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83)

 

사상적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를 넘어서라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개혁학설과 변혁학설의 담론쟁의와 이 땅에서 벌어진 모방논쟁

사회변혁과 진보정치를 실현해 가는 머나먼 길에서 과학적인 사상이론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사회변혁과 진보정치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과학적인 사회변혁사상과 진보정치이론을 습득할 때, 그 때 비로소 강력한 실천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적인 사회변혁사상과 진보정치이론을 알지 못하는 진보정치활동가는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좌충우돌식 저항과 투쟁만 벌일 뿐 사회변혁과 진보정치를 실현하지는 못한다.

이번에 일어난 통합진보당 분쟁사태에서 드러난 한 가지 사실은, 통합진보당의 최대 정파인 자주파가 과학적인 사회변혁사상과 진보정치이론을 습득하여 사상적으로 공고하게 결집한 정파라는 뜻에서 자주파로 불려온 것이 아니라, 당권적 이해관계에 따라 느슨하게 연대하였다는 뜻에서 자주파로 불려왔다는 것이다.

사상적 동질성에 의거하여 공고하게 결집된 것이 아니라 당권적 이해관계에 따라 느슨하게 연대하였으므로 분쟁사태를 원만히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의 와해공작에 휘말려 위험한 상황에까지 떠밀려 갈 수밖에 없었다. 통합진보당 분쟁사태는 자주파가 과학적인 사회변혁사상과 진보정치이론을 습득하여 공고하게 결집한 새로운 정파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주었다.

자주파가 과학적인 사회변혁사상과 진보정치이론을 습득하는 데서 필수적인 것은 진보적 지식인의 역할이다. 사회변혁사상과 진보정치이론을 직접 연구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뛰어난 정치활동가도 있지만, 진보적 지식인의 연구성과를 통해 사회변혁사상과 진보정치이론을 습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미국과 서유럽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한 유학생 출신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예컨대, 이 땅의 좌파 지식인을 대표하는 김세균 교수는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유학하였고, 이 땅의 중도파 지식인을 대표하는 최장집 교수는 미국 시카고대학교에서 유학하였다.

유학생 출신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써내는 글들은 한결같이 미국과 서유럽의 학파들이 과거에 유행시켰거나 지금 유행시키는 서구식 사상이론들이다. 1980년대 이후 그들이 이 땅에 전파한 서구식 사상이론을 30여 년 동안 줄곧 접하다보니, 사회과학이라면 미국과 서유럽의 사회과학밖에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풍토가 만연되었다.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담론학습에 열중하는 미국과 서유럽의 대학들에서 유학하면서 배운 것은 사회과학부문의 서구 학파들끼리 벌인 복잡한 학술논쟁이다. 물론 사회과학부문의 서구 학파들이 벌인 학술논쟁을 백해무익하다고 내쳐서는 안 되지만,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그들의 복잡한 학술논쟁에서 배울 것은 별로 없으며 현학적인 담론공부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 가운데 대부분은 사회과학부문의 서구 학파들이 오랜 기간에 걸쳐 벌여온 복잡다단한 학술논쟁을 중시하면서 앵무새처럼 모방논쟁을 벌이고 있는데, 엄밀히 따져보면 서구 학파들의 학술논쟁이 개혁학설와 변혁학설의 담론쟁의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미국과 서유럽에서 이어져온 개혁학설과 변혁학설의 다종다양한 쟁점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자유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개혁을 설명하는가 아니면 평등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변혁을 설명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차이에서 파생된 것이다.

개혁학설은 사회민주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케인즈주의 등으로 분화되었고, 변혁학설은 맑스주의, 레닌주의, 트로츠키주의 등으로 분화되었다. 옛날 봉건시대 유학자들이 성리학과 양명학으로 갈라졌던 것처럼, 오늘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개혁학설과 변혁학설로 갈려졌다.

주목하는 것은, 개혁학설과 변혁학설이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로 갈라진 두 갈래의 사상조류를 타고 논쟁을 벌여왔다는 점이다. 개혁학설은 자유주의에 사상적 근거를 두었고, 변혁학설은 평등주의에 사상적 근거를 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자유라는 가치개념은 개인적 자유을 뜻하고, 평등주의에서 말하는 평등이라는 가치개념은 사회적 평등을 뜻한다. 개혁학설의 기본인식은 시민들이 개인적 자유를 실현하면 사회적 평등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국가권력이 개입하여 양자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고, 변혁학설의 기본인식은 노동계급의 정치역량에 기초하여 수립된 국가권력이 개인적 자유와 무관하게 사회적 평등을 실현한다는 것이다.

자유-평등 분할도식과 낡은 사회관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사상조류를 타고 벌어진 개혁학설과 변혁학설의 논쟁은 자유-평등 분할도식이라는 인식의 틀 안에서 벌어진 지루한 담론쟁의다. 개혁학설과 변혁학설이 자유-평등 분할도식 안에서 벌이는 담론쟁의는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공전하는 것이다.

 
그들의 담론쟁의가 끝없이 공전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자유-평등 분할도식이 낡은 사회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식의 틀이기 때문이다. 그처럼 낡은 사회관에 갇혀 있는 인식의 틀을 가지고 과학적인 사회변혁사상과 진보정치이론을 정립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자유-평등 분할도식이 벗어나지 못한 낡은 사회관이란 무엇일까?

첫째, 개체집합설에 근거한 사회관이다. 그것은 사회의 본질을 사회적 관계로 인식하지 못하고, 개체집합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개체집합이라는 개념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만 불충분하게 설명할 뿐, 개인과 집단의 관계, 집단과 집단의 관계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관계를 총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둘째, 사회유기체설에 근거한 사회관이다. 사회유기체설은 사회적 관계를 유기적 관계로 인식하면서도, 생태적 관계와 사회적 관계를 동일시하는 오류에 빠졌다. 자연계에서는 생태적 관계가 형성되고, 사회역사계에서는 사회적 관계가 형성된다. 자연계의 생태적 관계는 순환적으로 진화하는 데 비해, 사회역사계의 사회적 관계는 비순환적으로 진보한다.

순환적 진화와 비순환적 진보의 차이는 양적 차이가 아니라 질적 차이다. 사회유기체설은 순환적으로 진화하는 자연계의 생태적 관계와 비순환적으로 진보하는 사회역사계의 사회적 관계를 동일시하고 양자의 질적 차이를 무시하는 오류에 빠졌다.

셋째, 자유-평등 분할도식이 얽매여 있는 낡은 사회관을 타파한 것이 토대-상부구조론에 기초한 맑스-레닌주의 사회관이다. 역사적 유물론으로 정식화된 맑스-레닌주의 사회관의 핵은 토대-상부구조론이며, 사회적 생산양식이 사회적 관계를 규정한다는 학설이다. 그 학설에 따르면, 낡은 생산양식을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교체할 때, 질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생산양식이 사회적 관계를 규정한다는 학설은, 낡은 생산양식을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교체하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산양식에 부합되는 새로운 사상의식을 가져야 사회변혁을 완성할 수 있다는 진리를 밝혀주지 못했다. 전 세계 사회변혁운동의 오랜 실천경험은, 토대의 변화가 상부구조를 자동적으로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사상의식의 개조를 동반하지 못한 생산양식의 교체는 목욕을 하지 않은 채 옷만 갈아입는 것과 마찬가지다. 목욕을 하지 않은 채 옷만 갈아입으면, 일시적으로 깨끗해 보일 수는 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새 옷이 급속히 더럽혀지고 말 것이다.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하여 건설된 소련식 사회주의체제가 80년을 넘기지 못하고 무너진 까닭은, 그 체제의 사상적 기반인 맑스-레닌주의가 생산양식의 교체만 강조하고 사상의식의 개조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맑스-레닌주의 사회관은 그처럼 생산양식의 교체만 강조하고 사상의식의 개조를 해명하지 못한 한계를 안고 있었을 뿐 아니라, 바로 그러한 사상적 한계 때문에 생산양식이 교체된 이후의 새로운 사회를 여전히 자유-평등 분할도식에 의거하여 상상하는 수밖에 없었다.

맑스-레닌주의가 노동계급의 사회변혁사상과 진보정치이론을 정립하였다고 하면서도 자유-평등 분할도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까닭이 거기에 있다. 맑스-레닌주의는 자유와 평등를 내포한다는 뜻에서 더 근원적이고, 그리고 자유와 평등을 뛰어넘는다는 뜻에서 더 혁신적인 가치를 발견하여야 하였으나 그렇지 못한 채 다른 비과학적 사상조류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자유-평등 분할도식에 묶여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변혁적 사회관과 자주-협동 포괄도식

맑스-레닌주의 사회관을 넘어서는 새로운 변혁적 사회관은 사회적 생산양식의 교체와 더불어 사회적 사상의식의 개조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쳐준다. 새로운 변혁적 사회관에서는 생산양식을 어떻게 교체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사상의식을 어떻게 개조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서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별개의 문제로 될 수 없다.

누가 생산양식을 교체하는가, 누가 생산양식의 교체에 의거하여 사회변혁을 완성하는가 하는 것은 사회변혁에서 제기되는 주체의 문제인데, 새로운 변혁적 사회관이 바로 그런 주체의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한 이론적 해명을 준 것이다. 낡은 생산양식을 새로운 생산양식으로 교체하는 주체는 변혁적 사상의식을 습득한 주체인 것이다.

새로운 변혁적 사회관에 따르면, 생산양식을 교체함으로써 형성되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돕고 서로 이끌어주며 사회적 공유가치를 실현해 가는 협동적 관계로 전환되는 것이다. 또한 새로운 변혁적 사회관에 따르면, 자유와 평등을 박탈당하고 예속과 지배를 숙명처럼 여기던 낡은 사상의식이 자주적 사상의식으로 개조되는 것이다.

협동적 관계와 자주적 사상의식이 새로운 변혁적 사회관을 이해하는 두 가지 열쇠말이다.

새로운 변혁적 사회관을 정립하는 것은, 낡은 자유-평등 분할도식을 버리고 새로운 자주-협동 포괄도식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자주라는 가치개념과 협동이라는 가치개념은 서구의 사회역사적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므로 서양언어에는 그 개념에 꼭 맞아떨어지는 말이 없다. 이것은 자주-협동 포괄도식을 우리식의 독창적인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점을 말해준다.

미국과 서유럽에서 유학하면서 자유주의와 평등주의의 사상적 세례를 받은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사회역사적 현실을 자기의 머리로 생각하지 못하고, 독창적인 언어로 변혁과 진보를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유-평등 분할도식에서 파생된 갖가지 개념들을 짜맞추어 변혁과 진보를 설명하려고 애쓴다.

봉건시대의 양반 사대부들이 고대 중국의 사상이론에 중독되었던 것처럼, 지금 이 땅의 진보적 지식인들은 근대 서구의 사상이론에 중독되었다. 봉건시대나 오늘이나 사상적 중독증은 자기가 살고 있는 현실을 과학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시야를 가리고, 외국학파의 사상이론에 종속되었으면서도 자신이 종속되었음을 알지 못하게 만든다.

낡은 자유-평등 분할도식을 버리고 새로운 자주-협동 포괄도식으로 우리 시대의 변혁과 진보를 명쾌하게 설명하는 진보적 지식인의 출현이 기다려진다. (2012년 7월 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