잔재가 1 500여년의 세월이 지나갔어도 조금도 수치와 모멸을 느끼지도 않으며 자랑스럽다는듯이 기염을 토하고있다.

신라사대주의는 두 이웃친구를 불사른데 그치지 않았다. 고구려유민들이 세운 발해는 신라에게 목구멍의 가시와 같았다. 계모에게 전처의 자식은 자기의 정통성을 비웃는 존재일것이다. 해동성국 발해는 신라로부터 721년 그리고 733년 공격을 당하였으나 의젓하게 물리쳤다.

결국 사대주의는 우리 《한》민족을 종자까지 말리고마는 독소이다. 지금 《한》반도정세가 과연 1 500년전과 무엇이 다른가? 사대주의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자주권은 한 나라의 생명줄과 같은데 이를 되찾는 일을 반대하는것은 사대주의가운데 극치이다. 물론 《전작권》을 갑자기 되돌려주겠다는 미국의 속셈이 무엇인지는 지혜롭게 간파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전작권》 제발 다시 가져가달라고 애걸복걸

 

작년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환수론의 중단을 요청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한나라당》 2차방미단 단장 리상득부의장(리명박당선자의 친형) 2007 9 20일 워싱톤특파원들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우리가 옛날에 중국에 죽지 않으려고 조공도 바치고 책봉도 받아가면서 살아남지 않았느냐.》면서 《(미측 인사들이 만나기)귀찮다고 해도 국익에 필요하면 귀찮게 할것》이라 고 말했다. 난형난제란 말이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겠는가? 이는 마치 김춘추와 김유신이 당나라에 구걸외교를 한것과 다를바 없어보인다.

《한나라당》 방미단의 한 의원은 《미국과 동맹관계인 나라가운데 야당이(당시) 이처럼 미국에 찾아와 외교를 하는 경우가 있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일본이나 오스트랄리아에는 로무현<대통령>이 없기때문》이라고 답변했다. 로무현은 가고 없다. 이렇게 쓸만 한 말하는 사람들은 비극이라는 유전인자를 갖고 이 땅에 태여난다. 1949 6 26일 김구선생도 그 유전자때문에 죽었다. 김원웅《국회》통일외교통상위원장(당시) 2007 10 24일 《21세기판 모화(慕華)주의자들이 동맹과 예속을 분별하지 못하는 서글픈 사대주의로 나라 망신시키고있다.》고 비판했다.

김원웅위원장은 《지난날 사대주의에 찌든 지배층이 조선의 안위와 중국의 안위를 분별 못하고 자주적인식을 결여해 병자호란을 자초했다.》며 《자국국익에 충실한 외국군 장성 등에게 <전시작통권>을 되받아가달라고 애원하는건 력사의 평가를 두려워않는 태도》라고 비판했다. 그는 리상득부의장의 우의 《조공외교》발언에 대해 《그러면 고구려의 을지문덕과 연개소문도 바보짓을 했단 말이냐.》며 《살아남기 위해 일본의 식민지배를 환영한 리완용도 지하에서 <나도 당시 같은 생각이였다.>고 할것》이라고 비꼬았다.

 

 

리명박은 《리명박문》을 자처하고있는가?

 

조선 민씨일가 수구세력들이 청나라에 통수권을 청하자 일본이 상관하며 간섭하기 시작하였고 드디여 1894년 청일전쟁이 이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동학군은 공주 우금치에서 일본군에 의해 궤멸당하고만다. 일군(日軍)은 총구를 남에서 북으로 돌려 조정으로 올라와 민비를 시해하고 결국 우리 국군통수권은 모두 일본군에 넘어간다. 그다음 결과는? 1905년 을사5조약, 1910년 한일합방, 1919년 고종사망(고종도 일본의 시해라는것이 정설임). 외세를 끌어들인 최대피해자는 결국 민씨일가와 고종자신이다. 고종과 민비는 앞다투어 외세를 끌어들였지만 그들은 결국 그 외세의 손에 비참한 최후를 마치고 말았다. 류명환-리명박은 지금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자기들 기득권수호에 급급하고있다. 《정권》만 유지 내지 재창출만 하자. 이것이 구한말 민씨일가들과 무엇이 하나 다른가? 회고록은 말한다. 국망의 제일원인이 사대주의이고 사대주의는 청원외교로부터 시작한다고.

류명환-리명박 조는 들어라. 과연 미국과 일본이 통일을 시켜준 다음에 그 통일을 우리에게 선물로 안겨줄것이라 믿고 이런 언행을 하고있는가? 다시 말한다. 일본이 하자는 그 반대로만 하면 틀림없이 외교는 성공한다. 진정으로 북을 이기고싶은가? 몸속에 있는 사대주의유전인자부터 제거수술해라. 그엔 절대로 못 이긴다. 아니 이겨서는 안된다. 정권은 순간이지만 민족은 영원하기때문이다. 김유신-김춘추 조는 그래도 당나라를 몰아낼 의지라도 있었다. 나라의 주권을 통채로 가져다 내바치고있는 리명박은 《리명박문》을 자처하고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