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37)

30년 전에 죽은 경제의 이름을 부른 강령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30년 전에 혼합경제를 죽인 살인자

진보적 민주주의를 우리식 사회변혁담론의 대안이념과 대안체제로 제시한 진보정치활동가들이 좌파성향 정치활동가들에 비해 경제이론에 약하다는 소문이 나돌았는데, 그것이 단지 소문이 아니라 사실이었음이 이번에 밝혀졌다. 이번에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에서 수정, 채택한 강령 중에서 경제강령이 그런 소문이 사실임을 입증하였다.

이번에 수정, 채택된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은 "자주적, 다원적 민주경제체제"를 제시하였다. 여기서 자주적이라 함은 대외예속적 경제체제를 극복한다는 뜻인데, 강령에서는 이것을 "경제종속 극복과 자주적 발전노선"이라고 표현하였다.

경제강령에서는 자주라는 용어보다 자립이라는 용어를 선택하였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또한 다원적이라 함은 "소유형태를 다양화"하고 "민중적 참여와 통제를 실현"한다는 뜻인데, 강령에서는 이것을 "민중참여가 보장되는 민주경제체제"와 "민중생존권이 보장되는 평등한 경제체제"라고 표현하였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을 그렇게 총론적으로 정리한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총론에서 각론으로 들어가면 사정이 확 달라진다. 각론적 개념으로 정리한 대목에서는 "사회적 소유와 사적 소유를 결합한 다원주의적 경제체제"와 "시장경제와 계획경제의 장점을 살리는 혼합경제체제"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여기서 다원주의적 경제체제라는 개념과 혼합경제체제라는 개념은 같은 뜻으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데, 혼합경제라는 특정개념을 등장시켜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을 설명하려고 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강령작성자들이 혼합경제가 역사적으로 실존하였던 특정개념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 개념을 경제강령에 등장시켰는지 아니면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 개념을 등장시켰는지는 알 수 없으나, 혼합경제라는 개념을 가지고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을 설명하는 것은 오류다.

결론부터 말하면, 혼합경제와 진보적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 쟁점을 선명히 부각시키기 위해 이를 다시 표현하면, 진보적 민주주의는 혼합경제를 부정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런 것일까?

혼합경제는 이미 30년 전에 죽어버린 경제다. 혼합경제를 죽인 '살인자'가 바로 신자유주의다. 1980년대 초부터 서유럽 각국에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혼합경제는 종말을 고했다. 혼합경제의 죽음과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자본주의체제의 전반적 위기에 의해 발생한 전환적 사건이었다.

1980년대 초 광주민중항쟁을 겪고,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폭압에 짓눌려 있었던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혼합경제와 신자유주의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 당시 이 땅의 진보정치활동가들은 군사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당면목표 이외에 별로 아는 것이 없었으니, 혼합경제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사회변혁담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번에 민주노동당이 수정, 채택한 강령이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체제로 진보적 민주주의체제를 명시적으로 제시하였다는 데 있다. 그런데 새로운 강령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경제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이미 종말을 고한 혼합경제를 무덤에서 불러낸 것은 30년 전의 경제체제로 돌아가려는 복고주의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경제사 박물관에 박제화된 유물로 보관되어 있는 20세기 혼합경제를 진열장에서 꺼내어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을 설명하려 하다니, 경제이론에 정통한 지식인들이 알면 웃을 일 아닌가!

우파집권당이 추진한 혼합경제, 통제경제, 사회적 시장경제

누구나 아는 것처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서유럽 자본주의체제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전쟁폐허에서 서유럽 자본주의체제가 재기를 모색한 사회민주주의 경제강령이 있었으니, 그것이 영국의 혼합경제, 프랑스의 통제경제,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다.

이 세 종류의 경제강령은 서로 이름이 달랐지만, 하나의 밑뿌리에서 자라난 것이다. 그 세 종류의 경제강령을 길러낸 사상조류의 뿌리가 바로 사회민주주의다. 사회민주주의 전통이 오랜 영국, 프랑스, 독일에서 전후 피폐한 시장경제를 짧은 기간에 살려낼 방도는 중요산업 및 공공부문 국유화와 보편적 복지실현 밖에 없었다. 
 
종전 직후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의 영국 보수당 장기집권에 마침표를 찍고 등장한 클레멘트 애틀리(Clement Attlee)가 추진한 것이 혼합경제(mixed economy)다. 애틀리는 1945년부터 1951년까지 영국 총리를 지냈고, 1935년부터 1955년까지 영국 노동당 당수를 지냈다.

영국의 혼합경제는 중요산업과 공공부문을 국유화하고, 무상의료제를 수립하였다. 이것은 전후복구기에 영국 노동당이 정치적으로는 사민주의, 경제적으로는 혼합경제, 사회적으로는 복지국가를 실현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미국, 서유럽, 일본의 시장경제가 '석유위기'라는 이름의 대공황으로 타격을 입고 비틀거리던 1979년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이 정권을 탈환하였고, 그로써 영국은 신자유주의로 전환하기 시작하였다. 혼합경제는 이미 1980년대 초에 신자유주의의 등장으로 사멸경로에 들어선 것이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도 전후 피폐한 자본주의체제를 복구하기 위한 새로운 발전전략이 모색되었다.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과 조르주 뽕삐두(Georges Pompidou) 집권기에 프랑스에 등장한 통제경제(Dirigism)가 바로 그러한 새로운 경제발전전략이었다.

프랑스의 통제경제도 영국의 혼합경제와 꼭같이 중요산업과 공공부문을 국유화하고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였다. 통제경제는 프랑스가 1945년부터 1975년까지 이른바 '영광의 30년(Les Trente Glorieuses)'이라고 부른 고도성장기에 프랑스 자본주의를 재생의 길로 이끌어준 기본동력이었다.

서독은 영국, 프랑스와 달리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전범국가로 전락하였다. 전범국가로 전락한 서독의 피폐한 경제를 복구하는 생존전략이 바로 사회적 시장경제(social market economy)였다.

전후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추진한 것은, 콘나르트 아데나우어(Konard Adenauer)가 이끄는 기독교민주당(CDU)이다. 서독이 한때 자랑하였던 이른바 '경제기적(Wirtschaftswunder)'이 바로 사회적 시장경제의 산물이다.

정치이념지형을 살펴보면, 영국식 사민주의를 추종한 영국의 노동당, 드골주의를 추종한 프랑스의 공화국민주연합, 그리고 독일식 사민주의를 도입한 서독의 기독교민주당은 모두 서유럽의 대표적인 우파정당들이다.

영국의 노동당은 보수당과 경쟁하지만 보수당과 노동당의 차이는 샛강 수준의 차이다. 프랑스의 공화국민주연합은 드골 사망 이후 1976년에 자크 시라크(Jacques Chirac)가 이끈 공화국집결(RPR)로 변신하였다가, 2002년 대중운동연합(UMP)으로 당명을 바꾸었다. 프랑스 우익을 대표하는 대중운동연합이 등장시킨 프랑스 대통령이 니꼴라 사르꼬지(Nicolas Sarkozy)이고, 독일 우익을 대표하는 기민당이 등장시킨 독일 총리가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우경화된 이 땅에서는 중요산업과 공공부문을 국유화하고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는 것이 마치 좌파강령인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만, 영국, 프랑스, 서독에서는 그것이 우파집권당들이 추진한 경제강령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를 건설하려는 민주노동당이 영국, 프랑스, 독일의 우파집권당들이 전후복구기에 잘 써먹다가 수명이 다해 30년 전부터 내다버리기 시작한 혼합경제, 통제경제, 사회적 시장경제를 '새로운 경제강령'인 것처럼 들고 나오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알면,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에서 혼합경제, 통제경제,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개념을 왜 써서는 안 되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

민주노동당이 그 이름을 지어야 한다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영국의 혼합경제, 프랑스의 통제경제,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전후 자본주의체제 복구에 동원된 사민주의 경제강령이었다. 그러한 경제강령은 실제로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자본주의체제를 복구, 성장시켰다.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혼합경제, 통제경제, 사회적 시장경제가 복구, 성장시킨 시장경제가 결국 30년만에 무너지고 말았고, 이제는 신자유주의로 완전히 대체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 이 땅에서는 중요산업과 공공부문을 국유화하고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기는커녕 우파세력이 날뛰는 통에 그런 말조차 공개적으로 꺼내기 힘든 판인데, 중요산업과 공공부문을 국유화하고, 보편적 복지를 실현한 그 나라들에서는 왜 30년만에 그 성과를 잃어버리게 되었을까?

그 까닭은, 영국, 프랑스, 서독에서 추진한 중요산업 및 공공부문 국유화와 보편적 복지가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는 경제발전단계로 설정된 아니라, 전후 피폐한 자본주의체제를 복구, 유지하기 위한 경제발전수단으로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에서 중요산업과 공공부문을 국유화하고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려는 것은 영국, 프랑스, 서독의 실패전철을 밟으려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신자유주의로 피폐해진 이 땅의 예속적 자본주의체제를 복구하고 유지하기 위해 중요산업과 공공부문을 국유화하고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을 제시한 목적은, 중요산업 및 공공부문 국유화와 보편적 복지실현을 통해 신자유주의로 망한 예속적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역사발전의 대안을 찾으려는 데 있다.

오래 전에 레닌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라고 정의하였는데, 오늘 신자유주의야말로 자본주의의 마지막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를 무너뜨리면 사민주의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시장경제와 제국주의세계체제가 무너지게 되어 있다. 물론 붕괴의 경로와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장기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위기는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이며,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지금 그 위기의 소용돌이 속에서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으로 제시한 진보적 민주주의는 영국의 혼합경제나 프랑스의 통제경제나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로 망한 이 땅의 예속적 자본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사회역사발전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에서 혼합경제라는 사어(死語)를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에 수정, 채택된 민주노동당 경제강령을 좀 더 명시적으로 정리하면,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체제에서 중요산업은 민중참여형 국유기업이 떠맡게 될 것이고, 중소기업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실현될 것이고, 대외적으로는 예속성을 청산한 민족자립경제가 실현될 것이고, 민족 내부에서는 남북경제협력으로 통일경제가 실현될 것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으로 제시된 이 땅의 새로운 경제체제의 모습이다.

그러면 진보적 민주주의 경제강령에서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으로 제시된 새로운 경제체제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본질적 속성을 표현한다면, 민중참여형 국유기업 주도의 민족자립경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으로 제시된 새로운 경제체제의 뚜렷한 상을 이번에 당강령 개정과정에서 갖게 되었으니, 아직까지 그 새로운 경제체제의 공식명칭을 생각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민주노동당이 그 이름을 지어야 할 책임을 맡았다. (2011년 6월 24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