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입]

집단기억과 정보조작에 국민들은 속고 있다(1)

“통일뉴스”가 북에 대한 각종 정보조작으로 국민들을 속이는 당국을 폭로하는 글을 실었다.

전문을 2회에 걸쳐 소개한다.

사슴은 국경을 넘지 못하고, 사람은 집단기억을 넘지 못한다

오래 전 동서냉전이 지속되던 시기에 서독과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에는 고압전기가 흐르는 철책이 설치되어 있어서 그 지역 숲 속에 사는 사슴들은 국경을 넘어 오갈 수 없었다. 동서냉전이 끝나고 전기철책이 철거되었는데도, 사슴들은 전기철책이 있었던 국경을 넘어 오가지 않았다. 지역주민들은 전기철책에 대한 기억이 사슴들에게 남아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여겼다. 그 국경지대에 사는 사슴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땅의 비무장지대(DMZ)에 사는 고라니도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기철책이 철거된 뒤에 태어나 전기철책을 보지도 못한 후대 사슴들도 국경을 넘어 오가지 않았다. 후대 사슴들은 왜 그처럼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한 것일까? 프랑스 사회학자 모리스 올박스(Maurice Halbwachs, 1877-1945)가 제기한 집단기억설이 그 물음에 해답을 준다. 사슴들의 뇌에 저장된, 전기철책에 대한 집단기억이 당대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후대에 전이되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슴의 뇌와는 비할 바 없이 질적 차이를 보이며 발달한 사람의 뇌는 사슴의 뇌보다 더 방대하고 복잡한 집단기억을 저장한다. 더욱이 정보화 시대를 사는 현대인은 이전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방대하고 복잡한 정보를 각종 전자통신체계를 통해 받아들여 뇌에 집단기억으로 저장한다.

바로 그런 방식으로, 이 땅의 국민들은 그들이 ‘북한’이라 부르는 실체에 대한 다종다양한 정보를 집단기억으로 지니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그 집단기억은 ‘독재와 빈곤’이라는 두 가지 개념으로 판박이가 되었다.

‘독재와 빈곤’이라는 개념으로 판박이가 된 집단기억은 언제 어떻게 생성된 것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각종 대북정보를 오랜 시기에 걸쳐 지속적으로 듣고 읽고 봄으로써 생성된 것이 분명하다.

거의 날마다 언론매체를 통해 국민들에게 전해지는 각종 대북정보의 배포경로를 역 추적하면 대북정보의 발원지가 드러나는데, 그 발원지가 바로 국정원이다. 이 땅의 국민들이 지닌 북측에 대한 집단기억은 국정원이 언론매체를 통해 전해주는 정보에 의해 생성되고 축적된 것이다.

국정원은 북측 언론매체에 나온 각종 정보를 정밀분석하여 대북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북측 언론매체에 나온 정보는 남측 언론매체도 얻을 수 있으므로, 국정원은 북측이 발표하지 않는 더 중요한 정보를 얻어야 한다.

그러면 국정원은 북측이 발표하지 않는 정보를 어떻게 얻는 것일까? 북측에서 암약하는 고정간첩인 ‘내부소식통’이 조작한 정보가 중국에서 암약하는 고정간첩인 ‘중간소식통’에게 전달되고, 그것을 국정원이 입수하는 경로가 있다. 이에 관해서는 2011년 10월 18일 블로그 ‘변혁과 진보’에 발표한 나의 글 ‘다섯 가지 괴담유형과 소식통의 정체’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하지만 ‘내부소식통’과 ‘중간소식통’이 북측에서 고급정보를 빼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고정간첩들이 국정원에 전해주는 것은 정보가치가 없는 악의적인 괴담에 지나지 않는다. 예컨대 2010년 10월 4일 <한겨레>가 보도한 것처럼, 국정원이 강원도 철원에서 주최한 ‘안보현장 체험교육’에서 언급된, 북측 시장에 ... 고기가 나돌고 있다는 엽기괴담, 또는 2011년 2월 8일 <조선일보>가 인용, 보도한 것처럼, 북측의 공급체계가 무너져 북측 인구...... 지하시장경제에 의존하고 있다는 저질괴담 같은 것이 국정원에 전해지는 것이다.

그처럼 악의가 뻔히 드러나 보이는 괴담을 대북정보라고 꺼내놓으면 대국민 기만효과가 반감되기 때문에, 국정원은 대북정보를 조작할 때 추정방법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국정원의 대북정보 담당관리들도 역시 그들이 이 땅에 태어나기 전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북측에 대한 집단기억에 사로잡혀 있다. 서독과 체코슬로바키아 국경지대에 사는 불쌍한 사슴들이 전기철책을 전혀 보지도 못했건만 이전 세대 사슴들로부터 전이된 집단기억에 사로잡혀 국경을 넘어 오가지 못하는 것처럼, 국정원의 대북정보 담당관리들도 그들이 얼굴도 모르는 중앙정보부 세대와 국가 안전기획부 세대의 대북정보 담당관리들로부터 전이된 집단기억에 따라 대북정보를 조작하는 것이다.

이 땅의 국민들이 거의 날마다 언론매체를 통해 듣고 읽고 보는 각종 대북정보는 북측 현실을 반영한 객관적 정보가 아니다. 그것은 집단기억에 사로잡힌 국정원 대북정보 담당관리들이 악의적으로 조작해놓은 허상일 뿐이다. 국정원은 그들이 조작한 허상을 국민들에게 계속 유포하고,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집단기억에는 국정원이 언론매체를 통해 유포한 허상이 넘실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행 앞세워 대북경제정보 조작한다

2011년 11월 3일 한국은행이 ‘2010년 북한 경제성장율 추정결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언론매체들에 배포하였다. 한국은행이 보도자료에 ‘추정결과’라고 쓴 까닭은, 북측이 경제 성장율을 공개하지 않아서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뜻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20년 동안 북측 경제 성장율 추정결과를 해마다 발표해왔는데, 그들이 언론매체에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북한 경제 성장율 추정방법 및 이용시 유의사항’이라는 별도설명이 붙어있다. 그 별도설명에는 “한국은행은 ’91년 이후 매년 국가정보원 등 관계기관으로부터 북한의 경제활동에 관련된 기초자료를 제공받아 북한 경제 성장율을 추정”하는데, “북한 경제 성장율은 북한경제관련 전문기관에서 작성한 기초자료를 이용하여 추정한 후 국내전문가들의 검증과정을 거쳐서 확정”한다고 씌어있다. ‘북한경제관련 전문기관’이란 국정원을 뜻한다.

또한 그 별도설명에는 “동 작업은 북한의 경제력을 우리의 경제시각에서 비교, 평가하고 그 결과를 대북정책에 활용할 목적으로 추진”한다고 씌어있다. 이 문장에서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한국은행이 북측 경제를 남측 경제의 시각에서 비교, 평가하였다고 밝힌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두 가지 뜻이 보인다.

첫째, 한국은행은 북측 경제를 비교, 평가하였다고 말했지만, 그들이 비교, 평가한 대상은 북측 경제가 아니라, 국정원이 조작하여 그들에게 건네준 허상이다. 다시 말해서, 한국은행은 조작된 허상을 남측 경제의 시각에서 비교, 평가한 것이다. 대북정보를 북측 경제의 시각이 아니라 남측 경제의 시각에서 자의적으로 비교, 평가한 것도 큰 오류인데, 하물며 정보가 아닌 허상을 남측 경제의 시각에서 비교, 평가하였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둘째, 위의 별도설명에 따르면, 한국은행이 사용한 북측 경제 분석방법은 “UN의 국민계정체계(SNA: System of National Accounts)를 적용”한 것이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처럼, 유엔의 국민계정체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분석할 때 쓰는 방법이므로, 그것을 가지고서는 북측의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분석할 수도 없고 분석해서도 안 된다. 그런데도 한국은행은 그처럼 쓸 수도 없고 써서도 안 되는 분석방법을 가지고 버젓이 북측의 경제관련통계를 ‘작성’해오고 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한국은행이 “북한 가격자료 등 기초자료의 입수가 곤란하여 남한의 가격, 부가가치율 및 환율 등을 (통계작업에) 적용한다”는 점이다. 남측의 시장가격을 적용하여 북측의 국정가격을 측정하고, 남측의 부가가치율을 적용하여 북측의 부가가치율을 측정하고, 남측의 변동환율을 적용하여 북측의 고정환율을 측정한 것은, 한국은행의 표현을 빌리면 “북한 경제를 우리나라와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한 것이다. 남과 북의 경제체제가 완전히 다른데, 북측 경제를 남측 경제의 기준으로 평가하였다니,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린가!

한국은행 관리들은 국정원 관리들보다 좀 더 ‘양심적’이어서 그러했는지는 모르나, 한국은행의 북측 경제성장율 추정결과에 나와있는 지표를 다른 나라들의 경제지표와 비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글귀를 별도설명 맨 마지막에 적어놓았다. 이것은 북측 경제 성장율 추정결과가 엉터리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다.

국정원이 조작한 수치를 슬쩍 옮겨적는 미국 중앙정보국

국정원만이 아니라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북측 경제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은행을 앞세워 북측 경제 성장율 추정결과라는 가짜정보를 해마다 한 차례씩 발표하지만, 미국 중앙정보국은 자기들이 운영하는 누리집(website)에 세계 각국 경제 성장율을 발표해놓고 수시로 갱신하는데, 거기에 북측 경제 성장율 추정결과가 들어있다.

국정원이 대북정보를 조작하여 가짜정보를 내놓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 중앙정보국이 발표한 대북정보라는 것도 조작된 가짜정보에 지나지 않는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중앙정보국가 운영하는 누리집 ‘세계편람(World Factbook)’에 게시되는 북측 경제 성장율 추정결과가 국정원이 한국은행에게 넘겨준 가짜정보를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라는 점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2010년 5월 19일 <연합뉴스>는 미국 중앙정보국이 당시 ‘세계편람’에 게시한 북측 경제 성장율 추정결과를 인용하여, 북측의 실질국내총생산(GDP)이 2008년에 이어 2009년에도 3.7% 증가하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내가 <연합뉴스>의 그 보도를 읽은 다음날인 5월 20일 ‘세계편람’의 해당부분을 검색하고 작성해놓은 자료를 이번에 다시 찾아보았더니, 북측의 경제성장률이 2008년에 3.7% 증가하였고, 2009년에도 3.7% 증가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11년 11월 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북측의 경제 성장율 추정결과를 보면, 북측의 경제 성장율은 2008년에 3.1% 증가하였으나 2009년에는 급락하여 -0.9% 감소한 것으로 나와있다. 내가 이 글을 집필하면서 미국 중앙정보국의 ‘세계편람’을 다시 검색하였더니, 북측의 경제 성장율이 2009년에 3.7% 증가하였다고 이전에 게시하였던 것을 어느 틈엔가 -0.9% 감소하였다고 바꿔놓았다. 2010년 5월 19일에는 북측의 경제 성장율이 3.7% 증가하였다고 게시하였다가, 한국은행이 2010년 6월 25일에 발표한 추정결과를 보고 -0.9%로 슬쩍 바꿔놓은 것이 분명하다.

내가 이 글을 탈고하던 2011년 11월 13일 현재, 미국 중앙정보국이 ‘세계편람’에 게시한 북측 경제관련자료에는 2010년 추정결과가 아직 게시되지 않았다. 이번에 한국은행이 2010년 북측 경제 성장율 추정결과를 -0.5% 감소하였다고 발표하였으니, 얼마 뒤 미국 중앙정보국도 2010년 북측 경제 성장율 추정결과를 -0.5% 감소하였다고 ‘세계편람’에 게시할 것이다.

더 이상 논할 필요도 없이, 국정원과 미국 중앙정보국은 북측의 경제 성장율을 ‘추정’한다고 하면서 초등학교 아이들도 하지 않는 치졸한 숫자조작으로 세상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의 국민들이 지닌, 북측 경제에 대한 집단기억은 국정원이 숫자를 조작하여 유포한 기만적 허상일 뿐이다.

각종 정보조작으로 북의 영상을 흐려놓는 당국의 이런 행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그런다고 진리는 가리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