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29일 노동신문
 

비전향장기수 김은환
 

나는 오늘도 손자와 함께 대동강반에 또 하나의 인민사랑의 전설을 수놓아가고있는 만수대지구건설장을 다녀왔습니다.

30층, 40층, 45층의 살림집들이 시간을 주름잡으며 초고속으로 일떠서는 만수대지구건설장, 선군조선의 정신과 기상, 의지와 힘이 하나의 거대한 불덩어리로 일어번지는 대격전장…

절경으로 자랑높은 평양의 중심부에 솟아오르고있는 이 거리는 민족의 대경사인 위대한 수령님 탄생 100돐을 맞으며 경애하는 장군님께서 어버이수령님께 드리는 최대의 경의이며 우리 인민에게 안겨주시는 크나큰 선물입니다.

세상을 돌아보면 부자들을 위한 호화거리는 많아도 명실공히 인민을 위한 이런 현대적인 호화거리는 그 어디에도 없을것입니다.

이 땅에서 으뜸가는 명당터에 눈부시게 일떠서고있는 웅장화려한 인민의 리상거리를 매일과 같이 직접 보면서 저는 가슴속에 솟구치는 류다른 감회를 누를길 없어 붓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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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산수수려하고 살기 좋으며 온갖 조건이 최상으로 갖추어져있는 가장 훌륭한 자리를 명당이라 불러왔습니다.

그래서 산이 좋고 물이 맑으며 경개가 뛰여난 명당들에는 의례히 전설도 많고 기이한 이야기도 많이 기록되여있는가 봅니다.

땅은 넓어도 명당은 그리 많지 않아 그것을 독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이 치렬하게 벌어졌고 결국 명당의 주인도 권력과 재산에 비례하여오게 되였습니다.

하기에 제가 알고있는 세계의 손꼽히는 명당들에서 인민의 이름은 찾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특권층의 점유물로 되여왔던 그 명당자리가 인민이라는 부름과 함께 나란히 불리우게 된 희한한 전변이 우리 공화국의 곳곳에서 일어났으니 나는 일찌기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부터 그 위대한 변천과정을 가까이에서 직접 체험하였던 한사람입니다.

남조선에서 의용군으로 입대하여 공화국의 품에 안긴 나의 평범한 인생에 가장 영광스러운 자욱을 새겨준 만수대지구는 절승경개로 이름높은 평양에서도 명당중의 명당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뒤로는 풍치수려한 모란봉과 남산재, 장대재가 병풍처럼 둘러서고 앞으로는 물맑은 대동강과 넓은 동대원벌이 펼쳐진 이 지구는 고려시기의 이름난 시인 김황원도 《긴 성벽기슭으로는 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넓은 벌 동쪽에는 점점이 산이 있네》라는 시구절밖에 찾지 못하고 울어버릴 정도로 평양의 일만경개의 축도라고 할수 있습니다.

평양8경가운데 《을밀상춘》, 《부벽완월》, 《영명심승》, 《련당청우》, 《보통송객》의 경치가 모두 이 일대와 관련되여있으며 관서8경의 하나로 손꼽혀온 련광정도 대동강우에 자기의 우아한 자태를 드리운채 명당의 풍치를 돋구어주고있습니다.

하여 예로부터 이곳에는 애련당, 영명사, 숭령전 등 량반부자들의 사치와 향락을 위한 건물들만 들어앉게 되였고 지금의 옥류관자리는 8도강산의 손꼽히는 유흥지로 소문이 자자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극소수 특권족속들이 사치와 향락을 뿜어대는 놀이터로 독차지해온 이곳이 인민을 위한 행복의 명당으로 바뀌게 된것은 해방의 첫 기슭에서 백두산위인들의 발자취가 뜨겁게 찍힌 그때부터였다고 합니다.

해방후 두번째로 맞는 어느 봄날 백두산위인들께서 대동강반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언덕에 오르시였다고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드님의 손목을 꼭 잡으시고 평양의 력사에 대해 이야기해주시면서 앞으로 이 땅우에 인민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새 도시를 건설해나가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고 합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녀사께서도 어리신 경애하는 장군님께 아버님의 뜻을 받들어 아름다운 대동강반에 앞으로 인민들이 쓰고살 다층살림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새 거리를 일떠세워야 한다고 당부하시였다고 합니다.

이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여기에 인민들이 쓰고살 30층, 40층… 100층짜리 큰집을 짓겠다고 힘차게 대답하시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해방조국의 봄날에 벌써 백두산위인들이 펼쳐주신 그 휘황한 명당의 전경도는 만단사연속에 전쟁의 페허를 뚫고 수도 평양에 웅자를 드러내기 시작하였습니다.

의용군에 탄원하였던 내가 불비쏟아지는 락동강과 전략적인 일시적후퇴, 재진격의 길을 거쳐 당시 평양의 경상동일대에 자리잡고있던 땅크구분대에 소속된것은 가렬한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봄이였습니다.

적들과의 치렬한 전투속에 해가 저물고 새날이 밝아오던 잊지 못할 그 봄날 나는 참으로 놀라운 소식에 접하게 되였습니다.

바로 지척에 있는 평양의 모란봉지하극장에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 대한 전람회가 열리였다는것이였습니다.

최고사령관 김일성장군님께서 작전도우에 화살표를 그으시던 붉은색연필로 손수 평양시의 륜곽을 그리시고 광장, 도로망, 주요시설들의 위치들을 하나하나 그려넣으시면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를 작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밝혀주시였다는 방송원의 격동적인 목소리가 지금도 저의 귀전에 쟁쟁합니다.

그때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는 평양의 중심부이면서도 명당으로 손꼽히는 여기 만수대지구에 주요정부청사들을 많이 들여앉히는것으로 되여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자리에 정부청사들을 지을것이 아니라 전쟁을 이겨낸 영웅적인 우리 인민들에게 살림집부터 세워주자고 하시였다는것이였습니다.

지난날 서울의 한강이 바라보이는 움막에서 태여나 강변의 막돌처럼 딩굴며 살아온 저로서는 평백성들을 위한 살림집을 국가기관들을 세워야 할 자리에 제일먼저 짓는다는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었습니다.

더우기 전선에서는 싸움이 한창인 때에 벌써 승리한 래일의 평양시복구건설을 위한 전람회가 열리였다는것도 놀라운 일인데 인민을 위한 살림집부터 제일 좋은 자리에 지어주자고 하시다니, 이게 바로 내가 안겨살 조국의 품이로구나. …

그토록 감격적인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못 들던 나에게 만수대지구는 뜻하지 않던 행운을 안겨주었습니다.

전후 인민군대에서 제대되여 김책공업대학(당시) 전기공학부에 입학하여 공부하던 나는 경상동일대의 대동강호안공사에 참가하게 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공사장에서 꿈결에도 그립던 어버이수령님을 몸가까이 만나뵙게 될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감격도 새로운 1960년 4월 완공된 대동강유보도에 나오신 어버이수령님께 저는 김책공업대학(당시) 전기공학부학생들을 대표하여 삼가 인사를 드리게 되였습니다.

어제날 전선병사의 자세로 경례를 올리는 저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밤낮이 따로없이 짧은 기간에 유보도를 멋들어지게 꾸려놓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겠다고 하시며 저의 어깨를 다정히 쓰다듬어주시였습니다.

그이께서는 끝없는 환희에 젖어있는 우리 대학생들을 둘러보시며 대동강유보도는 평양의 얼굴이나 같다고, 유보도를 잘 건설해놓으니 주변경치가 더 아름다와 졌다고, 앞으로 여기 대동강반을 비롯하여 평양을 더 훌륭히 꾸려야겠다고 우렁우렁하신 음성으로 말씀하시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되여 평범한 인민을 천하명당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 받아안은 영광스러운 수도건설자의 한사람이 되였던것입니다.

그날에 저의 온몸에 스며들었던 수령님의 따뜻한 온기와 드넓은 대동강반을 환하게 비치던 해빛같은 미소를 저는 순간도 잊은적이 없었으며 그 영광의 시각에 받아안은 인민사랑의 위대한 세계는 변할래야 변할수 없는 신념의 뿌리로 되였습니다.

이처럼 격동적인 건설의 나날 대동강우에는 어버이수령님께서 몸소 활달한 필체로 써주신 《옥류교》라는 글발이 빛나는 아름다운 다리가 건설되였습니다.

련이어 평양학생소년궁전과 천리마동상, 만수대예술극장 등이 일떠서면서 인민의 행복넘친 웃음소리가 울리는 절경중의 절경으로 전변되였습니다.

대동강반의 풍치를 한껏 돋구어주는 이름난 옥류관에도 참으로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습니다.

내가 대동강호안공사에 참가하여 청춘의 땀과 열정을 한껏 쏟아붓고있던 1958년 8월 이른새벽 어버이수령님께서 이곳에 나오시였습니다.

뽀얀 젖빛안개속으로 그림처럼 안겨드는 집집의 창문들을 한동안 정겨운 시선으로 바라보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몸소 배를 타시고 오랜 시간동안 경상골어구와 반월도사이를 오가시면서 지금의 옥류관자리를 잡아주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반월도앞의 한 바위우를 손으로 가리키시면서 저 바위가 옥류바위인데 예로부터 그 주변일대가 경치좋아 명당으로 불리웠다고, 저 바위우에 인민을 위한 큼직한 료리집을 하나 지어주자고 말씀하시였습니다.

그로부터 2년후 옥류관준공을 선포한지 이틀이 되는 1960년 8월 15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이곳에 나오시였습니다.

푸른 하늘을 떠이고 웅건하게 일떠선 옥류관을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경치좋은 곳이라고 하여 돈냥이나 있는 량반들만 기와집을 쓰고살던 여기 옥류벽우에 인민의 옥류관이 일떠섰으니 얼마나 대조적인가고 뜨겁게 말씀하시였습니다.

평양절경중에서도 최고의 명당자리에 인민을 위한 현대적인 봉사기지를 앉혀주신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인민의 옥류관이라 불러주시며 호탕하게 웃으시던 어버이수령님!

김일성광장의 뒤면배경으로 웅장화려한 자태를 자랑하고있는 인민대학습당도 인민에 대한 사랑의 대기념비입니다.

수도 평양의 한복판에 풍치수려한 모란봉을 한옆에 끼고있는 남산재는 오래동안 공백으로 남아있던 곳입니다.

모란봉에 가을단풍이 짙어가던 1973년 10월 어느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이곳에 오르시여 수도의 전경을 부감하시면서 남산재우에 인민을 위한 도서관을 짓자고 하시였다고 합니다.

그때 일군들은 모두 놀랐다고 합니다.

그 자리는 수령님께서 가렬한 전화의 그날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 동그라미를 그으시며 특별히 중시하신 자리였기때문입니다. 그후에도 여러차례 그 자리에 정부청사를 무게있게 앉혀 수도의 중심을 위엄있게 꾸리자고 하는 일군들을 만류해오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남산재를 가리키시면서 저 언덕에 인민을 위한 도서관을 앉히면 우선 인민들이 좋아할것이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물어보아도 인민들을 공부시키기 위하여 지은 도서관이라고 하면 모두 좋아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름도 몸소 《인민대학습당》이라고 지어주시였다고 합니다.

그 아무리 이름난 절경이라 해도 인민이 없고 인민을 떠난 명당은 명당이 아니라는것, 인민의 기쁨과 행복이 넘쳐나는 곳만이 명당이라는것이 우리 수령님께서 내리신 명당에 대한 새로운 정의이며 여기에 그분의 가장 숭고한 인민에 대한 사랑의 철학이 집약되여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수수천년 력사의 변두리에서 온갖 천대와 멸시속에 살아오던 평범한 백성들을 나라의 참된 주인으로 내세워주시고 영원무궁한 복락의 한복판에 받들어주신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에 대한 다함없는 충정과 흠모를 담아 우리 인민은 바로 그 만수대지구의 높은 언덕에 수령님의 동상을 정중히 모시였습니다.

탄생 60돐을 맞으며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높이 모심으로써 만수대지구는 명실공히 수도 평양의 중심축으로, 혁명의 수도로 그 지위를 더욱 확고히 하게 되였으며 우리 인민만이 아닌 세계 진보적인류가 우러르는 희망의 언덕으로 빛나게 되였습니다.

어찌 만수대지구뿐이겠습니까. 백두산자락의 삼지연마을로부터 동서해안의 수많은 명승지들이 인민의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리상향으로 전변되였습니다.

수수천년 음풍영월을 읊조리는 량반부자들의 웃음소리 떠날줄 모르던 곳곳의 명당들에서 울려퍼지는 인민의 랑랑한 노래소리는 그대로 로동당시대 명당의 새노래였으며 우리 수령님과 당에 드리는 뜨겁고도 진실한 송가였습니다.

하기에 해빛 한점 비쳐들지 않는 남녘의 차디찬 먹방에서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화를 모시고 동지들과 함께 당총회를 하고 충정의 결의를 다질 때에도 나의 마음은 수령님께서 환하게 웃으시며 서계시는 만수대로 달리고 또 달리였습니다.

적들의 악귀같은 고문으로 살점이 찢기고 뼈가 부서져나가도 마음속에서는 내 사랑하는 평양의 노래, 영원한 인민의 명당에 대한 새 노래가 끝없이 울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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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뿌리가 내려졌고 신념의 기초로 되여준 만수대지구는 오늘 새 세기 도시건설의 본보기로, 세계적인 인민의 명당으로 나날이 새롭게 변모되여가고있습니다.

내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만수대지구에 어버이수령님의 탄생 100돐을 맞으며 현대적인 호화거리가 일떠선다는 소식을 격정속에 듣고 저는 서둘러 그곳을 찾았습니다.

본래의 살림집들과 봉사망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기초공사가 한창 벌어지는 건설장에서 나는 인민군대의 한 장령이 해주었던 감동깊은 이야기를 잊을수 없습니다.

만수대지구건설은 한평생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고 인민행렬차를 멈추지 않으셨던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리상이 위대한 장군님에 의해 보다 빛나게 실현되고있음을 내외에 다시금 과시하기 위한 대건설전투이다, 그이께서는 우리 인민이 뜻밖에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고 력사에 류례없는 고난의 행군, 강행군을 하던 그때 벌써 최고사령부 작전대우에서, 달리는 야전차안에서 만수대지구를 비롯한 평양시개건전투를 구상하시고 그 준비를 하나하나 갖추어오시였다, 우리 수령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의 력사를 더욱 빛내이고 수령님께서 그토록 념원하시던 부흥강국을 하루빨리 일떠세우시기 위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동지께서는 총잡은 우리 병사들을 여기 만수대지구건설장으로 불러주시였다. …

그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목이 꽉 메여옴을 금할수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 인민들에게 통채로 안겨주신 만수대지구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해오셨습니다.

언제인가 일군들이 경치아름다운 대동강반에 경애하는 장군님의 휴식을 위해 자그마한 집 한채를 마련해드리였다고 합니다.

그때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엄하게 질책하시며 당장 그 집을 없애버리라고 하시였습니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애써 가꾸어주신 인민을 위한 명당자리이기에 그 누구든 단 한치의 침범도 허용하지 않으신 장군님께서는 우리 조국이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던 그 어려운 시절에도 만수대지구의 면모를 일신시키기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돌려주시였습니다.

아직은 세멘트 한줌, 철근 한토막이 귀중하던 때였지만 여기 만수대지구에 있는 모란봉극장과 옥류관이 높은 수준에서 훌륭히 개건되여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에 적극 이바지해왔습니다.

지난해에는 옥류관과 추녀나란히 희귀한 철갑상어와 자라고기를 맛볼수 있는 료리전문식당을 새로 일떠세워 인민들에게 통채로 안겨주시였습니다.

모란봉기슭에 새롭게 개건된 개선청년공원에서 뿜어져나오는 희한한 불야경과 최상급의 호화로운 유희기구들을 마음껏 타보면서 웃고 떠드는 인민들의 밝은 모습도, 주체사상탑을 배경으로 대동강의 한복판에 춤추는 분수의 희한한 광경도 만수대지구를 인민의 절승경개의 본보기로 더 잘 꾸려주시려는 우리 장군님의 꿈과 포부에 받들려 꽃펴났습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부족하신듯 또다시 세상에 보란듯이 인민을 위한 호화거리를 일떠세우실 담대한 선언을 하시였으니 우리 장군님께서 지니신 심중의 깊은 뜻은 과연 무엇이였겠습니까.

우리 수령님께서 전후 처음으로 인민이 살게 될 아빠트를 일떠세워주시고 그리도 기뻐하시던 그 만수대지구, 인민의 무궁번영과 행복한 미래를 손들어 가리키시며 오늘도 거룩하신 모습으로 높이 서계시는 어버이수령님을 우러러 우리 인민과 온 겨레가 끝없이 찾아오는 숭엄한 언덕…

우리 수령님께서 생전에 품어오신 인민에 대한 사랑의 세계가 그 어디보다 력력히 굽이치는 곳이기에 만수대지구를 수령님의 리상이 더욱 활짝 꽃펴나고 인민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호화거리로 완성해주시려는것이 장군님의 결심이고 의지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로 그래서 우리 장군님께서는 인민의 리상이 현실로 펼쳐지는 력사의 문어구에서 어버이수령님 동상을 높이 모신 만수대지구에 제일먼저 세상을 경탄케 하는 황홀한 호화거리를 일떠세워주시는것 아니겠습니까.

명당자리인 만수대지구에 단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현대적인 거리를 건설하는데 드는 로력과 자재는 엄청난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인민을 위한 일에서는 국가가 손해를 보더라도 수지타산을 앞세우지 말아야 한다, 인민의 기쁨과 행복이 곧 최상의 리득금이라고 하시는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자재와 설비를 만수대지구건설에 최우선 보장해줄데 대한 특별조치를 취해주시였습니다.

새로 일떠서는 인민극장에 새겨진 사연은 또 얼마나 가슴뜨거운것입니까.

우리 수령님께서 생전에 인민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축물들을 많이 건설하도록 하시였는데 수령님 가까이에 인민극장을 훌륭하게 건설하자고, 그래서 어버이수령님을 뵈오러 오는 인민들을 이 세상 제일 훌륭한 극장으로 물결쳐흐르게 하자고 뜨겁게 말씀하신 우리 장군님이십니다.

1년도 못되는 짧은 기간에 세계 1등급의 거리로 일떠서는 만수대지구를 백화만발한 명소로 만드시기 위해 수종이 좋은 나무와 꽃도 함께 키우도록 하시였다니 참으로 그이는 세계적인 명당의 위대한 창조자이십니다.

지난 9월 온 나라 인민들이 공화국창건 63돐을 맞는 환희에 젖어있던 그 시각 우리 장군님께서는 만수대지구건설장을 찾으시였습니다.

몇달사이에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털어버리고 희한하기 그지없는 멋쟁이거리로 변모되고있는 만수대지구를 오래동안 돌아보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며 건설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주시였다고 합니다.

멀지 않아 만수대지구는 초고층호화살림집으로부터 각종 봉사망과 문화시설들이 최고의 수준에서 완벽하게 갖추어진 명당중의 명당으로 전변되여 우리 인민은 세상에 없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될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상에는 나름대로의 력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와 거리들이 많습니다.

이끼푸른 력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신전과 성당, 옛 궁전의 거리도 있고 마천루의 거리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만수대지구와 같이 철저히 인민이 주인이고 인민을 위한 그런 호화거리는 없습니다.

억만장자들의 방탕한 향락은 있어도 절대다수의 비애와 눈물이 흐르는 곳, 통치배들의 탐욕과 유흥은 있어도 인민대중의 꿈은 여지없이 짓밟히는 곳이 내가 세상에서 보아온 《명당》이였습니다.

내가 태여나 자란 남조선만 보더라도 명당으로 불리울만 한 곳은 례외없이 인민이 쫓겨나고 특권층족속들이 독차지하였습니다.

산천경개가 아름답고 풍치수려한 곳이라면 의례히 부자들이 둥지를 틀고앉았으며 그 무슨 《신도시개발》지역의 호화주택들은 그 값이 천문학적액수에 달하여 한줌도 못되는 특권층에게만 문을 열어주고있습니다.

말그대로 남조선을 비롯한 자본주의사회에서 명당은 인민이 쫓기우는 땅, 눈물과 저주의 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민의 명당, 이것은 오직 인민을 하늘처럼 떠받들고 그 인민의 복리증진을 위해 모든것을 복종시키며 이것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는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에서만 찾아볼수 있는 인민에 대한 사랑의 최고결정체입니다.

민족의 무궁한 번영을 손들어 가리키시는 어버이수령님 동상을 높이 모신 내 나라의 명당인 만수대지구에 솟아오르는 인민제일주의, 인민만세의 별천지가 온 나라에 펼쳐지고있습니다.

정녕 세상은 넓고 절경은 많아도 사회주의 내 조국이야말로 위대한 수령, 위대한 령도자의 품속에서 인민이 길이 복락하는 영원한 인민의 명당입니다.

인민에 대한 끝없는 헌신과 복무를 천하지대본으로 여기는 자기 수령, 자기 당에 대한 우리 인민의 진실한 충정에 받들려 내 나라 사회주의명당의 아름다움은 온 누리에 더욱 빛을 뿌리게 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