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북도서 『인민적 시책에 비낀 위인일화』 중에서

 

4. 누구나 안정된 생활을 누리도록

(3)  

절반으로 낮아진 고무신값 

 

주체42(1953)년 12월 16일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전국품앗이반 및 농업생산합작사 운영경험교환회를 지도하실 때였다.

농업협동화운동발전의 새로운 리정표가 마련되던 이 력사적인 모임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참가자들속에서 소개되는 새로운 경험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리시면서 농민들의 생활에서 걸린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주시였다.

평강에서 온 한 녀성농민이 자기 경험을 소개하고났을 때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동무들의 생활에서 애로되는것이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한동안 망설이던 그는 3년간의 전쟁으로 말미암아 나라형편이 어려운 때이지만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사랑에 의하여 농민들이 큰 불편을 모르고 생활하고있다고 하면서 농촌에서 좀 곤난한것이 있다면 신발문제인데 고무신 한컬레를 사자면 쌀 두말을 팔아야 하니 좀 비싸다는 뜻으로 말씀올리였다.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 물으시였다.

《그럼 동무 생각에는 고무신 한컬레에 얼마 했으면 좋겠습니까?》

녀성농민은 인차 대답을 드리지 못하였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하게 웃으시며 그의 대답을 기다리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너그러운 성품에 이끌려 그 녀성은 어려움도 잊고 대답을 올리였다.

《제 생각에는 쌀 한말 팔아서 고무신 한컬레를 사신으면 좋겠습니다.》

녀성농민은 이렇게 대답을 드리고도 국가의 리익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욕심만 차리는것 같아 얼굴이 뜨거워 들지 못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미소를 담으시고 말씀하시였다.

《그럼 그렇게 합시다. 고무신값은 동무가 결정했소. 이제 내려가 사신으시오.》

순간 그 녀성농민은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고무신값을 내가 결정하다니?)

장내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져올랐다.

그것은 한 농민의 소박한 말에서 온 나라 농민들의 소원을 헤아리시고 그것을 나라의 정책에 반영하시는 인민의 수령, 인민의 어버이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과 흠모심의 분출이였다.

회의가 있은 때로부터 얼마후 중앙방송에서는 고무신값을 50%로 낮춘다는 소식을 보도하였다.

이 소식에 접한 전국의 모든 농민들과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베풀어주신 또 하나의 인민적시책에 깊이 감동되여 생산과 건설을 더욱 힘있게 벌려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