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75)

 
사회개혁 요구하는 이 땅의 국민들과 함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국제여론조사에 나타난 '3화 사회'의 비극적 현실

영국 텔레비전방송 BBC가 국제여론조사기관 글로브스캔(GlobeScan)에 의뢰하여 22개국 11,74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경제현실에 관한 국제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 국제여론조사에서 자국의 경제체제가 얼마나 불공정(unfair)하다고 생각하는가를 물었더니 아래와 같은 응답비율이 나왔다.

스페인 92%, 프랑스 85%, 남측 81%, 칠레 80%, 러시아 78%, 브라질 69%, 인도네시아 67%, 독일 67%, 미국 65%, 페루 65%, 터키 64%, 영국 61%, 멕시코 55%, 나이제리아 54%, 파키스탄 52%, 중국 52%, 이집트 51%, 가나 47%, 캐나다 43%, 케냐 42%, 인도 42%, 오스트레일리아 36%. 이러한 응답비율을 보면, 남측 경제체제가 전 세계에서 가장 불공정한 경제체제라는 사실이 뚜렷이 드러난다.

위의 여론조사에서 말하는 경제적 불공정이란 무슨 뜻일까? 경제적 불공정이란, 극소수 부유층은 날이 갈수록 엄청난 부를 긁어모으고, 사회적 생산을 책임진 절대다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곤과 궁핍에 빠져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2012년 1월 10일 국제노동기구(ILO)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자산규모가 상위 10%에 드는 부유층 가구들이 전 세계 재부의 70% 이상 소유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그 잘났다는 자본주의'가 현존 인류에게 안겨준 지구적 불행의 처참한 실상이다.

2012년 2월 16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전체 가구 가운데 무려 54%가 은행빚을 지고 있고, 은행빚을 진 가구들 가운데 43.6%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생활자금과 전세자금을 빌렸다. 또한 은행빚을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고 응답한 가구가 31.1%나 되었다. 이 땅의 국민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요인은 물가상승 31.4%, 경기침체 19.0%, 소득감소 18.0%, 고용불안 7.7%, 금리상승 6.2%, 부동산가격 상승 5.1%로 나타났다.

위의 통계수치는 단지 백분율로 기록된 것이지만, 이 땅의 민중들이 겪고 있는 절망과 불행과 고통의 피눈물이 바로 그 백분율 속에 녹아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이 땅의 민중들이 겪고 있는 절망과 불행과 고통의 피눈물이 담긴 각종 통계자료들이 너무 많아서 이 글에서 열거하기 힘들다.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곤과 궁핍 속에 허덕이는 민중들이 그처럼 많은데, 이 땅의 30대 재벌은 2001년에 자산총액 437조8,570억원을 거머쥐었는데, 그로부터 10년만에 1,164조4,030억원으로 급증했고, 30대 재벌이 거느리는 계열사는 624개에서 1,087개로 급증했다.

이 땅의 민중들이 실생활에서 직접 체험하는 것처럼, 자본주의시장경제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경제적 불공정이 사회적 불평등을 낳고, 사회를 10%의 부유층과 90%의 빈곤층으로 갈라놓는 것이다. 그처럼 양극화, 불구화, 피폐화되어버린 이 땅의 '3화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은 상위 10%만이 배타적으로 누리는 '행운'일 뿐이다.

양극화, 불구화, 피폐화를 완성한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 땅의 경제가 1997년 11월에 치명적인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쇠락하면서 사회적 양극화 현상을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사회적 양극화가 고착되어버렸고, 극소수 부유층을 위해 노동자, 농민, 서민을 극도로 희생시킨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더욱 극단적인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생각은 전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 본질을 놓치기 쉬운 굴절된 단견이다.

주목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양극화, 불구화, 피폐화된 원인이 1997년 11월에 일어난 외환위기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다만 그 외환위기는 여러 요인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양극화, 불구화, 피폐화의 뿌리는 더 깊이 박혀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정우 경북대학교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땅값이 무려 100배나 폭등하였고, 땅값폭등으로 막대한 불로소득을 거머쥔 신흥 부유층이 출현하여 사회적 양극화가 이미 그 기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기간에 땅값폭등으로 거머쥔 불로소득총액은 326조원이었는데, 그것은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땀흘려 일해서 얻은 생산소득 131조원의 250%나 된다. 이러한 통계자료는 이미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이 땅의 사회적 양극화가 완성되었음을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땅값폭등으로 거머쥔 불로소득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이르러 생산소득의 3분의 2를 차지하였고, 노태우 군사독재정권 시기에는 100%에 이르렀으며, 김영삼 정권 시기에는 -5.2%, 김대중 정권 시기에는 -0.6%, 노무현 정권 시기에는 8.4%로 나타났다.

이 땅의 사회적 양극화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완성되었다는 위의 분석결과는, 이 땅의 민중들이 외환위기 같은 계기적 충격요인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시장경제 때문에 좌절과 고통과 불행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준다. 그러므로 이 땅의 국민들이 낡고 썩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새롭고 올바른 경제로 대체하지 않고서는 언제 가도 좌절과 고통과 불행에서 영영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언급하였던 세계 22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여론조사결과 가운데 이런 대목이 눈길을 끈다. 그 국제여론조사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치명적인 결함이 있기 때문에 다른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나라별로 이렇게 나타났다.

스페인 42%, 프랑스 41%, 나이제리아 34%, 멕시코 33%, 이집트 32%, 인도네시아 32%, 파키스탄 26%, 케냐 25%, 터키 24%, 영국 23%, 러시아 22%, 캐나다 20%, 칠레 20%, 브라질 19%, 페루 19%, 중국 19%, 오스트레일리아 18%, 미국 17%, 남측 16%, 가나 16%, 인도 14%, 독일 9%.

이 땅의 국민들은 사회적 양극화로 전 세계에서 가장 혹심한 고통과 불행을 겪으면서도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는 나이제리아, 멕시코, 이집트,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케냐, 터키, 칠레, 페루 같은 나라들 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것은 이 땅의 국민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혹심한 좌절과 불행과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회변혁에 대한 요구는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있음을 말해준다.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이 땅의 국민들과 함께 가는 변혁의 길

이 땅의 국민들이 사회변혁을 요구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다른 무엇을 요구하는 것일까? 위의 국제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자본주의시장경제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규제해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나라별로 이렇게 나타났다.

독일 75%, 남측 66%, 캐나다 58%, 오스트레일리아 57%, 영국 56%, 페루 55%, 프랑스 53%, 나이제리아 52%, 중국 52%, 미국 49%, 스페인 48%, 러시아 47%, 케냐 44%, 칠레 43%, 파키스탄 43%, 멕시코 42%, 인도네시아 42%, 터키 41%, 이집트 40%, 브라질 39%, 가나 36%, 인도 29%.

문제 많은 자본주의시장경제를 규제해야 한다는 이 땅의 국민적 요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높은 나라는 독일인데, 독일 국민들은 자본주의시장경제에 대한 근본적 변화 요구가 세계에서 가장 낮고, 자본주의시장경제에 대한 규제 요구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것은 독일에서 자본주의시장경제를 규제한 사회개혁효과가 자국 국민들에게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독일 국민들과 달리, 이 땅의 국민들은 자본주의시장경제에 대한 근본적 변화 요구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고, 자본주의시장경제에 대한 규제 요구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다.

위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 땅에서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은 16%밖에 되지 않고,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은 66%나 된다. 위의 통계자료와 정당지지분포가 서로 맞아떨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 통계자료를 가지고 정당지지분포도를 얼추 그린다면, 통합진보당 지지층은 16%, 민주통합당 지지층은 66%, 새누리당 지지층은 18%로 그려질 것이다.

사회개혁을 크게 선전하였던 김대중-노무현 정권 10년 동안 사회개혁은 말잔치로 끝났고, 이명박 정권 5년 동안에는 그런 말잔치마저 실종되었다. 이 땅의 국민들 가운데 60%가 넘는 사람들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사회개혁이 실패로 끝났음을 직접 체험하였으면서도 아직도 사회개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사회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압도적인 이 땅에서 어떻게 사회변혁을 추진할 수 있을까? 사회개혁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무시해버리고 자본주의 극복을 외친다고 사회변혁을 추진할 수 있을까? 자본주의 극복을 외치던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몰락한 것은 국민적 요구를 무시하고 국민에게서 멀어진 사회변혁전략은 그것이 제아무리 '과학의 언어'를 말해도 결국 외면당한다는 변혁운동사의 뼈저린 교훈을 다시 일깨워주었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스스로 묻는 물음은 이것이다. 사회변혁이 아니라 사회개혁을 요구하는 이 땅의 국민들과 함께, 국민들 속에서, 국민들에 의거하여 사회적 진보와 발전을 실현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자문에 대한 자답은 명료하다.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진정한 사회개혁이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이 땅의 국민들과 함께, 국민들 속에서, 국민들에 의거하여 실제행동으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실패한 사회개혁이 아니라 이 땅의 국민적 요구에 따른 진정한 사회개혁을 실현하는 것, 바로 이것이 두 단계 사회변혁의 출발점이 아닌가.

누구나 아는 것처럼, 이 땅에서 진정한 사회개혁을 실현하려면 그런 사회개혁을 추진할 새로운 정권을 세워야 한다. 개혁과업과 변혁과업은 결국 정권수립과업으로 귀착된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참담한 개혁실패를 뛰어넘어 진정한 사회개혁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새로운 정권을 세우는 것, 바로 이것이 올해 통합진보당과 그 당에 결집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의 당면투쟁목표다. 그 목표를 향해 힘차게 달려가는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7개월이라는 너무 짧은 시간이 주어졌다. 신들메를 고쳐매야 할 때다. (2012년 4월 2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