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2. 《세기와 더불어》의 세계화 담론

 핵미싸일은 대동강문화론의 자존심발로이다 

 

시작하는 글

 

이 글은 북의 선군정치 그리고 핵미싸일이 갖는 문명사적리유와 그 리유의 타당성을 고찰한 글이다. 미국을 비롯한 추종세력들은 《벼랑끝전술》 혹은 《체제안정》 운운하면서 핵미싸일문제를 거론하고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북이 선군정치를 내세우는 리유를 아래 다이어몬드박사의 《총, , 쇠》에서 그 설득력을 얻게 될것이며 결국 북핵은 지구촌의 무기의 비대칭성을 허물고 상호간에 대등한 대칭구도를 만들기 위한, 다시말해서 지구촌의 영구평화를 이룩하고저 하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것이다.

이에는 미국의 문명사관에 맞설수 있는 나름대로의 사관이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단군릉건립에 이어지는바 《대동강문화론》이라고 할수 있다. 4대문명권이외에 그것과 같거나 더 오래된 문명권이 대동강류역에 있었다는것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더이상 상전을 모시고살 아무런 리유도 없고 종살이는 우리 당대에 종지부를 찍고 우리 후손들에게는 자랑스런 주인의식을 심어주어 당당하게 살도록 해야 한다는것이 핵미싸일갖는 의미라는것이다. 주먹이 약하면 그 주먹으로 눈물을 닦을 날이 올것이라는것을 각오하라는것이다.

 

평화는 총구에서 나올뿐이다

 

2009년으로 넘어와 벌써 반을 보냈다. 금년 지구촌의 3대화두는 《핵, 돼지독감, 금융》이다. 제라드 다이어몬드는 인류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요소가 《총, , 쇠》라고 했다. 이 세가지 단어는 그의 책제목이기도 하다. 즉 그는 《총, , (Guns, Germs, and Steel)(1997)(김진준 역, 1998) 1997년도 퓰리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나는 이 세가지 단어를 《핵, 돼지플루, 금융》으로 바꾸어놓으면 그대로 2009년 금년의 지구촌의 담론을 도출해낼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는 왜 이렇게 불평등하고 비대칭적인가? 다이어몬드박사는 현대세계의 불평등의 기원을 1500 C. E. 년을 기점으로 지금의 유라시아인들과 아시아인들이 남북아메리카인들, 아프리카인들 그리고 오스트랄리아원주민들을 복속시켜 지배하는 소위 비대칭적으로 지배해왔다고 하면서 왜 그 반대는 아니였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는 그 리유로서 무기, 즉 총을 꼽는다. A. D. 1500년경부터 철제무기를 가진 제국들이 아직 돌과 나무로 만든 무기를 가진 부족들을 정복하거나 몰살시킬수 있었기때문이라고 한다.

11 000년전까지는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이 수렵채집을 하였지만 B. C. 11000A.D. 1500년사이에 대륙마다 그 발전속도가 천차만별로 차이가 나게 되였으며 드디여 1500년은 무기의 차이에 엄청난 불균형을 낳게 되였다는것이다. 다시말해서 이때부터 유럽인들과 나머지국가들사이에 월등한 무기의 차이가 나도록 만들어버렸다는것이다.

1592년 일본이 유럽에서 수입한 조총을 들고 임진왜란을 일으켰을 때에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당한 례를 생각하면 다이어몬드박사의 주장에 동의할수 있을것이다. 미국은 지구촌무기의 불균형을 만들기 위해 핵확산금지조약(NPT)이란 그럴사한 자기중심적조약을 만들어놓고 제도적으로, 법적으로 무기의 불균형 내지 비대칭적구조를 즐기고있으며 미국의 이러한 엉터리론리에 반기를 들수 있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북뿐이다. 《평화는 총구에서만 나올뿐이다.

 

병균은 이제 만들어지고있다

 

유럽인들이 북아메리카대륙에 건너갔을 때에 유럽인들은 원주민들의 병원균에는 견디여낼수 있었지만 반대로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의 병원균에는 약했다. 그래서 인디안원주민들이 멸종해가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총다음으로 병원균이라는것이다. 2009년 돼지독감이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아시아인들에게 급속히 전파되는 리유도 병원균이 지구촌의 불균형을 만드는 리유가운데 하나인것은 두말할것 없다. 병원균에 따라 강한 인종이 있고 약한 인종이 있다. 병원균마저 지구촌을 비대칭적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것이다.

이제 미국은 네바다에서 핵실험을 한 후에 원주민들을 시켜 말을 타고 핵실험지역을 달리게 하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핵오염이 인체에 미치는 생체학적실험을 하기 위해서이다. 마샬 비키니군도에서는 이웃섬에서 핵실험을 하고는 옆의 섬에 사는 원주민들을 실험용으로 사용하였다. 미국은 지금 이들 원주민들로부터 900건이상의 피해보상소송에 걸려있다. 1945년 일본투하핵폭탄도 모두 인체실험용이였다.

다 망해가는 일본에 항복문서를 받기 전에 한번 실험해본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인가? 앞으로 세균은 퍼져나가는것이 아니라 만들어져 보급된다는것을 의미한다. 한 인종을 멸종시키기 위해서는 흔적없이 사용할수 있는 무기가 바로 균이다. 그래서 균도 총의 일종이다. 《아이슬랜드》라는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미국의 음모가 얼마나 소름끼치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것이다.

 

마우스 하나로 세계를 주름잡는 이 재미

 

총과 균으로 세계를 제패한 미국은 마지막무기인 월가의 금융으로도 세계를 미국의 지배하에 넣어두었다. 그것이 바로 딸라를 기축통화로 만들어 세계금융을 장악하고있는것이다. 지금 미국의 흔들림, 즉 비대칭구조의 흔들림은 금융에서부터 시작되였다. 이제 만약에 총, 다시말해서 무기에서마저 밀리면 자기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3가지가운데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

여기서 말하는 총은 물론 미싸일과 핵이다. 그 이전의 모든것은 재래식무기라 한다. 한때 기마족인 몽골인이 세계를 정복할 때에도 말타는 안장기술 하나가 그렇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당시 유럽인들은 말을 타고도 발을 거는 기술이 없었지만 몽골인들은 그것을 알고있었다. 이 기술 하나로 성길사한(成吉思汗, 칭기스한)은 세계최대의 영웅이 될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북핵문제를 세계문명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에 그것을 1500년이후 구축된 지구촌의 축을 흔드는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미국이라는 국가의 존립을 그 기반에서부터 흔드는것이라 할수 있다. 이렇게 생각할 때에 북핵 그리고 미싸일문제는 단순한 동북아평화라는 차원을 넘어선 문명사의 대전환을 의미하는것이다. 북의 선군정치는 총, , 쇠가운데 처음것의 중요성을 간파한것이라 할수 있다. 단순한 호전성에서 나온것이 아님을 먼저 직시해야 할것이다.

북의 김인옥교수는 그의 저서 《김정일장군 선군정치리론》에서 사대주의가 극심했던 리왕조 말기에는 남의 나라 군대만 믿고 자체무기를 준비해놓지 않아서 망국의 길을 갈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선군정치의 배경을 리왕조의 전철을 다시는 밟지 말아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있다.

《당시 군제도인 령장제도는 령을 단위로 한개 령에 1 5천∼1 6천의 군사가 소속되였는데 전국에 5개의 령이 있었다. 5개 령에 속한 군대가 약 10만정도였다. 10만도 직업군인이 아니고 농사를 짓다가 순서가 되면 지적된 장소에 가서 일정한 기간동안 복무하는 군인들이였다. 상시적으로 복무하는 군인들은 고작 3천명정도였다. 정미7조약이 날조되고 1907 81일 일본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세가와에게 군통수권을 모두 내줄 때에 병력은 고작 9천명이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것은 병력수가 아니였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것은 땅크나 군함같은것은 생각조차 할수 없었고 고작 가지고있는 무기란 창과 칼, 활이 전부였고 화력무기는 화승대가 고작이였다. 1875 <운양>호를 끌고 일본이 영종도 앞바다에 나타났을 때에 조선군은 사거리가 700m밖에 안되는 구식소구경포 몇문뿐이였다. 이를 안 일본은 700m 밖에 군함을 세워놓고 함포사격을 한 다음 쳐들어와 마구 살상을 일삼아도 속수무책이였다. 1905년 우리 나라는 해군 한명, 함선 한척도 없었다.

선군사상의 제1성은 바로 사대주의때문에 나라가 망했고 사대주의때문에 남에게 자기 운명을 맡겨놓고있다가 고스란히 당하고말았다는데서 비롯된것이다. 그래서 다시는 상전을 모시고살아서는 안된다는것이다. 상전을 안 모시고살려면 총을 앞세워 지구상에 당할자 없는 무적함대를 편승해나가야 한다는것이 바로 선군사상의 취지라는것이다. 그러면 사대주의가 결국 망국의 제1원인이라면 이 사대주의를 어떻게 청산할것이냐가 문제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찬란한 문화와 뿌리를 발견하고 발굴하는것이다.

 

대동강문화론과 선군사상

 

《미싸일개발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주권국가의 자주적권리이다.(최한욱, 전영호 5)라고 한다. 그리고 북의 미싸일개발은 인류문명사를 변화시켜온 3대요소를 간파한것이며 이렇게 간파할수 있는 혜안은 바로 북의 력사관 내지 문명사관에 근거를 두고있다. 북은 1998년 《대동강문화론》을 발표했으며 1994년에는 단군릉을 발굴, 건립하였다. 그것은 인류문명사에서 우리 민족이 처해있는 위상과 사명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기 위함이다. 그리고 우리 고대민족사서, 즉 우리 고대사를 인류문명의 려명기와 그때를 같이하는것으로 기술해놓은 《규원사화》나 《한단고기》 같은 고사서들의 력사적가치를 인정하고 이에 관한 론문들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남《한》학자들가운데 권오영(한신대 국사학과)은 이를 두고 《연구방법론의 파탄이다. 그동안 위서로 간주되여온 <규원사화> <단기>고사를 사료로서 인용할뿐만아니라 고조선고유문자라는 신지글자(창힐글자)의 존재를 주장하는데 이르러서는 력사연구방법론에서 최소한의 과학성과 실증성마저 포기한 남<>내 재야국수주의사학자들과의 차별성을 확인하기 곤난할 정도이다.(《북한》력사연구 50, 98페지)라고 혹평을 한다.

이에 대하여 북의 학자들은 《단군이 실재한 인물로서 밝혀지고 단군조선이래 조선민족이 단일한 민족으로 문화를 발전시키면서 꿋꿋이 살아온 사실이 확증됨으로써 단군의 후예로서의… 한피줄을 이은 동포들이 조국통일의 성업을 이룩하는 길에서 더욱 굳게 뭉쳐 싸울수 있게 되였다.》고 한다. 북의 주장은 단군이 민족의 피줄을 이어주고 통일을 이룩하는데 필요충분조건임을 강조하고있다.

여기 남북학자들의 력사관 내지 연구방법론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크다고 할수밖에 없다. 우선 우의 문제에 있어서 북의 학자들은 《규원사화》와 《한단고기》 등을 력사기록속에 신비로운 요소들이 있지만 력사성을 부정할수는 없다는 견해인 반면 우의 권오영교수의 글에서 보는바와 같이 연구방법론의 파탄이라는것과 최소한의 과학성과 실증성도 없다고 단언한다. 이에 대하여 북의 허종호교수는 가뜩이나 연구사서들이 부족한데 있는것마저 이렇게 부정하면 우리 고대사를 어떻게 복원할것이냐고 개인적으로 필자에게 말하였다.

권오영교수의 주장은 개인의 주장인 동시에 지금 남《한》력사학계의 통념적인 주장을 반영하고있다. 이러한 주장은 주로 서울대학 력사학과로부터 만들어진 교조적인 주장이다. 그럼 이들의 주장에 무엇이 잘못되였는가? 권오영교수의 주장은 매우 감정적이라는 점이다. 재야에서 주장했기때문에 소위 위서라는 사서는 연구가치조차 없다는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주장이다. 그리스도교에는 성경이외에 수많은 위서들이 있다. 그러나 현재 성서신학의 주류는 이들 위서들을 중심으로 예수의 생애를 복원하는 추세이다.

연구방법론을 달리하면 이들 위서속에서 참력사가 나타나더라는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리스도교에서 중세기적으로 이들 위서에 대한 접근자체를 금지했더라면 이런 성과는 나오지 못했을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금 남《한》학자들은 중세기적사고방식을 하고있는것이다. 《위서》라는 말자체가 그리스도교의 경우 정통이 이단을 막기 위해 만든 용어이며 《한국》의 경우 일제가 자기들이 만든 식민사관에 대하여 만든 용어이다. 그렇다면 이런 위서속에 우리 력사의 진수가 실려있을것은 당연하지 않는가?

6 6일 자결하신 강희남목사님은 만년에 《한단고기》를 비롯한 고대사서들에 대하여 새롭게 주석한 책들을 펴내셨다. 북이 핵과 미싸일을 통해서만 문명전환 내지 비대칭성을 극복하려 한것이 아니다. 북의 학자들은 고고학과 력사연구를 통해서 같은 시도를 하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이제 통일운동이 기존학계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는것도 중요한 한 과제로 삼을 때가 왔다. 그리고 《실증성》과 《과학성》이라는것도 얼마나 전근대적인 용어인가? 현대과학에서마저도 객관적실증성은 부정되고있고 더우기 과학적이란 말도 모두 《불확정성》, 《비결정성》이란 말로 변하고있다는 사실을 이들 남《한》력사학자들은 지금 모르고있는것이다. 주체의 개입없는 실증성, 과학성이란 잠꼬대에 불과하다.

북의 학자들은 1997년 드디여 대동강류역에 인류4대문명발상지보다 더 오래된 문명권이 있었다는 《대동강문화론》을 제시하였다. 1998년 고고학 50년력사를 전망하는 글에서 대동강문화는 세계5대 문명중 하나로 정립될뿐만아니라 지난 50년간 북의 고고학이 정립한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하였다. 이를 뒤받침하여 《조선고고학연구》(19991)가 발간되였다. 리순진 등 11명의 교수들이 동원되여 특집호로 발간된 글들의 내용은 한결같이 대동강류역은 고조선의 중심지일뿐만아니라 민족의 발상지이고 세계최초의 고대문명의 발상지로 립증되였다고 주장하고있다.

이 방면의 전공자들이 아닌분들이 이러한 북의 주장을 선뜻 납득하기란 어려울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여기서 우리 《한》반도와 동북아일대가 보통 중요한 곳이 아니라는 단서를 쉽게 리해할수 있는 한가지만 지적하고싶다. 그것은 다름아닌 《고인돌》이다. 고인돌은 《한》반도에만 무려 3만개가 있으며 만주일대에만 있고 만리장성만 넘어서면 고인돌은 점점 사라져버린다. 고창고인돌을 비롯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고인돌이 평양 대동강류역에 밀집돼있는것은 다 아는 사실이고 심지어는 호태왕릉우에도 고인돌이 확인돼있지 않는가?

그러면 고인돌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 사실 지금 세계문명의 시초라는것은 청동기의 등장부터이다. 전세계신화의 천지창조설화는 모두 신석기에서 청동기로 넘어오는 그 과정을 려명기로 그려놓은것이다. 청동기는 수많은 문화코드를 가지고있는데 남신-가부장제-도시국가 등 지금의 거의 모든 문화코드가 이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것이다. 남신들이 신석기시대의 녀신들을 몰살시키고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하면서 도시국가를 건설한 시기가 바로 B. C. 2000년경의 청동기시대의 등장이다.

단군 고조선이 B. C. 3천년이라는것은 결코 이런 문명코드와 별개의것이 아니고 별도로 생각할수 없다. 환웅 그리고 단군이란 남신의 등장과 사용한 무기와 도구가 청동거울이나 칼이라는 점, 이 모든것이 세계문명코드와 일치한다. 그리고 이 모든것들을 총칭하는것이 바로 고인돌이다. 고인돌이란 거석을 운반하는데는 엄청난 인원이 동원되였어야 하며 그것은 이미 주종의 계급사회가 형성되였다는것을 의미하며 인간이 죽어 영생한다는 래세를 생각했다는것은 의식이 지금과 같은 수준에까지 올라와있었다는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덤과 무덤속에서 나오는 청동비파형단검 등은 당시의 철학과 종교관이 지금과 같았다는것을 한눈에 보여준다.

그래서 고인돌은 주요문명발상지가 어딘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다. 물론 고인돌은 유럽에서까지 확인되는 전세계 광역지역을 포함하고있다. 그런데 문제는 무려 3만개이상 되도록 고인돌이 최밀집돼있다는것은 례사로운 일이 아니다. 북의 력사학자들이 대동강문명론을 말할 때 이 고인돌을 빼놓을수 없는것은 물론이다.

대동강문화론은 결코 우상화도 아니고 아닌 밤에 홍두깨같이 갑자기 나온 주장도 아니다. 북의 김일성종합대학과 사회과학원의 력사고고학학자들은 1930년 항일유격대원들의 정신에서 출발하고 시작을 한것이다. 다시말해서 민족의 종산을 향해 진군할 때에 밀림에서 밤을 지새우며 은하를 바라보았고 종산마루우에 뜬 광명성을 바라보았으며 평양일대의 땅을 파 그속에서 또 다른 광명성을 바라본것이다. 그것이 금년 4월에 발사된 《은하/광명성》이다.

김인옥교수는 남쪽의 력사외곡을 두고 이렇게 결론한다. 《기둥이 뽑히고 서까래 무너져내린 집에 성한 그릇 없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