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행복의 창조자 중에서


2.
행복의 요람을 지키시여


3).  미래에 대한 락관을 안겨주시여

 

  강계정신이 온 나라에 차넘치게

 

사회주의는 지키면 승리이고 버리면 죽음이다. 사회주의수호를 위한 투쟁은 인민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투쟁, 행복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의 마음속에 사회주의승리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안겨주시기 위하여 자강도를 본보기로 내세울것을 결심하시였다.

한 단위에서 본보기를 창조하고 그것을 일반화해나가시는것은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령도의 특징이다.

내세운 로선과 정책의 정당성을 실물을 통하여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것은 백마디의 말보다 더 큰 감화력을 가진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자강도를 본보기단위로 정하신데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었다.

자강도는 여러 면에서 다른 도들보다 불리한 산간지대였다. 공업발전을 밑받침할만 한 자원도, 농사지을 번듯한 포전도 별로 없고 다른 지대와의 생산적련계를 발전시킬 교통조건도 불리하였다. 보이는것은 산과 골짜기들뿐이였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으로 하여 자강도인민들은 사실상 《고난의 행군》으로 인한 피해를 그 어느 도들보다 더 많이 받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궁벽한 산간지대 도를 본보기로 내세워 《고난의 행군》을 결속하실 결심을 내리시였다.

어렵고 불리한 조건에서 창조되는 본보기는 더 큰 감화력과 견인력을 가진다. 허나 그러한 본보기를 창조하기에는 그만큼 품이 많이 들고 정력을 바치지 않으면 안되는 법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모든것을 각오하시고 자강도를 《고난의 행군》결속을 위한 본보기단위로 정할 결심을 내리시였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자강도를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기 위한 본보기단위로 꾸리는데서 전력문제해결을 그 중심고리로 내세우시고 중소형발전소건설에 힘을 집중하도록 하시였다.

긴장한 전력문제를 푸는것은 경제적난국을 타개해나가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였다. 전기문제부터 풀어야 공장, 기업소들이 잘 돌아가고 석탄공업, 금속기계공업, 화학공업, 철도수송 등 나라의 전반적인 경제가 정상적인 궤도에 들어설수 있었다.

주체85(1996) 10 17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강도의 책임일군을 부르시여 전력문제해결을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미 그해 9월 그에게 자강도를 본보기로 내세우려는 자신의 결심을 알려주시고 중소형발전소건설에 힘을 집중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한번 내밀어보라고 고무해주시였다. 그리고 자체의 실정에 맞게 중소형발전소를 건설할수 있도록 일깨워주시고 외국에 가서 시야도 넓히고 필요한것을 보고 오게 하도록 하여주시였다. 그에 이어 또다시 전력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을 함께 토론하시기 위해 그를 찾으시였던것이다.

장군님께서는 전력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안을 토론해주시면서 군중적인 운동으로 중소형발전소를 많이 건설할데 대하여 특별히 강조하시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도를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수력자원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리용할수 있게 강하천을 따라 내려가면서 계단식으로 발전소를 건설하되 해당 지역의 실정과 조건에 맞게 여러가지 형식으로 규모도 중형, 소형, 극소형을 배합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그러시고 중소형발전소건설에 필요한 설비생산방도와 언제구조물, 발전설비설계보장대책에 이르기까지 중소형발전소건설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다음해인 주체86(1997)년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자강도의 중소형발전소건설정형을 료해하시고 해당한 대책을 세워주시였으며 이룩된 성과들을 보고받으시고 친히 건설자들과 지원자들에게 감사를 보내주시였다.

자강도일군들과 근로자들은 자기들을 가장 어려운 때에 시대의 앞장에 내세워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크나큰 믿음을 심장에 새기고 중소형발전소건설에 한결같이 떨쳐나섰다. 그들은 혁명적군인정신을 높이 발휘하여 한겨울에 언땅을 까고 얼음물속에 뛰여들어 언제를 쌓아나갔다. 모자라는 발전기문제를 풀기 위해 횡축발전기를 종축발전기로, 비동기전동기를 발전기로 개조리용하고 언제건설도 세멘트대신에 지방에 흔한 통나무와 진흙을 리용하였으며 배전반도 나무를 리용하였다. 자강도사람들은 전기문제를 풀기 위해 머리를 쓰고 대중의 창조적지혜를 발동시켜 물깊이가 불과 50cm, 하천의 폭이 1.5m가 되나마나한 실개천에서도 전기를 생산할수 있는 물레방아식수차발전소, 흐르는 강에서도 전기를 생산할수 있는 띄우개식발전소를 비롯하여 대용연료발전소, 움직이는 발전소 등 새로운 발전소를 창안건설하여 전기문제를 해결하였다. 긴장한 전기문제가 풀리게 되자 많은 공장들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였으며 수많은 세대들에 조명용전기를 보장하고 전기난방화까지 실현할수 있게 되였다.

그것은 말그대로 자력갱생이였고 무에서 유의 창조였다. 자강도사람들은 이 과정에 자기들이 지니고있는 무궁무진한 창조적힘을 자각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자강땅에서 이룩된 성과를 두고 못내 기뻐하시며 주체86(1997) 9월 일군들이 자강도안의 중소형발전소들을 참관하도록 하시였다.

참관과정에 일군들은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을 발휘해나갈 때 아무리 어려운 난관이 앞을 가로막아도 점령 못할 요새란 있을수 없다는 진리를 깊이 체득하였으며 전국각지에 중소형발전소를 대대적으로 일떠세워 나라의 부강발전에 이바지할 굳은 결의들을 다지였다.

주체87(1998) 1 16일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강도에 대한 력사적인 현지지도의 길, 강행군길에 오르시였다. 대한절기에 령하 30℃를 오르내리는 북방의 강추위가 몰아쳤건만 장군님께서는 내가 앞장서나가야 인민이 따라서고 강행군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여 최후승리를 이룩할수 있다시며 결연히 나서시였다.

1 16일 하루동안에만 하여도 장군님께서는 아침 7시에 렬차안에서 도의 책임일군으로부터 도의 형편을 료해하시고 사업일정을 료해하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강계시에 있는 북천띄우개식발전소, 장강1호발전소, 장강고등농업전문학교의 토목언제식발전소, 장강2호발전소를 현지지도하시였으며 전기화된 장강읍 55동의 살림집, 도농촌경리위원회 관개건설사업소에서 만든 대용연료에 의한 전기생산공정을 보아주시였다. 이어 오후 4시까지는 강계시 장자산발전소를 현지지도하시며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렬차숙소》에서 15분동안에 검소한 식사를 하신 후 잠시의 휴식도 없이 일군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그러신 후 또다시 어느 한 공장을 오랜 시간 현지지도하신 다음 강계시 북천3호발전소를 돌아보시고 저녁늦게 《렬차숙소》에 돌아오시여서는 도의 책임일군에게 방금 돌아보신 공장에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자강도에 대한 장군님의 현지지도는 매일매일의 일정이 이처럼 긴장하게 맞물려져있었으며 불면불휴의 나날들로 이어졌다. 1 16일부터 21일까지의 기간에 그이께서 걸으신 현지지도의 로정은 연 6,000여리에 달하였고 돌아보신 대상은 근 20개 단위를 헤아린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가시는 곳마다에서 령도자의 구상과 의도를 결사관철하며 래일에 대한 락관을 안고사는 자강도사람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뜨겁게 느끼시였다.

이에 대하여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강도일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자강도를 돌아보면서 내가 의도하고 내세운것,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이 옳았다는것을 다시금 확신하게 되였습니다. 자강도안의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오늘과 같은 어려운 때에 당을 어떻게 받들어야 하는가 하는것을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고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자강도인민들속에서는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혁명정신이 높이 발휘되고있다고 하시면서 자강도사람들은 의지가 강하며 패배주의란 말을 모르는것 같다, 자강도로동계급이 《고난의 행군》시기에 기대를 세워서는 안된다, 굶어죽어도 기계설비만은 베고 죽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투쟁하였다고 하는데 그 정신이 얼마나 훌륭한가, 로동자들과 담화해보아도 누구나 일감을 달라고 하지 먹을것이나 무엇을 달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우는 소리를 하지 않고 락관적으로 씩씩하게 살며 일하는 근로자들을 보니 힘이 나며 조선인민군협주단 공훈합창단의 노래를 듣는것처럼 기분이 대단히 좋다, 농촌에서도 논밭에 거름을 나르는 발구와 사람들이 길에 늘어섰는데 그들의 기세가 대단하다, 자강도사람들의 머리속에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사상이 꽉 들어차있다고 값높은 평가의 말씀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자강도인민들은 내가 탄 승용차가 지나가는것을 보고도 만세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군 하였다, 내가 탄 승용차를 향하여 눈물을 흘리며 환호하는 인민들의 감정은 지어낼수도 없고 돈을 주고 살수도 없는것이다, 이것은 당과 인민이 한마음으로 굳게 뭉친 우리 나라에서만 있을수 있는 일심단결의 참모습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과분한 치하에 몸둘바를 몰라하는 일군들에게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나는 자력갱생의 혁명정신과 당과 생사운명을 같이하려는 일심단결의 기상이 꽉 들어찬 자강도인민들을 보면서 큰 힘을 얻었고 사회주의가 인민들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잡고있다는것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였다고, 이런 로동계급, 이런 인민이 있기에 우리의 승리는 확정적이다, 이런 좋은 인민들과 함께라면 미제국주의자들을 이기는것쯤은 문제로도 되지 않으며 지구를 통채로 떠옮길수 있다는 배심을 가지게 된다고 뜻깊은 말씀을 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자강도인민들이 발휘한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강계정신》이라고 부르도록 하시고 그것을 온 나라가 따라배워야 할 고귀한 투쟁정신으로 내세워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자강도의 모범을 따라배우는 운동을 벌려 온 나라가 자강도사람들의 혁명정신, 강계정신을 따라배우도록 하여야 합니다. 강계정신이야말로 최후승리를 위한 강행군전투를 벌려나가는 우리 인민의 투쟁정신입니다. 강계정신을 가지고 투쟁하면 최후승리를 위한 장엄한 투쟁에서 영예로운 승리자가 될수 있습니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온 나라가 따라배워야 할 고귀한 투쟁정신으로 높이 내세워주신 강계정신은 선군시대를 대표하는 위대한 시대정신인 혁명적군인정신을 따라배우는 과정에 창조된 사회주의수호정신이며 온 나라에 새로운 천리마 대고조의 불길이 타오르게 한 투쟁정신이였다. 령도자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심에 기초한 결사관철의 정신, 자력갱생, 간고분투의 정신, 불굴의 투쟁정신, 미래에 대한 락관주의정신으로 특징지어지는 강계정신이야말로 《고난의 행군》을 하루빨리 결속하고 조국땅에 더욱 휘황한 사회주의락원을 건설하기 위한 인민들의 투쟁을 힘있게 떠밀어주는 위력한 추동력이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력사적인 자강도현지지도는 온 나라가 강계정신을 따라배워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루빨리 결속하기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갈수 있게 한 력사적계기로 되였다.

자강도사람들의 투쟁정신을 강계정신으로 높이 내세워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모든 부문, 모든 단위 일군들이 자강도일군들처럼 이악하게 달라붙어 대담하게 투쟁하면 경제사업과 인민생활에서 반드시 전환을 가져올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를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를 마치고 돌아오시자 곧 자강도에서 창조된 강계정신, 자력갱생의 모범을 온 나라에 일반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시였다. 그리하여 신문, 방송을 비롯한 출판보도물들이 자강도사람들의 자력갱생의 투쟁정신과 일본새, 그들이 이룩한 성과와 경험을 소개선전하는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편집하였으며 자강도의 경험을 온 나라에 일반화하기 위한 여러가지 조직사업이 진행되였다. 중앙기관 일군들과 도, , , 공장, 기업소 일군들의 자강도내 공장, 기업소들에 대한 참관사업이 조직진행되였으며 전국자력갱생모범일군대회를 비롯하여 자강도사람들의 투쟁정신과 기풍, 사업경험을 널리 일반화하기 위한 전국적인 규모의 여러가지 회의들이 진행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강계정신의 창조자들인 자강도사람들이 변함없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대오의 앞장에서 기수로서의 영예를 떨쳐나가도록 하기 위하여 그후에도 자주 자강땅을 찾으시여 그들의 투쟁을 힘있게 고무추동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7(1998) 6 1일 또다시 자강도를 찾으시여 여러 단위들을 돌아보시면서 자강도 로동계급은 계속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앞장에서 힘차게 전진하여야 한다고, 온 나라가 자강도 로동계급의 혁명정신, 강계정신을 따라배우고있는 조건에서 자강도가 모든 면에서 전국의 모범이 되여야 한다고 고무해주시였다.

그로부터 몇달이 지난 10월 20일과 22일 며칠사이에 두차례나 자강도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 공장, 기업소들과 희천려관 등을 현지지도하시면서 나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자강도인민들이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처럼 자강도를 전국의 본보기로 내세우시려 걷고 걸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자강도에 대한 현지지도는 주체88(1999)년에도, 주체89(2000)년에도, 새 세기에도 끊임없이 이어져 10여차례나 된다.

그 나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순간의 휴식도 없이 공장, 기업소, 학교, 협동농장들과 발전소, 살림집마을, 심심산골의 림산사업소에 이르기까지 찾으시여 인민들의 생활형편도 알아보시고 경제건설의 새로운 전망도 펼쳐주시며 자강도가 계속 전국의 앞장에서 나가도록 크나큰 고무와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자강도인민들에 대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 뜨거운 사랑은 그들의 심장속에 화산의 분출과도 같은 열정이 샘솟게 하고 용맹의 나래를 펴게 하였다.

자강도인민들은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신념과 락관의 구호를 부르며 생산과 건설에서 끊임없는 기적과 혁신을 창조하고 거리와 마을, 일터를 사회주의맛이 나게 일신시켰으며 생활을 락천적으로 진행해나갔다. 발전소건설뿐아니라 공작기계생산, 감자농사혁명, 두벌농사 등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과업을 제일먼저 접수하고 한치의 드팀도 없이 끝까지 관철해나갔다. 장군님의 두벌농사방침을 받들어 그전에는 엄두도 못내던 북부고산지대에서의 세벌농사를 성공시킨 하나의 사실에서도 자강도인민들의 투쟁정신과 일본새가 어떤 경지에 있는가를 잘 알수 있다.

자식이 잘 자라는 모습에서 온갖 시름잊는 어머니와도 같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들의 성과를 제일로 기뻐하시며 자강도는 별세상같다고, 강계정신의 창조자들답게 일을 많이 하여놓은데다가 공기가 좋고 물이 좋으니 자강도에 오면 떠나고싶지 않다는 정깊은 말씀을 하시였고 크나큰 고무를 주시였다.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앞장에서 나가는 자강도의 모범을 본받아 온 나라가 일떠섰다. 량강도와 함경북도, 함경남도, 평안북도, 평안남도, 황해남도, 황해북도 등 나라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모든 사람들이 자강도사람들처럼 살며 일해나간다면 못해낼 일이 없다는 신심드높이 제힘으로 제고장을 꾸리고 생산을 다그쳐나갔다.

중요공업부문에서도 기적과 혁신의 봉화가 타올랐다. 강계정신을 본받아 금속공업부문에서 성강의 봉화가 타오르고 그에 화답하여 기계공업부문에서 락원의 봉화가 타올랐으며 그것이 온 나라에 료원의 불길처럼 타번져 대중운동이 힘있게 벌어졌다.

자강도의 모범을 일반화하기 위한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세련된 령도가 있어 강계정신은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거대한 생활력을 발휘하게 되였고 이 정신의 위력으로 《고난의 행군》의 준엄한 시련은 성과적으로 극복되고 인민의 행복한 요람인 사회주의는 굳건히 수호되였다.

 

 

3. 인민의 행복한 생활을 마련하는 길에서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누리려는것은 인민들의 세기적념원이며 리상이다. 인민들이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는것도 결국은 보다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위해서이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들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생활의 향유자로 되게 하실 숭고한 리상을 안으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에 모든것을 다 바쳐가신다. 인민들이 남부럽지 않게 행복한 생활을 누리기 전에는 발편잠을 잘수 없다는것이 경애하는 장군님의 철석의 신조이다.

하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조국이 《고난의 행군》, 강행군이라는 전대미문의 시련을 겪는 시기에도 인민의 생명이고 생활인 사회주의를 선군의 총대로 지켜내시였을뿐아니라 인민들에게 더욱 유족하고 문명한 생활을 안겨주시기 위하여 온갖 심혈을 다 바쳐나가시였다.

사실 남들 같으면 열백번도 더 쓰러지고도 남을 시련의 시기에 사회주의제도를 지키는것 자체도 기적이였다. 그러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 엄혹한 시기에도 인민의 생활과 운명을 전적으로 맡아 안으시고 경제문화생활로부터 건강보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활을 다 육친의 정으로 돌보아주시고 선군시대와 더불어 인민생활을 더욱 향상시키기 위하여 끝없는 헌신의 길을 이어나가시였다.

인민생활향상에 바쳐진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는 조국땅우에 인민사랑의 서사시로 아로새겨졌고 인민의 행복한 생활의 창조라는 기적을 낳았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뜨거운 사랑과 은정의 해발이 있어 인민들은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물질문화생활의 향유자로 보람찬 삶을 누리고있다.

 

 

1). 유족한 물질생활토대를 마련하시려고

 

 

식량문제해결에서의 전환

 

인민대중의 값높고 행복한 생활에서 물질생활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물질생활은 사회생활의 기초를 이루는 분야이며 사람의 일차적인 요구, 육체적생명의 요구를 실현하는 생활이라고 말할수 있다. 사람은 단순한 생물학적존재와는 달리 사회적존재인것만큼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발전하고 사회가 발전하는데 따라 물질생활에 대한 사람의 요구는 끊임없이 높아진다.

그러므로 인민대중의 참다운 행복은 그들이 정치적으로뿐아니라 물질문화적으로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리는데 있다.

더우기 사회주의사회에서 인민대중은 국가와 사회의 주인인것만큼 마땅히 유족하고 문명한 물질생활을 누려야 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들에게 유족한 물질생활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하여 식량문제를 원만히 푸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도록 하시였다.

식량문제는 인민의 유족한 물질생활토대를 마련하는데서 우선적으로 해결하여야 할 문제이다.

물질생활이 사회생활의 기초를 이루는 분야라면 식량문제, 먹는 문제는 물질생활의 기초로 된다고 말할수 있다. 식량문제를 해결하는것은 사람들의 생존과 창조적활동의 필수불가결의 조건이다. 사람들이 옷을 잘 입지 못하는것은 참을수 있지만 배고픈것과는 타협할수 없다. 농사를 잘 지어 먹을것이 넉넉해야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인민들이 잘살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농사를 천하지대본이라고 하였다.

1990년대 중반기에 이르러 공화국에서는 농업생산이 계속 내려가 식량난이 조성되게 되였다.

민족이 대국상을 당한 이후 공화국에서는 여러해째 계속된 자연재해로 하여 농업생산이 현저히 떨어지게 되였다. 1994년과 1995, 1997년 등 련이어 들이닥친 왕가물과 큰물, 수십년만에 처음 보는 최대만조와 해일은 수많은 농경지를 파괴하여 혹심한 식량난을 가져왔다. 또한 세계사회주의시장이 무너지고 공화국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고립압살책동이 더욱 악랄해지면서 농업에 이바지하는 중공업부문들이 진통을 겪게 되고 농업생산에 필요한 기계설비, 화학비료와 농약을 제대로 생산보장할수 없게 되였다.

공화국이 경제생활분야에서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가 바로 식량난에 있었다.

식량문제를 푸는것은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결속하고 인민들에게 유족한 물질생활토대를 마련해주기 위한 기본열쇠였다.

하지만 제국주의자들의 경제봉쇄책동과 자연재해의 후과를 극복하고 식량문제를 풀자면 농업부문에서 일대 전환이 일어나야 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농업생산에서 일대 전환을 일으킬 확고한 결심을 지니시고 공화국의 구체적실정에 맞는 독창적인 농업혁명방침을 제시하시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심으로써 식량문제해결의 넓은 전망을 열어놓으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우선 감자농사혁명을 일으켜 식량문제를 풀데 대한 과업을 제시하시고 감자농사에서 일대 전변을 마련해주시였다.

산이 많은 우리 나라에서 감자농사를 잘하는것은 식량생산을 늘이고 인민들의 식생활을 개선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1700년대말∼1800년대 초엽, 조선에 들어온 감자는 무산지방을 중심으로 함경남북도와 평안북도, 강원도의 산간지대에서 일명 《북저》라고 불리우며 재배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밥이 주식으로 되여있는 우리 나라에서 감자는 주로 부식물로 취급되여왔으며 사람들은 감자농사를 사실상 논벼나 강냉이농사에 비해 소홀히 대해왔다.

사실 감자는 생산성이 높은 다수확작물이며 내한성작물이다. 산간지대에서는 감자농사가 강냉이농사에 비하여 수확고가 높으며 모든 면에서 유리하다. 또한 감자는 건강장수식품이며 주식물로도 리용할수 있다.

산이 많고 랭해가 심한 나라의 실정에서 감자농사를 식량문제를 푸는 방도의 하나로 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자농사혁명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몸소 진두에서 이끌어주시였다.

주체85(1996) 5월 량강도를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도의 책임일군을 통해 그 전해 감자농사형편과 이해 감자파종정형을 료해하시면서 감자농사를 해야 식량문제를 풀수 있다는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7(1998) 1월 중순 량강도를 또다시 찾으시고 어떻게 하나 감자농사를 잘하여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날 일군들에게 동무들은 나를 돕고 나는 동무들을 도와 감자농사에서 꼭 혁명을 일으키자고 절절하게 호소하시였다.

감자농사혁명방침과 그 실현방도까지 밝혀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먼저 량강도 대홍단군을 감자농사의 본보기단위로 꾸리도록 하시였다.

주체87(1998) 10 1일 대홍단군종합농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량강도에서 감자농사를 잘하여 혁신을 일으키는것과 함께 함경북도와 함경남도, 자강도와 강원도, 황해북도를 비롯하여 감자를 심을수 있는 곳에서는 다 감자농사를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이 말씀에는 나라를 기어이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만들어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시려는 그이의 확고한 결심과 의지가 그대로 어려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시여 감자농사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일으키는 사업은 하나의 혁명인것만큼 본보기단위가 있어야 한다고, 자신께서는 감자농사혁명을 일으키는데서 대홍단군종합농장을 본보기로 꾸리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대홍단군에 대한 현지지도가 있은지 열흘이 되던 10 11일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20세기를 보내고 21세기를 맞이하는 력사적시기에 우리는 농사법에서도 혁신과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는 감자농사에 힘을 넣어 끝장을 보려고 한다, 감자를 ha 60t만 생산하게 되면 감자농사에서 하나의 혁명이며 농업구조를 근본적으로 고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후 대홍단군에서는 감자농사혁명의 불길이 세차게 타올랐다.

대홍단군을 감자농사의 본보기단위로 꾸리기 위하여 제대군인들을 파견하시고 감자무비루스검사설비와 감자파종기, 수확기, 분무기, 뜨락또르 등 수많은 능률적인 농기계들을 보내주시고 전국이 대홍단의 감자농사를 지원하도록 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대홍단군에서는 감자농사혁명의 포성이 울린지 2년만인 주체89(2000)년에 군이 생겨 처음 보는 흐뭇한 결실을 마련하였다.

그리하여 대홍단군은 감자농사의 전국적본보기단위로, 감자농사의 명산지로 되였으며 이 과정에 새로운 농법인 대홍단식과학농법이 창조되였다.

감자농사의 본보기단위를 꾸려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대홍단에서 창조된 대홍단식과학농법을 전국에 일반화하도록 하시였다.

몸소 감자농사에서 전환을 일으키기 위한 투쟁을 진두지휘하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밑에 감자농사혁명의 불길은 온 나라에 세차게 타올랐으며 전국의 모든 곳에서 감자재배면적이 훨씬 늘어나고 감자생산수확고에서 경이적인 성과가 이룩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감자농사혁명을 일으켜 감자농사에서 이룩된 자랑찬 현실은 내외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남조선신문 《중앙일보》(2005 8 30일부)는 《김정일국방위원장 <감자농사 사령관 되겠다>》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실었다.

《…감자증산에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전면에 섰다.

1998 10 1김정일국방위원장의 량강도 대홍단 감자연구소방문은 북의 밭농사구조변혁의 신호탄이였다. 이날 감자농사를 통이 크게 잘해보아야겠다, 감자농사를 잘해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감자재배확대를 지시했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는 감자농사 사령관이 되려 한다고 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대홍단방문이후 북의 옥수수밭 상당부분이 감자밭으로 바뀌였다. 1997 4 5,000정보에 불과했던 감자밭은 20만정보로 늘어났다. 현재의 추세를 미루어 감자밭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나라를 아시아의 《감자왕국》으로 만들어 인민들의 식량문제를 풀어나가시려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은 오늘 장군님께서 온 나라에 지펴주신 감자농사혁명의 불길속에 나날이 현실로 전변되여가고있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또한 두벌농사방침과 종자혁명방침을 제시하시고 농업부문에서 그것을 철저히 관철해나가도록 하시였다.

부침땅면적이 제한되여있는 우리 나라에서 땅의 리용률을 최대한으로 높이는것은 식량문제를 자체로 풀기 위한 중요한 방도의 하나이다. 두벌농사는 같은 땅에서 농작물을 1년에 두번 재배하기때문에 단위면적당 알곡소출을 단벌농사에 비해 거의 곱절로 높일수 있게 한다. 두벌농사야말로 공화국의 실정에 맞는 집약농법이였다.

그런데 오래동안 단작재배에 습관된 농업부문 일군들과 농민들은 두벌재배를 기후풍토조건과 관련하여 실현하기 어려운것으로 단정하고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의 그릇된 관점을 바로 잡아주시고 두벌농사방법을 성공에로 이끌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먼저 여러 지방과 협동농장들에서 두벌농사를 시범적으로 짓도록 하시여 두벌농사에 대한 확신을 가지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주체84(1995)년에 벌써 황해남도 옹진지구에서 두벌농사시험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그 경험이 다른 지방들에 보급되기 시작하였으며 강원도의 일부 협동농장들에서도 좋은 성과와 경험이 창조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5(1996) 6 15일 일군들에게 강원도안의 일부 농장들에서 생육기일이 짧은 키 큰 모에 의한 두벌농사경험과 성과를 소개해주시였으며 그후 키 큰 모를 재배하는 수만정보의 논에 앞그루로 보리, 감자 등을 심어 두벌농사를 하도록 하시였다.

두벌농사에서 좋은 결실이 이룩되고있던 주체86(1997)년 9월 10일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부침땅면적이 제한되여있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 알곡생산을 늘이자면 결정적으로 두벌농사를 하여야 합니다. 두벌농사를 대대적으로 하자는것이 나의 의도입니다.

그이의 이 말씀에는 두벌농사로 알곡생산을 늘여 인민들의 식량문제해결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오실 원대한 구상과 결심이 담겨져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제시하신 두벌농사방침의 정당성은 실천에서 현실로 증명되였다.

주체87(1998)년에 황해남도 연안군 읍협동농장에서는 논면적의 33%에 해당하는 밭에 앞그루로 봄보리를, 뒤그루로 키 큰 모를 심어 많은 소출을 내였다. 북방의 자강도 장강군 읍협동농장에서는 세벌농사까지 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여러 농장들을 친히 찾아주시여 두벌농사정형을 세심히 료해하시였으며 그길우에서 수많은 사랑의 전설들을 수놓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주체88(1999)년 한해동안에만도 자강도 장강군 읍협동농장을 두차례씩이나 찾으시고 대단하다고 그들의 성과를 치하해주시고 그곳 관리일군을 시대의 영웅으로 내세워주시는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주체89(2000)년 8월 어느날 이른새벽 함경남도 함주군의 한 협동농장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소낙비가 억수로 쏟아졌지만 2모작 논벼작황에 그리도 만족하시여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런걸 보고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고 기쁨어린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우산을 사양하신채 비물에 옷을 흠뻑 적시시며 비오는 논두렁길을 걷고 또 걸으시였다.

인민들을 배불리 먹일수 있는 일이라면 새벽의 찬비를 맞으며 논두렁길을 걸으시는것도 락으로 여기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렇듯 끝없는 헌신은 그대로 사랑의 해빛이 되여 오랜 세월 단작경리에 머물러있던 이 땅에 두벌농사의 새시대가 펼쳐지게 하였다.

농업생산에 두벌농사방침이 철저히 구현된 결과 주체86(1997)년에 비하여 주체89(2000)년에 나라의 두벌농사면적은 3배이상으로 늘어났고 앞그루작물의 정당수확고는 4배이상으로 장성하였다. 이 과정에 공화국에서 두벌농사는 주체적인 영농체계로, 자기식의 농법으로 발전하게 되였으며 식량문제를 원만히 풀수 있는 또 하나의 돌파구가 열리게 되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농업생산을 늘이는데서 종자혁명을 기본고리로 틀어쥐고나가도록 하는데도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종자혁명은 우리 당의 농업혁명방침에서 기본고리입니다.

오늘 농업생산에서 종자혁명을 다그치는것은 하나의 세계적추세로 되고있다. 종자혁명을 하여야 농업생산에서 비약을 일으킬수 있다. 종자혁명을 하지 않고서는 농사에서 적지적작, 적기적작의 원칙을 지킬수 없으며 감자농사혁명도 일으킬수 없고 두벌농사도 발전시킬수 없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농업생산에서 종자혁명이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으로부터 출발하시여 육종사업에서 주체를 세우고 나라의 기후풍토에 맞는 여러가지 좋은 품종을 얻어내는데 큰 힘을 넣도록 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오늘 세포공학, 유전자공학과 같은 첨단과학기술이 빨리 발전하고있는 조건에서 이러한 과학기술을 리용하면 나라의 기후풍토에 맞는 여러가지 다수확품종을 만들어낼수 있다고 하시면서 종자혁명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을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종자혁명에서는 비료를 적게 요구하면서도 높은 수확을 내는 품종, 생육기일이 짧고 추위에 견디면서 수확이 높은 품종, 가물과 비바람, 랭해와 병충해와 같은 자연피해에 잘 견디는 품종을 얻어내는데 힘을 넣어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주체87(1998) 10 1일 대홍단군을 찾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감자농사에서 혁명을 일으키자면 무엇보다도 종자문제부터 풀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감자농사에서는 종자가 기본이라고 가르치시였다. 그러시면서 지금 우리 나라에서 감자농사가 잘되지 않는것은 다수확품종을 심지 못하고 비루스에 감염된 감자종자를 심는데 주요한 원인이 있다고, 감자농사를 잘하자면 결정적으로 종자혁명을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후 주체92(2003) 7 5일과 10 20일에도 나라의 기후풍토에 맞는 종자육종과 작물에 따르는 종자선택에 이르기까지 종자혁명실현에서 나서는 구체적인 문제들을 가르쳐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농업부문에서 종자혁명이 힘있게 추진되여 나라의 기후풍토에 맞고 많은 소출을 내는 다수확품종들이 농업생산에 적극 도입됨으로써 식량문제해결의 확고한 전망이 열리게 되였다.

식량문제를 원만히 풀어나가도록 이끌어주신 경애하는 장군님의 령도의 손길은 이뿐만이 아니다.

나라의 기후풍토와 농민들의 의사와 요구에 맞게 적지적작, 적기적작의 원칙을 철저히 지킬데 대한 문제, 콩의 원산지인 우리 나라에서 콩농사를 대대적으로 할데 대한 문제, 농업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화학비료를 적게 쓰며 여러가지 미생물비료와 유기질비료를 많이 생산리용할데 대한 문제 등 농업생산에서 전환을 일으켜 식량문제를 원만히 풀기 위한 방도들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투쟁을 현명하게 령도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색과 심혈은 정녕 끝이 없다.

그이의 정력적인 령도가 있어 공화국에서는 로력과 자재, 전력과 기름사정이 여전히 긴장하지만 농업생산에서 일대 전환이 일어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