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자산은 미래를 향한 낙관

곽동기 상임연구원

 

4.11 총선 이후, 우여곡절을 겪었던 통합진보당이 일정한 내적 체제정비와 함께 대선정국으로 나서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대선행보를 두고 말들이 많다. 이정희 전 대표와 민병렬 비대위원의 출마를 두고 한국사회는 극과 극에 달하는 반응으로 다양하게 대응하고 있다.
 

통합진보당의 앞길은 분명 가시밭길이다. 숱한 내외의 논란과 공세가 아직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한국정치무대의 최정점인 대통령 선거에 뛰어든 이상, 보수진영의 십자포화와 이른바
입진보들의 말꼬리공세를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의 미래는 낙관적이다. 민중의 힘에 의거한 참된 진보진영의 미래는 언제나 발전할 수밖에 없다. 미래를 향한 낙관은 언제나 진보의 자산이었다.
 

낙관은 곧 신념의 문제
 

미래를 향한 낙관은 개별 활동가들이 단순히 자기 기분을 좋게 가진다는 뜻이 아니다. 진보진영의 미래를 향한 낙관은 한 두 사람의 기분이 아니라 진보진영 전반에 형성될 수밖에 없는 과학적 필연이다.
 

진보운동의 정당성에 기초해 투쟁하는 진보진영은 언제나 운동승리에 대한 신념이 굳을 수밖에 없다. 진보운동의 신념이란 한국사회는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자주통일을 실현한다는 믿음이며, 그 길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헌신하겠다는 굳은 결심을 의미한다.
 

진보운동의 신념, 승리의 신념은 운동정세의 평가로부터 확인된다. 개별 상층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정국을 분석하는 것은 공중파의 정치평론가들이나 할 일이다. 민중의 편에 선 진보운동가는 역사발전의 주인인 민중의 처지와 조건, 민중의 각성정도를 기본으로 정세를 분석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의 몇몇 정치인들이 이른바
자해소동까지 빚으며 탈당한 결과, 통합진보당의 대중적 인식이 흐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결정하는 사람은 몇몇 정치평론가와 국회의원들이 아니라 유권자, 민중이다. 위험천만한 남북관계와 이명박 정부의 경제파탄에 대한 높은 분노, 실망스런 기성정치권 등 민중의 분노는 현재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 땅 수천만 민중이 민족적, 계급적 모순의 본질을 직시하며 국민주권을 향한 커다란 걸음을 내딛고 있는 오늘의 역사적 흐름을 읽어야 한다.
 

미국이 세계를 제멋대로 쥐락펴락하던 시절은 영원히 끝났다. 미 달러경제의 몰락은 국내 친미보수세력의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친미보수세력이 안보장사로 재미보던 시절도 영원히 끝났다. 현정세는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에 올라서서 한반도 평화협정과 전면전 가운데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와 국가보안법 폐지문제가 떠오르는 것은 사실상 시간문제이다.
 

한국사회의 핵심모순인 미국의 한반도 군사적 지배체제와 달러의존, 재벌의존 경제의 문제점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며 민중들은 이제
국민주권을 외치고 있다. 

미래의 희망은 정치상층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기저에 흐르는 민중의 의식흐름에서 찾아야 한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진보진영이 미래에 대한 낙관에 넘치는 것은 지난 역사발전의 궤도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 지난 역사는 민중의 정치적 진출이 적극화되어 왔던 민중승리의 과정이었다.
 

우리국민들은 냉전시기만 하더라도 미국이 세계의 경찰인 줄 알았지만 세기가 바뀌어 21세기가 되니 누구나 부시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에 침을 뱉고 있다. 수천만 국민에게 일방적인 통행금지를 강요하고, 백주대낮에 무고한 시민을 고문하던 야만적인 군사독재체제는 민중의 냉혹한 심판을 받고 역사의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80년대 IMF의 구제금융에 신음하던 남미대륙에서는 좌파 정부가 연이어 집권하고 있다. 북한을 적으로 바라보던 지난 과거에는 선거철만 되면 각종 북풍논란이 끊이지 않았지만, 2010년 지방선거에서 이명박 정부는 5.24 조치를 단행하였지만 한나라당은 오히려 역풍을 맞고 선거에서 패배하였다.
 

정치평론가들이 제 아무리 정국을 잘게 쪼개어 민중의 정치적 진출이 후퇴하는 것처럼 포장하려 해도, 역사는 엄연히 반제자주의 길, 국민주권의 한길로 도도히 굽이쳐왔다.
 

너무나 명백한 역사발전의 진리 앞에, 우리는 미래에 대한 낙관을 확신하게 된다.
 

20세기가 제국주의와 반제민중간의 첨예한 투쟁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제국주의 패권이 사라진, 자주와 평등의 공정한 국제질서가 정립된 세기로 기록될 것이다. 패퇴 몰락하는 미국의 처지는 한반도 체제변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날로 높아지는 민중의 국민주권 열망은 기어이 기성정치권을 쓸어버리고 새로운 정치, 참된 진보정치를 꽃피울 것이다.
 

낙관은 비관의 반대말
 

미래를 향한 낙관은 미래를 비관하지 말자는 말과 같다. 지난 역사적 과정에서 뚜렷이 증명되는 것은, 미래를 비관하는 운동가는 누구나 예외없이 자기운동을 자학하며 운동노선을 부정해 민중을 혼란에 빠뜨리곤 하였다는 점이다.

진보는 하나의 통일된 사상이론적 체계가 아니라 보수에 대한 상대적 표현이다. 현재의 사회문제점을 고쳐 앞으로 나아가려는 모든 세력을 진보라 통칭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미래를 비관하는 사람은 진보의 자격이 없다.
 

진보진영이 현실의 문제점을 고치려고 애쓰는 것은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한 것이다. 자기 신세를 한탄하며 미래를 어둡게 느끼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과거에 집착하게 되어있고, 결국은 보수진영을 두드리게 되어 있다. 과거 민중당 시절의 김문수, 이재오가 지금은 새누리당에 들어앉아 있는 희한한 현실도 기본은 그들이 자기운동의 신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내던졌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비관은 오히려 이명박 정권의 몫이다. 이제 몇 달 뒤면 청와대를 나와야 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실세들이 이미 줄줄이 구속되었으며 현재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특검까지 진행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등 전직 대통령들의 처참한 말로를 보더라도 미래에 대한 비관은 현 정권의 몫이지 우리 진보진영의 몫이 아니다.
 

상층정치 명망가들의 행보가 아니라 민중의 의식과 지향을 중심으로 정세를 판단하는 진보진영은 언제나 낙관에 넘치고 신심에 넘칠 수밖에 없다. 지난 5년간 벼르고 벼른 결과 마침내 대선국면이 다가왔다. 민심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고 내외 운동정세는 역동적으로 급진전하고 있다.
 

문제는 이제 진보는 다 끝났다며 자학하는 일부 상층 정치인들이다. 하늘을 찌르는 민중의 정권교체 열망에 부응하려는 진보운동진영이 문제될 이유는 전혀 없다.
 

미래를 낙관할 때 난관도 극복한다
 

물론, 미래를 낙관한다고 해서 진보운동 앞에 탄탄대로가 펼쳐져 있다고 볼 수는 없다. 낙관은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얻는 것이지 현존하는 어려움을 애써 외면하는 자기최면이 아니다.
 

진보운동에 열정을 가지고 임하면 숱한 가능성과 방법이 떠오르게 된다. 낙관은 열정을 낳고 열정은 진보운동의 폭발적 성장을 견인한다. 진보운동의 승리를 확신할 때, 투쟁에 나서는 민중의 열정은 배가 되고 새로운 창조가 연이어 나타난다.
 

그런 면에서 자기위업의 정당성에 기초한 정치적 자각 아래 진보활동에 뛰어든 진보운동가들은 비록 몸은 고될지라도 승리를 향한 낙관으로 마음만은 행복하다. 수십억 인류가 개척해나가는 역사발전의 한켠에서 내딛는 이름없는 작은 발걸음이라 하더라도 진보운동가의 마음은 긍지와 자부심으로 넘쳐난다.
 

고지는 여전히 눈앞에 있고 진보진영 앞에는 숱한 과제가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모든 난관을 헤쳐온 한국진보운동의 전통이 있으며 진보의 한걸음으로 줄달음쳐오르는 민중의 바다가 있다.
 

승리의 신심 드높이 민중의 바다에 뛰어들자. 미래는 투쟁하는 민중의 것이고 국민주권시대의 찬란한 미래는 확정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