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76-2)

 

자주파의 초라한 모습과 두 개의 논리적 함정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자주파의 초라한 모습이 드러나다

이 땅에 진보적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가장 먼저 척결해야 할 변혁과 진보의 공적은 수구언론매체들이다. 사회적 관계와 활동이 여론과 정보의 흐름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오늘 정보화 시대에 여론과 정보의 흐름을 틀어쥔 수구언론매체들의 독점력은 너무 강하다.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집중공격을 퍼부어 자기 정적을 매장해버릴 수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말은 그들의 사악한 괴력을 칭할 때 쓰는 말인 듯하다.

그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변혁과 진보의 정적들이 지금 진보정치활동가 세 사람의 정치생명을 끊어버리고 매장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날뛰고 있다. 세상이 다 아는 것처럼, 수구언론매체들로부터 집중공격을 받는 사람은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이석기 비례대표 당선자, 김재연 비례대표 당선자다.

수구언론매체들이 요즈음 거의 날마다 써갈기는 이 세 당활동가에 대한 기사는 광기 어린 비방과 악담으로 가득하다.

지금까지 수 십 년 동안 이 땅의 변혁과 진보를 가로막으며 진보정치활동가들을 매장시키려고 광분해온 수구언론매체들이 또 다시 진보정치활동가들 가운데 누군가를 매장시키려고 날뛰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방관하고 침묵하는 것은, 변혁과 진보에 대해 말할 자격을 상실한 무능이다.

그 세 당활동가가 자기와 갈등관계에 있는 다른 계파에 속했다고 해서 그들에게 쏟아지는 수구세력의 집중공격에 대해 방관하고 침묵한다면, 그것은 진보정치활동을 순전히 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바라보는 옹졸하고 편협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평소에 계파적 이해관계가 충돌하였더라도, 외부 정적들이 당 안의 다른 계파를 집중공격할 때는 계파적 쟁점을 잠시 뒤로 미뤄두고 공동으로 대응하고 반격하는 것이 올바른 전선행동방식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지금 자주파의 다른 계열에 속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너무 이상하리만치 잠잠하다. 그 세 당활동가가 이번에 과연 죽는가 살아남는가를 먼 발치에서 구경하려는 것일까?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투쟁해온 자주파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계파적 이해관계가 다르다 해서 같은 자주파에 속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정적들로부터 치명타를 입는 데도 방관과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자주파 진보정치활동가들은 비자주파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변혁과 진보의 적들로부터 그렇게 집중공격을 받는 경우, 공격받는 비자주파 진보정치활동가들을 옹호해야 정상인데, 같은 자주파에 속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그처럼 집중공격을 받는 데도 모른 척 하다니,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땅의 자주파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진보적 민주주의와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해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투쟁해왔는데도, 왜 이제껏 사회변혁역량을 추켜세우지 못했던가를 이제 좀 알 것 같다.

자주파라 부르기는 했지만, 자주파 내부가 그처럼 이 갈래 저 갈래 나뉘어 갈등, 반목해왔으니 아무리 투쟁한들 어찌 힘을 쓸 수 있으며 어찌 사회변혁역량을 추켜세울 수 있었겠는가. 변혁과 진보의 대의는 입으로 외우면서 자주파 내부에 갈라져 있는 왜소한 집단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것은 자주파가 하루라도 빨리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이다.

이번 통합진보당 내부갈등사태로 드러난 것은, 각자 왜소한 집단으로 뿔뿔이 흩어져 편협한 자기이익에만 집착해온 자주파의 초라한 몰골, 바로 그것이다. 수구세력의 집중공격을 받으면서도 자주파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수구세력의 난동을 질타하는 반격도 하지 못할 만큼 뿔뿔이 흩어진 파편적이고 왜소한 존재들을 그 무슨 자주파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사상과 정견이 같은 자주파들끼리도 수구세력에 맞서 공동대응을 하지 못하면서, 사상과 정견이 다른 정파들과 손잡고 진보적 대중정당을 이끌어 가겠다고? 그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한심한 소리는 아예 꺼내지 않는 편이 낫다.

기회주의적 발상이 숨겨진 견해

통합진보당의 일부 당활동가들은 이정희 공동대표, 이석기 당선자, 김재연 당선자가 사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수구세력이 그들을 집중공격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므로, 그 세 당활동가가 당을 살리기 위해 용단을 내려 사퇴하면 수구세력의 공세국면을 돌파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잘못도 없는 데 사퇴하라면 당사자들은 억울하겠지만, 당을 위해서라면 억울해도 사퇴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는 게 그들의 견해다.

만일 논리적 사고력이 약한 사람이 그런 견해를 접하면 수긍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 견해는 명백히 그릇된 견해다. 왜냐하면, 통합진보당을 분열, 와해시키려고 날뛰는 수구세력에 맞서 싸우지 않으려는 기회주의적 발상이 그 견해 속에 숨어있기 때문이다.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수구세력이 그 세 당활동가를 집중공격하고 있는 '현실'을 현실로 인정해서는 안 된다. 2008년 2월 민주노동당을 분당시킨 논리 아닌 논리가 바로 수구세력이 '일심회 사건'으로 당활동가 두 사람을 집중공격하고 있는 '현실'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2008년 2월에도 그리고 오늘에도 그런 잔혹한 '현실'은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변혁과 진보의 이름으로 타파해야 할 현실이지, 당을 살리겠다는 명분으로 인정할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백 번 양보해서, 만일 통합진보당이 그 세 당활동가를 수구세력에게 내던져주는 '희생제물'로 삼으면, 통합진보당이 더 이상 수구세력의 공격을 받지 않게 되는 것일까? 수구세력이 그 '희생제물'을 잡아먹으면, 통합진보당에 대한 공격을 멈추는 게 아니다. 다음에 당활동가들 가운데 또 누가 수구세력에게 '희생제물'로 잡혀먹힐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통합진보당이 그 세 당활동가를 수구세력에게 내던져주는 '희생제물'로 삼아 수구세력의 공격예봉을 잠시 피해보려는 것이야말로 기회주의자들이나 할 짓으로 보인다.

수구세력의 집중공격에 맞서 끝까지 비타협적으로 투쟁하기를 포기하는 자들이야말로 수구세력의 집중공격으로 변혁과 진보가 시련을 겪을 때 대적투쟁을 포기하고 슬그머니 대오에서 빠져나갈 기회주의자들이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라는 소리는 잡음이다

통합진보당 밖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집적거리는 논객들 가운데는 '국민의 눈높이'를 자꾸 강조하면서 그 세 당활동가가 사퇴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말하는 '국민의 눈높이'란 통합진보당이 경선부정의혹에 휘말려 국민들로부터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국민적 불신을 해소하려면 비록 경선부정의혹이 해소되기 이전이라도 그 세 사람이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변별력이 약한 사람이 그런 주장을 들으면 그럴 듯하게 들리겠지만, 그 주장은 그 세 당활동가를 '희생제물'로 삼으려는 당내 기회주의자들의 견해를 '국민의 눈높이'라는 헛소리로 당 밖에서 뒷받침해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판단하는 논거는 아래와 같다.

경선부정의혹이 당 안에서 제기되자 그 의혹을 서둘러 '범죄'로 확정하여 국민들에게 '고발'한 쪽은 자주파에게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운 비자주파였고, 경선부정의혹이 당 밖에 발표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통합진보당을 '범죄집단'으로 몰아가면서 국민적 불신을 증폭시킨 쪽은 통합진보당을 분열, 와해시키려고 혈안이 된 수구세력이었다.

주목하는 것은, 통합진보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연쇄적이고 고의적인 고발과정과 증폭과정을 거치면서 무너지고 말았다는 점이다. 만일 그런 연쇄적이고 고의적인 대국민 고발과정과 증폭과정이 없었더라면, 통합진보당은 경선부정의혹을 당 내에서 합리적으로, 정당하게 해소하면서 국민들에게 사죄하였을 것이고, 그렇게 했더라면 의혹도 해소하고 국민적 신뢰도 오늘처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당 안에서 제기된 경선부정의혹이 당 안에서 얼마든지 합리적으로, 정당하게 해소될 수 있었는데도, 그 의혹을 '범죄'로 확정하여 국민들에게 '고발'해버린 사람은 누구이며, 그런 의혹이 당 밖에 알려지자 그 의혹을 '범죄'로 증폭시켜 당과 국민을 이간질시킨 것은 또 누구인가? 이런 사정을 덮어놓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세 당활동가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 잡음으로 들린다.

마지막으로, 전술문제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 당 안에 있는 기회주의적 흐름에 맞서 투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런 투쟁을 계속할수록 국민들의 눈에는 난타전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 밖에 있는 수구세력의 집중공격에 맞서 대적투쟁을 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당 안에 형성된 진보정치활동가들 대 기회주의자들의 난타전선을 당 밖으로 옮겨놓는 전술이 요구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대 수구세력의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여야 통합진보당이 당 안에서 심화되는 갈등위기와 당 밖에서 밀려오는 외압공세를 한꺼번에 돌파할 수 있다. (2012년 5월 11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