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입]

 

통일을 기다리며

-배   안 -

(공생의 마을만들기 네트워크 요코하마 대표 재일동포 2세)


내 어깨를 둥둥 두드려 준 그 말, “통일이라…”

내가 고등학생 때 일이었을 것이다.

수다 떨며 떠들며 즐겁게 학교에서 함께 하루를 지낸 친구들이랑 헤어져 혼자 전철타며 집으로 향하던 때. 옆에 어떤 남성이 나란히 섰다. 낯익은 사람은 아니었다. 무심하게 선 나에게 그는 “어느 학교를 다니냐”고 우리말로 물어왔다. 그 말투는 분명히 재일동포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고 금방 나는 그가 남쪽에서 온 사람이라고 눈치챘다.

“조선학교요”라고 답한 나에게 그는 “너희 교복이 좋아서 물어 봤단다”고 했다. 그러고선 나에게 “학교는 재미있냐?”, “일본학교도 좋은 학교가 많은데 왜 조선학교를 다니냐?” 등등 질문을 던진다.

“조선사람인데 우리말 알아야죠. 그래야 앞으로 언젠가 고향가게 됐을 때 거기서 학교도 다니고 일가 어르신들 잘 모실 수도 있잖아요. 그리고 일본학교에선 우리나라 역사 제대로 안 가르쳐 줘요”.

그러고 난 다음에 부모님이 일본에서 살아도 조선인 답게 살아야 된다시며 우리를 조선학교에 보내신다고 얘기했다. 내가 일본에서 낳지만 통일만 되면 고향으로 가서 살고 싶다고 하니 그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잠시 말없던 그의 입에서 “통일이라…”라는 말이 조용히, 그것도 아주 조용히 새어 나왔다.

내가 내려야 할 역이 다가왔다고 전하자 그는 내 귓전에 나직이 “훌륭하다. 부모님도 그렇고 학생도. 언젠가 꼭 너희들이 우리나라를 마음대로 다니는 날이 와야 할 거다. 내가 이 짧은 시간에 너에게 배우고 간다. 공부 잘 하고, 언젠가 꼭 고향으로 가야 한다”며 내 어깨를 두드려 줬다.

때는 1970년대, 민주화란 말이 한갓 희망이었을 뿐, 그 빛은 희미하게 보이나마나 할 정도로 아득히 먼 곳에 있었다. 한국에서는 일본에서 우리말로 얘기하는 젊은이들, 더군다나 치마저고리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은 다 빨갱이라 교육된 상황이었다. 이런 사실을 10대의 어린 나이라 할지라도 모를 리가 없었다.

우리 집에선 고향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 댁에 전화 한번 거는 것도, 편지를 띄우는 것도 엄금이었다. 남쪽에 사는 일가친척들이 일본을 방문했다 하더라도 만나기조차 자유롭지 못한 아픔을 몸에 배듯 경험하고 있었다. 뿐 아니라 재일동포 유학생들이 간첩으로 몰려 체포된 끔찍한 사건들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고국의 현실은 짙은 안개처럼 내 앞길을 가려버리고 있었지만 웬일인지 나는 독재정권이 무너지고 민주화가 실현되기만 하면 우리는 늘 자유롭게 고향을 다닐 수 있을 것이라 의심치도 않았다.

한국이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인가

그때로부터 4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재일동포 1세들 거의 대부분이 고국을 다시 찾지도 못한 채 세상을 떠났고 고향을 제대로 알지도 못한 2세들도 고령에 달하기 시작하였다.

나도 참여정부 시대에 처음으로 고향을 찾게 되었지만 이 세상에 생을 받은지 거의 반세기란 세월을 보내고 난 다음에 찾은 고향엔 우리 일가는 아무도 없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를 아는 분들이 지금도 그곳에 계시는지도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지나가버린 오랜 세월은 내 마음 속에 서글프게도 아쉬움만을 남겨버리고 있다.

제 고향에 살고 싶다던 10대 소녀였던 내 꿈은 한국으로 들어 갈 적마다 영사관에서 일시 여행증을 발급받아야만 입국할 수 있는 정도로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일본의 외국인 등록증 국적란에 적혀진 ‘조선’이란 두 글자와 무관하지 않다. 남도 북도 아닌 이 표기는 일본정부가 만들어낸 무국적의 표징외 아무 것도 아니며 그들이 제 마음대로 재일동포들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일본정부도 한국정부도 한국국적을 취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북조선’ 취급을 한다. 그래서 이 국적표기를 가진 동포들은 현 정권 발족 이후로부터 거의 한국땅에 발을 내디디지 못하고 있다.

나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의 불이 붙는다.

사상, 종교, 정견 등 사람들의 속성, 취향 등은 각자 다 다르다.

원래 하나의 혈맥과 지맥, 넋으로 이어진 다양한 동포들을 그 품 안에 보듬을 줄도 모르는 한국이란 나라. 그 모습은 내가 사랑하는 고국의 민중들의 바람과 어긋나게 드러난다.

1, 2세대와 똑 같이 통일된 조국을 꿈꾸는 재일동포 3세들

40여년 전, 전철 속에서 주고받은 짧은 회화와 젊었던 내가 안은 희망은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고향으로의 자유로운 길을 열어주지도 않았다.

이는 온 겨레가 이어가려는 하나된 조국으로의 길을 영영 잘라 버리자는 것 외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한다. 오늘 재일동포사회도 3세들이 새로운 주인공으로서 등장하게 되었다만 그들 역시 그 다음 세대들에게 민족의 마음과 뜻을 전하려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가끔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과 재일동포 새 세대들의 미래상을 그려본다.

통일을 바라며 조국을 그리던 40년 전의 그 마음, 그 심정이 아직도 내 마음 속에 꿈틀거리는 것처럼 새 세대들도 똑 같이 통일된 조국을 꿈꾸며 이를 이루어보자 할 것이라고. 우리 민족의 얼을 지키며 우리 민족답게 살자는 이들의 고국에 대한 사랑은 언젠가 꼭 꽃필 것이라고.

통일이란 희망의 봄날을 기다리며

남북으로 갈라진 본국을 등에 업은 채 재일동포사회의 분단은 오늘도 지속되어 있고 이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조건을 그 아무도 마련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던 한국의 민주화는 꽃샘추위를 맞은 듯 차가운 바람 속에 있고 이는 40년 전 고국이 놓여진 그때처럼 하나의 조국을 원하는 우리 재일동포들의 몸과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있다.

그러나 봄은 오기 마련이다.

남북과 재일동포들을 이어주는 혈맥과 뜨거운 정은 우리를 서로가 자유롭게 오가며 만나는 길을 만들게 할 것이며 기어이 통일이란 희망의 봄날을 꼭 찾아오게 할 것이다.

이는 민중들에 의하여, 민중들을 위하여 이루어져 할 우리 모두의 역사적 사명일 것이다.

민중들이 하나된 힘으로 이를 실현하려 할 때 그 날은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