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66)
 

차베스는 어떻게 700만 당원을 모을 수 있었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13년 동안 추진되는 제1단계 사회변혁

"진료, 교육, 육아시설과 협동조합이 모두 갖춰진 발전센터에서도 '쉰 살이 넘어 글을 배웠다', '이제야 생계를 꾸릴 수 있게 됐다'는 격찬이 쏟아졌다. '모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차베스 대통령 덕택'이라는 소리가 이어졌고, 거리의 서민들은 차베스를 '우리들의 최고사령관'이라고 자주 불렀다. 베네주엘라 정부의 각종 복지혜택을 설명하던 안내자는 '완전무료(¡totalmemte gratuita!)'를 수없이 되풀이했다. 카라카스 시내의 하천 강둑에는 '사회주의 조국이 아니면 죽음을'이라고 씌여 있었다."

위의 인용문은 베네주엘라를 찾아간 <한겨레> 취재기자가 쓴 2010년 9월 19일부 보도기사의 일부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베네주엘라의 사회변혁세력이 두 단계 사회변혁노선을 명시적으로 제기한 적은 없지만, 지금 그 나라에서는 제1단계 사회변혁이 힘있게 추진되고 있다.

만일 베네주엘라의 사회변혁세력이 과격하고 급진적인 무단계 사회변혁을 추진하였더라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그러했더라면 그들의 사회변혁은 대중의 참여와 지지를 받지 못한채 고립되었을 것이며, 미국의 배후조종을 받은 수구우파세력이 그 틈을 노려 폭동 또는 정변을 일으켜 사회변혁을 좌절시켰을 가능성이 100%다.

비록 이 땅의 현실과 베네주엘라의 현실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두 단계 사회변혁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에 일맥상통하는 원칙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주목하는 것은, 베네주엘라에서 제1단계 사회변혁의 추진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1999년 2월 2일부터 제1단계 사회변혁이 시작되었다고 하면, 이제껏 13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베네주엘라에서 13년 동안 제1단계 사회변혁이 추진되고 있지만, 그들은 아직 제2단계 사회변혁으로 나아갈 만큼 제1단계 사회변혁을 완수하지 못하였다. 왜 그렇게 오랜 기간이 걸리는 것일까?

사회변혁정세에 조성된 세력관계에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13년 전, 자주적 진보정권을 세운 베네주엘라의 사회변혁세력이 그 동안 국민대중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급성장해왔지만, 사회변혁을 저지하려는 수구우파세력이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움직이고 있다.

사회변혁을 저지하려는 수구우파세력을 물리적으로 제압하지 않으면서 사회변혁을 추진하는 것이 차베스 대통령의 독특한 변혁방식이므로, 사회변혁을 저지하려는 수구우파세력을 비강제적으로 무력화시키거나 또는 사회변혁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려세우는 데 그토록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오늘날 베네주엘라에서 사회변혁세력이란 변혁담론에 나오는 어떤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실제로 각계각층 대중의 정치역량이 조직적으로 결집된 변혁주체를 뜻한다. 베네주엘라의 제1단계 사회변혁이 전개되어온 지난 13년은 바로 그러한 변혁주체를 조직하고, 강화하고, 확대해온 기간이었다. 

중요한 것은, 베네주엘라의 제1단계 사회변혁 13년 동안, 변혁주체의 조직화가 두 갈래로 추진되었다는 사실이다. 집권당인 베네주엘라 통합사회당(Partido Socialista Unido de Venezuela)을 변혁주체로 조직하는 과정이 있었고, 공동체평의회(consejos comunales)를 변혁주체로 조직하는 또 다른 과정이 있었다.

공동체평의회를 주민자치위원회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다른 여러 나라들에 존재하는 주민자치조직에 비할 바 없이 강한 결속력과 생활력을 지닌 코뮌적 생활공동체이므로 공동체평의회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통사당을 변혁주체의 상부구조라고 하면, 공동체평의회는 변혁주체의 하부구조라고 할 수 있다. 상부구조로 건설한 통사당과 하부구조로 건설한 공동체평의회가 유기적으로 통합됨으로써 사회변혁을 밀고나갈 변혁주체가 형성된 것이다.

바로 그러한 변혁주체를 형성하기 위해 그토록 오랜 시간과 힘든 노력이 요구되었던 것이며, 그런 변혁주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베네주엘라의 사회변혁은 실패와 좌절을 모르고 연속 승리와 계속 전진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사회변혁세력의 상부구조와 하부구조를 건설하고, 이를 유기적으로 통합함으로써 변혁주체를 형성한 그들의 경험을 좀 더 분석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

변혁주체의 상부구조와 하부구조 가운데서 어느 것이 먼저 건설되었을까? 공동체평의회 조직은 2005년에 추진되기 시작하였고, 통사당 건설은 2008년에 추진되기 시작하였으니, 약 3년 시차가 있었다. 변혁주체를 형성하는 데서 그만한 시차를 두었던 까닭은, 하부구조를 먼저 조직하고 그 기반 위에 상부구조를 조직하는 상향식 조직화를 추진하였기 때문이다. 변혁주체의 상향식 조직화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활동가들이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조직한 공동체평의회

경향 각지에서 추진되던 공동체평의회 조직사업을 더욱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베네주엘라 정부가 공동체평의회법을 제정한 때는 2006년 4월이고, 그 법을 시행하던 중 현실에 맞게 개정한 때는 2009년 11월이다. 공동체평의회법 개정은 공동체평의회를 감독하고 지원하는 중앙정부 부서를 내오기 위한 것이었다.

공동체평의회 1개에 망라되는 가구수는 400가구 이하로 제한되었다. 공동체평의회에 참여하는 주민수는 지역실정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인구가 밀집거주하는 도시의 경우라 해도 2,000명을 넘지 않는다.

공동체평의회는 자기 지역의 지역개발사업을 자율적으로 추진하는데, 2007년을 기준으로 중앙정부가 국가재정 530억 달러 가운데 50억 달러를 그들의 지역발전사업에 지원하였다. 공동체평의회가 자체적으로 설립한 공동은행은 300개이며, 그 공동은행들을 통해 7,000만 달러의 지역개발기금을 확보하였다.

농촌의 공동체평의회들은 자체로 농장을 건설하였고, 도시의 공동체평의회들은 자체로 식품공급시설을 건설하였으며, 무상으로 봉사하는 병원, 상하수도 설치, 도로포장, 보육 및 교육시설, 체육시설, 문화시설 등을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공동체평의회는 2006년 4월 10일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2007년 3월에는 전국적으로 19,500개가 건설되었고, 2010년 9월 현재 30,000개를 넘어섰다.

공동체평의회 건설은,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주의라는 평가를 받는데,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베네주엘라 국민대중 자신이 생산현장과 생활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자발적으로 사회변혁역량을 축성한 것이며, 자주적 진보정권을 더 광범위하고 공고한 대중적 지지기반 위에서 강화, 발전시킬 조직체를 건설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공동체평의회 건설은 자본주의가 파괴한 집단주의적 공동생활을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다.
 
주목하는 것은, 각 지역의 정치활동가들이 6개월 동안 자기 지역에서 가가호호 방문하여, 무관심하고 냉담한 주민들과 대화하고 그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 공동체평의회를 건설하였다는 점이다. 발이 닳도록 뛰어다닌 정치활동가들의 열정적인 노력이 없었으면, 공동체평의회를 건설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공동체평의회는 지방자치활동의 거점일 뿐아니라 지방경제활동의 거점이기도 하다. 공동체평의회를 건설함으로써 베네주엘라 민중은 시장경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생산활동과 재정활동을 벌일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베네주엘라 민생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었고, 빈곤퇴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를테면, 베네주엘라의 경제성장률은 2004년부터 2007년 기간에 평균 11.85%를 기록하였고, 사회변혁이 시작되기 이전인 1998년에 55.44%까지 치솟았던 빈곤율은 2008년 말에 26%로 떨어졌다. 

논쟁과 결별을 겪어야 했던 통사당 건설

베네주엘라 통합사회당은 2007년 3월 24일에 창당되었다. 통사당이 창당되기 이전에 차베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결집하였던 진보정당은 1997년에 창당된 제5공화국운동(MVR)이다. 1998년 12월 6일에 실시된 대선에서 제5공화국운동의 차베스 후보가 56.20%의 득표율로 승리하였는데, 당시 치열하게 경쟁한 수구정당 '프로젝트 베네주엘라'의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39.97%였다.

또한 2006년 12월 3일에 실시된 대선에서 차베스 후보가 62.84%의 득표율로 승리하였는데, 당시 치열하게 경쟁한 수구정당 '새로운 시대'의 후보가 얻은 득표율은 36.9%였다.

2006년 대선에서 승리한 차베스 대통령은 선거연합에 참가하였던 진보정당들을 통합하기 위하여 '베네주엘라 통합사회당 건설을 위한 대통령 직속위원회'를 설치하였고, 2008년 초에 그 위원회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을 건설하기 위한 7대 강령을 제시하였다.

7대 강령을 열거하면, 볼리바리안 혁명의 무조건적 수호, 라틴아메리카의 단결과 해방을 위한 국제연대, 각계각층 대중이 중심이 되는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 실현, 공동체적 국가사회주의(communal state socialism)를 지향하는 과도기 경제체제 건설, 생태환경의 요구에 부합하는 계획생산, 혁명과 주권을 수호하기 위한 국방력 강화, 대중권력(popular power)에 기초한 새로운 국가건설이다. 

그런데 베네주엘라 공산당(PCV)은 7대 강령이 급진적 사회변혁을 요구하는 자기들의 좌파강령과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통사당 건설에 참가하지 않았다. '사민주의를 위하여(PODEMOS)'나 '만인을 위한 조국(PPT)' 같은 사민주의 계열의 중도파 정당들도 7대 강령이 자기들의 우파강령과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참가하지 않았다.

또한 전국노동자련맹(UNT)과 통합자율혁명계급조류(C-Cura) 같은 좌파노조들도 7대 강령이 우경화되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한 논쟁과 결별을 거치고 나서, 차베스 대통령이 제시한 7대 강령에 찬동하는 11개 정당들이 통합하여 마침내 통사당이 창당되었다.

군소정당들이 공동강령에 따라 통합하여 크고 힘있는 진보정당을 건설하면 그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 없는데, 왜 몇몇 정당들과 노조들은 통사당 건설에 불참하였을까? '이념적 선명성'을 주장한 것은 겉으로 드러낸 구실에 지나지 않았고, 실제로는 자기들끼리 모여 당기 하나 내걸고 당권에 집착하던 정파들이 통사당 건설을 끝내 반대하였기 때문이다.

2011년에 이 땅에서 추진된 통합진보당 건설과정에서 있었던 씁쓸한 경험이 당시 베네주엘라에서도 있었다.

위에서 논한 것처럼, 차베스 대통령을 중심으로 자주적 진보정권이 세워지고 사회변혁이 추진되자, 오랜 잠에서 깨어난 베네주엘라 민중들이 전국 각지에서 공동체평의회를 내오기 시작하였는데, 통사당을 이끌 새로운 주도세력은 당연히 민중들 속에서 성장한 공동체평의회를 대표하는 새로운 정치활동가들로 재편될 수밖에 없었다. 진보정당이 그처럼 당의 체질을 개선하는 통합과 재편의 과정에서 지역기반도 없이 명망에만 의존해온 정파대표들은 자연히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당원수가 700만여 명에 이르는, 서방세계에서 가장 큰 진보정당인 통사당의 당원 평균년령은 35세다. 창당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청년정당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만, 실제로 청년당원이 다수이므로 청년정당인 것이다. 통사당의 중심세력으로 등장한 청년당원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차베스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자주적 진보정권이 추진한, 민중을 위한 각종 사회복지정책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하고 공동체평의회에서 지역활동경험을 쌓은 청년들이다. 통사당과 공동체평의회가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변혁주체를 형성하였다는 말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통사당은 2008년 11월 23일에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500만표에 이르는 압도적인 득표를 기록하면서 주지사직 22석 가운데 17석을 차지하였고, 시장직의 81%를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또한 베네주엘라 의회의 현재 의석분포를 살펴보면, 전체 의석 165석 가운데, 통사당 97석(59%), 5개로 분산된 사민당 계열의 정당들 28석(17%), 4개로 분산된 우파정당들 19석(12%), 베네주엘라 공산당 1석(0.6%) 등이다.

의석분포가 말해주는 것처럼, 당권에만 집착하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5개로 분산된 사민당 계열의 군소정당들은 국민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존재감을 상실하였으며, 베네주엘라 현실에 맞지도 않는 급진적 사회변혁노선을 고수하며 당의 간판이나 붙들고 있는 베네주엘라 공산당은 국민대중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사실상 소멸하고 말았다. (2012년 2월 17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