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70)

백치 민주주의와 3인 과두정치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그 이름에 얽혀있는 망각과 좌절의 25년

노무현은 1946년부터 2009년까지 이 땅에 살았던 제16대 대통령의 이름이 아니다. 승리의 짧은 기쁨와 좌절의 긴 아픔을 간직한 그 이름은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그리고 이 시대의 진보정치가 기어이 넘어야 할 영마루의 이름이다.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들이 포악한 군사독재정권에 정면으로 맞서 싸웠던 반독재민주화운동이 1987년 6월에 마침내 이르렀던 그 승리의 절정 잘 보이지 않는 한 구석에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올라있다. 그는 1985년에 부산 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장직을 맡으며 반독재민주화운동에 나섰고,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부산지역 상임집행위원장으로 6월 민주항쟁에 적극 참가하였다.

그러나 그 때는 알지 못했다. 1987년 6월에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들은 '양김'이 성큼 올라선 승리의 절정을 바라보면서 노무현이라는 낯선 이름은 알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을 거치며 16년이라는 좌절의 긴 세월을 보낸 뒤에서야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1987년 6월의 승리와 결부되었음을 깨달았다.

만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이 노무현을 1988년 4월 제13대 총선에 불러내어 혼탁한 정치판에 휩쓸리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라,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들이 1987년 6월 승리의 절정에서 '양김'의 이름이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불렀더라면, 그리하여 1987년 12월 노무현이라는 이름 위에 새로운 민주정권을 세웠더라면,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에 살고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되돌아보면,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부터 노무현 정권 수립까지 이어진 그 세월은,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들이 반독재민주화 이후의 새로운 사회역사적 발전전망을 잃어버린 16년이었다. 16년 뒤에 등장한 노무현 정권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6월 민주항쟁의 짧은 승리마저 망각 속에 파묻어버린 16년이 반독재민주화를 넘어선 새로운 사회역사적 발전전망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3년에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1987년에 풀었어야 할 '밀린 숙제'를 붙들고 씨름하다가 힘이 다해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2009년 5월 23일 봉하마을에서 일어난 비극과 이명박 정권이 지닌 5년 동안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려놓은 퇴행은 그 좌절의 사연이 얼마나 쓰리고 아픈 것인지를 말해준다.

이제 이 땅의 각계각층 대중들은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다시 부르며 망각과 좌절의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노무현을 넘어서, 그의 이름에 얽혀있는 망각과 좌절의 25년 세월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사회역사적 발전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바로 이것이 2012년의 정권교체와 2013년의 새로운 체제수립을 향한 진보정치의 절실한 요구이며 강렬한 지향이다.

백치 민주주의와 3인 과두정치

이 땅의 사회역사적 발전전망을 진보적 민주주의에서 찾지 못한 채 정치적 방황을 거듭해온 사람들은 말한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이 승리한 이후 이 땅에서 군사독재가 물러가고 마침내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그들은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래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도 세우고, 민주화운동 유공자에게 포상도 하였다.

그러나 그건 착시현상일 뿐이다. 축소발표한 통계에 따르더라도 생활고를 겪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600만명이 되고, 실질실업률이 21.4%로 치솟고, 청년층 실질실업률은 22.1%에 이르고, 발버둥쳐도 헤어날 수 없는 빈곤의 늪에서 견디지 못해 자기 장기를 빼어 팔려는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들려오고, 자산빈부격차가 474배로 벌어지고, 빈곤인구가 해마다 10% 포인트씩 늘어나 300만 가구에 육박하고, 가계부채가 734조원을 돌파한 것이 이 땅의 국민들이 바라던 민주주의였더냐?

아이들의 푸른 꿈이 학교폭력과 자살충동으로 시들어버리고, 성인인구의 30%가 정신질환에 걸려 있고, 사회 전반이 '자살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해마다 15,000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국민 100명 가운데 65명이 이 사회가 전반적으로 부패하였다고 탄식하고, 먹고 살기가 막막해진 이 땅의 여성 14만 명이 성매매 소굴에 들어가고, 한 해 동안 형법범죄 99만3,000여 건과 특별법 범죄 117만5,000여 건이 발생하여 연간 범죄의 사회적 비용을 158조7,293억원이나 쏟아붓는 것이 이 땅의 국민들이 바라던 민주주의였더냐?

이처럼 썩어가고 죽어가고 미쳐가고 몸부림치는 이 땅의 참담한 현실을 뻔히 보면서도 그 무슨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고 떠드는 것은 백치가 아니면 할 짓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땅의 국민들이 속아온 가짜 민주주의는 '백치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누가 이 땅의 국민들을 '백치 민주주의'로 속여왔을까? 이 물음은 '백치 민주주의'를 넘어서지 못하고 좌절한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이 땅의 국민들에게 던지는 심각한 물음이다. 그러므로 노무현을 좌절시킨 슬픈 과거를 넘어서 새로운 미래를 여는 사회역사적 발전을 전망하지 못하면, 그 물음의 답을 영영 찾지 못한다. 노무현이 좌절한 슬픈 과거에 물어보라, 누가 이 땅의 국민들을 '백치 민주주의'로 속였는가를...

누군가가 이 땅의 국민들을 '백치 민주주의'로 속이기 위해서는 교활한 기만의 시나리오가 필요하였다. 6월 민주항쟁의 불꽃을 '6.29 선언'으로 꺼버린 시나리오가 있었다. 군사독재정권을 향한 국민적 투쟁열기를 3당합당으로 거두어 가버린 시나리오가 있었다. '문민정부'를 등장시켜 '백치 민주주의'를 완성한 시나리오가 있었다. 이른바 'DJP 야합'을 부추겨 '백치 민주주의'를 '국민의 정부'로 계승하게 만든 시나리오가 있었다. 대통령 당선자를 주한미국군사령부로 불러들여 주눅이 들게 한 굴욕사건으로 '참여정부'를 손아귀에 틀어쥔 시나리오가 있었다. 그리고 '경제성장신화의 주인공'을 조작하여 그 잘난 'CEO형 경제대통령'을 등장시킨 시나리오가 있었다.

지난 25년 동안 그처럼 교활한 시니리오를 꾸며내고 그것을 관철시킨 범인은 이 땅의 역대 정권들이 아니다. 이 땅의 역대 정권들은 그 시나리오가 적용된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잘라 말하면, 그 교활한 기만의 시나리오는 미국이 꾸며내고 관철시킨 것이다.

1987년 이후 25년 동안 이 땅에서 벌어진 좌절과 퇴행의 정치현실을 파고 들어가면, 결국 미국이라는 범인의 정체를 목격하게 된다. 이 땅의 국민들은 미국이 조작해낸 기만의 시나리오에 따라 '백치 민주주의'에 안주하며 25년 동안 철저히 속아온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이 말하면, 모든 것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반미주의자의 과장어법을 듣는 것 같아서 도무지 신뢰하기 힘들다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의혹은 이 땅의 정치현실을 표피를 지나 깊숙한 곳까지 꿰뚫어보지 못하는 정보결여와 그에 따른 인식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이를테면, 2007년 1월부터 12월까지 지속된 대선국면에 주한미국대사관이 퇴행적 정권교체를 관철하기 위해 어떠한 비밀공작을 벌였는지를 알면 반미주의자의 과장어법이라는 의혹은 꺼내지 못한다. '위킬릭스'가 폭로한 방대한 분량의 비밀전문들 가운데는 2007년 대선을 퇴행적 정권교체로 끌어간 미국의 시나리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비밀문건이 93편이나 들어있다.

주한미국대사관이 2007년 1월부터 12월까지 작성하여 본국에 전송한 93편의 비밀전문을 분석하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논하지 않지만, 한 가지 정확히 짚어야 할 사실이 있다.

이 땅의 중요한 정치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내리지만, 이 땅의 정치문제를 좌우하는 권한은 주한미국대사, 주한미국군사령관,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장 세 사람의 합의에 따라 행사되는 것이며, 따라서 '백치 민주주의'를 조장하고 유지하는 것은 바로 그 세 사람의 과두정치(oligarchy)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3인 과두정치는 매우 은밀하고, 압도적이며, 교활하다. 은밀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알지 못하고, 압도적이기 때문에 아무도 맞서려 하지 않고, 교활하기 때문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가게 된다. 그러나 3인 과두정치를 폐지하지 않으면, 이 땅의 국민들이 '백치 민주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고, '백치 민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진보적 민주주의는 언제까지나 소수 선각자들의 '희망사항'으로 남게 될 것이다.

3인 과두정치의 흑마전술을 돌파할 수 있을까?

이 땅의 국민들은 올해 2012년을 선거의 해로 맞았고,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올해를 정권교체의 해로 맞았다. 그리고 벌써 석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있다. '위킬릭스'에 폭로된 93편의 비밀문건에 나온 2007년 경험을 생각하면, 미국은 이미 올해 1월 초에 이 땅에서 대선개입공작을 시작한 것이고, 2월부터는 그 공작을 본격적으로 벌이고 있는 셈이다.

정치적 비중과 중요도를 가늠해보면, 2007년 대선보다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이 훨씬 더 큰 정치적 비중과 중요도를 지니므로, 지금 주한미국대사관과 미국 중앙정보국 한국지부는 총선과 대선에 개입하는 비밀공작을 2007년보다 더 집요하고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요구되는 진보정치는 3인 과두정치와 근본적으로 대치되고 전적으로 배치된다. 진보정치와 3인 과두정치의 모순관계는 적대적이다.

이 땅에서 3인 과두정치를 폐지하는 것 자체가 진보정치의 당면과업이지만, 그 과업은 간단한 게 아니다. 3인 과두정치를 폐지하여 그들의 선거개입공작이 없는 공정선거를 실시하지 않으면 통합진보당이 원내교섭단체로 올라설 수는 있으나,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3인 과두정치의 비밀공작이 진보적 정권교체를 가로막은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통합진보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정권교체는 3인 과두정치의 폐허 위에서 실현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통합진보당이 제기해야 할 질문은 '우리가 어떻게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종래 물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떻게 3인 과두정치를 폐지하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하는 새로운 물음으로 바뀌어야 한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은밀하고, 압도적이고, 교활한 3인 과두정치를 통합진보당의 현재 정치역량으로 폐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통합진보당이 3인 과두정치를 폐지하는 전략적 승리가 사실상 불가능한 조건에서는, 우선 3인 과두정치의 힘을 축소시키는 전술적 승리부터 추구할 필요가 제기된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이야말로, 통합진보당이 전술을 잘 써서 3인 과두정치의 힘을 축소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러면 올해 선거국면에서 통합진보당이 어떤 전술을 써야 3인 과두정치의 힘을 축소시킬 수 있을까? 3인 과두정치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그들이 이 땅의 국민 전체를 직접 상대하여 비밀공작을 벌이지는 못한다. 이것이 그들이 지닌 가장 큰 약점이다.

반면에, 통합진보당은 선거국면에서 이 땅의 국민 전체를 직접 상대하여 정치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통합진보당이 지닌 가장 큰 강점이다. 통합진보당은 그러한 상대의 약점과 자기의 강점을 타산해서, 강력한 선거전술을 개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두 가지 전술문제를 논할 수 있다.

첫째, '위킬릭스'가 폭로한 93편의 비밀문건을 읽어보면, 3인 과두정치가 친미정치인들을 주요공작대상으로 삼고, 친미도 반미도 아닌 중간정치인들을 선별, 포섭하는 전술을 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은 3인 과두정치의 비밀공작대상으로 전락한 친미정치인들을 철저히 고립시키는 한 편, 중간정치인들이 그들의 비밀공작에 본의 아니게 말려들지 않도록 견인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서 말하는 중간정치인이란 민주통합당에 소속된, 친미도 아니고 반미도 아닌 정치인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통합진보당이 단기적으로 좀 손실을 보더라도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성사시키고, 대선에서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우는 것은 필수적이다. 통합진보당은 총선에서 성사시킨 야권연대의 기반 위에서 대선의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워야 3인 과두정치의 비밀공작을 차단하고 전술적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올해 대선에서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우는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모두 공감하고 있지만, 단순히 정권교체만을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3인 과두정치의 힘을 위축시키기 위해 그렇게 한다는 전략적 관점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3인 과두정치의 힘을 위축시키기 위해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운다는 말은, 3인 과두정치에 휘둘렸던 노무현 정권의 실패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뜻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노무현을 넘어선 2013년 체제를 세우기 위해 야권단일후보를 내세운다는 뜻이다.

지금 노무현 후계자들이 이끄는 민주통합당은 노무현 정권보다 조금 '왼쪽'으로 이동하였지만, 민주통합당이 집권한 경우라 해도 일단 3인 과두정치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다시 '오른쪽'으로 견인당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2013년 체제는 정권교체를 실현하고서도 노무현 정권 복제판처럼 퇴행하게 될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이런 상황을 예상하여야 하며, 2013년 체제가 노무현 정권 복제판으로 퇴행하는 것을 막을 '안전장치'를 만들어놓아야 할 것이다.
 
둘째, 2003년 대선경험을 분석하면, 당시 대선국면 막판에 노무현 후보에게 부동표가 쏠리는 바람에 선거결과가 3인 과두정치의 시나리오대로 나오지 않았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표심을 아직 정하지 못한 부동표의 최종 향배가 팽팽한 접전이 벌어진 선거판세를 결정짓는 법이다. 올해 총선과 대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 부동표에 의해 결판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조건에서, 3인 과두정치가 부동표를 분열시킴으로써 야권단일후보에게 가야 할 표를 갉아먹게 만든다면, 여권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선 열기가 절정에 이르게 될 11월에 가서 부동표를 흡수할 제3후보가 출현하여 야권단일후보에게 돌아갈 표를 흡수해버리면, 결국 여권후보가 이길 수 있는 것이다.

부동표는 대중선동에 매우 약하다. 3인 과두정치가 대중적 인기 높은 특정인물을 대기시켰다가 11월에 제3후보로 등장시켜 친미언론을 총동원한 '인기몰이'를 밀어붙이면 부동표 흡수전술은 얼마든지 먹혀들어갈 것이다. 선거판에 뜻밖에 등장하는 유력한 후보를 서양에서는 '흑마(dark horse)'라 부르는데, 지금 3인 과두정치는 흑마전술을 치밀하게 준비하는 중인지 모른다.

올해 대선에서 야권후보를 단일화하는 전술을 비밀공작으로 차단할 수 없게 된 3인 과두정치에게 남아있는 비상대책은 흑마전술밖에 없다. 그러므로 통합진보당은 3인 과두정치의 흑마전술을 꺾어버릴 효과적인 대응책을 준비하였다가, 저들이 흑마전술을 들고 나올 때 강타를 날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2012년 3월 1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