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95)
 

진보정치와 사회변혁 전진시킬 결전의 10월을 맞으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5.2%에 비낀 진보정치의 희망을 보는가?

2012년 9월 25일 주한미국대사관이 길 건너편에 바라다보이는 광화문광장에서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공동대표가 대선출마선언식을 가졌다. 대선출마를 선언하는 그녀의 뒤로 주한미국대사관의 커다란 미국 국기가 내걸려 있었다.
 
 과거 대선시기에도 진보정당 후보가 대선출마선언식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이정희처럼 미국대사관을 등지고 대선출마를 선언한 후보는 없었다. 대선출마자가 선언식에서 미국대사관을 등진 것은, 미국의 발 아래 굴종해온 더러운 '하수인 정치'를 끝장내려는 강한 청산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확성기에서 울려나온 이정희의 육성은 차분하였으나, 그녀의 대선출마선언은 좀스러운 사회개량의 탁류를 거슬러 변혁적 시대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강렬한 울림이었다. 미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정치의 길을 개척하는 자주선언으로, 악정만을 거듭해온 수구우파정권을 영영 사라지게 하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진보선언으로, 치욕과 고통으로 얽룩진 저 낡은 분단체제를 허물고 21세기 누리에 빛날 통일조국을 세우려는 통일선언으로 옹골차게 영근 자주-진보-통일의 변혁적 시대정신이 3부 화음처럼 강렬하게 울려나온 것이다.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다시 치켜든 통합진보당 깃발은 그 강렬한 울림에 한껏 설레며 9월의 서울 하늘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 이튿날인 9월 26일에 대선주자 지지율이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박근혜 36.0%, 안철수 31.9%, 문재인 20.3%, 이정희 5.2%로 나왔다. 대선출마를 선언하기 전에 3.8% 수준에 머물렀던 이정희 지지율은 대선출마를 선언하자마자 5.2%로 올라간 것이다.
 
집당탈당의 풍파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밀려들고, 종북모략의 광풍이 모든 것을 날려버릴 듯 휘몰아친 혹독한 시련의 시기, 그 풍파와 광풍을 눈물겨운 투쟁으로 헤쳐온 통합진보당에게 5.2%의 지지율은 참으로 소중하다.
 
비록 10%에도 미치지 못하건만, 진보정치를 열망하는 각계각층 대중들이 안겨준 5.2%의 대선주자 지지율을 가슴에 받아안고 통합진보당은 다시 일어선 것이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으로 열어갈 자주의 길을 향해, 민중의 미래를 향해, 그리고 평화통일을 열망하는 조국의 미래를 향해 신들메를 매고 다시 떠나야 할 그 엄숙한 출발선에 다시 나선 것이다.

대선판에 뛰어든 무소속 제3후보, 그의 씁쓸한 운명

이정희를 제외하고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 3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이 9월 25일에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문재인 20.4%, 안철수 32.0%, 박근혜 36.4%로 나타났다. 그런데 문재인-박근혜 양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문재인 48.3%, 박근혜 43.3%였고, 문재인-안철수 양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문재인 36.9%, 안철수 42.1%였다.
 
문재인-박근혜 양자구도에서 근소한 차이로 박근혜를 살짝 앞선 문재인은, 안철수와 경쟁하는 양자구도에서는 안철수에게 상당히 큰 차이로 밀렸다. 이것은 안철수가 대선판에 뛰어들면서 문재인에게 매우 불리한 상황이 조성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안철수가 대선판에 뛰어든 것이 문재인에게 '불리한 요인'으로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은, 박근혜 지지층과 안철수 지지층이 서로 겹치는 부분보다 문재인 지지층과 안철수 지지층이 서로 겹치는 부분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국면 내내 안철수는 문재인 지지층을 자기쪽으로 강하게 끌어당기며 문재인을 낙선위험에 몰아넣을 것으로 보인다. 안철수가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들어 3자구도가 형성됨으로써 문재인의 대선가도에는 그처럼 커다란 난관이 조성된 것이다.
 
무소속 제3후보의 등장으로 대선판세가 야권후보에게 매우 불리하게 변동된 선행사례는 1997년 12월 18일에 실시된 제15대 대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선을 석 달 앞둔 1997년 9월 18일 민주당을 뛰쳐나간 이인제가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들자, 3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김대중 29.7%, 이회창 15.6%, 이인제 24.0%였다. 11월 10일 이회창-조순 후보단일화가 실현되자 이회창 지지율이 급상승하여 김대중을 맹추격하기 시작했는데, 11월 25일에 나온 지지율은 김대중 32.1%, 이회창 31.5%, 이인제 19.9%였다.
 
결국 제15대 대선은 김대중 40.3%, 이회창 38.75%, 이인제 19.2%의 득표율로 막을 내렸다. 김대중이 1.55% 포인트밖에 되지 않는 근소한 표차로 이회창을 간신히 이긴 것이다. 만일 이인제가 김대중의 표밭을 갉아먹지 않았다면 김대중은 여유있게 이겼을 터인데, 이인제가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드는 바람에 자칫 정권교체를 실현하지 못할 뻔한 위험이 조성되었던 것이다.
 
2002년 12월 18일에 있었던 제16대 대선에서도 매우 유사한 사례가 반복되었다. 2002년 5월 2일 여야 대선후보가 각각 확정되어 양자구도가 형성되었을 때, 지지율은 노무현 43.0%, 이회창 32.9%로 나왔다. 그런데 10월 8일 정몽준이 무소속 제3후보로 대선판에 뛰어들자, 3자구도에 나타난 지지율은 노무현 14.7%, 이회창 31.0%, 정몽준 27.1%로 요동치며 뒤집혔다.
 
11월 26일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로 대선판도는 다시 양자구도로 되돌아갔고, 지지율은 노무현 42.2%, 이회창 35.2%로 나왔다. 결국 제16대 대선은 노무현 48.9%, 이회창 46.6%의 득표율로 막을 내렸다. 노무현이 2.3% 포인트라는 근소한 표차로 이회창을 간신히 이긴 것이다. 만일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가 실현되지 못하였다면, 노무현은 이회창을 이기지 못하였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차례 대선경험이 주는 교훈은, 무소속 제3후보의 등장이 야권후보에게 매우 불리한 판세를 조성한다는 것과 후보단일화가 매우 중요한 승리요인이라는 것이다. 이런 교훈을 생각하면, 올해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해 문재인과 안철수를 후보단일화로 끌어가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는 실현될 수 있을까?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는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불행하게도, 그 두 후보가 단일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요인들이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후보단일화가 매우 힘들어 보이는 것이다.
 
첫째, 지난 시기 이회창-조순 후보단일화와 노무현-정몽준 후보단일화는, 당시 낮은 지지율밖에 얻지 못한 후보들 가운데 어느 한 쪽이 대선완주를 사실상 포기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아주 다르다. 안철수에게 쏠리는 지지율이 매우 높다. 안철수에게 쏠린 높은 지지율이 그의 대권야심을 계속 자극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어 보이니, 그는 문재인과 후보단일화를 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자기가 박근혜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젖은 안철수에게서 대선완주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그러나 정당의 안받침을 받지 못하고 정치경험마저 전혀 없고 '반짝 인기'에만 의존하는 무소속 후보 안철수가 대선에서 이길 가망은 없어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번 대선에서 안철수의 역할은 문재인의 표밭을 갉아먹음으로써 결국 박근혜를 당선시키는 '박근혜 간접지원'에 국한될 것으로 보인다.
 
둘째, 지금 주한미국대사관과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는 골프나 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니다. 그들은 이전 대선국면들에서 줄곧 그러했던 것처럼 올해도 본국으로부터 비밀공작역량을 대폭 지원받아 대선공작을 미친 듯이 벌이고 있을 것이다.
 
이 땅의 대선에 관련된 '위킬릭스' 비밀전문들을 분석해보면, 2007년 대선 때도 미국은 이명박을 당선시키기 위한 대선공작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한미관계의 비밀스런 내막을 모르는 사람은 믿기 힘들겠지만, 미국의 대선공작이야말로 대미예속의 추악한 단면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올해 대선에서 미국의 비밀공작목표는 박근혜를 당선시켜 새누리당의 집권연장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미국이 새누리당의 집권연장을 보장해주려는 까닭은, 지난 시기 노무현 정권과 마찰을 겪었던 씁쓸한 경험을 또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미국 고위관리들의 두뇌에서 출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지난 시기 미국에게 골치 아팠던 노무현의 '직계'이고, 지금 문재인에게 줄을 대고 있는 정계인맥도 이전에 노무현을 둘러싸고 있었던 정계인맥과 매우 유사하여 미국에게는 좀 골치가 아픈 인맥이다. 만일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당선되면, 내년에 제2노무현 정권이 출현하여 한미관계와 남북관계에서 자기들과 마찰을 겪을 수 있다는 껄끄러운 예감, 바로 이것이 미국 고위관리들이 문재인에게서 느끼는 거부감이다. 바로 그러한 사연이 있기 때문에, 미국은 문재인을 떨구고 박근혜를 당선시키려는 대선공작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만일 통합진보당이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을 겪지 않았더라면, 통합진보당 대선후보 이정희가 대선판세를 좌우할 제3후보로 당당하게 등장할 판이었다. 만일 이정희가 제3후보로 등장하였더라면, 비록 지금 안철수에게 쏠리는 지지율에는 미치지 못하였더라도, 적지 않은 지지율을 얻었을 것으며, 따라서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강력한 야권연대를 실현하고 정권을 교체하는 대선경로는 미국의 대선공작으로도 막을 수 없는 필연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정희가 서려고 하였던 제3후보 자리는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으로 결국 안철수에게 넘어가고 말았고, 통합진보당 대선후보는 제4후보로 밀려나고 말았다.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전진시킬 결전의 10월을 맞으며

이정희가 대선출마선언식에서 천명한 것처럼, 이번 대선에서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기도를 저지하고 정권교체를 실현하려면, 통합진보당은 제4후보로 밀려난 이정희를 제3후보로 올려세워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으로서는 매우 어려워 보이는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를 촉구하는 강력한 여론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강력한 여론압박만이 그 두 후보를 단일화로 끌어낼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는 문재인으로 단일화된다는 뜻이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단일화가 실현되어야, 통합진보당 대선후보가 제3후보로 올라서면서 대선구도를 문재인-박근혜-이정희 3자구도로 재편할 수 있고, 그 3자구도에서 이정희의 정치적 역할을 극대화하여 물 건너간 것처럼 보이는 야권연대를 기어이 실현할 수 있고, 전략적 야권연대로 정권을 교체하여 진보정치를 밀고 나갈 전진의 교두보를 사회변혁의 앞길에 부설할 수 있다.
 
만일 통합진보당이 올해 대선국면을 이런 시나리오대로 펼쳐나갈 수만 있다면, 정녕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통합진보당은 집단탈당과 종북모략으로 추락한 지지율을 만회하면서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기도를 저지하는 것만이 아니라, 미국의 대선공작을 전면적으로 파탄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거야말로 대승리가 아닌가!
 
이러한 대승리 시나리오를 실현하려면, 이정희의 지지율을 5%선에서 10%선으로 무조건 끌어올려야 한다. 지지율 상승을 위해 통합진보당에 주어진 시간은 참 아쉽게도 10월 한 달 뿐이다. 10월 한 달 동안 통합진보당 당원들은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노동자, 농민, 서민의 생산현장과 생활현장 곳곳에 널리 파고 들어가 목이 쉬도록 설득하며 통합진보당 대선후보에게로 민심을 돌려야 할 것이다. 통합진보당 12만 당원이 산도 떠옮기고 바다도 메우리라는 결심과 의지를 안고 각지 현장 속으로 뛰어들면, 무슨 일을 해내지 못하겠는가.
  
새누리당의 집권연장기도를 단호히 저지하고, 미국의 대선공작을 전면 파탄시키고, 정권교체를 반드시 실현하여, 사회변혁의 앞길에 진보적 정권교체의 전략적 교두보를 부설하는 참으로 값진 투쟁, 바로 그런 결전이 벌어질 10월이 통합진보당 당원들과 지지자들에게 다가왔다. (2012년 9월 2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