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또다시 판문점을 찾으신 1974년 7월 어느날이었다.

이날 판문점에 도착하신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곧바로 판문각 2층 노대로 향하시었다.

허리에 두 손을 짚으시고 회의장마당과 판문점 주변을 둘러보시고 나신 장군님께서는 『삼각산!』라고 누구에게라 없이 나직이 뇌이시었다.

그분의 음성은 비분에 젖어있었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삼각산!』하고 다시금 조용히 되뇌이시며 남쪽 하늘가에서 점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었다.

삼각산은 백운대, 국망봉, 인수봉의 세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바로 그 삼각산밑에 서울이 자리잡고 있었다.

일꾼들은 아무말없이 그분을 우러르기만 했다.

잠시 후 그분께서는 갈리신 음성으로 물으시었다.

『여기서 서울까지 몇 리나 됩니까?』

이때 한 일꾼이 그분께 서울까지의 거리에 대하여 말씀올렸다.

다음 순간 말씀올린 일꾼도 곁에 있던 일꾼들도 못박힌듯 굳어지고 말았다.

그 물으심은 서울까지의 거리를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판문점에 처음으로 나오시었을 때에도 이렇게 물으시었다.

그때 판문각 노대에 오르신 그분께서는 여기서 서울까지는 지척이라고 하시며 쌍안경을 드시고 남녘땅을 바라보시고 나서 조국을 빨리 통일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던 것이다.

판문점에서 서울까지의 거리가 자동차로는 불과 1시간, 걸어서는 하루 길도 안되는 지척이라는 것을 그분께서는 너무도 잘 알고 계시었다.

하루내에 오갈 수 있는 내 나라 지경을 가로막은 휴전선을 더이상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의분을 삭일 수 없어 묻고 또 물으시는 것이었다.

휴전선은 서해바다가 임진강 북쪽하구 정동리앞 개울가로부터 동해바다가 남강하류 강정마을의 백사장에 이르는 동서 600여리에 뻗어있다. 여기에는 높이 1. 5m의 네모말뚝에 「군사분계선」이라고 쓴 가로 1m, 세로 0. 5m의 판대기가 붙은 1 292개의 표말이 꽂혀있다.

바로 이 휴전선으로 하여 122개의 마을과 8개의 군이 남과 북으로 갈라졌고 지금 비무장지대로 되어있는 지역에 있던 514개의 부락이 그 종적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남과 북을 잇던 세 줄기의 넓은 도로와 24개의 작은 도로, 197개의 달구지길이 끊어졌고 북에서 남으로 생명수를 보내주던 관개수로도 끊어졌다.

남북으로 뻗은 산줄기들과 철길들, 임진강, 북한강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강줄기들과 시내들도 휴전선에 의하여 116군데나 토막나 나루터도 다리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남북을 이어주던 모든 것이 미군의 이남강점으로 동강나고 만 것이다.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이 분열의 아픔을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느끼시며 조국통일위업을 자신의 사명감으로 감수하시는 것이었다.

점도록 남녘땅을 굽어보시던 경애하는 장군님께서는 천만근의 무게가 실린 어조로 조국을 빨리 통일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었다.

진정 경애하는 장군님의 마음속에는 자나깨나 통일만이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