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22일 노동신문

 

남조선괴뢰패당에게 강제랍치당하여 억류되였던

우리 주민들 국내외기자들과 회견

 

조선서해해상에서 남조선괴뢰패당에게 강제랍치당하여 50여일동안 억류되였다가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온 우리 주민들이 21일 인민문화궁전에서 국내외기자들과 회견하였다.

기자회견에는 우리 나라 출판보도부문과 총련의 기자들 그리고 중국, 로씨야, 미국의 기자들이 참가하였다.

기자회견에서는 먼저 해주산업건설사업소 로동자 옥성혁이 발언하였다.

그는 지난 2월 5일 조개잡이를 위하여 황해남도 강령군동포리에서 출항하였다가 적들에게 랍치당한 경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오전 8시경에 출항하여 20분이 지난 후 배를 세우고 아침식사를 한 우리는 조개잡이장소로 향하였다.

9시 30분경부터 짙은 안개가 끼면서 앞을 가려볼수 없었다.

큰 얼음장들까지 밀려와 항해하는데 매우 불리하였다.

우리는 얼음장을 피해 배를 몰면서 라침판을 리용하여 방향을 수정하며 어장을 찾아나갔다.

그러던 11시 30분경 우리 배주위에 고속단정 3척이 불쑥 나타났다.

처음에는 우리 군인들이 탄배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남조선괴뢰해군의 배였다.

우리는 적들을 피하기 위하여 전속으로 배를 몰아갔다.

그러자 적들은 고속단정으로 우리 배의 앞을 막고 뒤에서는 갈구리로 걸어 당기였다.

그는 남조선괴뢰패당의 불법무도한 행위에 의하여 백주에 강제랍치되고 50여일동안이나 갖은 박해를 받으며 《귀순》을 강요당한데 대하여 언급하였다.

적들의 온갖 회유와 기만책동에 굴하지 않고 마침내 꿈결에도 그리던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다고 그는 강조하였다.

이어 기자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있었다.

조선중앙통신사 기자 : 남조선괴뢰들이 우리 배를 강제랍치하고도 마치 표류되여 남측수역으로 내려온것을 《구조》한것처럼 여론을 내돌리고있는데 그에 대해 말해주었으면 한다.

해주시 신광협동농장 농장원 리은구 : 우리 배의 목적지는 해주만의 대수압도부근에 있는 어장이였다.

이곳은 밀물때면 바다물에 잠기고 썰물때면 드러나군 한다.

거리상으로 볼 때 동포리에서 어장이 있는 대수압도까지는 12㎞정도인데 거기까지 가자면 27HP의 우리 배로는 2시간정도 걸린다.

연평도는 해주에서 남쪽으로 40㎞정도 떨어져있다.

우리 배가 출항한 강령군 동포리에서 연평도까지 간다고 하면 4시간이상 걸릴것이다.

우리 배가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적들의 고속단정과 맞다든 수역까지 실제로 항해한 시간을 계산해보면 2시간 30분밖에 안된다.

더우기 9시 30분경부터는 짙은 안개속에서 얼음장을 피하며 갈지자(之)로 항해하였다.

이렇게 놓고볼 때 우리 배가 아무리 썰물을 따라 나갔다고 해도 11시 30분까지는 연평도수역은 물론이고 괴뢰패당이 떠벌이는 《북방한계선》까지 갈수 없다.

이것은 명백히 우리 배가 남측해상으로 내려가지 않았으며 적들이 안개가 자욱한 틈을 리용하여 우리측 수역에 침입하여 우리를 랍치하였다는 증거로 된다.

우리 배를 강제로 멈춰세운 적들은 무작정 배에 뛰여올랐다.

배의 위치가 공화국의 수역이라는것을 강하게 들이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적들은 총탁과 곤봉으로 우리들을 사정없이 구타하였으며 조타실의 출입문과 창문들을 들부시였다.

배를 강제로 점거한 다음 적들은 배머리를 남쪽방향으로 돌려 30분동안 끌고갔다.

그곳에는 이미 여러척의 괴뢰해군함정들이 몰켜있었다.

이것은 여러척의 함정들과 특수부대로 랍치집단을 무은 괴뢰패당이 우리 배를 감시하다가 안개가 낀 기회를 리용하여 강제로 랍치하려 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괴뢰패당이 우리 배가 당시 모래밭에 걸려있었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거짓말이다.

우리 배는 랍치되기 전까지 기관이 정상이였으며 수심이 20m이상 되는 바다우에 떠있었다.

모든 사실은 괴뢰패당이 명백히 우리측 수역에 불법침입하여 평화적어선과 주민들을 백주에 강제랍치하였다는것을 실증해준다.

통일신보사 기자 : 국제법과 인도주의원칙에 따라 해상에서 재난을 당한 배들을 발견하면 구조한 후 필요한 방조를 주어 조속히 돌려보내는것이 관례로 되고있다.

그러나 남조선괴뢰패당이 표류도 아니고 조난당한것도 아닌 우리 배를 강제랍치하였을뿐아니라 주민들까지 억류시켜놓고 치떨리는 반인륜적만행을 감행한데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해주시 석천수산협동조합 로동자 박문식 : 적들의 야수적만행은 배를 랍치할 때 적수공권인 우리에게 무지막지한 폭행을 가한 사실을 놓고도 잘 알수 있다.

적들은 다짜고짜 우리 배에 뛰여올라 쌍욕을 퍼부으면서 조타실문을 마스고 창문을 깨버렸다.

우리가 이에 항거하자 곤봉과 총탁으로 무자비하게 때렸다.

해주시 부용중학교 졸업생 변경일 : 설명절기간에 바다구경을 하고싶어 어머니와 함께 배를 타고나갔다가 당한 적들의 만행을 절대로 잊을수 없다.

놈들은 갑판에 서있던 나를 곤봉으로 때려 강제로 꿇어앉히고 일어나지 못하게 두팔과 어깨, 머리를 마구 내리눌렀다.

그리고 선장에게는 왜 배를 세우지 않았는가고 고함을 지르면서 사정없이 차고 때렸다.

그때 눈에는 살기가 번뜩이고 우리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돌아치는 놈들의 몰골은 마치 해적의 무리같았다.

해주시 석미동 최춘영 : 괴뢰군병영의 3개 방에 우리를 가두어넣은 놈들은 창문들을 모두 가리워 밖을 내다볼수 없게 하였다.

《조사》를 받으러 오갈 때와 병영밖을 벗어날 때에는 눈을 싸맸다. 지어 위생실에 갈 때에도 요원들이 거마리처럼 붙어다녔다.

5~7명이상의 요원들과 병졸들을 배치하여 교대로 감시하게 하고 서로 만나 말도 못하게 하였다.

이뿐이 아니다.

적들은 그 무슨 《조사》놀음을 벌려놓고 제대로 응하지 않는다고 하여 멱살을 쥐고 턱을 올리치며 쌍욕을 퍼부었다.

녀자들의 방에 들어와서는 말을 안들으면 모두 홀딱 벗겨 바다물에 처넣고말겠다고 성적공갈도 서슴지 않았다.

후에 안 일이지만 공화국에서는 우리가 적들에게 끌려간 직후부터 괴뢰당국에 전화통지문을 보내 송환을 요구했고 3월초에는 31명전원의 무조건송환을 요구하는 가족들의 편지와 영상편집물도 보냈다고 한다.

그러나 적들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북에서 너희들을 받지 않겠다고 한다.》고 하면서 허튼 나발만 불어댔다.

민주조선사 기자 : 남조선괴뢰패당이 우리 주민들에게 감행한 용납 못할 반인륜적만행은 지금 온 민족의 치솟는 격분을 자아내고있다. 남조선괴뢰패당이 부당한 구실밑에 우리 주민들을 억류시켜놓고 《귀순》공작놀음을 악랄하게 벌린데 대하여 말해주었으면 한다.

해주시 석미동 형순복 : 적들은 우리를 랍치한 첫날부터 《전향》공작놀음을 벌려놓았다.

우리를 인천의 어느 한 괴뢰군병영으로 끌고간 적들은 한사람씩 끌어내여 심문하였다.

나를 심문한자는 남쪽에 남겠으면 자기가 불러주는대로 쓰고 지장을 찍으라고 하는것이였다.

나는 《우리는 랍치되여 여기까지 끌려왔다. 말같지 않는 소리는 걷어치우고 하루빨리 가족이 기다리는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들이대였다.

그러자 그자는 《나의 임무는 한 명이라도 여기에 떨구는것이다. 그래야 나도 월급을 타먹고 살지 않느냐.》고 공공연히 떠벌이였다.

저들의 비렬한 음모를 폭로해서인지 그자는 다음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놈들은 얼리기도 하고 강박도 하면서 우리를 어떻게 하나 《귀순》시켜보려고 갖은 음모를 다 꾸미였다.

그때 우리를 취급한 놈들은 모두 명패를 목에 걸고있었는데 후에 알고보니 《귀순》공작을 위해 정보원과 통일부 등에서 파견된자들이였다.

명패의 뒤면에는 우리에게서 정보를 수집하고 《귀순》공작을 수행하는 《임원》이라고 씌여져있었다.

모든 사실은 《표류경위조사》라는 명목으로 벌린 놈들의 심문놀음이 우리를 어째보려는 추악한 《귀순》공작이였다는것을 보여준다.

해주시 석미동 리향화 : 괴뢰패당은 우리를 《귀순》시키려고 비렬하게 책동하였다.

강제랍치되여 끌려갔던 우리 들중에는 부부간, 모자간을 비롯하여 가족들도 있었다.

나도 남편과 함께 억류되였는데 놈들은 우리가 부부간이라는것을 알고 비렬한 《귀순》공작을 벌렸다.

이러한 책동은 억류된 모든 가족들을 상대로 감행되였다.

놈들은 랍치된 어머니와 아들을 따로 불러내서는 《아들이 여기에 남겠다고 했는데 어머니도 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고 아들에게는 《어머니가 남겠다고 했으니 아들도 응당 떨어져야 한다.》고 하면서 혈육간에 리간을 조성하여 어떻게 하나 《귀순》시켜보려고 하였다.

해주시 석미동 리명옥 : 적들은 있지도 않는 사실을 날조해가지고 공화국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우리의 신념을 허물어보려고 발악적으로 책동하였다.

적들은 《몇년전에 20여명의 북의 주민들이 표류되여 남쪽에 왔다갔는데 북에서 그들을 다 추방시켰다고 한다. 그러니 가지 말고 여기에 남으라.》고 하였다.

우리가 판문점으로 떠나기 전날에도 놈들은 《북에서 너희들이 모두 <귀순>한것으로 보고 데려가지 않겠다고 한다. 그러니 여기에 남는 길밖에 없다.》고 나발을 불어댔다.

그때 우리의 마음속에는 수십년동안 적들의 악랄한 《전향》공작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지조를 지키고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비전향장기수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들처럼 동요하지 않고 《그따위 잡소리로 우리의 신념을 허물어보려는것은 망상이다. 우리는 기어이 장군님품으로 돌아가겠다.》고 웨치면서 놈들과 맞서 싸웠다.

해주화학공장 로동자 김금향 : 적들은 특히 청년들을 상대로 《귀순》공작을 집요하게 벌리였다.

적들은 우리 청년들을 따로 끌어내여 너절한 물건짝을 내흔들며 마음을 흔들어보려고 갖은 술책을 다하였다.

새벽 2시, 3시에 처녀들을 불러내서는 《너희들이 고생하는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느니, 《요구하면 외국류학도 시켜줄수 있다.》느니 하면서 유혹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장군님의 품, 사회주의조국의 품으로 기어이 돌아가려는 우리의 신념과 의지를 꺾을수 없었다.

《평양타임스》 기자 : 남조선괴뢰패당이 31명의 주민들을 전원 돌려보낼데 대한 공화국의 요구를 외면하고 4명의 주민을 아직까지 억류하고있는데 대해 이야기해주었으면 한다.

해주산업건설사업소 로동자 옥성혁 : 이번에 돌아오지 못한 4명은 《귀순》한것이 아니라 강제억류되였다.

적들이 그들을 강제로 떨구기 위해 얼마나 악랄하게 책동하였는가를 보여주는 한가지 사실을 이야기하겠다.

지난 3월 3일 적들이 우리에게 와서 하는 말이 4명은 배를 타고 돌아가고 나머지 27명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된다는것이였다.

우리는 31명이 다같이 배를 리용하여 돌아가게 해줄것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놈들은 송환절차는 이미 북과 《합의》하였기때문에 이를 따라야 한다고 하면서 북에 가면 만나게 된다고 하였다.

그후 4명을 끌어내서는 눈을 싸매고 어디론가 끌어갔다.

후에 우리는 그들의 행처를 물었지만 놈들은 이미 해주에 가있다고 하면서 송환되는 날까지도 만나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절대로 《귀순》할 사람들이 아니며 사랑하는 부모처자와 고향을 버릴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이 《귀순》하였다는 남조선괴뢰패당의 말을 믿지 않는다.

남조선괴뢰들은 우리 주민들을 강제로 붙잡아두고 반공화국모략책동에 리용하지 말며 지체없이 공화국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해주시 석미동 최춘영 : 나는 적들에게 억류되여있은 기간 그들과 함께 있었기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들은 역적이 되지 말고 위대한 장군님의 품으로 하루빨리 찾아가자고 말하군 하였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귀순》할수 있겠는가.

조선중앙방송위원회 기자 : 남조선으로 끌려가 50여일간 억류되여있은 기간 가장 강렬하게 느낀것이 무엇인가.

해주시 석미동 라혜영 : 고향에 있는 부모형제들이 그리웠다.

그중에서도 강렬하게 느낀것은 경애하는 장군님의 품, 고마운 사회주의조국의 품을 떠나서는 순간도 살수 없다는것이였다.

우리는 2월의 명절을 적구에서 맞이하였다.

여느때같으면 경축의 노래와 춤으로 들끓었을 2월의 명절을 적들에게 억류된 상태에서 맞고보니 우리의 마음은 괴로왔다.

하지만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의 탄생기념일을 예전처럼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경축하기로 하였다.

당원들은 적들의 눈을 피해 2월의 명절을 뜻깊게 맞이하기 위한 문제를 토의한 다음 그 내용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2월 16일 새벽 우리는 어버이수령님의 초상휘장을 정중히 모시고 위대한 장군님의 건강을 축원하여 삼가 인사를 드리였다.

그리고 적들이 보란듯이 그리움의 노래들을 격정속에 부르고 춤도 추면서 명절을 경축하였다.

해주시 신광협동농장 농장원 리은구 : 적들의 악랄한 《귀순》공작을 물리치고 신념을 지킬수 있은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품으로 기어이 돌아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심장을 불태웠기때문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품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수 없으며 사회주의 내 조국이 제일이라는것을 이번에 적구에서 페부로 절감하였다.

우리는 앞으로도 그 어떤 시련과 난관이 가로놓인다 해도 오직 위대한 김정일장군님만 굳게 믿고따르면서 살며 일해나가겠다.

기자회견을 마치며 주민들은 불후의 고전적명작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의 노래를 절절히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