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94)
 

임박한 전쟁위험, 무엇을 할 것인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한반도 전쟁위험은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까지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사회변혁이 평화상황에서 실현될 것으로 전망해왔다. 그런 전망은 틀린 것이 아니지만, 사물의 한 쪽만 바라본 것이다. 사회변혁은 오직 평화상황에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전쟁상황에서도 실현되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전쟁위험이 가장 심각한 정전상태에 놓여있는 한반도에서는 사회변혁이 평화상황에서 실현될 가능성보다 전쟁상황에서 실현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 전쟁을 소설책에서나 읽을 수 있는 문학소재 같은 것로 생각하는 것은 오늘 전쟁위험이 임박한 한반도 정세를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이다. 이 문제를 고찰하려면, 우선 한반도 전쟁위험에 대한 정보부터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첫째, 한반도 전쟁위험이 발생한 근본원인은 미국의 대북전쟁위협이다. 미국은 한반도 분단의 주범일 뿐 아니라, 작전계획이라는 이름의 여러 가지 대북전쟁계획을 세워놓고 한국군을 참가시킨 가운데 실전급 규모의 대북전쟁연습을 끊임없이 감행하고 있다.
 
미국군이 주도하고 한국군이 참가하는 대북전쟁연습은 대북위협을 전제한 무력시위가 아니라 대북선제공격을 전제한 실전연습이다. 미국은 최근에 한국군만이 아니라 일본 자위대까지, 그리고 심지어 호주군까지 대북전쟁연습에 끌어들였다. 이것은 미국의 대북전쟁연습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섰음을 뜻한다.
 
둘째, 실제로 무력충돌이 일어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한국 해군 군함의 북상을 통제하기 위해 그어놓은 '북방한계선(NLL)'을 사이에 두고 쌍방의 무력충돌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북방한계선'은 국제법적 근거가 없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작전통제선이므로, 정전협정 당사자들인 북과 미국은 정전협정에 기초하여 서해 해상분계선을 획정하여야 하지만, 미국은 '북방한계선'을 고수하겠다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미국의 그런 태도는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대화와 협상으로는 '북방한계선'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꽉 막혀버린 현재 상황에서, 관할수역에 대한 주권을 중시하는 북이 '북방한계선'을 고수하려는 미국과 남측 정부의 태도를 용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로써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또 다시 무력충돌상황이 조성된 것은 분명해보인다.
 
그런데 만일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또 다시 무력충돌이 벌어지는 경우, 지난 시기의 서해교전이나 연평도 포격전 같은 소규모 우발적 무력충돌로 끝나지 않을 것이며,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군사기밀이라서 외부적으로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대치쌍방은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무력충돌이 일어날 경우 전면전으로 비화될 것으로 예상하고 전면전 준비를 갖추어놓았다.
 
셋째, 미국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교체하고 평화협정에 의거하여 주한미국군을 철군하라는 북의 계속되는 요구를 거부하고 있을 뿐 아니라, 평화협정 체결문제와 철군문제를 논할 고위급 북미 정치회담마저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면서 끊임없이 회피하고 있다. 대화와 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 미국의 거부와 회피로 모조리 막혀버린 것이다. 이처럼 대화와 협상이 막혀버렸으니, 남아있는 방도는 전쟁밖에 없지 않은가.
 
넷째, 북의 언론보도를 분석해보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훈을 관철하려는 강한 의지를 실천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긴 유훈은 한 두 가지가 아닐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유훈은 조국통일유훈일 것이다.
 
북측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우리 인민의 념원이며 나의 의지입니다. 조국통일은 우리 대에 하여야지 다음 대에 넘겨줄 수 없습니다. 조국을 통일하는 것은 우리의 영광스러운 임무이며 민족적 과업입니다"고 말하였는데, 그 말은 유훈으로 되었다. 젊고 패기에 넘치는 북의 새로운 최고영도자는 어떤 희생을 각오하고서라도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려는 결심을 굳힌 것으로 생각된다.
 
다섯째, 미국의 대북전쟁연습이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서해5도 분쟁수역에서 무력충돌 가능성이 고조되었고, 미국이 북의 평화제안을 거부하고 정치회담제안마저도 회피한 오늘의 상황에서 북의 새로운 최고영도자가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북은 통일전쟁으로 조국통일유훈을 관철하려고 할 것이다.
 
최근 김정은 제1위원장이 '작전계획서'를 최종 결재하고, 인민군의 전투준비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시찰을 계속하면서 조국통일대전에 즉각 나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라고 군부대들에게 직접 명령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섯째, 미국의 정보차단과 정보왜곡으로 국제사회는 크게 오판하고 있지만, 인민군의 전쟁수행력은 매우 강하다. 인민군은 정신력과 무장력이 강하고, 훈련열의와 훈련수준이 높고, 작전지휘체계가 잘 짜여져 있다. 대북군사정보를 정밀하게 재분석하면, 정보차단과 정보왜곡을 넘어서 그런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신력과 무장력이 강하고, 훈련열의와 훈련수준이 높고, 작전지휘체계가 잘 짜여져 있다는 것은, 전투준비를 완료하고 최고사령관의 조국통일대전 공격명령을 기다리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2005년 1월 북측에서 유출되어 남측 언론에 공개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가 2004년 4월 7일에 작성하여 북측 전역에 배포한 '전시사업세칙'에는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는 전당, 전군, 전민이 총동원되여 전쟁준비를 더욱 완성함으로써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유훈을 기어이 실현하고 통일된 조국을 후대들에게 물려주리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는 구절이 있다.

일곱째, 국제적 군사정세도 한반도 군사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동아시아와 중동의 군사정세는 매우 불안정하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미국 및 일본, 중동에서 이란과 미국 및 이스라엘이 첨예한 군사대결상황에 들어섰다. 이것은 한반도 군사정세를 더욱 긴장시키는 외부요인으로 되고 있다.
 
위의 정보를 종합해보면, 지금 미국과 남의 대북전쟁 준비상황과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상황은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다.

임박한 전쟁위험, 무엇을 할 것인가?

미국의 대북전쟁연습이 무력시위가 아니라 실전준비인 것처럼,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도 무력시위가 아니라 실전준비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감지하지 못하는 동안, 미국의 대북전쟁연습과 북의 조국통일대전 준비로 한반도 전쟁위험이 매우 고조되고 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임박한 전쟁위험, 이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만일 북미관계의 적대적 모순이 폭발하여 미국에서 대북전쟁이라고 부르고 북에서 조국통일대전이라고 부르는 전쟁이 일어나면, 이 땅에서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전쟁상황과 결부시켜 생각해보지 않았으므로, 그처럼 돌발적인 물음에 선뜻 답하기 힘들 것이다. 혹시 누군가 한반도 전쟁상황에 결부하여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을 전망하였더라도, 지금 남측 사회 분위기에서 그런 전망을 공개토론으로 끌어내어 논하기는 힘들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맥을 놓고 앉아 있을 수는 없다. 전쟁위험으로 급변하는 오늘의 한반도 정세에 대응하여 새로운 정치방침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한반도 전쟁은 예고 없이 일어날 것이다. 전쟁징후를 전혀 나타내지 않고 있다가, 불시에 일어날 것이다. 그래서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준비는커녕 예상하지도 못한 상황에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 한반도 군사정세는 전쟁징후가 나타나야 대응방침을 세울 게 아니냐고 보는 안이한 판단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전쟁징후 여부와는 상관 없이 독자적으로 대응방침을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군사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에 따르면, 북이 준비한 조국통일대전은 아주 짧은 시간에 전쟁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끝나게 될 세계 전쟁사에서 처음 있을 속결전이 될 것이다. 그와 달리, 미국과 남이 실전연습을 하고 있는 대북전쟁은 장기전 양상을 띄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주도권을 북이 쥐면 속결전으로 금방 끝날 것이고, 전쟁주도권을 미국이 쥐면 장기전으로 시간을 끌게 될 것이다. 이런 두 가지 상반된 전망에 따라, 북이 주도하는 속결전에 대응하는 정치방침과 미국이 주도하는 장기전에 대응하는 정치방침을 모두 숙고할 필요가 있다.
 
셋째, 지금까지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추구해온 양대 강령은 진보적 민주주의강령과 자주적 평화통일강령인데, 만일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전쟁상황이 전개되는 경우 자주적 평화통일강령은 자동적으로 폐기되고 진보적 민주주의강령만 남게 될 것이다.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더욱 강하게 제기되었다.
 
넷째, 지금 진보정치활동가들의 노력은 통합진보당을 정상화하고 대선전략을 세우는 일에 집중되고 있다. 통합진도당을 정상화하고 대선전략을 세우는 일은 시급하고 중대한 과업이지만,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전쟁위험으로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는 일도 그에 못지 않게 시급하고 중대한 과업으로 되었다. 만일 올해 대선에서 수구우파정권이 이겨 재집권할 경우, 전쟁위험은 더욱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악화될지 모른다.
 
통합진보당 정상화 및 대선전략 수립과 함께, 전쟁위험으로 급변하는 정세에 주동적으로 대처하자! 이것이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제기하여야 할 당면구호다. (2012년 9월 2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