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55)
 
대중에게 '진보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예상효과가 감소되었다

이 땅에 변혁과 진보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 진보통합정당 건설에 힘써온 민주노동당은 그 동안 앞을 가로막는 난관과 역경을 뚫고 마침내 목적지를 눈앞에 둔 마지막 선을 넘어서고 있다. 그 목적지에서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는 3자 통합을 실현하게 된다. 

원래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의 3당 합당이 바람직한 목표로 제기되었으나,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통합규모가 2당1파로 축소, 변형되었다. 그래서 진보통합정당 건설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언론매체들은 2당1파 통합을 '진보소통합'이라 부르고 있다.
 
3당 합당에서 2당1파 통합으로 축소, 변형되자, 민주노동당이 애초에 예상했던, 진보통합정당 건설이 국민대중에게 주는 예상효과가 다소 줄어들었다. 더욱이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이 1당1파 통합을 추진하는 데다가, 느닷없이 안철수 포퓰리즘까지 초대형 태풍처럼 불어닥치는 바람에, 국민과 언론의 관심은 1당1파 통합과 안철수 포퓰리즘의 결합 여부에 쏠리고 있다.

이것은 진보통합정당 건설의 예상효과를 감소시키는 외적 요인들이다.

민주노동당이 통합시기를 놓쳐 통합추진속도가 떨어지는 바람에 정세변화의 주도권이 1당1파 통합과 안철수 포퓰리즘으로 넘어가버렸고, 그래서 현재 상황이 그처럼 불리하게 바뀐 것이다. 정치활동에서 시기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확인하게 된다.

언론매체들이 진보통합정당 건설을 '진보소통합'이라고 평가하는 판에, 진보통합정당을 건설하면 그 당의 대중적 지지기반이 자동적으로 크게 확장되어 행여 2012년에 집권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상상하는 것은 과대망상이다. 일반적으로 주관이 매우 강한 정치활동가들이 객관적 현실을 자기들의 주관주의 잣대로 재면서 근거 없는 낙관론에 사로잡히는 것은 흔한 일인데, 그런 판단착오는 피해야 한다.

어째든 현재 정치상황이 이전에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바뀌었으니, 진보통합정당 건설의 예상효과에 대해서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재검토할 것인가?

'진보의 능력'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목소리

두말할 나위 없이, 진보통합정당 건설의 예상효과를 대중의 정치적 요구에 근거하여 객관적으로 검토해야 주관주의적 판단착오를 피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2011년 11월 14일 인터넷 언론매체 <미디어오늘>에 젊은 여성기자가 쓴 '진보대통합이 대안이라고? 착각 마세요'라는 제목의 글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진보통합정당 건설에 전심전력해온 민주노동당의 시각에서 보면, 글제목에서부터 도전적인 느낌을 받게 되는데, 그녀는 진보통합정당 건설만을 염두에 두고 그 글을 쓴 것은 아니지만,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가 받아야 할 그녀의 지적을 여기에 옮겨적는다.

"야당은 그간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정당을 통합하거나 후보를 단일화하면 그 효과를 톡톡히 누려왔습니다. 선의의 경쟁과 공정한 승복에 유권자들이 감동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과정이 신선한 드라마가 아닙니다. 오히려 선거를 앞두고 벌이는 정치쇼나 계산된 선거공학이라는 느낌만 줍니다. 더 이상 유권자들이 감동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일찌감치 야권은 대통합을 이뤄, 수권능력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래야 유권자들이 진보진영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지 않을 겁니다. (줄임) 이제 진보의 능력을 보여주십시오. (줄임) 일찌감치 통합을 마무리하고 고심하며, 준비하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것만이, 저를 포함한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진보 리더십의 꿈을 현실화시켜줄 길입니다."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것처럼, 진보통합정당 건설만으로는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게 된 것이 오늘의 변화된 현실이다. 진보통합정당 건설은 민주노동당이 당의 운명을 걸고 추진해온 자기혁신인데, 이 땅의 대중들은 진보통합정당 건설을 중대하고 소중한 혁신으로 평가해주지 않고, 선거 직전에 표심을 의식한 정치권의 상투적 변신행위와 같은 것으로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민주노동당이 대중의 그런 과소평가가 진보통합당 건설에 대한 오해라고 해명할 수도 없고, 설령 해명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런데도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는 대중의 그런 과소평가를 무딘 촉각으로 느끼고 있는 게 아닐까? 위의 인용문에 나타난 것처럼, 대중은 새로 건설될 진보통합정당에게 '진보의 능력'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데,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는 대중의 그런 요구에 부응할 어떤 준비를 갖추고 있는 것일까?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진보정치는 소수 진보적 지식인들의 현학적 토론에 의해서 규정될 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대중 자신의 사회정치적 요구에 의해서, 오직 그것에 의해 규정될 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진보정치는 오롯이 대중의 것이어야 하므로, 이제 새로운 진보통합정당을 건설하는 모든 주체들은 '진보의 능력'을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대중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대중에게서 실력을 인정받는 길

대중이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진보의 능력'이란 새로 건설될 진보통합정당의 실력을 뜻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진보통합정당의 실력은 일차적으로 집권능력으로 표현되는 것이고, 집권 뒤에는 통치능력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진보통합정당의 통치능력은 집권 이후에 요구되는 것이므로, 아직 한 번도 집권해보지 못한 그 당에게 통치능력을 보여달라고 하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새로 건설될 진보통합정당이 실력을 보여달라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려면 자기의 집권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누구나 예상하는 것처럼, 새로 건설될 진보통합정당이 집권능력을 보여주는 것은 '정치쇼'가 아니라, 정권교체기에 조성되는 복잡한 정치정세 속에서 대중으로부터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다. 수구정당은 표심을 얻기 위한 '사탕발림 정치쇼'를 벌여 대중을 미혹하지만, 진보정당은 자기의 강령에 따른 책임적인 정치활동으로 실력을 인정받는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두 가지 주체적 조건을 논할 수 있다. 
 
첫째, 안철수 포퓰리즘을 넘어서는, 그리고 안철수 포퓰리즘과 전략적으로 차별화된 진보담론을 내올 필요가 있다. 보나마나 안철수 포퓰리즘에는 대중을 미혹하는 사탕발림식 복지담론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새로 건설될 진보통합정당은 포퓰리즘 복지담론을 넘어서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본태를 담론화하여 대중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새로 건설될 진보통합정당이 담론에서 포퓰리즘에게 밀리면, 대중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담론전파에서 주도권을 잃지 말아야 한다.

포퓰리즘 복지담론을 넘어서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본태란 무엇일까? 좀 추상적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실업고통, 빈부격차, 범죄공포, 자살비극이 사라진 참으로 살맛나는 새로운 사회상이다. 새로 건설될 진보통합정당이 대중에게 집권능력을 보여주기 위한 당면임무는, 대중이 꿈꿔온 새로운 세상을 희망의 언어로 담론화하는 것이다.

둘째, 진보통합정당 건설을 가속적으로 밀고 나가 이른 시일 안에 완결하고, 가장 중요한 대중정치활동에 매진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관심과 지지를 받는 정당이 집권할 수 있다는, 누구나 알고 있는 진리는 정당의 대중정치활동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이다.

새로 건설될 진보통합정당은 진부한 방식의 대중정치활동을 반복할 것이 아니라 진보정당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특유한 대중정치활동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해야 수구정당, 중도정당, 안철수 포퓰리즘을 모두 앞질러, 대중에게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특히 대중에게 호감을 주는 유능한 정치인을 대중정치활동을 통해 내세울 필요가 있다. 대중들은 정치이념이나 정당을 바라보는 것보다도 정치인을 먼저 보고 판단하는 것에 익숙하다.

새로 건설될 진보통합정당이 대중에게 실력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주체적 조건을 조성하는 것과 더불어 객관적 조건에 대응하는 것에도 힘써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객관적 조건이란, 수구정당, 중도정당, 안철수 포퓰리즘이 도저히 대응할 수 없을만큼 강력한 정세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뜻한다.
 
정세변화들 가운데는 대중투쟁 폭발도 있지만, 2012년에 가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선거열풍이 이 땅에 몰아칠 것이므로 강력한 대중투쟁이 2012년에 폭발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남측에서 대중투쟁이 폭발할 가능성보다는 북미관계에서 격동적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보인다.

미국은 자기들이 개입할 남측 선거국면에 북미관계의 변화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을 우려하여 북미관계 변화의 양상과 속도를 자기들의 이익에 맞게 조절하려고 기도하겠지만, 북측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북미관계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쪽은 북측이다. 북측이 남측 선거국면에 영향을 주기 위해 북미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북측이 주도하는 북미관계 변화가 남측 선거국면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불가피하다.

2012년에 북미관계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 그 변화는 미국이 한반도에 조성한 군사적 긴장이 감소되고, 북측의 요구에 따라 공고한 평화체제를 세우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 건설될 진보통합정당은 북미관계의 그런 변화방향에 맞춰 남북관계를 평화와 통일로 이끌어갈, 이전보다 더 진전된 평화담론과 통일담론을 대중에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 (2011년 11월 18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