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으로 보는 세상이야기(1)

-재미교포 김상일-
 

내가 처음으로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알게 된 것은 2004년 문익환 목사 방북 15주년 북과 남 학자들의 통일토론회차로 중국 옌비엔(연변)에 가서 만난 북에서 온 분들로부터이다.

북측 대표단 단장이었던 안경호 선생 등 일행들과 호텔 아침식사를 하는 식탁에 만저우(만주)에서 흔히 겨울에 많이 먹는 음식이 올라있었다. 나는 만저우에서 나서 4∼5살때 그것을 먹고는 한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서 너무 신기하였다. 어떤 이들은 내가 그 어릴 때 일을 어떻게 기억하느냐 하겠지만 나는 다는 아니지만 몇가지 중요한 장면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이 음식을 먹던 것, 그 크기며 모양이며 색갈이며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무려 60여년만에 아침식탁에 올라있으니 그 이름을 알 수는 없었다. 북에서 오신 분들이 그 이름을 알 것 같아서 우연히 물어보았다.

안경호 선생이 「쨩즈궈즈」라고 하면서 자기도 김일성주석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그 이름이 나와 알게 되었다고 했다.

김일성주석님이 손정도 목사집에 머물 때에 그 댁 따님 인실이가 사달라고 하여 사준 기억을 더듬어 쓴 글의 내용속에 이 음식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북에서 온 분들은 그러면서 앞으로 회고록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였다.

2006년 미국 UCLA대학 동양학도서관 챨스 영도서관 서가에서 「세기와 더불어」전 6권이 나란히 선반에 꽂혀있는 것을 보고 바로 그 회고록이라는 것을 알게 되였다. 마치 나를 기다리고나 있는 듯 하였다. 책갈피를 보니 아직 아무도 읽지 않은 것 같은 새책이었다. 2006년 겨울부터 2007년 5월까지 나는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전 6권과 계승본 7, 8권도 모두 읽고 색인작업까지 해놓았다.

쨩즈궈즈에 대한 어릴적 추억과 그리고 안경호 선생일행의 진심어린 회고록을 권하던 기억을 잊지 못해 첫 권을 읽기 시작하자 그만 모든 일을 접어놓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때까지 회고록에 빠져들기 시작하였다. 인간이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욕구는 그 어느 것으로도 막지 못하기 때문이다.

홍동근 목사님이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어떤 면에서 조국해방과 혁명투쟁과정에 희생된 동지들에 대한 증언이며 그 묘비명이다. 김주석님은 수백명 동지들의 이름을 불러 조국광복에 바친 선구자들의 영혼을 위로한다.』(홍동근, 1997, 151페지)고 말한대로 장마다, 절마다 제목자체가 이제순, 이관린, 박인진과 같은 동지들의 이름들로 붙여져 있다. 이들, 먼저 간 동지들에 대한 한없는 애정을 가지고 쓴 글들이다.

회고록은 한갖 과거를 회고하는 차원의 글로 보면 안된다.

나는 회고록을 통하여 오늘의 북을 어떤 방법으로보다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마치 회고록은 이스라엘 민족사인 구약성서와도 같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만큼 회고록은 북을 바로 알기 위한 필독의 글이다.

그리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청량제로 회고록을 읽어보아야 한다고 본다. 자본주의에 찌들리고 사대주의에 찌들려 자기도 모르게 정신병환자가 된 우리에게 회고록은 정신을 맑게 해주고 인간이 민족을 사랑하고 애국애족하는 길이 얼마나 신성하고 고귀한가를 일깨워줄 것이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만인에 만인의 싸움장으로 되어버렸고 그리하여 우리는 사대주의만은 절대로 못버리는 이 병을 회고록을 읽음으로써 고칠 수 있을 것이다.

남을 자기보다 더 사랑하고 남을 신뢰하고 사는 공동체의식, 이를 「사회정치적 생명유기체」라고 한다. 시카고대학의 G. 스토크는 이를 미래에 나타날 인간형 즉 메타인간이라고 했다.

나는 김일성주석님주위의 사람들이 항일유격대활동을 통해 이런 인간상을 몸에 배도록 체득하였다고 본다. 이런 인간상이 오늘 북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본다. 이런 인간상의 원형을 나는 회고록에서 읽을 수 있었다.

만약 북을 적이라고 생각한다면 북을 알기 위해서도 회고록을 읽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오늘 북의 모든 것을 알기 원한다면 회고록부터 읽어라, 「반공」을 위해서도 「용공」을 위해서도 읽으라는 것이다.

완전히 나는 2007년 겨울과 봄 그리고 초여름동안 미국땅 서부에서 김일성매니아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학교를 은퇴하고 사는 마당에 누구의 말이나 글에 쉽게 부화뇌동한 것이라 단정하지도 말아주기 바란다. 나는 나의 주관을 가지고 회고록을 읽었으며 그중 주체사상과 연관되는 부분에서 내가 지금까지 해온 과정사상에 연관하여 글을 만들어보려고 이 글을 쓴다.

지금도 남쪽의 인터넷에 들어가보면 회고록이 조작이라는 자료가 쏟아져 나온다. 나는 이에 대해서 용납할 수 없다.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든 진실을 조작하고 이를 정치수단으로 사용하는 마타도어방법을 용납할 수 없다. 이런 방법은 모두 남북에 상처만 입히는 것이며 나아가 서로가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을 「인정」해주지 않을 때에 쌓이는 증오와 불신은 하늘에 사무칠 것이고 이것은 남북이 하나 되는데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세기와 더불어」를 읽지 않고 현대사를 말하지 말라, 아니 나아가 통일을 말하지 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경전을 읽을 때에 정신이 맑아지고 정화되는 것을 느끼듯이 누구든지 우리 민족의 구성원이라면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을 읽고 나면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지금 금수산기념궁전에는 연 100만명이상이 방문하고 평양시민들은 1년에 평균 3∼4회 이곳을 방문한다고 한다.

북의 한 인사는 『머리가 복잡할 때에 기념궁전을 다녀가면 개운해진다.』고 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2007년 7월 9일)

왜 그럴가? 왜 북주민들이 한두사람들도 아니고 그렇게 집단적으로 김일성주석님에 열광하는 것일가?

그 이유를 알자면 바로 회고록을 읽어보라는 것이다. 회고록을 읽고 나면 금수산기념궁전을 다녀오는 것과 같이, 마치 종교적인 경전을 읽는 이상으로 정신의 정화와 경건함 그리고 마음의 정숙함을 갖게 되는 이유를 바로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우상에 의한 효과 때문이 아니고 바로 한 고난받는 인간의 모습에서 즉 우로부터가 아니고 아래로부터 오는 풀뿌리의 향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를 외면하고 남에서 아무리 「반공」교육을 하고 「보안법」을 철통같이 만들어 각을 세우더라도 「반공」교육은 허사일 것이다. 그것은 과거 반 세기가 증명하고 있지 않는가. 김일성주석님의 진면목을 알면 알 수 록 속았다는 생각만 갖게 한다면 남「한」의 「반공」교육은 실패한 것이다.

알 것을 알게 하고 읽을 것은 읽게 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북을 판단하게 하라.

나는 그리스도교인으로 이스라엘 민족사인 구약을 여러번 읽었다. 나는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을 읽을 때에 이것이 우리 민족 출애급기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 이유는 다른 나라와 민족이 아닌 바로 우리 역사가 가장 어려울 때 모세나 여호수아같이 민중들과 사선을 넘는 생사고락을 같이한 우리의 기록, 바로 그것이 회고록이기때문이다.

나는 장준하의 「돌베개」를 읽었을 때 그리고 백범일지를 읽었을 때에도 똑같은 칸트가 말하는 숭고미같은 것을 마음속에 느낄 수 있었다. 남쪽의 친일행위를 한 기득권자들은 자기들의 원죄를 속죄하기는커녕 국민들이 북과 김일성주석님의 진실을 알까 보아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들의 협박과 위협을 용납하는 한 우리에게는 정말 희망이 없다.

그러나 내가 이러한 거창한 이념적 상황을 떠나서 회고록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우에서도 말한대로 민중과 민족을 그렇게 애절하게 사랑한 한 인간과 그 주변 민중투사들의 절절한 영혼을 회고록속에서 어떻게 담아내었는가를 한번 보라는 것이다.

남을 죽이고라도 내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개인주의와 항상 남이 나대신 해줄 것이라 의지하며 살아온 사대주의근성에 지금 우리 영혼은 자기도 모르게 병들어 있다. 우리는 정치, 교육, 문화 모든 영역에서 천민자본주의와 사대주의근성에 찌들고 병들어 있다. 이 두 가지 병을 치료함이 없이는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며 나라다운 나라를 세울 수 도 없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회고록을 읽고 완전히는 몰라도 건강한 내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와 같은 병에 걸려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신과 영혼의 치유를 위한 길잡이역할을 하기 위해 글을 써내려가려 하는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