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이같은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에 편승하여 남조선의 집권세력은 그 어느때보다 북남대결소동과 반통일책동을 악랄하게 벌리고있었다.

특히 1993년에 집권한 김영삼은 이전시기의 집권자들도 무색할 정도로 사대와 매국배족, 대결과 분렬을 고취하면서 민족의 앞길을 가로막아나섰다.

김영삼은 집권 100일기자회견이라는데서 《핵을 가진 상대와는 악수할수 없다.》고 하면서 집권초기부터 외세와 야합하여 중단되였던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을 재개하는것과 같은 북침전쟁대결소동의 폭과 심도를 계단식으로 확대해나갔다.

이미 세상에 잘 알려진바와 같이 1970년대 중엽부터 시작된 《팀 스피리트》합동군사연습은 우리 공화국을 침략하기 위한 《핵시험전쟁》, 《핵예비전쟁》이며 그 성격과 위험성으로 하여 우리 인민은 물론 온 세계의 규탄과 배격을 받고 중지되였던 대규모적인 핵전쟁연습이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위험천만한 전쟁연습이 김영삼호전세력이 들어서자마자 아무 거리낌없이 재개되였다.

※ 당시 남조선출판물들에 보도된 대규모의 북침전쟁연습만 보더라도 《6공》집권시기의 말기인 1992년에 8건이였던것이 김영삼이 집권한 첫해인 1993년에는 16건으로 2배나 많아졌으며 1994년에는 32건으로 4배, 1995년에는 37건으로 4.6배, 1996년에는 72건으로 9배, 1997년 상반년기간에만도 80건으로 10배에 달하였다.

조선반도의 정세를 고의적으로, 계획적으로 격화시켜 끝끝내 민족의 머리우에 전쟁의 참화를 들씌우려는 김영삼호전세력의 책동은 군비확장과 무력증강책동, 무모한 군사적무장도발행위들에서도 드러났다.

※ 김영삼《정권》의 1997년 국방예산만 보더라도 13조 7 865억원으로서 이것은 그 전해인 1996년의 국방예산보다 12. 6%나 더 늘어난것으로 된다. 그리고 군사비지출은 14조 4 600억원으로서 이것은 집권초기인 1993년의 9조 8 000억원에 비해 근 1. 5배에 달한다.

남조선의 군부호전집단은 동족살륙에 리용할 최첨단군사장비들인 《F-16》최신예전투기를 서산공군기지에 배비하여 《제20전투비행단》이라는 새로운 공군부대를 조직하였는가 하면 쌍방간의 무장충돌을 일으킬수 있는 각종 도발을 일삼았다.

김영삼호전세력은 위험천만한 군사적대결소동뿐만아니라 남조선의 통일애국세력을 탄압하는것으로써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의 앞길을 가로막아나섰다.

집권초기 《평화구축》이요, 《통일기반축성》이요 하면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수 없다.》는 등 귀맛당기는 소리를 곧잘하던 김영삼은 《통일을 위해 헌신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주제넘는 《공약》까지 들고나왔다.

하지만 김영삼반통일세력의 실지행동은 어떠하였는가.

김영삼은 집권기간에 《남북페쇄》를 《정책》으로 선포함으로써 완화와 평화, 통일에 대한 겨레의 희망을 무참히 짓밟아버렸다.

그는 《감상적인 통일론을 버리라.》, 《통일보다 분렬이 낫다.》, 《평화통일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안보를 희생시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는 망언들을 내뱉으며 북남관계를 최악의 단절, 랭각상태로 몰아갔으며 남조선인민들의 통일애국투쟁을 《좌경용공》, 《리적》으로 몰아 마구 칼질하였다.

그 대표적인 실례가 1996년에 있은 8. 15류혈사태이다.

당시 《문민》파쑈집단은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념원하여 연세대학교에서 8. 15통일행사를 가진 적수공권의 애국학생들을 《폭도》, 《좌경폭력세력》, 《도시게릴라》라고 하면서 《모조리 잡아족치라. 설사 무리죽음이 난다 해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폭언하였다. 그리고 통일행사장들에 들어가는 식료품과 의약품, 전기와 물공급을 일체 끊어버리고 수많은 폭압무력과 직승기를 비롯한 폭압장비들을 동원하고 총기사용명령까지 내려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그리하여 이때 2 000여명이 중경상을 입고 6 000여명이 련행구속되는 인민탄압사상 또 하나의 최고기록이 나오게 되였다.

남조선의 한 출판물은 이러한 류혈사태에 대해 《광주에서 발가벗기운채 대검에 찔려 살해된 녀학생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데 아직도 죽음의 행렬이 끊기지 않고있다.》고 하면서 《김영삼의 폭압정치는 그 규모와 잔인성, 지속성, 심각성에 있어서 암흑통치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유신>과 전두환, 로태우의 폭정도 무색할 정도》라고 개탄하였다.

특히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크나큰 슬픔으로 하여 7천만겨레가 비애에 몸부림치고있을 때 김영삼파쑈세력이 저지른 패륜패덕행위는 온 민족의 피를 꺼꾸로 솟게 하였다.

김일성주석의 서거에 대한 비보를 알리는 공화국의 중대보도가 발표된지 30분도 못되여 김영삼파쑈독재세력은 군대와 경찰에 《특별경계령》과 《갑호비상령》을 내리고 이른바 《비상사태에 대처할 방안》이라는 모의소동을 벌리면서 민족의 어버이를 잃고 몸부림치는 동족에게 총구를 겨누고 림전태세를 갖추었다.

전시를 방불케 하는 《비상령》을 내린 김영삼패당은 《사회안정》을 코에 걸고 온 남녘땅을 살벌한 공포분위기로 뒤덮었다. 파쑈독재세력은 수만명의 경찰을 내몰아 각지에 차려놓은 분향소를 들부시고 추모현수막과 인쇄물들을 압수하였으며 조의를 표시하기 위하여 북행길에 오른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 조의방문단 성원들을 체포구속한데 이어 그들의 사무실과 가택을 수색하는 횡포를 저질렀다.

민족의 어버이의 서거에 대한 《문민》파쑈집단의 이러한 반민족적이며 비인륜적행위는 온 민족의 격분과 분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수 없었다.

남조선의 한 민주인사는 케네디가 암살되였을 때에는 그처럼 옆에서 말렸음에도 굳이 워싱톤에까지 달려가서 눈물을 짰던 김영삼이가 《김일성주석께 조의표시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그를 가리켜 《민족의 피는 고사하고 한쪼각의 례의도덕도 없는 랭혈동물》이라고 단죄하였다.

그리고 남조선잡지 《말》 1994년 9월호는 미국대통령이 김일성주석에 대한 조의를 표명하고 경애하는 장군님께 경의를 표시하고있을 때 김영삼은 《조문파동》과 《주사파소동》을 벌렸다고 하면서 격분을 표시하였다.

온 세계는 물론 적대국의 지도자들까지도 김일성주석의 서거에 깊은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있을 때 유독 남조선의 김영삼만이 천추에 용납 못할 반민족적인 행위를 서슴없이 감행해나선것은 력사를 두고 계산되여야 할 죄악중의 죄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