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일본을 혼쭐낸 《김일성전설》은 인민적성격

 

《소리의 래력》전설의 진원지

 

요즘 1970년대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을 다시 꺼내 읽는다. 또 다른 담시 《비어(蜚語)》에 나오는 《소리의 래력》대목에 자꾸만 신경이 간다. 서울장안에 언제부턴가 《쿵-》, 《쿵-》 하는 이상야릇한 소리가 들려오니 원한에 사무친 안도(安道)가 머리와 팔다리가 없는 몸뚱이를 굴려 벽에 부딪치는 소리였던것. 그 소리에 겁먹은 지배층은 안도(安道)를 사형시키지만 《쿵-》, 《쿵-》 하는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밤낮으로 끝없이 들려와 돈있고 힘있는자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는 이야기가 이 담시의 내용이다. 요즘 괴담이라는것이 어쩌면 비어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한번 모였다 하면 만명이 기본인 미친소광풍이 지금 리명박《정부》 주변사람들을 안절부절하게 만든다. 들어선지 불과 3개월만에 서울장안에 괴담이 돌기 시작하니 그 소리의 래력을 찾아 허둥대지 않을수 없다. 경찰은 괴담의 진원지를 철저히 찾아 엄벌하겠다고 한다.

소리래력(來歷)은 세 부분으로 묶인 담시 《비어(蜚語)》의 첫째 대목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작고 힘없는 민중 안도(安道)는 열심히 뛰여 서울에서의 삶을 꾸려가고저 하지만 돈없고 학벌없고 《빽》없는 그는 어느 한 모퉁이 발붙일 곳을 찾을수가 없다. 부와 권력이 지배층에 독점되여있는 암담한 현실이 안도(安道)의 발길을 곳곳에서 막았던것이다. 지치고 지쳐 내뱉은 《에잇, 개같은 세상》 한마디때문에 류언비어류포죄로 독재권력에 체포된 안도는 5백년간의 금고형(禁錮刑)에 처해져 목과 팔다리가 모두 잘린채 독감방에 갇힌다. 오래전에 이미 사형시킨 이 안도의 몸뚱이가 벽에 굴려 부딪치는 소리이기때문에 소리의 래력을 종잡을수 없다. 신기한것은 보통사람들 귀에는 들리지 않는데 장안에 사는 오적들 귀에만 밤, 그것도 한밤중만 들려온다. 소리의 래력을 찾을 길 없으니 수사를 하는 경찰도 난감할수밖에 없다.

 

을사오적과 무자오적

 

《오적(五賊)》은 70년대초 《한국》사회의 지배계층들,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라는 짐승스런 몰골의 다섯 도둑들이 서울장안 한복판 도둑소굴에서 벌리는 부정부패의 술수경연과 호화사치, 방탕한 생활을 시인의 통렬한 풍자를 통해 그 흉폭하고 타락한 실상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또한 부정부패를 척결한답시고 나선 포도대장(경찰 또는 사법부의 비유)은 무고한 민초(民草) 《꾀수》만 닥달할뿐 정작 오적의 주구(走狗)임이 적라라하게 폭로된다. 그러나 시인은 어느 맑게 개인 날 오적의 무리들이 벼락을 맞아 급살하고, 륙공(六孔)으로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부패권력의 비극적종언을 무섭고도 통렬하게 경고하고있다.

을사오적에 이어 2008년 무자오적도 등장했다. . . , 강부자, S라인이 무자오적인것 같다. 5 2일 첫 청계천집회는 누가 봐도 놀랄 정도였다. 주최자측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 원인에 대하여 리《정부》 주변인물들이 내놓는 말들은 너무 구태의연하다. 다시말해서 배후세력이 있다는것이다. 물론 있다. 그러나 당신들이 말하는 그런것이 배후세력은 아니다.

먼저 서울시 교육감은 《전교조》가 배후세력이라 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빗나간 판단이였다. 다음으로 《연예인》이라고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지난번 《대선》때는 더 인기있는 연예인들이 리명박후보를 지지했는데 그럼 그때 중고등학생들이 란리가 났을것 아닌가? 다음으로 《인터넷. 휴대전화》다라며 검찰이 지금 학교교문앞까지 찾아가 배후를 찾아내려 한다고 한다. 두고볼 일이다.

 

회고록속의 전설들

 

김일성》은 백발이 성성한 산신령같은 로인으로 축지법을 사용해 하루밤에 천리길도 가고 둔갑술을 사용해 하루에도 얼굴을 수십가지로 바꾼다는 일화정도는 이미 우리 귀에 익숙하다. 그런데 해방후 평양공설운동장에 나타난 김일성사령관은 그런 신비로운 존재가 아니였다.

김일성연구》의 대가인 서대숙교수는 당시 《김일성》이란 이름을 가진 인물이 13명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행적을 다 조사해보니 항일유격활동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인물들로 판명되였다 한다. 그는 《김일성연구》로 필생을 바친 학자이고 만주일대를 수십차례 방문하여 자료를 모아 연구하였다. 는 강의실에서 입버릇처럼 아무튼 김일성주석은 대단한 인물이였다고만 반복하였다. 아마도 정치학자로서 김일성주석의 업적과 행적을 다 그려낼수 없는 한계인것 같았다.

그래서 력사를 그런대로 잘 쓰자면 문학작가들이 동원되여야 할 리유가 여기에 있다. 인간의 희로애락의 감정을 정치학자나 력사학자가 그려내는데는 한계가 있기때문이다.

김일성사령관주변에 여러가지 전설과 설화가 생겨난것은 1936년말부터였다.

 

소덕수전투에서 유래한 《둔갑술》과 《신출귀몰》이란 말

 

김일성주석은 전설의 유래를 두고 우리가 《둔갑술》을 써서 《승천입지》하고 《신출귀몰》한다는 소문이 국경지대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한것이 소덕수전투가 있은 때부터였던것 같다고 회고하고있다.

소덕수전투에서 일본은 얼마나 희생을 많이 당했던지 집집마다 문짝을 다 뜯어다가 저들의 시체를 거두어 담아가지고 황황히 도망을 쳤다고 한다.

두번째로 신출귀몰이란 말이 퍼진것은 도천리전투 다음이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항일유격대를 처음에는 《공비괴수》, 《비적수괴》라고 하다가 도저히 당해낼수 없자 자기들도 우로부터 책임을 면피하기 위해 《신출귀몰》, 《승천입지》란 말을 사용하지 않을수 없었다. 인간같지 않고 귀신같아서 도저히 잡지 못한다고 해야 전투에 참가한 책임자들이 책임을 어느 정도 면할수 있었기때문이다. 여우가 높은 가지우의 포도를 따먹지 못하자 《신포도》라고 해야 마음이 위로가 되듯이.

그럼 소덕수전투와 도천리전투는 어떤 전투였고 거기서 무슨 일이 생겼던가? 두 마을은 백두산 남동쪽 장백지구에 위치해있다. 1936년 여름부터 항일유격대가 백두산에 근거지를 창설하고 국내진공을 준비할 때이다. 여름도 지나고 산에는 산열매들이 주렁주렁 달리는 9, 장백현 대덕수와 소덕수에서는 바로 일본군인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것도 자기들끼리 무려 3시간동안 교전하는 일이 벌어졌다.

김주석은 하도 오래 전투가 계속되여 《구경군들이 지루할 정도였다.(5 96페지)고 회고한다.

소덕수와 대덕수는 모두 지도상의 이도강부근의 작은 마을들이다.

김일성주석은 《신출귀몰》이란 전설이 퍼진 정황을 다음과 같이 소상하게 회고하고있다.

《소덕수등판에서 숙영한 이튿날 우리는 부대를 마등창수림속에 이동시키고 대원들을 휴식시켰다. 나도 풀밭에 누워 책을 보다가 굳잠이 들었는데 총소리가 났다. 15도구방향과 이도강방향에서 밀려온 적들이 남북 량쪽에서 거의 동시에 달려들었다. 무성한 숲은 적아를 구분하기 어렵게 하였다. 만일 우리가 감쪽같이 빠져나가면 적들의 협공을 저들끼리의 골육상쟁으로 역전시킬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우리는 마등창수림에서 슬쩍 빠져나와 15도구골등판으로 올라갔다. 그 등판에서 적들끼리 싸우는 꼴을 구경하였다. 그것이 세칭 소덕수전투라고 하는 마등창망원전투이다.

그날 적들끼리의 맹렬한 싸움이 서너시간쯤 실히 걸렸던것 같다. 구경군들이 지루할 정도였다. 적들은 이렇게 장시간 싸우다가 이도강쪽패가 정 못견디겠던지 먼저 퇴각나팔을 불었다. 그 나팔소리를 듣고서야 15도구쪽패도 제편끼리 싸운줄 알았는지 사격을 중지하였다.

《수백명의 유격대는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온데간데없으니 그야말로 귀신이 곡할노릇이 아닌가?

이 불가사의한 문제에 대한 해명을 적들은 우리의 <둔갑술>에서 찾은것 같다. 우리가 <둔갑술>을 써서 <승천입지>하고 <신출귀몰>한다는 소문이 국경지대에 파다하게 퍼지기 시작한것이 이 소덕수전투가 있은 때부터였던것 같다.(5 96페지)

김일성사령관은 적들이 이도강방향과 15도구방향에서 협공해오는것을 알고는 그사이를 빠져나와버리는 전술을 사용했다. 그러니 마주보고 오던 적들은 서로 총질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3시간을 무려 교전하다보니 유격대는 온데간데없고 자기들만 숲속에 죽어 너부러져있었다. 그런데 이런 교전에서 피해를 본것은 그사이에 있는 감자밭이였다.

신창동의 한 농민은 《감자밭은 결단났지만 악귀같은 왜놈군대들이 저렇게 죽탕이 되여 나딩구는걸 보니 풍년든 감자밭을 보는것보다 더 기쁘오다.》라고 했다. 대덕수, 소덕수전투는 유격대의 국내진출 발판을 마련하는데 큰 의미가 있다. 장백지구일대의 인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확인할수 있었고 그 일대의 여러 청년들이 너도나도 자원입대하는 기회가 되였다. 또한 다음해 보천보전투의 승기를 여기서 잡은것이다.

한해를 넘겨 1937년초에 있었던 도천리전투의 결과부터 말하면 적의 시체를 실어나르는데 24필의 소가 하나씩 9구의 시체를 싣고 날라서 전투후 주민들사이에는 《소발구 하나에 아홉개씩 스물네발구면 모두 얼마요?》 하는 말이 류행할 정도였다. 인민들의 답답하던 속이 얼마나 후련했으면 뻔히 아는 답을 질문형식으로 류포시켰을가? 직답을 하면 위험천만하니까.

이와 같이 김일성부대는 전투가 하나하나 끝날 때마다 신화가 생겨났다. 일본신문들은 도천리전투이후에도 《신출귀몰》 그리고 《승천입지》라며 김일성전법은 《라와전법》이니 이 전법에 걸리기만 하면 누구도 빠져나올수 없다고 했다. 《라와》란 《라망》의 중국식발음인데 하늘과 땅 그 어디에도 빠져나갈수 없는 천라지망 즉 포위망, 함정이라는 뜻이다. 회고록에서도 《라와전법》은 대표적인 유격전법이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다》

 

《라와전법》이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없다.》란 전법인것 같다. 바로 귀신이 아니고야 어떻게 인간이 이런 전법을 구사할수 있단 말인가? 옛부터 백두산은 온갖 신화와 전설이 가득찬 고장인데 장백지구에서 벌어진 두개의 전투에서 《김일성》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도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현상에 그만 정신적대공황(panic)상태에 빠져들기 시작했으며 자기들 입으로 《신출귀몰》, 《둔갑술》을 운운하지 않을수 없었다.

도천리전투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김일성사령관을 마치 단군할아버지같은 도인아니면 산신령같은 존재로 상상하게 되였다. 그러나 그는 20대의 젊은 청년사령관이였다.

당시 일제의 정신적공황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이렇게 회고하고있다.

《인민혁명군의 장백진출과 군사적위세앞에서 적들은 대경실색하였다. 장백지방 경찰기관들에서는 경찰들이 집단적으로 사직서를 내고 공직을 회피하는 리직은 퇴바람이 불었다. 적들의 통치체계에서는 심한 혼란이 일어났다. 이도강에서는 집단부락출입도 앞문으로가 아니라 뒤문으로 한다고 하였다.(5 97페지)

 

1936년말∼1937년초의 백두산지구 겨울에 퍼진 《김일성전설》

 

김일성전설이 누군가에 의하여 만들어져 퍼진 시기는 소덕수전투가 끝난 1936년말경부터이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장백지구일대에는 김일성전설이 들불같이 퍼져나갔다. 회고록 5권에는 김일성전설이 퍼져나간 유래가 자세하게 대담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기록돼있다.

김평유격대원과 안덕훈주민사이에 나눈 대화는 한폭의 그림같고 나중에 안덕훈도 유격대에 참가했다 희생당하고만다는 이야기는 애처롭기마저 하다.

회고록의 해당 부분을 그대로 옮긴다.

 

《… 1936년말-1937년초의 백두산지구 겨울은 우리의 기억속에 지금도 인상깊게 아로새겨져있다.

그 기억의 한쪽모퉁이에는 장백현 19도구의 안덕훈농민도 있다. 안덕훈을 만나던 당시는 장백현일대에서 우리에 대한 신화같은 전설들이 파다하게 퍼져 김일성이 솔방울을 만지면 정말로 총알이 된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안덕훈은 그런 기담들에 류다른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가 자기 집 문턱을 넘어서기 바쁘게 대답하기가 매우 난처한 질문을 연거퍼 들이대였다. 다행히도 주인이 아래방에 있는 김평을 대장으로 알고 그하고만 상대하였기때문에 나는 거기에 끼여들지 않아도 되였다. 그들의 대화가 아주 해학적이였다.

<장군은 3일천기만이 아니라 훨씬 더 먼 앞날까지 환히 내다본다는것이 사실입니까?>

안덕훈이 김평에게 던진 첫 질문이였다.

<사실이구말구요.>

김평은 시치미를 떼고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안덕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였다. 그리고는 또다시 새로운 질문을 들이댔다.

<웃마을 령감들이 그러는데 장군은 일이 있을 때는 눈을 뜨고 일이 없을 때는 눈을 감는다고 하더구만요. 그것도 사실이라고 믿어야 할가요?>

 <, 사실로 믿어도 됩니다. 장군은 일이 없을 때는 눈을 감지만 일단 눈을 뜨면 아예 큰 변이 나지요.>

<장군이 축지법을 쓴다는것도 사실입니까?>

<사실이지요. 장군은 산을 주름잡아가지고 사방으로 훨훨 날아다니면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지요.>

<들리는 소문에는 김장군이 옛날의 홍길동이도 무색케 하는 신출귀몰의 장수라더니 과시 그렇구만.>

하나같이 어처구니없는 물음이고 또 그 물음에 못지 않게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였으나 주인이 하도 정색해서 질문하고 손님이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정색해서 대답하는 바람에 나는 그 일문일답을 제지시킬 엄두도 내지 못하고 듣기만 하였다. 더우기 나를 놀라게 한것은 평소에 그렇게도 솔직하고 고지식한 김평이 그런 엉터리없는 대답을 연방 둘러대면서도 전혀 어색해하거나 면구스러워하지 않는것이였다.

안덕훈은 김평에게 당신은 장군을 몇번이나 만나보았는가, 지금 김장군이 우리 마을에 와있는가고 물었다.

김평은 이번에도 자주 만나본다, 지금 김장군이 당신네 마을에 와있다고 주저없이 대답하였다.

주인이 잠시 밖으로 나간 사이 나는 김평에게 그런 싱거운 소리를 무엇때문에 하는가고 가볍게 나무랐다.

김평은 웃으면서 인민들이 전설을 믿으면 그 전설을 100% 긍정해주어야 한다고 하였다. 인민들이 우리 조선에 하늘이 낸 신비로운 장수가 있다고 말하는것은 그런 장수가 나와서 나라를 찾아주었으면 하는 념원으로부터 출발한것이고 그런 천출장수가 정말로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면 빼앗긴 나라를 꼭 되찾을수 있다는 신심을 안고 우리를 따라 반일성전에 더 기운차게 떨쳐나설수 있을것이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우리 동포들은 지금 일본놈들이 아무리 너덜거려도 우리 민족가운데는 신술에 도통한 장군이 있다, 그러니 왜적을 무서워할것도 없고 두려워할것도 없다, 김장군을 따라 싸우면 능히 조선을 독립시킬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사령관동지 일개인에 대한 숭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이고 기대이지요. 인민이 그러기를 바라는데 굳이 아니라고 해서 맥을 떨구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나는 김평의 말을 듣고 앞으로 군사작전을 더욱 대담하고 령활하게 벌려 인민의 기대와 신임에 보답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김평의 말과 같이 우리에 대한 전설적인 이야기들에서 인민들은 큰 힘을 얻었다. 조선에 왜놈들을 쩔쩔매게 하는 장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심신을 가다듬은 수많은 열혈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인민혁명군에 참군하였다. 털어놓고 말해서 우리는 이 민간설화들의 덕을 많이 본셈이였다.

그후 안덕훈도 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다. 그는 다른 대원들 못지 않게 잘 싸우다가 몽강의 어느 전장에서 희생되였다. 리치호는 가랑잎과 눈으로 그를 안장해주지 않으면 안되였던 그때의 일을 두고두고 가슴아프게 추억하였다.(5 330333페지)

《덕수골일대에서는 그후 여러명의 청년들이 입대를 탄원하였다. 그들의 입대는 장백지방에서 혁명군대오를 급격히 확대시킨 대대적인 참군운동의 서막으로 되였다.(5 97페지)

《백두산주변의 곳곳에 생겨나기 시작한 그 조직들은 새로 창설되는 근거지의 믿음직한 정치적지반으로 되였다.

우리는 소덕수전투가 있은 다음에도 압록강연안의 여러 마을들을 돌면서 장백현 15도구 동강, 13도구 룡천리, 20도구 이종점 등 곳곳에서 련속 전투를 벌렸다. 압록강연안일대는 벌둥지를 쑤셔놓은것처럼 소란스러웠다.(5 97페지)

 

그러나 신화는 없다. 《이민위천》

 

예수가 죽자 온갖 괴담들이 민중속에 퍼져나간다.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다는 괴담은 로마정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부활한 예수가 엠마오라고 하는 작은 마을로 가는 도상에 두 행인에게 나타났다. 예수는 자기 얘기를 하는 두 행인과 동행을 한다. 장백산기슭의 한 작은 동네에서 한 유격대원과 주민이 나눈 대화의 한토막과 너무나 대조가 되는것 같다.

힘없고 희망을 잃은 인민들은 그들의 가슴속에서 희망의 언어를 만들어낸다. 그것을 힘있는자들은 괴담이라고 한다. 그러나 《괴담》을 통해서 의사소통을 하고 그래서 하나가 되고 빛을 찾는다.

이렇게 괴담이든 전설이든 그속에는 우리 민중들의 참소망과 진담이 담겨져있는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히 론리가 있다. 그것은 한 지도자가 인민을 위하고 인민이 그 지도자를 위하는 론리말이다. 그래서 그것은 과학이 된다. 이런 구조속에서 신화가 탄생한다. 지도자와 인민대중이 유리되여 서로를 객관화시킨것이 력사이다. 그래서 력사는 어찌 보면 가짜이다. 신화가 력사보다 더 오랜 지구력과 생명력을 갖는 리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모든 신들은 기원전 2000년 전후의 실제 력사적인물들이였으며 이들이 후대의 전설이 되고 괴담이 되고 괴담이 신화가 된것으로 연구보고되고있다.

그래서 신화는 끝없이 력사가 되고 력사는 신화가 된다. 단군, 환웅, 환인도 례외는 아니다.

구약성서의 그 수많은 신의 이름들 《엘로힘》, 《엘 샤다이》, 《엘 베델》, 《야훼》 등 이들은 모두 력사적부족의 족장이름들이였다. 이를 상세하게 알려면 《Tribes of Yahweh》를 참고하기 바란다.

김일성주석은 장백지구에서 벌린 전투에 대하여 이렇게 회고하였다.

《나는 우리가 장백에서 벌린 싸움들이 세계를 들었다놓은 규모가 큰것들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세계전쟁사에는 수천수만, 지어는 수십만의 사상자를 낸 요란한 전역들과 대결전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가 한 전투에 투하한 병력은 불과 수백병, 적살상도 백이나 천단위를 헤아릴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싸움들에 대하여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돌이켜본다. 우리가 중시하는것은 간고한 싸움에서 발현된 혁명군의 넋이다. 인민혁명군의 의지는 적들을 압도하였다. 적을 정신적으로 압도하면 승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우리가 장백땅에서 벌린 혈전의 자취들을 소중히 여기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5 346페지)

신화는 량의 규모가 결정하지 않고 사건자체의 정신이 좌우한다.

김일성사령관은 소덕수전투승리의 비결을 처음부터 끝까지 인민들의 힘에 덕을 입었기때문이라고 한다. 례를 들어 전투가 끝난 다음에 감자밭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였는데 만약에 인민들이 유격대에게 피해보상을 요구했더라면 이런 생각을 해본다.

오늘날 친일매국노들이 뻔뻔하게 소송을 걸고 달려드는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것이 무리는 아닐것이다.

만약에 항일유격대가 인민들로부터 유리돼있었고 그들에게 기생충같은 존재였다면 도저히 신출귀몰하는 신화는 생길수조차 없었다. 유격대원들이 둔갑술을 쓴것이 아니고 인민대중이 그들의 치마폭속에 그리고 그들의 다락속에, 장속에 이들을 숨겨주었기때문이다. 유격대원들도 인간이고 그들도 제한된 육체의 힘을 가지고있고 하늘을 날수 있는것도 아니다.

《이민위천》, 이 말 한마디는 김일성항일유격대의 기본정신이다. 그들은 인민을 하늘같이 여겼기때문에 하늘우로 날수 있었다.

혁명군의 의지는 적들을 압도하였다. 적을 정신적으로 압도하면 승리는 필연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러면 그 정신은 어디서 나오는것인가?

인민대중으로부터 나온다는 바로 이것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고 전체는 하나를 위하는 정신말이다.

도천리전투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적들은 자기들 소굴에서 내려와 도천리마을에 머물고있었다.

이들이 황급하게 자기들의 굴로 돌아가려고 하는 눈치를 채고 주민들은 이를 김일성사령관에게 통지한다. 그런데 김일성부대가 마을에 도착하자면 2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이 적들을 마을에 붙잡아두어야 한다.

이때에 김일성사령관은 주민들에게 이들의 식사시간을 질질 끌게 하라는 통지를 한다. 적들은 식사를 빨리 내놓으라 독촉하지만 지하조직 구장인 정동철은 적들에게 오랜만에 마을에 왔는데 식사대접을 잘하려고 하니 시간이 걸린다고 하면서 닭도 잡고 쌀을 찧는 시늉을 하면서 지연작전을 쓴다. 밤중이나 되여서야 식사가 준비되였었는데 그때는 이미 김일성부대가 마을입구에 당도해있었다.

적들은 밤중에 봇나무, 자작나무, 가시나무와 키가 넘는 갈대들, 새초풀들이 얼기설기 뒤엉킨 소로길로 유도되여 완전히 소탕되고말았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신이 없는것이 아니라 인민이 신이라고 생각하며 인민과 함께 하는 거기에는 언제나 기적이 일어난다고 산 경험으로 믿게 되였다. 이것은 신종교의 탄생을 예고하는것이며 복덩이 방망이같이 초월적 신비적힘으로 기적이 일어난다는 종교를 청산하는것이다. 그리스도교는 똑똑히 알라. 당신들을 넘어설 종교가 이미 탄생하였다는 사실을. 백두산자락 작은 동네에서 하나님은 그곳 나무숲속에 나타나 기적을 행한 사실을. 여기서 인민대중이 함께 하지 않고는 기적이 불가능하다.

 

 

유격대 잠행조례속에 신출귀몰 론리있다

 

《인민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대하며 인민의 리익을 진정으로 옹호보위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진정으로 지켜주는 군대만이 인민들로부터 아낌없는 지지와 성원을 받을수 있다.(5 405페지)

회고록의 한 대목이다.

인민이 군대를 위하고 군대는 인민을 사랑하는것을 《옹군애민》이라고 한다. 이를 또한 《인민적성격》이라고도 한다. 이런 인민적성격이 드디여 조선인민혁명군 잠행조례속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여 나타난다. 잠행조례에서 특별히 주의를 돌린것은 군민관계와 관병관계에 관한 문제였다.

《그것은 잠행조례의 모든 조항에서 우리 혁명군의 인민적성격을 강조하고있는 점을 보아도 알수 있다.

-본군은 일본제국주의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는 조선인민혁명군이다.

이것은 조례의 첫 조항이였다.

우리 인민혁명군의 조직원칙을 규제한 조례의 두번째 조항에서도 본군은 조선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로써 조직된 진정한 조선인민의 혁명군대라고 밝히였다.

군민관계에 대해서는 이렇게 명시하였다.

-본군은 <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수 없다.>는것을 깊이 명심하고 인민의 생명재산을 옹호보위하며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면서 군민이 일치단결하여 조국의 광복과 인민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한다.

관병일치에 대한 조항은 아래와 같았다.

-본군의 지휘성원들과 대원들은 옹간애병, 관병일치의 정신에서 군기와 풍기를 자각적으로 준수한다.(5 419420페지)

소설 《남부군》에도 그대로 나타나있다. 지리산빨찌산들은 《맞아죽고, 굶어죽고, 얼어죽는》 엄혹한 산속에서도 인민의 아들, 목숨보다 더 귀중한 동지의 사랑, 변절은 최대의 치욕 등 규률을 고수하였다고 한다.

이런 남부군의 행동강령은 이미 1930년대 잠행조례속에 있었던것이고 인민적성격 그 점에서 같았다.

전쟁당시 어느 나라 군인들이 들어가는 마을마다에서 하루밤 성욕을 채우려 부녀자를 내놓으라고 하면 동네 리장, 동장들이 허둥대던 모습을 기억할것이다. 세계전사에 찾아볼수 없는 《위안부》를 끌고다니던 부대가 바로 일본제국주의군대이다. 도덕성이 없는 군대이기때문에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 그것을 대신하려 한다.

그러나 무기가 정신을 이겼다는 전사를 들어본적이 없다. 남전에서 그 월등한 무기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호지명군대에게 패망할수밖에 없었던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국민과 함께 하지 않는 어느 정부는 지금 자기 나라 10대의 청소년들이 괴담에 홀려 끌려다닌다고 단정하고 괴담의 진원지를 찾기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고있는 모습이 가관이다. 지도자의 지지도가 20%대로 떨어지는것과 무관하지 않다.

1930년대말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패망의 순간이 다가오는것과 신출귀몰 《김일성전설》이 퍼진것은 무관치 않다. 민중은 새로운 메시아를 기다리고있으며 이들은 전설을 통해 자기들끼리 의사소통을 해나갔던것이다. 장백지구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한 유격대원과 주민사이에 나눈 한토막의 대화가 이렇게 민간전설이 되여 들불같이 퍼져나갔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