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 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4. 누구나 안정된 생활을 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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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 취해진 조치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가 《크리스마스》전까지 전조선을 강점하겠다고 미쳐날뛰고있던 주체39(1950)년 12월 중순 어느날이였다.

그처럼 엄혹한 시련의 시기였지만 이날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는 전선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부상당한 전상자들을 만나보시기 위하여 친히 한 인민군후방병원을 찾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자들의 방에 들리시여 구들을 짚어보기도 하시고 그들이 덮은 침구를 만져보기도 하시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중환자들을 도로 자리에 눕히시며 그들의 머리도 짚어보시였다. 그이께서는 한 중환자의 곁에 다가앉으시여서는 그의 손맥을 짚으시고 상처가 어떤가, 입맛은 있는가, 먹고싶은것은 없는가, 고향은 어데며 부모가 계신가, 학교는 어데까지 다녔으며 어느 전투에 참가했는가 하는것을 하나하나 물어주시였다.

그는 친어버이심정으로 자신의 생활에 대하여 물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입대경위와 락동강전투에까지 참가하였다는것을 정중히 대답올리였다. 그리고는 원쑤를 모조리 쓸어눕히자던것이 부상을 당하고 병원에 누워있으니 수령님을 뵈올 면목이 없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면목이 없다?! 아니요. 동무는 아주 용감하게 잘 싸웠소. 동무들은 모두가 나라의 참된 아들딸들이요. 조국과 인민을 위해 용감하게 싸운것은 참으로 좋은 일이요. 그것은 후대에 자랑스럽게 전해질 위훈이요.》라고 하시며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고 고무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에 감격한 그는 빨리 병을 치료하고 꼭 다시 전선으로 나가겠다고 그이께 거듭 맹세를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모포깃을 여미여주시며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지금 동무의 전투는 병과 싸우는것이요. 또 이것이 동무에게 맡겨진 혁명과업이요.

이제 건강만 회복되면 전선에 나가 싸울수도 있고 학교에 가서 공부할수도 있소.

우리는 부상당한 동무들의 장래문제를 생각할 때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오.》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을 듣고있던 전상자들은 자기들을 한품에 안아 보살펴주시는 어버이 그 사랑에 모두가 목메여 울었다.

그이께서는 울지들 말라고, 눈물을 흘리는것을 보고 떠나면 나도 가슴이 아프지 않는가고 하시면서 병원일군들에게 동무들은 환자들의 어머니가 되여야 한다고, 이 동무들을 더 잘 치료해주어야 하겠다고 당부하시였다.

병원에서 환자들을 보살펴주시고 최고사령부에 돌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각전원회의를 여시고 영예군인들을 우대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도록 하시였다.

내각결정에는 이렇게 밝혀져있다.

《…싸우다 부상을 당한 인민군장병들에게 따뜻한 숙식을 제공하며 정성껏 치료하여 그들로 하여금 속히 다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복무할 기회를 지어줄것이며 부상병들을 위하여 영예군인학교를 적당한 지역에 설치하고 각종 실무적교육을 실시하며 그들의 안정한 생활을 보장할것.…》

그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각회의를 비롯한 주요회의들에서 영예군인들을 따뜻이 보살펴줄데 대한 조치를 거듭 취해주시였으며 주체40(1951)년 6월부터는 영예군인학교들이 일제히 학업을 시작하도록 해주시였다.

영예군인들을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보배로 여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은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그러하였듯이 전후와 사회주의건설시기를 거쳐 오늘까지도 끊임없이 이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