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30)
 

집권비결은 3단계 정치연합이었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다

 
진보정치의 시각으로 볼 때, 지금 우리 정치정세에 제기된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어떻게 정권을 교체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여기서 말하는 정권교체란,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 재집권을 저지하고 새로운 정권으로 교체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의 정권교체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정권교체역량이 아직 준비되지 못한 민주노동당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정권을 교체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인 것이다.

 
 
정권교체역량이 없는 민주노동당이 자기 힘으로 교체하지도 못할 정권을 교체하려고 무리수를 둘 것이 아니라, 정권교체역량을 강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는 준비론적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견해는 2012년 정권교체의 의의를 민주노동당의 당적 과업으로만 축소하려는 편협한 생각이다. 2012년 정권교체는 민주노동당의 당적 과업임은 물론이지만, 그 전에 사회변혁운동이 전국적 관점에서 요구하는 역사적 과업이라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2012년에 어떻게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해답은 하나 뿐이다. 단독역량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없으면, 연합역량으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최선의 방략을 추진할 수 없으므로, 차선의 방략으로 반드시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 2012년 정권교체문제는 야권연대전술을 뛰어넘은 야권연합전략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야권연합전략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런데 이 땅의 정치사는 야권연합전략으로 정권교체를 실현한 경험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안팎에서 야권연합전략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와 우려가 생겨나는 듯하다. 야권연합전략을 경험하지 못하였다면, 그 전략의 정당성과 위력을 어떻게 보증할 수 있을까? 우리의 정치사와 구조적으로 유사한 정치사를 지닌 다른 나라의 진보정당이 야권연합전략으로 정권을 교체한 경험을 분석하고 거기서 교훈을 찾을 필요가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우루과이의 정권교체 경험이다. 우루과이 정치사는 우리 정치사와 마찬가지로 1980년대에 친미군사독재정권이 퇴장하여 형식적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는데, 진보정당은 형식적 민주화 이후에도 연속적으로 선거패배를 맛보았고 우파정당의 장기집권이 계속되었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우루과이 진보정당은 야권연대전략을 추진하여 마침내 정권교체에 성공하였다.
 

2011311일 블로그 '변혁과 진보'에 실린 나의 글 '1세대 복지국가 우루과이는 왜 실패하였을까?'에서 논한 것처럼, 1930년대에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복지국가로 등장하였던 우루과이는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을 실시한 때로부터 불과 20년만에 파산하고 말았다. 우루과이에서 사회민주주의 복지정책이 파산한 이후 사회계급적 모순이 격화하여 민중항쟁이 일어났는데, 민중항쟁이 점점 더 강력하게 전개되자 미국의 사주를 받은 친미군사독재정권이 출몰하였다. 군부세력이 군사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강탈한 1973년부터 1984년까지 12년 동안 우루과이는 친미군사독재의 암흑기를 지났다. 우루과이 친미군사독재정권의 폭압이 12년 동안 계속되었던 것에 비해, 4.19 혁명으로 일어난 진보정치운동을 짓누르고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강탈한 이 땅의 군부세력은 1961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32년 동안이나 폭압정치를 계속하였다.


 
노태우 군사독재정권이 퇴장하자 김영삼 우파정권이 등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우루과이에서도 친미군사독재정권이 퇴장하자 우파정권이 등장하였다. 1984년에 실시된 선거에서 우파정당인 콜로라도당(Partido Colorado)이 승리하였다. 콜로라도당의 집권은 2005년까지 무려 20년 동안 지속되었다. 이 땅의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그러한 것처럼, 우루과이의 진보정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도 콜로라도당의 장기집권을 끝장내고 진보적 정권교체를 실현하려고 무던히 애써왔으나 선거 때마다 번번이 패하고 말았다.

 
 
진보적 정권교체를 위해 투쟁하였으나 선거에서 번번이 패하였던 우루과이의 진보정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마침내 우파정당의 장기집권을 끝장내고 집권한 정치적 승리는, 진보적 정권교체를 추구해왔으나 2012년 대선에서 단독으로는 이길 가망이 없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정치활동가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그들의 승리 경험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해답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다.
 
 
좌파연합에서 진보연합으로 폭을 넓히다
 
우루과이의 진보정치운동을 이끄는 대표적인 정치조직은 확대전선(Frente Amplio)이다. 원래 확대전선은 12개로 분산되었던 좌파성향 정파들이 연합하여 1971년에 결성되었는데, 결성 이후 3년만에 출몰한 친미군사독재정권에 의해 '불법화'되었다. 확대전선이 합법적 정치조직으로 정치권에 다시 등장한 때는 친미군사독재정권이 몰락한 1984년이다.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된 1984년 이후 합법적 정치조직으로 재기한 확대전선은 좌파정당들과 좌파성향 정파들이 망라된 좌파연합으로 확대, 재편되었다. 좌파연합으로 확대, 재편된 확대전선에 참가한 좌파정당은 우루과이 공산당(Partido Comunista del Urguay)과 대중참여운동(Movimiento de Participación Popular)이다.
 
1920921일에 창당된 우루과이 공산당(CPU)은 당의 연륜이 오래되기는 하였으나 노쇠한 정당이어서 확대전선을 주도할 능력이 없었다. 확대전선은 대중참여운동(MPP)이 주도하게 되었다.

 
 
이 땅에서 1990년대에 진보정치노선에 따라 사회변혁운동을 전개하였던 진보정치활동가들이 민주노동당을 창당하였다면, 우루과이에서 1960년대 후반 무장투쟁노선에 따라 사회변혁운동을 전개하였던 혁명조직 뚜빠마로스(Tupamaros) 출신의 정치활동가들이 대중참여운동을 창당하였다. 창당과정은 이러하였다. 뚜빠마로스를 극렬하게 탄압하였던 친미군사독재정권이 퇴장하자, 감옥에 갇혀있던 뚜빠마로스 혁명투사들이 풀려나왔다. 정치활동의 자유가 보장된 1985년에 뚜빠마로스는 열띤 내부논쟁에 휩싸였다. 합법정치공간에 참여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논쟁이다. 대다수 조직성원들은 합법정치공간에 참여하는 길을 택하였다.

 
 
무장투쟁노선에서 합법정치노선으로 전환한 뚜빠마로스가 존재감 없는 군소좌파정당들인 인민승리당, 동방혁명당, 사회주의노동자당과 함께 창당한 좌파연합정당이 대중참여운동이다. 우루과이에서 대중참여운동이 창당된 것을 좌파정당이 없는 우리의 정치정세에 대입하면, 민주노동당이 다른 진보정치세력들과 연합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한 것과 비슷하다.
 
대중참여운동이 확대전선에 참가한 때는 선거가 실시된 1989년이다. 확대전선은 세월이 지날수록 더욱 확대되어 지금은 명실공히 야권연합전략을 실현한 집권세력으로 변모되었으나, 1989년 당시만 해도 대중참여운동을 중심으로 하여 확대된 좌파연합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대중참여운동을 주도한 뚜빠마로스 출신 정치활동가들은 1989년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고, 대중참여운동의 다른 정파들만 선거에 후보를 냈다. 대중참여운동은 1989년 선거에서 하원 2석을 얻는 초라한 성적을 거두었다. 대중참여운동을 주도한 뚜빠마로스 출신 정치활동가들이 처음으로 선거에 출마한 때는 1994년인데, 그 선거에서 대중참여운동은 상원 1, 하원 2석을 차지하였다. 역시 초라한 성적이었다. 대중참여운동이 다른 정파들과 좌파연합을 실현하였어도 민심은 그들에게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1989년 선거와 1994년 선거에서 연거푸 초라한 성적밖에 거두지 못한 것이다.
 
대중참여운동의 그러한 좌파연합 경험은, 민주노동당이 진보연합(진보대통합)을 실현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해도 내년 선거에서 그 새로운 진보정당이 정권을 교체하기는커녕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거두게 될 것임을 예시한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통합하고 거기에 다른 진보정치세력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하면, 내년 선거판을 휘어잡을 수 있을 것처럼 예상하는 과도한 기대는 일찌감치 접는 것이 좋다. 다시 말해서, 진보대통합만으로는 내년에 정권을 교체하지 못하는 것이다.
 
좌파연합인 확대전선을 주도한 대중참여운동은 선거에서 연속적으로 패배한 쓰라린 경험을 반성하고, 전선확대에 더욱 힘썼다. 대중참여운동은 1994년 선거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진보적 정파들과 연합하였으니, 그것이 '진보적 만남(Encuentro Progresista)'이다. 좌파연합에서 진보연합으로 폭을 넓힌 것이다.
 
 
진보연합에서 야권연합으로 폭을 넓히다
 
좌파연합인 확대전선이 폭을 넓혀 진보연합인 '진보적 만남'으로 확대되었어도, 1994년 선거와 1999년 선거에서 민심은 그들에게 지지표를 주지 않았다. 대중참여운동에게 남은 마지막 대안은 더욱 폭넓은 야권연합이었다. 대중참여운동이 주도하여 각당각파 각계각층을 망라한 가장 폭넓은 야권연합을 실현하였는데, 그것이 '새로운 다수(Nueva Mayoría)'.
 
대중참여운동이 확대전선을 더욱 확대하여 '진보적 만남'을 결성하고, '진보적 만남'을 더욱 확대하여 '새로운 다수'를 결성하여 대응하였던 2004년 선거에서 그들은 비로소 민심을 얻을 수 있었고, 오랜 숙원이던 정권교체를 마침내 실현하였다.
 
2004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정권교체를 실현한 야권연합 '새로운 다수'에 참가한 정당은 사민당인 '새로운 공간(Nuevo Espacio)'이다. '새로운 공간'은 원래 인민정부당(Partido por el Gobierno del Pueblo)의 주요정파였는데, 1993년 선거에서 인민정부당의 다른 정파가 우파집권당인 콜로라도당과 야합하자 그에 반발하여 떨어져나와 창당되었다.
 
좌파연합진보연합야권연합으로 확대발전되어온 대중참여운동의 공동집권전략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41031일에 실시된 우루과이 선거는 '새로운 다수'로 확대된 야권연합이 승리하여 우파집권당 콜로라도당의 20년 장기집권체제를 무너뜨린 획기적인 선거였다. 대중참여운동이 주도한 야권연합 '새로운 다수'가 선거에서 승리한 비결은, 두 말할 나위 없이 반콜로라도당 야권연합전략과 정책연합에 의거한 공동집권전략이었다.
 
이것은 내년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진보신당과 함께 진보연합 실현민주당, 국민참여당과 함께 반한나라당 야권연합 실현정책연합에 의거한 공동집권 실현으로 이어지는 정권교체경로를 밟아가야 할 것임을 예시한다. 우루과이의 대중참여운동에게 새로운 다수의 야권연합전략이 필요했던 것처럼, 민주노동당에게도 새로운 다수의 야권연합전략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이다.
 
우루과이 야권연합인 '새로운 다수'에는 2개의 좌파정당과 4개의 사민주의정당이 참가하였다. 좌파정당은 대중참여운동당과 우루과이 공산당이고, 사민주의정당은 우루과이 대중의회, 우루과이 기독교민주당, 우루과이 사회당, 새로운 공간이다. 만일 좌파정당들과 사민주의정당들이 '새로운 다수'를 결성하지 않았다면, 양대 우파정당들인 콜로라도당과 우루과이 국민당(Partido Nacional)2004년 선거에서 승리하여 우파정당의 장기집권이 계속되었을 것이다.

 
 
다른 한편, '새로운 다수'에서 탈퇴하여 독자생존노선을 내걸었던 우루과이 대중의회(Assembla Popular)2009년 총선에서 0.67%의 득표율을 얻었고, 확대전선에 가입하지 않고 독자생존노선을 고수한 사민주의정당인 독립당(Partido Independiente)2.49%의 득표율을 얻었다. 정치역량이 미약한 정당이 추구하는 독자생존노선은, 정치고립노선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현실로 입증된 것이다.
 
 
'새로운 다수'가 정권을 교체하다
 
200410월 우루과이 선거에서는 '새로운 다수', 국민당, 콜로라도당이 격돌한 삼파전이 벌어졌다. 우파세력이 국민당과 콜로라도당으로 갈라졌으므로, '새로운 다수'로 뭉친 야권연합에게 선거국면이 유리하게 전개된 것은 당연한 이치다. '새로운 다수'51.7%의 득표율을 얻어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우루과이 총선의 과거경험을 살펴보면, 확대전선은 좌파연합 수준에 머물렀던 1971년 총선에서 18.3%의 득표율을 얻었고, 1984년 총선에서 21.3%의 득표율을 얻었고, 1989년 총선에서 21.2%의 득표율을 얻었는데, 확대전선이 진보연합으로 확대되어 '진보적 만남'을 결성한 1994년 총선에서는 득표율이 30.6%로 급증하였고, 1999년 총선에서는 득표율이 40.1%로 급증하였다. 그리고 야권연합으로 더욱 확대되어 '새로운 다수'를 결성한 2004년 총선에서 득표율이 51.7%로 급증하여 마침내 다수당의 지위를 차지하였다. 이것은 대중참여운동이 승리한 비결이 야권연합전략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우루과이에서는 총선 직후에 대선을 실시하는데,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한 '새로운 다수'의 대통령 후보인 따바레 바즈께즈(Tabar V zquez)가 대선에서 이겨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1994년 선거에 '진보적 만남'의 대선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득표율이 30.6%밖에 되지 않았고, 1999년에 역시 '진보적 만남'의 대선후보로 출마하였으나 득표율이 45.9%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2004년 선거에 '새로운 다수'의 대선후보로 출마한 그는 50.4%의 득표율로 마침내 당선되었다.
 
바즈께즈 대통령은 우루과이 공화국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프랑스에서 유학한 종양학 전문의사다. 그는 1990년에 몬떼비데오 시장선거에 확대전선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나, 대중참여운동 소속 정치인은 아니다. 그의 출신배경이 말해주는 것처럼, 그는 중도성향 정치인이다. 이러한 상황을 이 땅의 정치정세에 대입하면, 바즈께즈 대통령은 민주당 개혁파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보적 만남''새로운 다수' 내부에서 실시된 대선후보 경선에서 대중참여운동 소속 경선후보가 패하였기 때문에 중도성향 정치인인 그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2012년 선거에서 민주노동당이 추진하는 야권연대전략이 성공하여 연립정부를 세운다고 가정할 때, 연립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민주노동당 소속 정치인이 아니라 민주당 또는 국민참여당 소속 정치인일 것이다. 현재 조성된 정치세력관계를 보면, 그렇게 예상하는 것이 정상이다. 이것은 2004년에 세워진 우루과이 연립정부의 상황과 매우 비슷한 상황이 우리의 2012년 선거 이후에 전개될 수 있음을 예고한다.
 
 
연립정부 시기에 대중참여운동은 무엇을 하였을까?
 
바즈께즈 대통령이 집권한 연립정부 5년 동안 대중참여운동이 정력적으로 추진한 중심과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새로운 다수'에 결집한 정당들의 결속력을 높이면서 야권연합을 정치적으로 이끄는 일이다. 대중참여운동의 노력에 의해 결국 '새로운 다수'라는 명칭은 내려지고 이전부터 존재해온 확대전선이라는 명칭으로 단일화되었으며, 그로써 확대전선 안에서 대중참여운동의 주도적 지위와 역할이 이전보다 더 강화되었다.
 
확대전선에서 대중참여운동의 주도적 지위와 역할을 강화하는 데 크게 이바지한 것은, 지난 군사독재정권 시기에 극렬한 탄압을 받아 여러 차례 강제해산을 당했다가 복구된 전국노동조합중심(PIT-CNT)이다. 확대전선의 강력한 지지기반인 전국노동조합중심이 확대전선 안에서 대중참여운동의 주도적 지위와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힘썼으니 그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다른 하나는, 대중참여운동 소속 정치인을 차기 대선후보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다. 대선후보가 가지는 명성은 몇 해만에 불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10년 이상 꾸준히 대선후보 정치경력을 쌓아야 높은 수준의 대중적 인지도를 얻을 수 있다. 대중참여운동은 자기 당에 소속된 정치인을 아주 오래 전부터 대선후보로 성장시키는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바로 그 사람이 현재 우루과이 대통령인 호세 뻬뻬 무히까(José 'Pepe' Mujica).

 
 
연립정부 5년 동안 대중참여운동이 위의 두 가지 정치과업을 정력적으로 수행했던 것처럼, 이 땅에 연립정부가 세워지는 경우 거기에 참가한 민주노동당도 연립정부 5년 동안 그러한 방향에서 자기의 정치과업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야권연합이 연립정부의 정책으로 사전에 합의한 사항들을 연립정부가 성실히 추진하도록 민주노동당이 연립정부 안에서 적극 노력해야 하는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렇게 할 때, 민주노동당은 2017년 대선에서 자기의 대선후보를 당선시켜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우는 오랜 숙원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대중참여운동이 해냈는데, 민주노동당이 왜 해내지 못하겠는가!
 
 
2009년 대중참여운동이 집권하다
 
20091025일에 실시된 총선에서 확대전선은 상원 16, 하원 50석을 차지하였다. 국민당은 상원 9, 하원 30석을 차지하였고, 콜로라도당은 상원 5, 하원 17석을 차지하였다. 양대 우파정당들에 대한 압도적 승리는 아니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091129일에 실시된 대선에서 확대전선의 호세 무히까 대선후보는 1차 투표에서 48%를 얻었고, 국민당 대선후보는 29%를 얻었다. 대선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하는 경우 1위 득표자와 2위 득표자가 결선투표를 하게 되는데, 결선투표에서 무히까 대선후보가 52.39%를 얻었고, 국민당 대선후보가 43.51%를 얻었다. 대중참여운동이 우루과이 사회변혁운동의 전략목표로 내걸었던 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호세 무히까 대통령의 투쟁경력을 보면, 그는 1960년 초 중남미를 휩쓴 쿠바혁명 열기에 휩싸여 무장투쟁조직 뚜빠마로스에 가입하였다. 그는 1969년에 몬떼비데오 인근의 마을 빤도(Pando) 해방전투에 참가하였다가 체포, 수감되었다. 그는 1971년에 탈옥하였다가 1972년에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던 중 6발의 총상을 입고 다시 체포되었다. 1972년 총격전 중에 그의 몸에 뚫고 들어간 총탄은 아직도 남아있다고 한다. 1973년에 출몰한 친미군사독재정권은 그를 악명 높은 육군교도소로 이감시켰다. 그는 장장 14년 장기수감생활을 마치고 1985년에 석방되었다.
 
석방 이후 정치활동가로 나선 무히까는 1994년에 하원의원, 1999년과 2000년에 각각 상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몬떼비데오 외곽의 조그맣고 허름한 농장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진보정치활동에 전념하며 청렴하게 생활하던 그는 70살이 되던 2005년에 뚜빠마로스 혁명조직 시절의 동지였던 루씨아 또뽈란스끼(Lucia Topolansky)와 결혼하였다. 또뽈란스끼 여사는 현직 상원의원이며, 대중참여운동당 대표다.
 

주목하는 것은 좌파연합, 진보연합, 야권연합으로 확대발전되 3단계 정치연합을 실현하여 마침내 집권에 성공한 대중참여운동이 그 3단계 정치연합을 주도해왔다는 사실이다. 만일 우루과이 야권연합을 대중참여운동이 아니라 다른 사민주의정당들이 주도하였다면, 대중참여운동은 집권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자기의 고유한 사회변혁강령을 실현하지 못한 채 정책연합 수준의 정치활동만 전개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땅의 정치권에서 야권연합이 실현되는 경우, 민주노동당은 야권연합을 주도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민주당의 정치역량이 민주노동당의 정치역량보다 훨씬 강하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이 야권연합을 주도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 난제는 민주노동당이 야권연합전략 수행에서 반드시 풀어야 한다.
 
난제를 푸는 해결책은 다른 것이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연합을 실현하여 진보정치역량을 강화하고,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성향 대중단체들로부터 이전보다 더 강한 지지를 받고, 내년 총선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만큼 득표율을 끌어올리면 난제를 풀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난제라고 할 수 있는 사회변혁을 실현하려는 민주노동당에게 풀지 못할 난제는 없다. (201142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