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100)
 

‘황색 바람’ 불어도 운명공동체의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황색 바람’에 휘말린 387,000명
 
2012년 11월 12일 <연합뉴스> 속보란에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그 통신사 특파원이 보내온 기사 한 편이 실렸다. 보도기사는 “고강도 경제개혁에 나선지 2년이 넘”은 쿠바가 “변화에 잰걸음을 보이고 있다”는 심상치 않은 문구로 시작된다.

특파원은 쿠바에서 지난 2년 동안 진행된 이른바 ‘고강도 경제개혁’이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쿠바 사회에 얼마나 확산시키고 있는지를 파악하기에 분주하였다. 쿠바 혁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식한 특파원의 눈에 비친 것은 빵과 옷, 잡화 따위를 파는 개인상점들과 개인이 운영하는 크고 작은 식당들이 아바나 거리 곳곳에 속속 들어서고 있는 낯선 모습이다.
 
<연합뉴스> 특파원의 아바나발 보도기사는 과장이 아니다. 자영업자들과 자경농민들이 대거 출현한 쿠바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의 ‘황색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1959년 1월 1일 바띠스따 친미예속정권을 뒤집어엎고 미국의 제국주의 지배와 수탈에서 벗어나 중남미지역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어놓은 쿠바 혁명. 그 혁명의 길에서 수많은 유명무명의 열사들이 피땀으로 쟁취한 사회주의체제를 꿋꿋이 수호해온 쿠바에서, 누가 누구를 억압하거나 차별하거나 착취하지 않는 국영기업과 국영농장에서 집단주의 생산활동으로 사회주의경제를 운영해왔던 바로 그 나라에서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소란스러운 사회변동은 쿠바 공산당이 178개 부문에서 자영업을 허용하였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쿠바는 지금 농업과 서비스업에서 이른바 ‘자유화’를 허용하는 조치를 시행하는 중이다. 자영업 가운데 대표적인 것들은 식당, 술집, 잡화상, 미장원, 택시영업, 소규모 건축업, 건축자재 판매 등이다. <뉴욕 타임스> 2012년 7월 16일 보도에 따르면, 쿠바에서 2010년 말 자영업을 허용하는 조치가 시행된 이후 지난 20개월 동안 수많은 국영기업 노동자들과 국영농장 근로자들이 자영업자로 변신하였는데, 1,124만 명 쿠바 인구 가운데 현재 자영업자는 약 387,0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쿠바에서 자영업이 번창하기 시작하자, 다른 나라들에 가서 사들인 상품을 쿠바로 가지고 들어와 자영업자들에게 파는 이른바 ‘보따리 장사’도 번창하게 되었다.
  
‘황색 바람’ 부추긴 미국의 간계
 
그런 사정을 간파한 미국은 일찌감치 2009년부터 쿠바계 미국인의 쿠바 여행제한과 쿠바 송금제한을 전격적으로 완화해줌으로써 쿠바 사회에 불기 시작한 자본주의시장경제의 ‘황색 바람’을 한층 더 격화시켰다.

이를테면, 2012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약 40만 명에 이르는 쿠바계 미국인들이 쿠바에 들어갔고, 미국은 해마다 쿠바인 3만 명에게 미국 방문을 위한 입국사증을 발급해주고 있다. 이러한 쿠바와 미국 사이의 ‘자유여행’은 미국 상품과 미국 문화가 마치 탁류처럼 쿠바로 흘러들어가는 거대한 ‘배수구’ 구실을 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의 쿠바 여행 자유화 조치 이후, 쿠바에서 비공식 시장의 상품거래액은 연간 10억 달러로 급증하였으며, 미국의 타락한 저질문화가 쿠바 청년층에 침투하여 순박한 그들의 정신세계를 더럽히고 있다.
 
이러한 ‘급변사태’에 당황한 쿠바 당국은 ‘보따리 장사’를 통한 비공식 수입상품에 대한 관세를 크게 올리는 차단조치를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비공식 수입상품에 대한 관세가 100%나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외국상품이 밀려오는 것을 세금부과로 막을 수 있는 시기는 이미 지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쿠바 공산당은 쿠바 혁명 이후 처음으로 개인이 주택과 자동차를 사고 팔 수 있게 허용하였다. 물론 주택은 한 채 이상 매매하지 못하도록 규제하였지만, 그런 규제가 무색하게 주택시장이 출현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지금 주택보급율이 80%선에 머물러 있는 쿠바에서 주택시장의 출현과 함께 주택거래가 확산될 것은 뻔한 이치다. 중고자동차시장도 형성되고 있다.
 
쿠바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의 ‘황색 바람’은 서비스업 부문만이 아니라 농업부문에서도 불고 있다. 쿠바에서 국영농장을 이탈한 자경농민은 현재 170,000명으로 늘었다. 쿠바 당국은 자경농민이 자기가 수확한 농산물을 국영호텔이나 국영식당에는 팔 수 있지만, 개인상점이나 개인식당에는 팔 수 없도록 금하였다. 그러나 그런 규제조치는 맥을 추지 못한다. 개인식당과 자경농민이 급증하자, 국영농장에서 불법으로 빼돌린 농산물이 암시장을 통해 개인식당에 공급되는 범죄도 생겼다.
 
 전환속도가 중국보다 더 빠르다
 
쿠바 공산당 정치국원이며 쿠바 국가평의회 부의장인 에스떼반 라조 에르만데즈는 앞으로 5년 동안 쿠바 국내총생산(GDP)에서 자영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5%에서 40-45%로 급증할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이것은 쿠바 경제가 국영기업 및 국영농장 55%와 자영업 및 자경농업 45%의 비율로 재편될 것임을 말해준다.
 
현재 중국의 경우, 국유기업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5%인데, 쿠바는 앞으로 5년 안에 국영기업 및 국영농장 비중을 55%까지 낮추게 될 것이므로, 쿠바의 자본주의시장경제 도입속도는 중국보다 더 빠른 것이다.
 
1984년 10월 20일 중국공산당 12기 3중 전회에서 ‘경제체제 개혁에 관한 결정’을 채택한 이후 중국 국유기업의 비중이 45%로 낮아지기까지 20여 년이나 걸렸는데, 2011년 4월 18일 쿠바공산당 제6차 대회에서 ‘경제개혁안’을 채택한 이후 5년 동안 쿠바 국영기업 및 국영농장의 비중이 55%로 낮아지는 것이다. 쿠바의 자본주의시장경제 도입속도는 중국보다 훨씬 더 빠르다.
 
쿠바가 그처럼 급진적으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도입하는 것은 사회주의공급체계가 자본주의거래체계로 차츰 대체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물론 중국처럼 쿠바도 경제부문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사회주의계획경제와 ‘공존’시키는 이른바 혼합경제(mixed economy)로 전환하면서도, 정치부문에서는 사회주의정치체제를 여전히 고수하겠지만,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급속한 도입과 혼합경제로의 전환이 몰고 올 사회계급모순의 격화와 그에 따른 사회정치적 불안정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황색 바람’의 근본원인
 
쿠바는 왜 사회주의계획경제에서 혼합경제로 전환하게 된 것일까? 겉으로 나타난 원인은 사회적 생산력이 정체되었기 때문이다. 쿠바 인민의 물질경제적 요구는 날로 높아지는 데 비해, 쿠바의 생산력은 그 요구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정체된 것이다.
 
쿠바의 생산력은 왜 정체상태에 빠졌을까? 자원과 노동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체상태에 빠진 게 아니다. 쿠바에는 자국 인민을 먹여 살릴 만큼 넓은 땅이 있고, 열대작물을 재배하기에 적합한 기후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올해 140만t의 원유도 생산하였다. 그런데도 쿠바는 식량을 미국에서 수입해야 하고, 석유를 베네주엘라에서 수입해야 한다. 쿠바는 왜 식량과 석유를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풍부한 천연자원을 이용하여 생산력을 발전시키려는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열기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서 식어버렸는데, 땅이 아무리 넓으면 뭐하고, 석유가 쏟아져 나오면 뭐하나? 실제로, 쿠바 국영농장 토지 가운데 상당부분은 경작을 포기한 휴경지로 되었고, 쿠바 국영기업은 기술혁신을 하지 못해 근로자를 자영업으로 전출시키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쿠바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혼합경제로 전환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명백하다. 그것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서 사회주의경제건설의 열기가 식어버렸기 때문이다.
 
자본가계급이 노동계급을 고용하고 그들에게 임금노동을 강요함으로써 유지되고 성장하는 자본주의시장경제와 근본적으로 다르게, 사회주의경제건설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협동정신과 자발적 열의에 의해서, 오직 그것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쿠바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 속에서 협동정신과 자발적 열의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쿠바가 혁명에 성공하여 계급적 예속을 끊고 사회적 평등을 실현한 때로부터 반세기가 지났지만, 쿠바 인민들이 사회적 평등에서 더 나아가 계급적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려면 집단주의사상을 자기의 생활원칙으로 삼고 그대로 살며 투쟁해야 하는데, 쿠바공산당은 자기 인민을 집단주의사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였다. 
 
남들은 죽건 말건 나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식의 개인주의사상을 버리고, 생사고락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집단주의사상을 깨달은 인민들만이, 오직 그렇게 각성된 인민들만이 사회주의계획경제와 사회주의자력갱생을 실현할 수 있으며, 사회주의운명공동체를 건설할 수 있다. 사회주의가 하나의 자기완결적인 사회체제로서 존립하고 발전할 수 있는 길은 바로 그러한 집단주의사상을 전 사회적으로 각성하고 무장하는 길밖에 없는 것이다. 
    
집단주의사상으로 각성, 무장한 인민들이 사회주의운명공동체를 건설하면, 사회주의를 완성해가는 혁명의 머나먼 길에 한때 시련과 역경이 닥쳐와도 자본주의시장경제에 절대로 한 눈을 팔지 않으며, 제국주의무력침공과 사상침투에 절대로 꺾이거나 변질되지 않으며, 사회주의계획경제와 사회주의자력갱생을 자기 목숨처럼 끝까지 수호하려는 결심을 오히려 더욱 굳게 갖게 된다.
 
사회주의의 길은 누가 가라고 시켜서 억지로 가야 하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가고 싶어 가는 사상적 각성의 길이며, 모두가 손잡고 함께 가는 집단주의의 길이다. 그리하여 집단주의사상으로 각성, 무장한 인민이 시련과 역경을 뚫고 전진하여 마침내 승리하는 길이다.
 
그런데 쿠바 인민들 속에서 바로 그러한 집단주의사상이 약화된 것이다. 쿠바공산당이 자기 인민을 집단주의사상으로 각성시키고 무장시키는 가장 중요한 과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약화된 것이다. 사회주의의 흥망성쇠를 판가름할 쿠바의 명운이 걸린 집단주의사상교양의 역사적 과업은 쿠바공산당이 사상부문, 정치부문, 문화예술부문, 교육부문에서 적어도 30년 이상 오랜 기간 동안 당력을 총집중하여 추진해야 할 방대한 과업이다. 또한 그것은 당조직이 인민을 강제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마치 어머니가 아들딸을 사랑으로 보살피며 이끌어주는 것처럼 수행해야 할 어려운 과업이다.
 
오늘날 혼합경제로 전환하는 낯선 상황에 직면한 쿠바공산당과 쿠바 인민은, 처음부터 끝까지 집단주의사상으로만 사회주의가 존립하며 발전할 수 있다는 진리를 만나게 될 것이며, 쿠바의 역사에서 사회주의운명공동체의 위대한 시간은 ‘황색 바람’에 단절되지 않고 언제까지나 끝없이 흐를 것이다. (2012년 11월 12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