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52)

안철수 포퓰리즘과 진보정치의 위기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강한 유혹을 느끼는 야당의 변신
 
2012년 총선과 대선의 전초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서울시장 보선이 2011년 10월 26일에 실시되었고,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정치평론가들과 언론매체들은 이번 서울시장 보선결과에 따라 정치권이 전면 개편될 것으로 예견하였다. 그들이 예견하는 정치권 개편이란 야권 개편을 뜻한다. 민주당이 개편되어 새로운 야당이 등장할 것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새로운 야당이 창당될 것으로 예견하는 근거는, 서울시장 보선후보를 뽑는 야권단일후보 경선에 나왔던 민주당 후보가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패하였고, 이번에 실시된 지자체 재보선에서 민주당이 패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선거결과는, 제1야당인 민주당이 현재 상태로 남아있다가는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에게 패할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위기감을 안겨주었다.

그런 위기감을 느끼는 민주당은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혁신과 통합'을 끌어들여 새로운 통합야당을 창당하려는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의 통합을 거부하고, 국민참여당마저도 민주당과의 통합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민주당이 요구하는 단일야당통합은 실현될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민주당이 내년 선거국면에 다가가면서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되면, 이루어질 수 없는 단일야당통합을 포기하는 대신 '혁신과 통합'과 통합하여 새로운 야당을 창당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국면을 앞둔 시한부 정치일정을 살펴보면,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이 지금부터 급하게 서둘러야 내년 총선에 대응할 새로운 야당을 창당할 수 있다. 창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당의 구성부분이 변형될 가능성은 있지만, 어째든 새로운 야당의 출현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의 통합으로 창당된 새로운 야당이 내년 총선에서 좋은 성적표를 거둘 가능성은 그리 높아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주당과 '혁신과 통합'의 통합이 국민들에게 새로운 야당의 참신한 인상을 주기에 매우 미흡하기 때문이다.
 
사회현실에 불만을 느끼는 응답자가 67.2%인데, 지지할 정당이 없다는 응답자가 무려 73.6%나 되는 최근 여론조사결과는, 한나라당에 대한 대중적 거부감이 커질수록 민주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런 맥락에서 예견하면, 내년 4월 총선 직후 새로운 야당은 자기들이 얻은 총선결과를 반성하면서 12월 대선에서 어떻게 해서든지 승리하기 위해 비상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민심얻기에 실패한 새로운 야당이 정권교체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비상대책은 포퓰리즘적 변신술이다.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말은 대중인기영합주의로 번역되는 외래어인데, 이 글에서는 이미 통용되고 있는 포퓰리즘이라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번역하지 않고 편의상 그대로 쓴다.

새로운 야당이 포퓰리즘적 변신술에 강한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는 까닭은, 이번 서울시장 보선과정에서 안철수 포퓰리즘의 엄청난 위력을 실물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2011년 10월 16일과 17일 KBS, MBC, SBS 방송3사가 여론조사업체들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내년 대통령선거가 양자대결구도로 실시될 경우 지지율은 안철수 대학원장이 44.2%,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36.4%로 나왔다.

기존 정치권에 불신과 환멸을 보내는 각계각층 대중이 안철수 대학원장에게 기대와 희망, 호응과 지지를 몰아주는 현상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은 새로운 야당은 절박한 정권교체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안철수 포퓰리즘을 수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포퓰리즘 정당으로 변신한 새로운 야당이 안철수 대학원장을 대선후보로 영입하여 정권을 교체하려는 집권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안철수 대학원장이 새로운 정당을 창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야당이 포퓰리즘 정당으로 변신하면서 그를 대선후보로 영입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선에서 박원순 후보가 그러했던 것처럼, 안철수 대학원장도 무소속 대선후보로 나서기는 하되 새로운 야당에 입당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야권단일후보 경선을 거쳐 무소속 대선후보 안철수가 반한나라당 야권단일후보로 나설 수 있다.

어째든 위의 두 가지 경우 모두 안철수 포퓰리즘을 대중적 지지기반으로 하는 포퓰리즘 정권의 등장을 예고한다.

만일 안철수 포퓰리즘의 집권 시나리오가 현실화된다면, 한나라당의 집권연장은 파탄될 것이고, 다른 한 편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망도 사라질 것이다. 대중적 지지기반이 미약한 민주노동당이 대중적 지지를 무시무시한 흡입력으로 빨아들이는 포퓰리즘 정당에 맞서 경쟁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한나라당의 집권연장이 파탄되는 것은 크게 반길 일이지만, 그와 더불어 민주노동당의 집권전망도 사라진다면, 이 땅의 진보정치가 치명상을 입고, 사회변혁운동이 쓰라린 좌절을 겪는 불행 중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서울시장 보선과정에서 느닷없이 돌출한 안철수 포퓰리즘이 말해준 것처럼, 포퓰리즘은 사회변혁운동을 불능화시키는 치명적 독소다. 세계 각국의 사회변혁운동사가 겪은 경험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사회변혁운동을 내부에서 와해시키는 독소가 종파주의라면, 사회변혁운동을 외부에서 불능화시키는 독소는 포퓰리즘이라는 사실이다.

진보적 민주주의의 미래를 전망하며 사회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안철수 포퓰리즘의 돌비현상을 목격하고 불길한 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신화와 현실을 오가는 포퓰리즘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 불붙고 있었던 1943년 6월 4일 아르헨티나에서는 연합장교단(GOU)이 군사정변을 일으켜, 집권한지 1년밖에 되지 않은 부패무능한 까스띠요 정권을 뒤집어엎었다. 군사정변을 일으킨 연합장교단 주동자들 가운데는 환 도밍고 페론(Juan Domingo Peron, 1895-1974) 대령이 있었다.

군사혁명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맡은 페론 대령은 노조의 편을 들어주면서 노동복지정책을 시행하여 아르헨티나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1944년 1월 15일 아르헨티나 중서부에 있는 싼 환(San Juan)에서 대지진으로 10,000여 명이 사망한 참사가 일어났는데, 페론 장관은 지진참사 구호활동에서 커다란 성과를 거두어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처럼 페론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고, 국민적 신망을 받게 되자, 그와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는 군사혁명정부 우파세력이 그를 전격 체포하고 노동부 장관직을 사임하라고 협박하였다.

그 소식을 들은 노동자들과 각계각층 대중이 페론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투쟁을 벌이는 바람에, 그는 체포된지 나흘 만에 풀려났다. 페론 체포사건은 그의 대중적 지지기반을 되레 더 강화, 확대하였다.
 
1930년에 창설된, 300만 명의 노조원을 거느린 아르헨티나 노동총연맹(CGT)을 중심으로 각계각층 대중이 페론을 내세워 창당한 새로운 야당이 노동당(Labour Party)이다. 1946년 2월 24일 아르헨티나에서 실시된 선거는 페론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노동당과 호세 탐보리니(Jose Tamborini)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운 민주연합(Democratic Union)의 대결이었다.

노동당에 맞선 민주연합은 사회당과 공산당, 그리고 중도우파당인 급진시민연합과 우파당인 국민자치당까지 폭넓게 결집한 선거연합이었다. 그 선거에서 노동당이 대승을 거두었다.

페론 정권은 1947년부터 1951년까지 국가발전계획인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중앙은행, 철도, 도시교통, 대외무역, 대학, 공공시설 국유화를 단행하였다. 중요산업의 국유화 조치 가운데서도 특히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농축산물 수출국이었던 아르헨티나의 곡물시장을 국유화하였고, 곡물수출로 벌어들인 막대한 이윤으로 노동자 임금 인상과 전 국민 무상의료를 실시하였다.

중요산업을 국유화한 페론 정권의 진보적 민주개혁은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와 매우 흡사하다. 당시 미국은 아르헨티나가 사회주의진영으로 넘어가는 게 아닌가 하고 우려하였을 정도다.

그런데 페론 정권의 진보적 민주개혁을 함정에 빠뜨린 결정적인 요인이 있었으니, 그것이 페론의 두 번째 아내 에바 페론(Eva Peron, 1919-1952)의 등장이다. 뛰어난 미모와 언변술을 타고난 에바 페론은 자기 남편이 대선후보로 출마하였을 때부터 포퓰리즘을 선동하였다.

기존 정치권에 불신과 환멸을 보내며 '대중의 우상'이 나타나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당시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에바 페론의 등장은 강력한 포퓰리즘 돌비현상을 일으켰다.

지금 이 땅의 대중들이 안철수 대학원장의 성공신화에 현혹되었듯이, 당시 아르헨티나의 대중들은 에바 페론의 성공신화에 현혹되었다.
 
의상계에서 잘 나가는 모델로, 언론계에서 인기 있는 라디오방송 진행자로 성공한 에바 페론이 대통령 영부인이 되었으니 대중들이 그녀의 성공신화에 현혹될만도 했다.

지금 이 땅의 안철수 포퓰리즘이 사회연계통신망(SNS)을 통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것처럼, 당시 아르헨티나에서 에바 페론 포퓰리즘은 라디오방송을 통해서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에바 페론 자신이 인기 있는 라디오방송 진행자였으니 그럴만도 했다.

에바 페론 포퓰리즘은 1951년 8월 22일 각계각층 대중들이 그녀에게 부통령 후보로 나서주기를 요구한 대규모 군중집회에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며 열광하는 군중들 앞에 나타난 에바 페론은 치명적인 암에 걸려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마이크 앞에 설 수 있었는데, 건강악화로 부통령 출마를 고사한 그녀는 자기 남편이 대선에서 이겨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자 곧 사망하였다.

열광적인 포퓰리즘의 절정에서 숨을 거둔 그녀의 최후는 더욱 극적으로 신화화되었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그녀를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로 추앙하였다. 에바 페론은 포퓰리즘 신화의 영원한 주인공으로 대중문화 속에 부활한 것이다. 

주목하는 것은, 에바 페론의 등장으로 페론 정권의 진보적 민주개혁이 포퓰리즘의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이다. 페론주의(Peronism)는 포퓰리즘의 대명사가 되었다. 포퓰리즘 정권은 민주개혁을 단행하여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인기를 얻으면 그 뿐이고,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지도 않고, 사회변혁으로 나아가지도 않는다.

1955년 9월 16일 아르헨티나 우익군부세력은 군사정변을 일으켜 포퓰리즘 정권을 뒤집어엎었고, 페론 대통령은 해외로 탈출하였다. 1973년 10월 12일 오랜 해외망명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노쇠한 페론이 두 번째 집권하였으나, 1974년 6월 28일 심장병으로 사망하였다.

페론의 뒤를 이어 그의 세 번째 아내인 이사벨 페론(Isabel Peron)이 사상 처음으로 여성대통령이 되었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에바 페론의 신화에 도취된 최면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1976년 3월 24일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Jorge Rafael Videla)가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하여 극우정권을 세웠다. 비델라 군사독재정권은 1982년 4월 2일 포클랜드 영유권을 놓고 아르헨티나와 영국이 벌인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가 패한 여파로 정권을 내놓기까지 보안군과 살인부대(death squad)들을 동원하여 악명 높은 폭압통치를 자행하였다.

당시 미국의 배후조종을 받은 콘돌 작전(Operation Condor)이라는 이름의 반공폭압으로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 우루과이, 파라과이, 볼리비아에서 납치, 고문, 암살, 집단학살이 계속되었는데, 60,000여 명의 진보정치활동가, 노조지도자, 진보언론인들이 무참히 살해되었다.

아르헨티나의 포퓰리즘 정치는 진보적 민주개혁을 파탄시켰고, 포퓰리즘 정권을 뒤집어엎은 반공폭압의 광풍은 아르헨티나 사회변혁운동의 뿌리를 뽑아버렸다. 현재 아르헨티나 집권당은 페론주의라는 이름의 아르헨티나식 포퓰리즘을 따르는 정의당(Justicialist Party)이다.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당인 정의당은 창당되었던 1946년 이후 지금까지 1983년과 1999년 대선에서만 패하였을 뿐 지속적으로 집권당의 지위를 잃지 않고 있다.

포퓰리즘 정당이 판치는 아르헨티나에서 사회당은 상원 72석 가운데 겨우 1석, 하원 257석 가운데 겨우 6석을 차지한 왜소정당으로 전락하였다. 사회당이 그처럼 왜소정당으로 전락하였으니, 좌파정당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정통사회당, 노동자당, 광폭전선(Broad Front), 1918년에 창당된 아르헨티나 공산당, 1996년에 창당된 아르헨티나 공산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외면하는 존재감 없는 원외좌파정당들이다. 좌파정당과 사회당의 왜소화, 바로 이것이 포퓰리즘이 진보정치에 안겨준 비극이다.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다

이 땅에 몰려오고 있는 포퓰리즘 암운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은 과장도 아니고 기우도 아니다. 포퓰리즘이 사회변혁운동을 초토화시킨 아르헨티나의 뼈저린 경험을 분석하면, 민주노동당이 안철수 포퓰리즘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이 안철수 포퓰리즘에 맞서 싸우는 것은 내년 선거전략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포퓰리즘 암운을 밀쳐내고 이 땅의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운동을 지키는 변혁수호전략이다.

민주노동당이 그 수호전에서 이겨야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사회변혁운동을 전진시킬 수 있다. 그런데 누구나 아는 것처럼, 대중적 지지기반이 허약한 정파통합당으로는 포퓰리즘 정당에 맞서 진보정치와 사회변혁운동을 수호하지 못한다.
 
누구나 아는 것처럼, 위력적인 진보통합 돌풍만이 포퓰리즘 암운을 밀쳐낼 수 있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과 연대'가 3자 통합으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하여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아있는 시간도 없다. 암운이 몰려오고 있다. (2011년 10월 30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