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입]

한미 FTA가 다음 세대에 '재앙'인 까닭

-IN  의 시사 -  

부모라면 자기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게 마련이다. 내 자식은 누구와 결혼하고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까?

무엇보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 내가 한ㆍ미 FTA 반대 시위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 협정이 우리 아이들 대다수의 인생을 매우 불행한 방향으로 몰아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왜 그런가?

한ㆍ미 FTA의 수많은 조항 중에서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영리병원 보장'이다. 영리병원은 문자 그대로 돈벌이를 목적으로 설립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다. 의사 자격이 없어도 만들 수 있다(현행 의료법상으로는 의사와 비영리 법인만이 병원을 설립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ㆍ미 FTA는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보건의료 서비스에서 가지는 정책 권한은, 경제자유구역 법률과 제주특별자치도 법률에서 정한 병원과 약국의 설립 특례에 대해 적용되지 않는다."(부속서 II)

여기서 병원과 약국의 설립 특례가 바로 영리병원 및 영리약국 허용이다. 이처럼 한ㆍ미 FTA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영리병원 제도에 대한 정책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없게 된다. 이후 영리병원이 어떤 사회적 폐해를 낳더라도 이를 폐지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인천시장은 인천에 영리병원을 시험 삼아 도입해보고, 문제가 많을 경우 없애면 된다고 해왔다. 그러나 한ㆍ미 FTA가 발효되면 이마저 불가능하게 된다.

이런 영리병원 조항을 한ㆍ미 FTA에 반드시 집어 넣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서는 전체 의료기관 중 공공 병원의 비중이 지나칠 정도로 왜소하다. 이런 상황에서 영리병원의 입지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보건의료 부문을 자본의 돈벌이 장소로 만들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쌀도 문제다.

예부터 벼농사는 한국의 소농 가족이 최소한의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수단이었다. 그래서 한ㆍ미 FTA 협상단 역시 쌀만은 지키겠다고 약속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미국 대사의 외교 전문을 보면 우리 협상단이 그리 정직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007년 8월31일자 미국 국무부 외교 전문(07SEOUL2634)을 보자.

이에 따르면, 김종훈 당시 외교 통상부 통상교섭 본부장은 '외교 전문'이 작성되기 이틀 전(2007년 8월29일)에 버시바우 대사와 미국 하원의원을 함께 만났다. 한ㆍ미 FTA 서명이 끝난 직후였다.

이 자리에서 미 대사 일행은 쌀이 한ㆍ미 FTA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외교 전문에 따르면, 김 본부장은 매우 놀라운 말을 한다. "비록 이번 한ㆍ미 FTA에서 쌀이 제외되었으나, 'WTO 쌀 쿼터 협정'이 2014년에 종료되면 '재논의(revisit)'될 수 있다."(2004년 'WTO 쌀 쿼터 협정'에 따르면, 한국은 2014년까지 미국 등 해외에서 생산된 쌀을 의무적으로 일정 쿼터씩 수입해야 한다. 2015년부터는 쌀 시장을 전면 개방하되 400% 이상의 관세를 매길 수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김 본부장은 한ㆍ미 FTA 협정에 서명한지 겨우 두 달이 지난 시기에 쌀과 관련된 논의를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 고위 관계자에게 이야기했다. 정부가 한ㆍ미 FTA에서 쌀은 지켰노라고 국민에게 자랑하던 때였다.

국민의 주식이며 농가의 삶의 터전인 쌀을 이렇게 다루어도 되는가? 내가 보기에 미국의 전략은 일단 쌀을 제외한 한ㆍ미 FTA 체제를 출범시켜, 이 틀 안에 한국을 묶어 놓은 뒤 쌀 문제까지 포함시키는 것이다(이미 전면 수입개방이 된 상태이므로, '재논의'의 주제는 미국 쌀에 대한 관세를 큰 폭으로 낮추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만일 이 전략이 성공하면 한국 쌀은 어떻게 될까? 나는 어린 시절 친숙했던 밀밭과 면화밭을 별안간 다시 볼 수 없게 된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수년 뒤 쌀농사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기억하게 될까봐 두렵다.

미국은 한ㆍ미 FTA 협상을 통해 일방적으로 지나치게 많은 국익을 챙겨왔다. 2006년 미국은 한ㆍ미 FTA 협상에 들어가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자동차 배출가스 강화 기준 2012년까지 철폐 △스크린 쿼터 축소 △약값 재평가 제도 철폐 등을 내걸고 끝내 관철시킨다.

2007년 4월, 한국 정부는 서울에서 한ㆍ미 FTA 타결을 선언한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는 그치지 않는다. 한 달 뒤(2007년 5월), 미국 의회는 이른바 신 통상정책을 내세우며 한국에 재협상을 강요한다. 만약 재협상에 응하지 않으면 한ㆍ미 FTA는 미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한국을 압박했다. 이로 인해 한ㆍ미 FTA 서문에는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지위에 대한 불평등 조항이 삽입되었다.

또한 미국은 2010년 12월 다시 재협상을 요구해서 한국산 소형 승용차에 적용되는 관세를 즉각 철폐하기로 한 조항을 없애버렸다. 2011년 4월에는, 개성공단 제품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라도 미국에 수입되지 않도록 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나는 한국에 대한 외국의 일방통행이 내 아이와 그 아이의 아이 세대까지 허용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 세대가 그 일방통행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지 못하면서, 후대가 그렇게 해 줄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른스럽지 않다. 아이들의 해맑은 눈망울이 어른들을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