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행복의 창조자 중에서


2.
행복의 요람을 지키시여

2).  선군의 총대로 행복의 요람을 지켜 

 

다박솔초소시찰의 의미

 

주체84(1995)년 새해에 조선의 신문, 방송은 일제히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군현지시찰소식을 전하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 새해 1 1일 아침 조선인민군의 어느 한 초소를 시찰하신데 대한 소식이였다.

이날 소문도 없이 소박한 옷차림으로 초소를 찾으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군인들이 드리는 새해의 첫 꽃다발을 받으시고 새해를 맞는 군인들을 축하하시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만세!》를 부르는 군인들의 열광적인 환호에 답례하시며 포진지로 오르시였다. 력사의 이 뜻깊은 시각을 기다려온듯 포진지들에는 청청한 다박솔이 푸른 바다마냥 펼쳐져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다박솔중대요, 이런 곳을 다박솔중대라고 합니다라고 정겹게 말씀하시며 포진지흉장우에 높이 올라서시였다. 장군님께서는 포진지에 정렬해선 고사포병들의 름름한 모습을 대견스럽게 굽어보시였다. 이어 일당백군인들의 정열적인 전투훈련을 주의깊게 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중대가 전투적기백이 있다고, 여기 군인들과 같이 모든 중대들에서 전투훈련을 싸움맛이 나게 한다면 인민군대가 일당백의 무적의 전투대오로 더욱 강화될것이라고 커다란 만족을 표시하시였다. 찬바람 부는 포진지에서 오랜 시간 중대의 화력복무훈련을 지도해주신 그이께서는 이어 중대교양실과 병실도 일일이 돌아보시면서 중대의 사상교양사업과 문화생활, 후방사업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더욱 튼튼히 무장시키고 전투준비와 군인생활을 개선하기 위한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전설같은 사랑의 일화를 남기시며 떠나시기에 앞서 중대군인들과 함께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이날은 후날 《다박솔초소》라는 이름과 함께 선군시대의 의의있는 날로 력사에 기록되게 되였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이날의 군현지시찰은 세계의 지대한 관심을 모았다.

대국상후 김정일장군님의 현지지도가 공식 보도된것은 이때가 처음이였기때문이다.

김정일장군님의 다박솔초소시찰에 대한 보도가 세상에 공개되자 적들은 아연실색하여 장군님께서 전연에서 60mile 떨어진 지역에 배치되여있는 미싸일부대를 방문하시였다고 비명을 질렀다. 그런가 하면 그때 장군님께서 쓰시였던 모자를 두고 후날에는 범을 잡으러 가는 포수의 모자를 쓰시였다고 공포에 떨었다.

하지만 이해 1 1일 경애하는 장군님의 다박솔초소시찰이 조국과 민족의 운명과 세계정치사에 어떤 극적인 전환을 가져온 시대적사변인가를 파악한 사람은 당시 누구도 없었다. 그리고 그이께서 어떤 비상한 결심과 사생결단의 각오를 안으시고 군부대현지시찰의 길에 오르시였는지 그리고 왜 사회의 다른 부문도 아닌 인민군부대를 찾으시였는지는 더욱 몰랐다.

그것을 알자면 우선 당시 사회주의조선에 조성된 정세부터 상기할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은 조선을 굴복시키기 위하여 경제적봉쇄와 함께 침략과 전쟁책동을 끊임없이 강화하고있었다.

1994년에만도 대국상후 미국은 공화국을 반대하는 군사적위협과 도발책동을 공중과 바다, 륙지에서 매일과 같이 감행하였다.

1994 7 19일 미태평양함대의 비행대들이 미제7항공군 비행대들과 련합하여 남조선지역 상공을 작전무대로 도발적인 북침기습타격연습을 개시하였다. 그런가 하면 해외기지들로부터 날아든 전략정찰기들이 군사분계선상공을 끊임없이 왕복비행하면서 공화국 전지역에 대한 정탐행위를 련속 감행하였다.

미국은 또한 《을지》와 《포커스 렌즈》로 갈라서 진행해온 전쟁연습을 이해부터 통합하여 보다 대규모적인 《을지 포커스 렌즈》북침전쟁연습으로 확대시켰다. 이 전쟁연습에는 남조선강점 미군과 남조선군뿐아니라 이전에 미태평양사령부에 소속되여 《지원병》역할을 하던 미제7함대가 남조선미국《련합사령부》에 작전적으로 완전히 배속되여 참가하였다.

한편 김영삼반역도당을 비롯한 남조선호전광들의 반역행위도 극도에 달하였다.

김영삼반역도당은 1994 7 9일 위대한 수령님의 서거에 대한 부고가 전해진지 30분도 못되여 즉시 전군에 《특별경계령》을 하달하였으며 이어 전경찰에 《갑호비상령》, 전공무원들에게는 《비상대기령》을 내려 정세를 극도로 긴장시키고 살벌한 전쟁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후 남조선군이 8월 한달동안에 남쪽 비무장지대안에 비법적으로 끌어들인 무장인원수만도 1 7,800여명, 각종 차량은 8,300여대에 달하였다.

남조선군은 미국뿐아니라 프랑스, 이스라엘에서까지 최신전쟁장비들을 대량적으로 끌어들이면서 전쟁연습을 전례없이 강화하였다. 남조선호전광들의 전쟁연습에서 《공격면이 중시》되고 공화국 후방을 깊숙이 공격하고 타격하기 위한 공중폭격훈련이 더욱 확대되였으며 지어 그 무슨 《탈환작전》, 《심장부공격작전》연습이라는것까지 공공연히 벌리였다.

제국주의련합세력과 남조선호전분자들의 무모한 군사정치적도발과 압력, 전쟁책동으로 말미암아 대국상후 조선에서는 전쟁의 불구름이 항시적으로 무겁게 드리우고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를 일촉즉발의 팽팽한 정세가 조성되였으며 공화국은 지난날과는 달리 단독으로 제국주의와 정면으로 맞서나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 시기 경애하는 장군님께 있어서 제일 중대한 문제로 나선것은 사회주의를 어떻게 수호하고 나라와 민족의 장래운명을 어떻게 이끌어나가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강력한 당과 국가가 있고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도 튼튼히 마련되여있다. 이런 조건에서 조국의 안전만 수호된다면 경제와 인민생활을 추켜세우는것은 문제로도 되지 않는다. 현시기 보다 절박한것은 원쑤들의 침략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운명,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수호하는것이다.

이러한 결론밑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를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펼쳐나가실 단호한 결심을 내리시였다.

그러나 당시에는 김정일장군님의 결심과 심중을 누구도 몰랐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선군길은 다박솔초소시찰의 의미를 뜨겁게 새겨주고있다.

력사의 그날 다박솔초소에 새해의 첫자욱을 새기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활동으로 군현지지도의 길을 끊임없이 이어나가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가림이 없이 험산준령을 넘고넘으시여 산중의 자그마한 초소까지 찾아주시고 파도 사나운 바다길을 헤치시며 외진 섬초소를 현지시찰하시면서 병사들의 훈련과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다 돌보아주시고 부대의 전투력강화를 위한 강령적인 과업들을 제시해주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1996년 한해동안에만 하여도 날과 달을 이어가시며 전선동부에서 서부에 이르는 2 5천여리의 군현지시찰을 진행하시였으며 1997년 한해동안에 서해안일대를 방어하고있는 한 부대만도 5차례나 찾으시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군현지지도의 길은 언제나 수수한 야전승용차를 타시고 낮과 밤이 따로없이 험산준령을 넘고넘으시는 천신만고의 로정이였다.

주체85(1996)년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최전연 섬초소인 초도와 판문점을 찾아주신 이야기는 오늘도 인민들과 군인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려주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최전연의 섬초소인 초도를 현지시찰하시기 위하여 쾌속정에 오르시였을 때였다. 바다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며 배를 위협하였다. 초속 20m로 불어오는 강풍에 3m이상 높이로 오르내리는 검푸른 파도, 여기에 쏟아지는 찬비 또한 세차서 장군님께서 타신 쾌속정은 요동치며 배전의 사람들을 휘뿌려놓았다.

이러한 날씨에 섬초소로 나간다는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였다.

하기에 수행한 일군들은 경애하는 장군님께 현지시찰계획을 변동시켰으면 하는 의향을 말씀드렸다.

하지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나의 병사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기어이 가야 한다, 전사들을 찾아가는 나의 길은 그 어떤 풍랑도 막지 못한다고 하시며 배의 란간을 더욱 억세게 틀어잡으시고 배전에 거연히 서계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바람 세찬 바다길에 오르시여 자기들을 찾아오신다는 소식을 들은 섬초소군인들은 섬기슭으로 모두 달려나와 안타까이 발을 동동 구르며 장군님께서 이 험한 바다길로 오시지 말아달라고 부르짖었다. 실로 력사의 그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불멸의 화폭이였다.

그 세찬 파도를 헤가르시며 마침내 섬초소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초소들을 돌아보시며 군인들에게 뜨거운 사랑과 필승의 기상을 안겨주시고 순간의 휴식도 없이 다음날 새벽 안개속을 헤치시며 판문점으로 나가시였다.

판문점으로 말하면 적아쌍방이 총부리를 맞대고있어 한점의 불꽃이 순간에 불바다로 번져질 위험이 항시적으로 조성되고있는 첨예한 대결장, 전초선이다.

하기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이곳으로 가실 때 일군들은 너무도 안타까와 장군님께 더 나가시면 안된다고, 호위성원도 없이 이런 위험한 곳에 장군님을 또다시 모셨다는것을 알면 이제 우리 인민군병사들과 인민들이 우릴 보고 뭐라고 하겠는가고 울음섞인 목소리로 간청하며 장군님의 앞을 막아나섰다.

눈물을 머금고 서있는 수행원들을 바라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호탕하게 웃으시며 호위는 무슨 호위, 판문점 경무원들이면 되지, 수령님께서 수안보로 나가실 때 호위가 있어서 나가셨는가, 옛 속담에 범을 잡으려면 범의 소굴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일없소라고 하시며 어서 가자고 일군들을 부르시였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군현지시찰은 이처럼 순간순간 긴장되고 위험한 길의 련속이였다.

이렇듯 초인간적인 의지와 정력으로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여 6년간에만 하여도 인민군 륙해공군부대들과 초소들을 찾아 14 5,800여리의 길을 걸으시였다. 이 거리는 우리 나라 북쪽에서 남쪽끝까지의 거리를 수십회나 오고가는 거리에 맞먹는 머나먼 로정이였으니 오늘까지 장군님께서 걸으신 선군의 길은 또 그 얼마이랴.

인류력사에는 헤아릴수없이 많은 전쟁들이 있었다. 특히 20세기는 그 회수가 이전 시기에 비할바없이 많은것으로 하여 《전쟁의 세기》라고까지 불리우고있다. 그속에서 침략전쟁을 이끈 제국주의우두머리들은 더 말할것도 없거니와 제국주의침략을 반대하는 정의의 전쟁에서도 한 나라의 군령도자가 흐르는 날과 달을 전선에서 맞고 보내며 직접 전사들과 한전호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더우기 오늘 세계에는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의 위협을 받고있는 나라들이 적지 않지만 그 어떤 정치지도자, 군령도자도 자기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지켜 최전연을 자기의 위치로 정한 례는 없다.

그 누가 다칠세라 꿈속에서도 조국과 인민을 소중히 안으시고 한몸의 피로와 위험도 아랑곳없이 날과 달, 년을 이어 전선길에 계시는분은 오직 조국과 인민의 운명수호에 대한 숭고한 책임감을 안으신 위대한 인간, 희세의 애국자이신 김정일장군님뿐이시다.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주체89(2000) 6 19일과 7 7일 조선인민군 지휘성원들과 하신 담화는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굳건히 지키시려는 장군님의 애국, 애민의 충정이 얼마나 강렬하고 숭고한것인가를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뜨겁게 안겨주고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날 내가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인 힘을 넣은것은 인민생활이 곤난하다는것을 몰라서가 아니라 우리앞에 자주적인 인민, 자주적인 근위병이 되느냐 또다시 제국주의의 식민지노예가 되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가 나서고있었기때문이다, 이 심각한 문제를 풀수 있는 열쇠가 바로 총대를 강화하는데 있었다, 사실 숨죽은 공장들과 힘겨운 생활난을 겪고있는 인민들의 정상을 눈앞에 보면서 공장이나 농촌이 아니라 군인들을 찾아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는 나의 가슴은 형언할수없이 쓰리고 아팠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지금은 그 어떤 값비싼 대가를 치르더라도 사회주의를 지키고 봐야 한다, 우리가 이제 승리의 통장훈을 부르게 될 때 인민들은 내가 왜 경제사정이 곤난하다는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나갔는가 하는것을 리해하게 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군 하였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전선과 후방, 동서를 지르는 최전연의 그 어디든 조국을 지켜선 군인들이 있는 곳이라면 아무리 멀고 위험한 곳이라도 찾으시여 지략을 펼쳐주시고 힘을 주시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헌신의 자욱마다에는 이렇듯 조국과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렬한 조국애가 스며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군령도활동에 의하여 인민군대는 그 어떤 역경속에서도 수령을 결사옹위하는 수령의 군대로, 그 어떤 제국주의강적도 때려부시고 사회주의조국과 인민을 철옹성같이 지켜낼수 있는 무적필승의 강군으로 자라났다.

1999년 미국주도하의 나토의 78일간에 걸치는 무차별적인 공습으로 페허가 된 자기 나라의 실태를 두고 이전 유고슬라비아의 한 고위인물은 《우리는 이번 전쟁을 통하여 자위적국방력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문제는 첫째도 둘째도 자체의 군사력을 강화해야 한다는것이다. 우리는 어려운 조건에서도 자위적국방력강화에 큰 힘을 넣고계시는 김정일장군의 정치가 얼마나 선견지명한가를 똑똑히 알게 되였다.》라고 자기의 심정을 토로하였다.

인민은 경애하는 장군님따라 선군의 길을 걸으면서 다박솔초소시찰의 력사적의의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들이 누리는 자주적인 삶이 어떻게 지켜지는가에 대하여 심장깊이 절감하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