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78)
 

신당권파 출현과 그 이후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그들은 '퇴출의 덫'에 걸렸다

수구언론에서 신조어가 나돌고 있다. 신당권파와 구당원파라는 신조어다. 당권파라는 말만 쓰다가, 신당권파와 구당권파를 구분해서 쓰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런 신조어가 시중에 유통되는 것은 진보당의 당권이 교체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당권교체란 진보당의 당권이 구당권파에서 신당권파로 넘어간 것을 뜻한다.

물론 구당권파와 신당권파의 당내분쟁이 끝난 게 아니므로, 당권이 구당권파에서 신당권파로 완전히 넘어갔다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신당권파가 자기들을 중심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사실상 당권교체가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진보당을 위태롭게 만든 파국적 사태의 원인은 당권교체문제를 놓고 구당권파와 신당권파가 충돌한 당내분쟁이다. 당내분쟁이 극도로 격화되어 파국적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진보당의 파국적 사태를 도덕적인 정파와 부도덕한 정파가 비례대표 경선부정이라는 문제를 놓고 충돌한 것으로 보는 도덕적 견해도 있으나, 파국적 사태에 개입된 '도덕문제'는 파국적 사태의 촉발계기에 지나지 않으며, 파국적 사태의 발생원인은 어디까지나 구당권파와 신당권파의 분쟁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

도덕적 관점은 당내분쟁의 촉발계기와 발생원인을 혼동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신당권파와 구당권파라는 신조어가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한 2012년 5월 15일, 수구언론 논설위원 한 사람이 발표한 논설에 들어있는 글귀가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다. "경기동부는 유 씨가 쳐놓은 덫에 걸렸다.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인용문에서 말하는 '경기동부'란 구당권파를 뜻하고, '유 씨'란 신당권파를 이끄는 핵심인물인 유시민 씨를 뜻한다.

시중에 유통되기 시작한 신조어를 그 인용문에 대입하여 다시 읽으면, "구당권파는 신당권파가 놓은 덫에 걸렸다. 당권을 신당권파에게 빼앗긴 구당권파는 억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진보와 변혁의 정적들인 수구우파는 진보당이 겪는 파국적 사태를 이처럼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신당권파가 놓았고, 구당권파가 걸려든 덫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두 말할 나위 없이, 비례대표 경선부정 진상조사가 바로 그 덫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신당권파는 "말도 되지 않는 소리"라고 하면서 펄쩍 뛸지 모른다.

그러나 진보당 당권교체에 대한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의 시각으로 꼼꼼히 살펴보면, 신당권파가 진상조사라는 덫을 놓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진상조사위원회 구성과 진상조사방향에서 편파성이 보이고, 그에 따라 진상조사결과에서도 불공정성이 보이고, 진상조사결과를 수구언론에 공개한 절차와 방식도 비정상으로 보인다.

구당권파를 당지도부에서 퇴출시키려는 신당권파의 당권교체 의도가 진상조사 및 진상조사결과 공개에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는 점에서, 비례대표 경선부정 진상조사는 구당권파에게 '퇴출의 덫'이 아닐 수 없다.

너무도 위압적인 선동의 소용돌이

신당권파가 구당권파를 당지도부에서 퇴출시키고 당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한 첫 공정은 폭로전이었다. 이를테면, '비례대표 경선부정 = 구당권파의 파렴치한 범행'이라는 범죄수사공식이 당 안팎의 강력한 폭로선동을 타고 확산되자, 구당권파는 하루 아침에 '파렴치범'으로 낙인찍혔다.

'파렴치범'으로 낙인찍힌 구당권파는 아무리 억울해도 그저 참는 수밖에 없고, 진보당 당권을 신당권파에게 넘기고 당지도부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퇴출선동이 압도적이었다. 평소에 '진보의 언어'를 곧잘 구사해가며 진보인사를 자처하던 사람들도 예외없이 폭로선동과 퇴출선동에 동조하는 하급선동원 역할에 충실하였다.

당 안에서는 신당권파가, 당 밖에서는 수구우파가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들의 선동은 너무 위압적이었다. 그들의 선동에 어떤 의문이나 이의를 제기하는 제3자마저도 구당권파의 '파렴치한 범행'을 묵인하고 '파렴치범'을 두둔하는 혐의자로 비난을 받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구당권파를 무조건 두둔하는 행위와 구당권파에 대한 부당한 선동공세를 비판하는 행위는 전혀 다른 것인데도, 저들의 선동공세는 그 두 행위를 구분하는 경계마저 무너뜨렸다. 당내분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제3자의 시야는 실종되고, "그러면 당신은 구당권파냐 아니면 신당권파냐" 하는 정파적 신원확인절차만 당 안팎에서 강제되었다.

이성적 판단이 마비되고 감정분출만 극도로 격화되더니만 급기야 폭력사태까지 일어나고 말았다. 신당권파의 당권교체 강행에 격노한 구당권파의 일부 몰지각한 당원들이 회의장에서 단상을 점거하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신당권파 핵심인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은, 퇴출의 덫에 걸린 구당권파를 더욱 옥죄는 자해적 결과를 낳고 말았다.

진보당의 파국적 사태를 처음부터 되짚어보면, 구당권파는 신당권파가 경선부정 진상조사를 진행할 때까지만 해도, 진상조사의 창끝이 나중에 자기들을 겨누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신당권파가 구당권파를 당지도부에서 밀어내기 위한 퇴출의 덫이 진상조사과정에 설치되고 있었는데도, 그런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하고 방심하던 구당권파는 퇴출의 덫을 피할 수 없었다. 다급해진 구당권파는 공정회를 열어 퇴출의 덫에서 빠져나오려고 모질음을 썼으나 때는 너무 늦었다.

당 안에서는 신당권파가, 당 밖에서는 수구우파가 이미 덫에 걸린 구당권파에게 완전한 굴복을 강요하는 총공세를 집중하였다.

진보당의 당권교체가 당원들의 민주적 선출과정을 통해 순리적으로 실현되지 못하고, 신당권파의 강행처리와 그에 따른 신당권파와 구당권파의 물리적 충돌로 무리하게 강제되었다는 점에서, 진보당이 파국적 사태로 입은 내상은 회복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런 와중에도 당의 화합을 바라는 목소리가 미세하게나마 들리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심한 내상의 고통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파국적 사태 몰고온 당내분쟁의 본질

당연한 말이지만,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해온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당내분쟁이 급속도로 격화되어 폭발한 이번 파국적 사태의 본질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당 안팎에서 벌어진 폭로선동과 퇴출선동이 너무 위압적이어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지만, 이성적 판단력을 가지고 이번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파국적 사태를 몰고온 당내분쟁의 본질은, 구당권파를 '파렴치범'으로 낙인찍은 당 안팎의 무수한 선동가들이 일제히 목청을 높인 '도덕문제'가 아니다. 당내분쟁의 본질은 구당권파와 신당권파의 정치문제다. 도덕적 관점을 접고 정치적 관점을 세워야 당내분쟁의 본질이 시야에 들어온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당권파와 신당권파 사이에 존재하는 정치이념문제를 당내분쟁의 본질로 규정할 수 있다.

진보당의 정치이념구도를 읽어보면, 구당권파는 진보적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자주파이고, 신당권파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자유파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민파의 정파연합이다.

다시 말해서, 구당권파와 신당권파의 충돌은 정치이념이 서로 다른 자주파와 중도우파연합의 충돌인 것이다.
 
자주파와 중도우파연합의 격돌을 바라보는 당 밖의 시선에 대해 언급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수구우파언론의 보도기사에서 당 밖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런 말들이 들린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정치권 관계자는 취재기자에게 "그래도 이번 기회에 주사파를 확실히 정리한 것 아닌가"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취재기자는 "당권파를 진보진영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어떤 대학교수는 "이번 기회에 비당권파들이 순수 진보세력 중심으로 진보를 재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인용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진보당 밖에 있는 수구우파와 중도우파는 진보당의 자주파를 이번 기회에 "확실히 정리"하여 퇴출시켜야 한다느니, "진보진영으로부터 분리"하여 고립시켜야 한다느니, 당지도부에서 퇴출시키고 중도우파연합을 중심으로 진보당을 재창당해야 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희떠운 소리를 늘어놓았다.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자유파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민파가 손잡은 중도우파연합 신당권파가 자주파가 주도하는 진보당을 자기들이 주도하는 정당으로 변질시키려는 것, 바로 이것이 파국적 사태를 몰고온 당내분쟁의 본질이다.

구성비율과 표결결과는 왜 일치하지 않았을까?

951명으로 이루어진 진보당 중앙위원회의 구성면모를 보면, 민주노동당계 523명, 국민참여당계 285명, 새진보통합연대계 143명이다. 따라서 당지도부 구성비율은 자주파가 55%이고 중도우파연합이 45%다.

그런데 중앙위원회 구성비율에서 45%밖에 차지하지 못한 중도우파연합이 어떻게 55%나 차지한 자주파를 퇴출의 덫에 걸리게 만들었을까?

이번 파국적 사태 중에 있었던 진보당 중앙위원회 표결결과가 숨겨진 사실을 말해준다. 중앙위원 545명이 참가하고 367명이 불참한 중앙위원회 표결결과를 보면, '당혁신 결의안'에 대한 표결결과는 찬성 541표, 반대 4표였고, '혁신비대위 구성의 건'에 대한 표결결과는 찬성 536표, 반대 9표였다.

중앙위원회 표결 자체를 반대하여 표결에 불참한 367명과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진 4명 또는 9명이 자주파에 속했거나 자주파에 동조하는 중앙위원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들을 자주파로 통칭한다면, 중앙위원회 표결에서 자주파 비율은 40%밖에 되지 않는다.

중앙위원회 구성에서 자주파 비율은 55%(523명)인데, 중앙위원회 표결에서 자주파 비율은 40%(371명)으로 대폭하락한 것이다. 이것은 자주파 중앙위원들 가운데 약 150명 정도(15%)가 표결과정에서 중도우파연합과 공조하였음을 말해준다.

원래 45%를 차지한 중도우파연합은 자주파 중앙위원 약 15%가 그들과 공조하는 바람에 60%로 불어난 반면, 원래 60%를 차지한 자주파는 자주파 중앙위원 약 15%가 중도우파연합과 공조하는 바람에 45%로 줄어들었다.

자주파 중앙위원들 가운데 약 15%가 중도우파연합과 공조한 것은, 중도우파연합이 중앙위원회 표결처리로 당권을 교체하도록 길을 터준 결정적 요인이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자주파는 단일대오가 아니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자주파는 다수계와 소수계로 구분된다. 자주파 다수계를 시중에서는 '당권파' 또는 '경기동부'라고 부르고, 수구우파는 그들을 이른바 '종북주사파'로 비방중상한다. 2000년대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자주파 소수계는 자주파 다수계가 '패권주의(Hegemonism)'를 부린다고 비판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중도우파연합이 자주파 다수계를 상대로 공세적인 당권교체를 밀고나갈 때, 자주파 소수계가 그 공세에 가세하였다. '패권주의(Hegemonism)'를 부리는 자주파 다수계에 대한 반감이 자주파 소수계를 중도우파연합과 공조하는 길로 떠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55 대 45의 구성비율이 40 대 60의 표결결과로 뒤바뀐 사연이다.

자주파 다수계(40%)는 자주파 소수계(15%)와 중도우파연합(45%)가 밀어붙인 강행처리협공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처럼 자주파 소수계의 공조를 획득한 중도우파연합은 자주파 다수계를 당지도부에서 몰아내고 당권교체를 실현하였다. 중도우파연합이 주도하고, 자주파 소수계가 공조하고, 자주파 다수계가 거부한 가운데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바로 그런 당권교체의 일차적 결과물이다.

앞으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이어질 당권교체과정에서 중도우파연합은 자기들과 공조한 자주파 소수계와 당권을 나누겠지만, 자주파 소수계가 차지할 '몫'은 25% 이하가 될 것이다. 이것은 진보당 당권의 75%를 중도우파연합이 차지하고 자주파 소수계는 나머지 25%만 차지할 것임을 예고한다.

물론 당지도부 구성에 관한 이러한 예상은, 중도우파연합과 자주파 소수계가 공조하여 자주파 다수계를 사실상 배제함으로써 자주파 다수계가 당지도부 구성에 전면 불참하는 최악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나 자주파 다수계가 중도우파연합과 자주파 소수계의 공조에 밀려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주저앉는 것은 아니다. 자주파 다수계는 중도우파연합이 강행하는 당권교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며, 그에 따라 당내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다.

새로운 국면의 당내분쟁을 좌우할 결정적인 요인은 진보당 당원들의 향배다. 어느 정파가 당원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받는가 하는 민주주의의 원칙적 문제가 당내분쟁의 승자와 패자를 결정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체성 변질부터 막아야 한다

진보당 앞날을 사회변혁적 관점에서 길게 내다보지 못하고, 당면한 당권교체문제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중도우파연합의 당권교체강행에 공조한 자주파 소수계는, 누구나 예견할 수 있는 것처럼, 당권을 중도우파연합과 나누어갖는다 해도 세가 너무 약해 중도우파연합의 독주를 견제하지도 못할 것이며, 견인하는 것은 더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진보당이 중도우파연합이 이끄는 중도우파정당으로 탈바꿈할 위험이 매우 커졌음을 예고해준다.

진보당 소속 중도우파연합과 민주통합당은 당적만 서로 다를 뿐이고 정치이념은 똑같으므로, 진보당이 중도우파정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민주통합당에 대한 진보당의 전략적 차별성이 사라지는 변질이며, 더 심하게 표현하면 진보당이 '민주통합당 2중대'로 전락하는 굴욕이다.
 
자주파 다수계는 자주파 소수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중도우파연합과 손잡고 진보당을 건설하였지만, 그들이 중도우파정당을 건설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자주파는 중도우파연합과 손잡고 대중적 지지기반을 더욱 확대하고,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할 든든한 전략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진보당을 건설한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건설한 진보당이 이제 와서 '민주통합당 2중대'로 전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사회변혁적 관점에서 보면, 당권교체를 실현한 중도우파연합의 의도가 진보당을 중도우파정당으로 변질시키려는 것이라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진보당의 우경화가 혁신이 아니라 변질이라는 것은 자주파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진보당의 정체성 변질이야말로 진보정치의 포기이며 사회변혁의 대의에 대한 배반이 아닌가!

진보와 변혁의 긴급한 당면임무가 제기되었다. 진보당의 우경화를 막고 진보당의 창당정신과 진보적 정체성을 옹호고수하는 것은 자주파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주어진 중대하고 비상한 임무다.

자주파 진보정치활동가라면 다수계와 소수계를 가릴 것 없이, 진보당의 정체성 변질을 막고 우경화를 저지하는 당면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2012년 5월 1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