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 중에서


 
1. 《세기와 더불어》 주체사상 둘러보기


1931
년 《만주사변》으로 본 《핵페기 먼저》라는 오유
 
 

촘스키교수와 슬레에보철학자 지젝 등이 한결같이 주장하는바는 만약에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와 핵무기가 있었더라면 부쉬가 절대로 이라크를 침공하지는 못하였을것이라는것이다. 그리고 이라크침공전에 이라크에 그런것이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먼저 안것은, 아니 정확하게 안것은 부쉬와 체이니와 펜타곤 즉 국방성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부쉬정부는 대량살상무기와 핵때문에 이라크를 침공한다고 대국민 아니, 전세계를 상대로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조사결과, 이 두가지 무기는 이라크에는 없었다. 전혀 없었다. 이라크는 점령당했고 후쎄인은 죽었고 무고한 민간인이 수십만이나 죽었으며 미군병사들도 전사자가 수천명에 이르고있다.

인간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앞뒤 안맞는 말을 하는것은 심리학자 프로이드의 풍자가 일품이 아닌가 한다. 즉 《빌려온 항아리》라는 풍자말이다. 지젝은 부쉬와 그의 푸들 블래어가 이라크침공을 앞두고 늘어놓은 앞뒤 안맞는 언행을 《이라크, 빌려온 항아리(The Iraqi Borrowed)》에서 잘 고발하고있다. 우리 말로도 번역된 이 책을 이미 읽은 독자들도 있을것이다. 내용은 이러하다. (1) 나는 당신에게 항아리를 빌린적이 없다. (2) 나는 항아리를 깨지지 않은 상태로 돌려주었다. (3) 당신에게 항아리를 빌렸을 때에 그건 이미 깨져있었다. 이는 비일관된 주장으로 라렬된것 같지만 《나는 깨진 항아리를 돌려주었다.》를 부정을 통해 승인하고있는것이다.(지젝, 2004, 8) 한마디로 말해서 프로이드가 부쉬를 두고 해둔 말 같다.

지젝이 책을 쓴 다음, 2007년 미 중간선거에서 부쉬 공화당정부는 상하원에서 과반수의석을 잃었다. 그리고 전쟁주범인 람스펠드는 사임했다. 이렇게 전세계 소수의 비정치적인 철학자와 언어학자들의 예언의 소리가 적중하고있다. 그래도 우리에겐 이런 지식인들이 있어서 희망이 있는것이다.

만주사변이후 국내외 지식인들이 이젠 동북아천지가 일본세상이 다되였다고 허무주의와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비관에 빠져있을 때에 이런 시류에 역행하여 일본패망이 반드시 오고야말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항일유격대를 꾸린 인물이 있었다.

그 인물이 김일성주석이다. 김일성주석은 리념과 사상을 떠나서 앞날을 볼줄 아는 혜안을 가지고있었던것이다.

미국 클레어몬트대 과정사상연구소의 데이비드 그리핀교수는 9. 11이 완전히 미국의 자작극이라는것을 폭로하는 두권의 책으로 유명하다. 그리핀교수는 부쉬의 행동을 두고 미국의 《위장기발(false flag)》흔들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현대사에서 3가지 대표적인 위장기발흔들기로 김일성주석이 회고록 2권에서 절절히 언급하고있는 1931년 일본의 9. 18만주사변과 일본의 진주만공격 그리고 1968 윁남에서의 바크보만사건을 꼽고있다.

그러면서 9. 11은 미국이 하와이 진주만에서 흔든 위장기발의 제2탄으로서 《신판 진주만공격사건(New Pearl Harbor)》이라고 했다. 그리핀교수는 이어 미국이 건국초부터 메히꼬전쟁에 이르기까지 건건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빌미로 앞뒤가 일관하지 않는 행동을 저질러왔다는것이다.

회고록에서 김일성사령관이 알리는 사건의 진면모는 우리가 력사에서 배운 내용과 일치한다. 력사의 복습을 위해 이 사변을 회고록을 통해 다시 요약하면 1931 9 18일 밤 심양 북대영 서쪽 류조구에서 일본만철회사소유의 철도가 폭파되였다. 일제는 장학량군이 철도를 폭파하고 일본수비대를 공격했다는 터무니없는 구실을 내걸고 불의의 침공을 개시하여 일거에 북대영을 점령하였으며 19 아침에는 봉천비행장까지 차지하였다.(2 214페지)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진상을 오도하여 중국측에 사건의 책임을 전가시켰지만 세상사람들은 누구도 그들이 내돌리는 여론을 믿지 않았다.(2 214페지)와 같다.

물론 사건을 꾸민 장본인은 관동군특무기관의 심양특무기관장 도히하라 겐지대좌이다.

이자의 9 18일이후 행각을 보면 그것이 위장기발임이 금방 드러난다. 그는 만주에서 일을 저질러놓고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듯이 같은 날 서울에 나타나 자기와 이 사건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것처럼 능청을 떤다. 그는 큰일을 낸자치고는 너무나도 여유작작하게 조선주둔군사령부 고급참모 간다 마사다네를 만나 서울에 온 리유를 신문기자들이 시끄러워 왔다고 에둘러 설명하였다. 그날 서울 백운장이란 술집에서는 일본 항공본부장 와다나베 죠따로대장이 찾아와 조선주둔군사령관 하야시 센쥬로대장과 기생파티를 하고있었다. 모두가 만주사변과는 일본이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라는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김일성주석은 이런 일본의 행동을 조선전쟁당시 미국의 트루맨의 행동과 너무나 일치된다고 했다.

《이 력사기록을 읽게 되면 어째서인지 조선전쟁이 발발하던 때에 트루맨이 별장에 가서 지내던 일을 상기하게 된다. 우리가 9. 18사변과 조선전쟁이라는 서로 다른 두개의 전쟁에서 일맥상통한 점을 찾아보게 되는것은 두 전쟁 다 선전포고없이 돌발적으로 개시되였다는 거기에만 있지 않다. 그 두 사변을 도발한 인간들의 면모에서 제국주의자들에게 고유한 교활성과 파렴치성, 다른 나라들에 대한 침략성과 지배주의적본성을 다같이 찾아보게 되기때문이다.(2 215페지)

나는 2006년 여름 미국 로스안젤스에 사는 《38°선도 6. 25도 미국의 작품이다》의 저자 하리마오 박선생을 윌셔호텔 식당에서 친구들과 함께 만난적이 있다. 그는 고급 미국첩보장교였다. 당시 미8군사령관이 6 24일 아침 4시까지 8군장교구락부건물락성식 축하파티에 참가하고 일본으로 떠난 사실에 대해 하늘나라에 가서라도 그냥 두지 않겠다고 하면서 38°선도 6. 25도 모두 미국의 사전 씨나리오에 지나지 않는다고 박선생은 증언하였다. 브라운의 행각이 만주사변을 저지른 일본장교들이 벌린 그것과 같아도 너무 같다. 부쉬도 9. 11테로날 어디 가 있었는가? 그가 백악관에 없었던것은 분명하다. 그리핀교수주장에 의하면 이미 다 아는 사실, 그러나 자기는 몰랐다는것을 국민들한테 보여주기 위한 위장행각에 불과하다는것이다.

여기서 김일성주석의 력사관이 나타난다. 보통 자연은 반복 그리고 력사는 반복하지 않는 비반복적(非反復的)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력사를 비반복적인 사건들의 루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 개개의 사건들사이에 존재하는 류사성과 공통적인 경향성을 우리는 또한 전혀 무시할수가 없는것이다.(2 215페지)라고 회고록에서 쓰고있다.

 자연과학은 같은 실험을 반복해 할수 있지만, 력사과학에서는 임진왜란 같은 력사적사건을 반복시킬수는 없는것이다.

그러나 김일성주석은 력사에도 반복적인것이 있는것이 아닌가 반문한다. 다시말해서 만주사변과 조선전쟁사이에는 류사성이 있다는것이다. 그렇다. 제국주의자들의 위장기발흔들기의 반복성이 있는것이다.

김일성주석이 여기서 말하고있는 《터무니없는 구실》이라는 말이 바로 그리핀교수의 《위장기발》에 해당한다. 가해자이면서 오히려 피해자로 둔갑하기 위해 흔드는 기발말이다. 《일본의 본성》이란 그 력사가 오래다. 임진왜란당시 명나라를 치겠으니 길을 내라고 구실을 붙인것도 이에 다르지 않다. 사실 동북아에서 일본의 이러한 피해자둔갑변신술은 만주사변이 처음이 아니다. 만주철도부설을 위한 장작림렬차폭파사건, 만보산사건, 관동군참모본부소속 나까무라대위의 《실종》사건 그리고 그 무엇보다 1937년 중일전쟁의 도화선이 된 로구교사건 등등 그 수를 손으로 다 헤아릴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만보산사건은 장춘에서 서북으로 7080여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서 두 민족 농민들사이에 보물때문에 생긴 작은 일이였는데 일본은 이를 민족간 문제로 비화시켜 두 민족사이에 리간질을 시키고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의 피해를 가져오게 하였다.

이에 대하여 김일성주석은 《농촌에서 흔히 있을수 있는 지방적인 분쟁을 민족리간책략에 솜씨있게 리용한것이다.(2 216페지)라고 한다.

그러나 조중농민들은 일본의 간계에 완전히 빠져 서로 두들겨패고 죽이기까지 했다. 김일성주석은 농민들가운데 선각자가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더라면 일본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을것을 안타까워하고있다.(2 216페지)

이렇게 미일 두 제국이 전혀 달라짐이 없이 같은 수법을 사용하고있는데 대하여 우려하지 않을수 없다. 일본이 랍치문제를 계속 꺼내고 미국이 북핵문제, 위조화페문제 그리고 인권문제, 나아가 종교의 자유문제를 꺼내는 등 모두가 결국 9. 18만주사변의 재판과 9. 11테로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력사는 반복되고있는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정신차리고 알아야 할 사실은 미국이나 일본이 꺼내는것은 핵이나 인권 그자체가 아니라는 점이다. 위장기발은 그것이 기발이 아니고 사실은 《카드》라는 점이다. 놀음판에서 카드란 자기의 리해득실에 따라서 꺼내드는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야정치인들은 이러한 일본과 미국의 카드놀음에 놀아나지 말아야 할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정은 정반대이다. 지금 유력한 《대통령》후보인 리명박은 《핵 먼저 페기》없이 경제지원없다는 론리를 《대선정책》으로 결정해놓고있다. 문제는 핵이 해결되면 다음 인권카드가 나올것이고 그러면 리명박은 분명히 《인권 먼저 해결》을 구호로 내걸것이 분명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호랑이가 떡장수어머니에게 그러하듯 카드는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나올것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은가? 리명박의 이러한 행동은 《한국》 수구보수의 전가의 보도와 같다. 지금 유력 《대권》후보자 하나가 미일의 위장기발을 다시 흔들고있으니 력사는 반복되는것이 분명한것 같다.

김일성주석이 이야기한대로 력사는 비반복적이 아니고 《비비반복적(非非反復的)》이다. 다시말해서 《반복적》이다. 지금 우리는 과거 춥고 배고픈 시절이 다시는 오지 않을것이라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력사는 비비반복적이다. 같은 말이지만 반복적이라 하지 않는 리유는 생각의 생각을 깊이 한번 해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김일성주석도 회고록에서 력사는 과연 비반복적인가 묻고있지만 내가 여기서 비비반복적이라고 말하고싶은 리유가 여기에 있다.

만보산사건이 있던 날 《… 나는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생각하고 또 생각하였다. … 무엇때문에 서로 주먹질을 하면서 피투성이싸움을 해야 하는가, 항일이라는 대전제밑에 두 나라 민족이 손을 굳게 잡고 공동투쟁에 나서야 할 때 물길 하나를 놓고 서로 악에 받쳐 <골육상쟁>을 하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꼴인가.(2 216페지)김일성사령관은 한없는 비탄에 잠기였다고 한다. 번민과 고민으로 밤을 새운 날 새벽 《… 이 사건이 미리 꾸며진 연극으로, 박두해오고있는 어마어마한 사변의 전주곡으로 느껴졌다.(2 216페지)고 한다.

만보산 농촌마을에서 생긴 사소한 보물사건에 장춘령사관이 끼여들면서 조선사람들의 리권을 옹호하여나온것이 미심쩍었던것이다. 언제 일본이 조선인민과 농민들을 위했다고, 《토지조사령》같은 법령으로 조선농민들을 략탈해오던 일본이 갑자기 옹호자로 둔갑한것이다. 장춘의 《경성일보》지국은 본사에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도록 하였으며 심지어는 호외로 배포까지 하였다.

무기는 다음이다. 우리 민족이 살아남는 길은 미일의 속셈 위장기발에 속지 않는것이다. 그러자면 지도자가 현명해야 한다.

아무도 아직 판단하고있지 않을 때에 김일성주석은 《나는 그때 일제의 만주침략은 시간상문제라고 판단하였다.

조선을 먹은 다음에는 만몽을 먹고 만몽을 먹은 다음에는 중국을 먹으며 중국을 먹은 다음에는 아세아를 제패하려는것은 <다나까상주서>에도 규정되여있는바와 같이 일본의 기본국책이였다.(2 217218페지)고 쓰고있다.

그러나 안타까운것은 당시 지도인물로 자처하는 사람들중 대부분이 이 사실을 모르고 아니, 자기기득권때문에 알고도 일본의 장단에 춤을 추는것이였다.

다시 강조한다. 력사는 비비반복적이다. 력사는 되풀이되고있다. 적어도 동북아는 자연과학자들이 같은 실험을 되풀이할수 있는것 같이 력사를 되풀이시험할수 있는 장소이다. 오직 한가닥 희망이 있다면 《우리끼리》이다. 남북민 우리 민족끼리 단결하는 길만이 력사의 반복을 막을수 있는 오직 단 하나의 해답이다. 나는 남북민이 합심한 《선군정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고구려의 상무정신이 지금만큼 필요한 때는 없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