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독재일당의 정수장학회 강탈진상을 고발한다

조선민주법률가협회 진상공개장

최근 괴뢰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남조선에서 정수장학회문제가 커다란 사회적물의를 일으키고있다.

정수장학회는 《유신》독재자 박정희역도가 1960년대 초에 한 기업가의 재산을 강권으로 빼앗아 개인소유로 만든것으로서 일찌기 피해자측에 되돌려 주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수십년이 지난 오늘도 《유신》족속들이 정수장학회를 차지하고있을뿐아니라 이제는 그 재산을 팔아 《새누리당》후보의 《대통령》선거에까지 쓰려 하고있다.

더우기 경악을 금할수 없는것은 정수장학회의 주식매각놀음이 여론의 도마우에 오르게 되자 《유신》잔당들과 《새누리당》패거리들이 정수장학회는 강압적으로 빼앗은것이 아니라느니, 공익단체라느니 하는 철면피한 궤변들을 늘어놓고있는것이다.

력사적사실은 그 무엇으로써도 지워버릴수 없다.

조선민주법률가협회는 장학회가 《유신》독재자에 의해 어떻게 무참히 강탈당하고 지금까지 누구의 손탁에서 무엇을 위해 존재해왔는가를 낱낱이 까밝히기 위하여 이 진상공개장을 발표한다.

 

1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역도가 권력과 총칼로 민간인재산을 강압적으로 빼앗아낸 《유신》파쑈독재의 전형적인 략탈물이다.

원래 정수장학회의 전신은 부일장학회였다.

부일장학회는 남조선 부산시에서 삼화고무회사와 《부산일보》를 경영하던 기업가 김지태가 1958년 11월에 부산지역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대줄 목적으로 설립하였다.

김지태는 1961년 3월 박정희가 5. 16군사쿠데타를 준비하면서 거사에 필요한 자금을 대줄것을 요구한데 대해 단호히 거절하였으며 나중에 역도가 그의 집에까지 찾아가 손을 내밀었지만 끝내 응하지 않았다.

뿐만아니라 박정희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즉시 《부산일보》를 통해 그를 비판하고 군사독재의 철페와 민주주의실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그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긴 박정희는 《국가재건최고회의》를 통해 1961년 5월 《부정축재자처리요강》이라는것을 발표하고 20여명의 부정축재자들속에 김지태를 포함시켜 그의 재산을 강탈하는데 달라붙었다.

1962년 1월 초에는 제가 직접 부산에 내려가 괴뢰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에게 5. 16군사쿠데타에 비협조적이였던 김지태를 수사하라고 지시하였다.

그에 따라 중앙정보부는 김지태에게 무려 9개 항목의 부정축재혐의를 들씌워 수사하는 놀음을 벌렸으며 일본에서 치료중인 그를 남조선에 끌어들이기 위해 안해 송혜영을 밀수혐의로 체포하였다. 그 소식을 듣고 4월 20일 황급히 남조선에 돌아온 김지태는 역도패거리들에 의해 김포비행장에서 즉시 련행당하여 부산교도소에 감금되였다.

박정희역도는 당시 부산지구 계엄사령관과 괴뢰법무부 장관 등을 내세워 김지태에게 부일장학회와 《부산일보》, 《MBC》방송, 《부산문화방송》 등을 내놓으면 석방시켜주겠다는 파렴치한 강도적요구를 들이댔다.

김지태가 이를 완강히 거부하자 역도패거리들은 1962년 5월 그에게 7년의 징역형을 들씌우며 재산포기를 강요해나섰다. 6월에는 부산에 있는 괴뢰륙군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에 그를 끌고가 권총까지 내들고 강박하였다.

결국 박정희역도와 그 패거리들의 강압에 의해 김지태는 결박당한 상태에서 부일장학회의 운영권과 《부산일보》, 《MBC》방송, 《부산문화방송》의 주식들을 100%, 당시의 부산시 서면일대의 토지 10만 147평을 내놓는다는 재산포기각서와 기부승낙서에 도장을 찍지 않으면 안되였다.

김지태의 재산을 강압적으로 빼앗은 박정희일당은 그 내막이 드러날가봐 강제날인을 받은 장소를 괴뢰륙군군수기지사령부 법무관실이 아니라 부산교도소 면회실로 바꾸어놓았고 날자도 위조하여 그가 스스로 재산을 바친것처럼 꾸며놓는 비렬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1962년 7월에는 강탈한 부일장학회의 명칭을 5. 16장학회로 변경시켰다. 그리고 강탈한 재산을 돌려줄데 대한 김지태와 야당인물들의 거듭되는 요구를 가차없이 눌러버렸다.

1971년 이전 민주당소속 《국회》의장이였던 곽상훈이 박정희를 만난 기회에 김지태의 재산을 돌려주라고 하자 역도는 악을 쓰며 반대하였다.

김지태는 후날 자기의 자서전 《나의 리력서》에서《당국자들은 번갈아 나를 찾아와 압박했고 나중에는 작성해온 재산포기각서 등을 들이대며 강제로 날인하게 하였다.》고 고발하였다.

그의 맏아들 김영구도 《내가 도장을 가지고 갔을 때 아버지는 수갑을 차고있었으며 그 손으로 도장을 찍었다. 감옥에 갇혀 수갑이 채워진채 재산포기각서를 쓴것만큼 자진헌납이 아니라 강제헌납이며 명백한 강탈행위였다.》고 절규하였다.

당시 수사를 담당하였던 괴뢰중앙정보부 부산지부장 박용기는 1963년 김지태에게 《뒤에서 조종한 인간들에게 휩쓸려 죄를 지었다.》고 사과의 편지까지 보내였다.

괴뢰당국도 2005년에 김지태의 부일장학회헌납은 박정희의 지시로 중앙정보부가 강압적으로 조작한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얼마전 괴뢰부산고등법원은 당시 김지태의 재산헌납은 자발적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박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후보를 비롯한 보수패거리들이 강탈이 아니라 헌납이라느니, 정수장학회는 부일장학회와 관계없다느니 하고 강변하는것이야말로 《유신》독재에 대한 로골적인 비호두둔이고 피해자들에 대한 참을수 없는 모독이다.

 

2

《새누리당》패거리들이 정수장학회에 대해 그 누구에게 소속되여있는것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복무하는 공익단체라고 떠들어대고있는것 또한 파렴치한 넉두리이다.

정수장학회는 지금까지 박정희역도와 그 일가족속들의 손에 철저히 장악되여있었으며 그들의 부정축재와 치부, 《유신》체제에 대한 찬미와 부활을 위해 복무하여 왔다.

정수장학회라는 그 이름자체가 박정희와 륙영수의 이름자를 딴것이다.

박정희역도는 부일장학회를 빼앗아 이름까지 고쳐서 제것으로 만들었을뿐아니라 그 운영도 자기의 일가족속과 측근인물들이 틀어쥐고 하게 하였다.

장학회의 리사장직은 재건국민운동본부 본부장을 했던 리완구로부터 시작하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고문, 괴뢰내무부 장관을 하였던 엄민영, 괴뢰국무총리였던 김현철, 박정희역도와 친구지간이고 《MBC》방송사 리사였던 최석재 등 전부 박정희역도의 핵심측근들이 차지해왔다.

박정희가 죽은후 동서인 조태우, 륙영재단 어린이회관 관장 김창환이 련이어 리사장직을 맡았다.

현 《새누리당》후보 박근혜도 1995년부터 10년간 리사장직을 차지하고있다가 정수장학회와 관련한 부정부패행위로 물의를 일으키자 물러났다.

현 정수장학회 리사장 최필립역시 1974년에 박정희역도의 의전비서관을 하였고 죽을 때까지 박정희일가를 돌보겠다고 맹세다진 측근인물이다.

최필립스스로가 《한겨레》와의 기자회견에서 《1978년 박정희대통령이 나를 직접 불러〈큰 애(박근혜)주변이 좀 시끄러운데 자네면 잘할거야.〉라고 하면서 그의 비서관직을 맡겼다.》고 자랑한것은 그 내막을 잘 보여준다.

현재 5명의 리사들을 보아도 3명은 박근혜가 직접 임명하였고 2명은 최필립이 내세웠다.

장학회는 박정희의 손에 넘어간 후 장학재단과 《부산일보》, 《MBC》방송사 등으로부터 매해 25만명의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줄수 있는 기부금을 받았지만 지난 50년동안 실제로 장학금을 대준 학생수는 겨우 3만 8 000여명뿐이다.

이것은 김지태가 1958년 부일장학회를 내오고 박정희에게 빼앗길 때까지 4년동안 1만 2 000여명에게 장학금을 대주었던것과는 너무도 대조되는것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패거리들의 말대로 정수장학회가 사회에 헌납된것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그 재산은 사회공공사업에 이바지했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사실 정수장학회로 들어오는 자금은 거의 전부가 박정희일가와 그 족속들의 치부와 역도의 몸값을 올리는데 돌려졌다.

박근혜만 보아도 리사장으로 있은 10년동안 정수장학회로부터 보통 한해에 2억 5 000만원의 보수금을 받아먹었는데 이것은 장학회직원들이 받는 보수금전량의 절반에 가까운 액수였다.

박근혜는 리사장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장학회에서 리사장전용차로 사들인 승용차를 그대로 타고다녔다.

정수장학회는 박정희집권기간 역도의 부정축재자금을 마련해주었을뿐아니라 《유신》을 찬미하는 어용기구로 복무하였다. 그리고 역도가 심복의 총에 맞아 죽은 후 남조선각계층의 규탄에도 불구하고 박정희파쑈독재를 변함없이 미화분식해온 그야말로 《유신》독재의 심복기구이다.

정수장학회는 명칭 그대로 지금까지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찬양하는데서 앞장서왔다. 박정희, 륙영수기념사업회, 정수문화예술원 같은것을 내오고 《유신》잔당들이 벌려놓은 기념관설립, 사진 및 미술전시회, 도서발간 등의 놀음에 빠짐없이 자금을 대주고있다.

지어 《박정희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그의 업적을 알리겠다.》고 하면서 사진첩발간에도 거액의 자금을 탕진하고있다.

또한 저들이 장학금을 대주는 학생들로 청오회라는 조직을 내오고 해마다 역도를 찬양하며 《유신》을 학습하는 놀음을 벌리는 등 장학금지원을 학생들이 박정희를 숭상하도록 하기 위한 모략수단으로까지 삼고있다.

정수장학회는 《유신》체제의 실질적인 부활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있다.

정수장학회는 박근혜가 정계에 나서도록 적극 밀어주었고 그가 정계에 나섰을 때에는 끊임없이 정치자금을 대주었으며 장학금을 공간으로 학생들까지 정치지반으로 끌어들이는 놀음을 벌렸다.

또한 지역최대의 일간지인 《부산일보》와 남조선 주요언론의 하나인 《MBC》방송을 통하여 선거때마다 박근혜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여론전을 끊임없이 펴왔다.

이번에 정수장학회가 지금껏 끼고있던 《부산일보》주식 100%와 《MBC》방송사주식 30%를 팔기로 한것도 부산, 경상남도지역에서 《새누리당》에 대한 반감이 높아가자 돈을 뿌려 민심을 낚아보려는 술책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유신》의 후예가 나서서 자기는 이미 《정수장학회를 떠난지 오래기때문에 그와 아무런 인연도 없다.》느니, 《정수장학회는 어떠한 정치활동도 하지 않는 순수한 장학재단》이라느니 하고 떠들고있는것은 피해자를 두번 죽이고 여론을 우롱하며 력사를 외곡하는 철면피한 짓이 아닐수 없다.

지금 남조선각계층은 정수장학회를 하루빨리 그 주인에게 되돌려주고 《유신》후예들이 여기서 즉시 손을 뗄것을 강력히 요구하고있다.

《새누리당》패거리들이 《유신》독재의 부정부패수단인 정수장학회문제를 어떻게 하나 덮어버리려고 온갖 오그랑수를 다 쓰고있지만 진실은 감출수 없으며 력사와 민심의 심판을 면치 못할것이다.

 

주체101(2012)년 11월 3일

평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