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통일일화』 중에서

 

2. 겨레의 통일념원을 실현하시려고  

 

  《오늘 우리 민족의 대단결과 조국통일은 그 어느때보다도 절박한 문제로 나서고있습니다. 나라의 안팎의 정세로 보나 우리 민족의 근본리익과 시대의 추세로 보나 지금이야말로 온 민족이 대단결을 이룩하여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고 통일된 하나의 조국, 하나의 민족으로서의 존엄과 영예를 높이 떨쳐야 할 때입니다.》                        

                                  김 정 일

 

 이른새벽의 호수가에서 

 

주체61(1972)년 7월 어느날이였다.

아직도 동녘하늘이 밝아오려면 퍼그나 시간이 흘러야 하는 칠칠야밤이였다.

이때 한 일군이 잠든 방안의 전화기에서는 《따르릉-》 하고 전화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였다.

(때이른 이 새벽에 무슨 전화일가?)

이런 생각을 하며 급히 일어난 그 일군은 송수화기를 든채 굳어지고말았다.

송수화기에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친근한 음성이 우렁우렁 울려나왔던것이다.

당황해난 그가 얼른 송수화기를 두손으로 든채 그이께 인사의 말씀도 변변히 못 드리고있는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새벽에 깨워 안됐다고 하시며 급히 자신께로 오라고 이르시였다.

이 시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을 관철하여 조국통일의 려명을 안아오시려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계시였다.

그에 대하여 잘 알고있는 일군은 서둘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차를 몰아갔다.

어느덧 그이께서 계시는 어느 한 건물앞에 이른 일군은 차에서 내리는 순간 심장이 세차게 고동치는것을 느꼈다.

동터오는 려명속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거룩한 모습이 한눈에 안겨왔던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일군을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먼길에 오느라고 수고했습니다. 이렇게 새벽에 불러서 안됐습니다.》

그러시고는 아침공기가 아주 몸에 좋으니 함께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시면서 싱그러운 솔향기가 풍겨오는 호수가의 숲속길로 발걸음을 옮기시였다.

일군도 그이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젖빛안개에 휩싸인 호수는 아직 잠에서 깨지 않은듯 잔잔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명주필같은 안개발이 피여오르는 호수가를 가리키시며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이 호수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여주신것입니다, 해방전에는 지도에도 없던 호수입니다, 수령님을 떠나서는 오늘의 사회주의조국도, 우리 인민의 행복한 생활도, 휘황한 미래도 생각할수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북과 남사이의 적십자사단체대표들사이에 진행되고있는 대화문제를 꺼내시며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수령님께서 년세가 더 높으시기 전에 조국을 통일하여야 한다고, 통일된 조국에서 전체 인민이 수령님을 모시고 단란하게 살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그 일군의 심장을 세차게 두드리였다.

호수가를 거니시는 이 시각마저도 우리 겨레에게 한시바삐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어 어버이수령님께 기쁨드리실 한마음으로 가슴을 불태우고계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이시였다. 

잠시 사이를 두시였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은 우리 나라에서 통일문제를 순조롭게 풀수 있는 유일하게 정당한 구국강령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의 3대원칙을 제시하시지 않았더라면 공동성명도 나올수 없었을것입니다. …

조국통일의 3대원칙에 합의함으로써 우리는 남북대화전반에서 의거해야 할 확고한 기초를 가지게 되였으며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는 길에서 력사적인 리정표를 마련하였습니다. 이것은 외세의존에 대한 자주로선의 승리이며 민족의 반목을 지향하는 대결로선에 대한 민족대단결로선의 승리, 다시말하여 매국배족적인 영구분렬로선에 대한 애국애족적인 자주통일로선의 승리입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주체사상이 빛나게 구현되여있는 조국통일3대원칙의 의의를 명철하게 밝혀주시는 그이의 고귀한 가르치심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은 중단됨이 없이 이어졌다.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은 우리가 통일문제해결에서 언제나 튼튼히 틀어쥐고나아가야 할 근본초석입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 발전의 추이와 온 민족의 념원을 집대성한것이기때문에 여기에서는 한걸음도 양보가 있을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원칙을 가지고 통일의 길을 넓혀나가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그 일군은 우리 겨레의 통일념원을 하루빨리 실현하실 불타는 열정을 안으시고 사색속에서 새날을 맞으시군 하시는 그이를 경모의 정에 넘쳐 우러르고 또 우러렀다.

이윽고 흥분된 일군의 얼굴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마디마디에 박력을 주어 《우리는 분렬을 위한 대화를 할수 없으며 통일을 위한 대화만을 주장합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날 그 일군은 아무리 남조선당국이 분별없이 날친다 하여도 오로지 민족의 근본리익으로부터 출발하시여 북남대화의 성공을 위하여 모든 정열을 다하시며 통일대업의 방략을 모색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하고도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다시금 절감하였다.

 

 

나라를 분렬시킨 장본인   

 

나라와 민족의 분렬로 하여 우리 겨레가 당하는 고통과 불행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는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느 하루한시도 조국통일문제를 두고 마음쓰시지 않은 날이 없으시였다.

언제인가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전략을 옳게 세우자면 우리 나라를 분렬시킨 장본인이 누구인가를 똑똑히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분렬경위에 대하여 력사적으로 고찰하시였다.

…미국의 제33대 대통령이였던 트루맨은 자기의 《회고록》에서 이렇게 사실을 고백하였다.

《38°선을 조선의 분렬선으로 하는것은 한번도 국제적인 토의에 제기된바 없었다. 이것은 일본의 전쟁기구가 돌연히 파괴되였을 때 미국측에서 실제적인 해결책으로 제안한것이였다.》

트루맨이 고백한바와 같이 1945년 5월 9일 파쑈도이췰란드의 항복과 함께 국제파쑈세력의 붕괴는 급속히 추진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총공격과 이전 쏘련군대의 대일작전개시로 하여 미제는 등이 달았다.

그것은 노도와 같이 진격하는 이 세력이 불피코 단숨에 남하하여 전조선을 차지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당시 미제는 조선에 파견할 선박도 군대도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하나 조선을 타고앉아야 한다는 야망밑에 트루맨은 국무, 륙군, 해군 3성조정위원회에 그 해결책을 강구할데 대해 직접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그날 국방성에 모인 륙군장교들(그 대다수가 겨우 준장이하의 대좌급들이였다.)은 론의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하였다.

《어떻든 조선은 두 부분으로 갈라져야 하며 그것도 오늘 오후 4시까지 해내야 한다.》

륙군장교들은 세계지도를 놓고 북위 38°선에 분렬선을 긋고 만주와 조선 38°선이북 그리고 싸할린에 있는 일본군은 쏘련원동군총사령관앞에 항복하며 일본본토와 조선 38°선이남 그리고 필리핀에 있는 일본군은 미극동군총사령관앞에 항복하게 한다는 《최종안》을 만들었다.

이 계획은 《일반명령 제1호》로 서문화되였다.

트루맨은 이것으로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조선의 절반땅을 먹게 되였다고 몹시 흡족해하면서 이 강도적인 요구를 즉시 쏘련정부에 통보하였다.

그리고 일본이 8월 15일 무조건항복을 선포한지 20여일이 지난 9월 8일에야 자기의 륙전대를 인천에 상륙시켰다.

이때로부터 반만년을 단일민족으로 살아온 우리 민족은 분렬의 쓰라린 고통을 겪게 되였다.

조선을 둘로 갈라놓은 그 저주로운 분계선, 38°선은 세계제패의 야망에 환장한 미제가 백주에 날조한 모략의 산물이였으며 대일전쟁에 피를 바친 우리 인민의 응당한 자주적권리를 무참히 유린한 대국들의 흥정의 산물이였다.…

이런 민족분렬의 경위를 가슴아프게 돌이켜보시면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미제는 우리 나라를 분렬시킨 장본인이며 나라의 통일을 방해하는 원쑤입니다.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자면 미제와 결산을 해야 합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외세에 의하여 갈라진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하여 민족분렬의 고통을 끝장내야 한다는 그이의 확고한 의지가 담겨져있었다.

일군들은 민족분렬의 장본인이며 통일의 원쑤인 미제에 대한 증오심으로 가슴을 불태우며 경애하는 장군님의 조국통일구상을 한마음한뜻으로 받들어가리라 마음다지였다.

 

 

 예술단 공연준비에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며

 

주체74(1985)년 9월 초순 북과 남사이에 예술단과 고향방문단교환사업준비가 진행될 때였다.

어느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예술부문의 한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평양예술단 공연준비가 걱정되여 찾았다고 하시며 그동안의 준비정형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일군은 예술단성원들의 열의도 높고 공연준비도 기본적으로 되여가고있지만 아직 부족점이 없지 않다고 솔직히 말씀올렸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번 공연은 국내에서 진행하는 대공연이나 일반외국공연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매우 중요한 통일사업이기때문에 특색있게 잘 준비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예술공연준비방향에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계속하시여 그이께서는 우리 예술인들이 서울에 나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도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의 정을 나누고 수천년을 두고 변함없이 살아있는 단일민족의 넋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일군들이 우리 예술단의 서울방문에 큰 의의를 부여하고 공연준비를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러시고도 마음놓이지 않으시여 예술단이 서울방문을 며칠 앞둔 9월 중순 어느날 예술부문의 한 일군을 몸가까이에 부르시여 예술단파견준비정형전반을 알아보시고 그와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조선민족의 고유한 문화유산을 우리 인민의 생활감정과 오늘의 현실에 맞게 발전시켜 우리의 민족음악과 민족무용들을 그대로 무대우에 올려놓으면 서울에 나가서도 반드시 절찬을 받을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몸소 서울의 극장무대에 펼쳐놓을 공연종목까지 확정하여주시였다.

그러시고 바쁜 시간을 내시여 공연내용을 록화한것을 친히 보아주시며 주체의 맛, 민족의 맛이 나게 다듬어주시였다.

이렇게 경애하는 장군님의 고귀한 가르치심과 정력적인 지도에 의하여 완성된 평양예술단의 공연은 남녘땅에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공연을 본 남녘인민들은 《이북의 예술공연에는 민족적정서가 흐르고있다.》, 《이북의 예술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의 넋을 느낄수 있다.》라고 격찬하면서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한결같이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