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이남 동포들을 잊지 않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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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의 따사로운 손길은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가수 김련자에게도 뜨겁게 미치었다.

김련자는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음악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하였지만 자체로 이악하게 노력하여 일본땅에서 민족의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온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2001년 그를 제19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불러주시는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련자가 준비해 가지고온 공연종목들도 일일이 알아보시고 그가 단독공연도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었으며 현지지도의 바쁘신 길에서 그의 공연을 몸소 보아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신 영광넘친 사랑의 무대에 나선 김련자는 부풀어 오르는 커다란 흥분으로 좀처럼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땅에 살면서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에 올라서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내 민족을 위해 마음껏 노래부르고 싶은 마음속 충동을 안고 산 그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기의 이 마음속 소원을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풀어주셨으니 김련자 가수의 마음은 민족의 어버이에 대한 다함없는 경모와 존경심으로 꽉 차 넘치었다.

이윽고 그는 경애하는 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감사의 정을 안고 준비한 노래를 열정에 넘쳐 부르고 또 불렀다.

공연이 끝나자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공연성과를 축하하여 꽃바구니를 전하시고 김련자 가수일행을 접견해주시었다.

노래를 마지막까지 다 들어주신 것만 해도 황송하기 그지없을진대 이번에는 민족을 위해 별로 한 일도 없는 자기들을 몸가까이 불러주시니 김련자 가수일행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가수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지나온 생활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시고 그가 조선사람으로서 일본땅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는 과분한 치하도 안겨주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에게 앞으로 아무 때나 다시 평양을 방문하여 공연을 하라고, 다음에 와서는 큰 극장들에서 공연을 많이 하여야 하겠다고 고무해주시면서 북의 민중들도 같은 동포이니 노래로 서로 사귀도록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이 말씀에는 그의 노래가 남과 북 사이의 화해와 협력, 통일의 뉴대를 증진시키는 하나의 무지개다리로 되기를 바라시는 크나큰 기대와 믿음이 어려있었다.

이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김련자일행을 자신의 옆에 나란히 세우시고 영광의 기념사진도 찍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은정어린 만찬도 베풀어주시었다.

여가수에 대한 경애하는 장군님의 은정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2002년 4월 김련자가 또다시 북을 방문하였을 때에는 그가 공연할 극장들과 숙식조건에 대하여서까지 일일이 염려하여 주시었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도 관람하도록 크나큰 사랑을 돌려주시었다.

진정 경애하는 장군님의 사랑은 시집간 딸을 생각하는 친정어머니의 다심한 손길 그대로였다.

하기에 그는 제20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참가기간 민족적 정서가 넘쳐 나고 조국통일을 열망하는 노래들을 잘 불러 관중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김련자 일행을 또다시 접견해주시고 따뜻한 담화를 나누시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의 공연활동을 치하해주시고 나서 그가 《우리는 하나》를 비롯한 좋은 노래들을 잘 불러 이북민중들을 기쁘게 해준데 대하여 만족해하시며 앞으로 일본과 이남에 《우리는 하나》노래를 널리 보급할 데 대하여 말씀하시었다.

여기에는 통일의 노래로 온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잇고 통일의 노래를 온 겨레가 함께 부르며 조국통일운동에 떨쳐 나서게 하시려는 깊은 뜻이 어려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여가수의 공연을 보아주시고 노래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성업에 이바지하도록 고무해주신 감격적인 소식은 커다란 충격을 일으켰으며 7천만겨레의 가슴속에 통일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