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김정일장군 통일일화』 중에서


 1. 견결한 통일의지를 지니시고


중단되지 않은 범민족대회
 

온 겨레가 어버이수령님을 뜻밖에 잃은 크나큰 상실의 아픔으로 하여 피눈물의 바다에 잠겨있던 주체83(1994)년 8월 5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제5차 범민족대회와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원래 제5차 범민족대회는 주체83(1994)년 5월 26일 제2차 조국통일범민족련합(범민련) 공동의장단회의에서 합의한대로 8. 15에 기본대회를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의 주관밑에 서울에서 하면서도 평양과 도꾜에서도 각기 대회를 진행하며 서로 대표단을 교환, 파견하기로 되여있었다.

그러나 그해 7월 민족사에 일찌기 없었던 대국상을 당하게 되자 범민련 북측본부와 관계부문의 일군들은 이런 때 어떻게 범민족대회와 같은 행사를 벌려놓겠는가고 하면서 8. 15범민족대회를 그만두는것이 마땅한 도리로 된다고 생각하고있었다.

이 모든것을 료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8월 5일 해당 부문의 책임일군에게 이번에 진행하는 8. 15범민족대회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처음으로 진행하는 범민족대회인것만큼 수령님의 생전의 뜻인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의 사상을 받들어 특색있게 크게 하는것이 좋겠다는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이의 가르치심은 주저앉으려던 일군들을 안아일으키는 거대한 힘으로 되였다.

일군들은 비장한 각오를 안고 범민족대회준비를 다그쳐나갔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에 따라 주체 83(1994)년 8월 11일 범민련 북측본부 대변인은 제5차 범민족대회를 계획대로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3일동안 진행하게 된다는것과 북측이 해외측 범민족대회에 참가할 5명의 대표들을 8월 13일에 일본 도꾜로 보내며 8월 14일에는 서울대회에 참가할 10명의 북측대표들을 판문점을 통하여 서울로 파견할것이라는것을 선포하였다.

8월 13일 평양에서는 겨레의 통일의지를 과시하며 모여온 1만 5 000여명의 대회참가자들과 평양시민들이 만수대언덕에 모셔진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앞에서 수령님의 유훈을 받들어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밑에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앞당겨실현할것을 다짐하는 통일실천결의집회를 진행하는것으로써 제5차 범민족대회의 막을 성대히 올렸다.

이어 대회기간에 여러 주제의 다채로운 통일축전행사들이 벌어졌다.

한편 서울대회에 참가할 범민련 북측본부대표단이 판문점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남조선당국은 민족공동의 통일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로 나가려는 범민련 북측본부대표단의 판문점통과를 가로막았으며 제5차 범민족대회(서울)자체를 《리적행위》로 《범죄》시하고 대회관련자들을 체포구속하면서 서울대회를 탄압해나섰다.

하지만 그 어떤 폭압으로써도 남조선인민들의 통일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남녘의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은 서울대학교 정문앞에 바리케드를 쌓고 치렬한 공방전을 벌리면서 제5차 범민족대회(서울)를 강행하였다.

이와 때를 같이하여 일본 도꾜에서도 제5차 범민족대회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피눈물속에서도 중단없이 진행된 제5차 범민족대회는 위대한 수령님의 생전의 념원대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말 7천만겨레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를 내외에 과시하고 온 강토에 통일열기를 더욱 북돋아준 력사적계기로 되였다.

  

 

위대한 선언

           

주체85(1996)년 11월 24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한몸의 위험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판문점을 현지시찰하시였다.

이날 새벽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판문점을 향해 떠나시려 하자 일군들은 그이의 앞을 막아서며 그곳만은 나가시지 말아달라고 거듭거듭 말씀올렸다.

사실 판문점이라고 하면 중앙분리선을 사이에 두고 교전쌍방이 총부리를 겨누고있는 가장 위험한 최전연이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시찰을 만류하는 일군들에게 나는 빨찌산의 아들이라고 하시면서 우리의 충실한 전사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가야 한다고 하시며 결연히 길을 떠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판문점 입구에 도착하실무렵이였다.

갑자기 판문점일대에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짙은안개가 내려앉기 시작하였다.

계절로 보아서는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때아닌 짙은안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신비스러운 안개에 싸여 판문점의 여러곳을 돌아보시였다.

판문점대표부에 도착하신 그이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친필비부터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앞에 이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래도록 걸음을 멈추시고 숙연한 심정을 금치 못하시였다.

비문판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을 마치시기 하루전날에 친히 조국통일관계문건에 마지막으로 쓰신 존함과 날자가 수령님필체그대로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비문판아래 목란꽃장식부분 웃단에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가시고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하기 위한 력사적문건에 생애의 마지막친필존함을 남기신 경애하는 김일성주석의 애국애족의 숭고한 뜻 후손만대에 길이 전해가리》라는 사적비문이 새겨져있었다.

친필비에 새겨진 비문을 한자한자 눈여겨보시던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판문점은 우리 인민과 인민군대가 세계전쟁사상 처음으로 미제를 타승한 력사적인 장소이면서도 민족의 분렬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자신께서는 분렬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일의 상징으로 바꾸어놓으려는 념원에서 해마다 해내외의 수많은 통일운동자들이 모여 통일행사를 벌리는 이곳 판문점에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수령님의 통일친필비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비에 새겨진 수령님의 친필은 불과 아홉글자밖에 되지 않지만 여기에 담겨진 뜻은 수천수만자의 비문으로도 대신할수 없는 거룩하고 위대한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일군들모두는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윽고 판문각에 오르신 그이께서는 군사분계선 남쪽을 바라보시며 여기서 서울까지는 불과 40km밖에 안된다고 하시면서 서울, 부산, 제주도에도 나가보아야 하겠는데 조국통일이 안되다보니 지금은 여기서 부득이 멈춰서게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얼마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판문각에서 내려오시는 길에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를 찾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친필비앞에 이렇게 서니 생각되는것이 많다고 하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 조국통일위업에 기울여오신 수많은 낮과 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바쳐오신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마지막나날에도 전체 조선인민에게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시려고 분망한 시간을 보내시면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략문건에 마지막친필을 남기시고 갑자기 순직하시였다고, 수령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이 력사적인 친필에는 수령님의 강의한 통일의지와 신념이 함축되여있고 조국통일에 대한 수령님의 확신이 담겨져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절절하고 뜨거우시였다.

일군들의 가슴속에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가르치심이 통일의 굳센 의지를 새겨주며 뜨겁게 메아리치고있었다.

이윽하여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선언하시듯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수령님의 념원과 의지대로 조국을 반드시 통일하여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자신의 대에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지 못하면 나의 대에는 꼭 조국통일위업을 완성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습니다. 나는 수령님의 유훈대로 우리 시대에 반드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줄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였는데 나는 조국을 통일하고 통일된 조국을 우리 인민들에게 반드시 선물로 주려고 한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앞에서 수령님의 념원과 의지대로 우리 시대에 기어이 조국을 통일하시려는 철석의 의지를 력사앞에, 7천만겨레앞에 엄숙히 선언하시는 그이의 안광에는 근엄한 빛이 어려있었다.

짙게 드리워 서서히 감돌아흐르던 안개도 그이의 숭고한 모습을 소중히 새겨안는듯 흐름을 멈추고 좀처럼 걷힐줄 몰랐다.

 

 

친필비앞에서 무르익히신 구상

 

주체85(1996)년 11월 24일.

력사의 그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의 그날을 보시지 못하고 너무도 갑자기 세상을 떠나신 위대한 수령님이 못견디게 그리우시고 어버이수령님의 친필존함이 또 보고싶으시여 친필비를 다시금 찾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하신 존함을 우러르며 친필비앞에서 오래도록 걸음을 옮기지 못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위업에 기울여오신 로고의 낮과 밤을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며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가 분렬된 첫 시기부터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민족의 분렬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조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불면불휴의 로고를 다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위한 로선과 방침, 방안과 제안들을 몸소 구상하시고 작성하시였으며 그것을 해마다 보고와 연설, 담화를 통하여 천명하시였는데 그 수는 수백건에 달할것이다. 북과 남이 합의하고 민족앞에 엄숙히 선언한 조국통일3대원칙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도,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도 다 우리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가장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침이다.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이것이 조국통일의 3대기둥, 3대헌장이라고 말할수 있다. 우리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하여 남조선과 해외의 각계 인사들과 외국인들을 만나주시고 나라의 통일문제에 대하여 강조하신 회수는 정말 헤아릴수없이 많다. 항일혁명투쟁시기를 내놓으면 우리 수령님의 한생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한생이였다고 할수 있다.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일군들은 한없이 숭엄한 격정에 휩싸였다.

조국통일3대헌장에 어려있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업적이 일군들의 가슴에 뜨겁게 되새겨졌던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누구도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에 거룩한 자욱을 새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심중에서 어떤 위대한 구상이 무르익고있는가 하는것을 다는 알지 못했다.

그때로부터 한해가 지난 주체86(1997)년 8월 4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불후의 고전적로작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에서 조국통일위업에 쌓아올리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전면적으로 집대성하시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원칙,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조국통일3대헌장으로 정립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3대헌장을 마련해주심으로써 우리 민족은 뚜렷한 목표와 방향, 신심과 용기를 가지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게 되였으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조국통일의 숙망을 성과적으로 실현해나갈수 있게 되였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조국통일3대헌장이야말로 조국통일의 기치이며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정당하고 현실적인 투쟁강령이라고 밝혀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이렇게 가르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3대헌장은 통일을 념원하는 우리 민족모두가 받들고나가야 할 강령적 지침이다.》

로작을 받아안고서야 일군들, 아니 전체 군인들과 인민들은 판문점시찰의 잊지 못할 그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의 친필비앞에서 조국통일3대원칙과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조국통일의 3대헌장으로 정립하여 공포하실 구상을 무르익히시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