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27)

 

침몰하는 경제, 진보정치가 구조한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위기의 역사를 살펴보아야 하는 까닭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을 흔히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이라 한다. 원래 경제성장은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물질의 양과 질이 증대개선되는 복잡다단한 과정이지만, 자본주의체제의 경제성장 이면에는 또 다른 현실이 있다. 그것은 자본들끼리의 상호경쟁이 치열하게 격화되는 것이다. 자본들끼리의 상호경쟁이 격화되면 자본이 집적되고 집중되며, 자본의 집적과 집중은 생산을 거의 무제한적으로 확대시킨다. 생산이 이처럼 무제한적으로 확대되는데 비해, 소비는 일정한 수준에 한정되므로, 필연적으로 생산과 소비의 모순이 발생한다. 이러한 생산과 소비의 모순에 재정파산위기가 더해지면, 경기침체(stagnation)와 물가상승(inflation)이 동시에 촉발되는데, 이것을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라 한다.

이전에는 없었던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내부충격이 자본주의시장경제에 처음 일어난 때는 수렁에 빠진 베트남전쟁에 들어간 천문학적인 비용이 미국의 국가재정을 파산위기에 몰아넣었던 1970년대 초였다. 그 당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중동발 세계 석유위기(global oil shock)가 일어나자 자본주의시장경제는 1973년부터 1980년까지 기간에 파국적 위기를 겪었다.

파국적 위기에 빠져 허덕이는 자본주의시장경제를 구하기 위해 선택한 궁여지책이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인데, 신자유주의가 가져다준 것은 비정규직 양산, 실업공포 만연, 빈부격차 확대, 부채 폭증, 생활물가 상승, 민생 피폐화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현실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시장경제의 파국적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그 위기를 더욱 심화시켜 결국 회복하기 힘든 치명상을 입히고 말았다.

신자유주의의 파산위기는 세 차례나 자본주의시장경제를 강타하였다. 1990년에서 1991년 기간에 미국 금융시장의 붕괴위기, 국제유가 급등, 1차 걸프전쟁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제1차 파산위기가 닥쳤고, 2001년에서 2002년 기간에 이른바 '닷컴' 거품의 붕괴, 9.11 테러 충격, 뉴욕 금융시장의 회계부정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제2차 파산위기가 닥쳤고, 2007년 4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파산사태로부터 시작되어 2008년 9월 미국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절정에 이른 제3차 파산위기가 닥쳤다. 제3차 파산위기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멈추지 않고 날로 심화되는 중이다.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이처럼 연속적으로 파산위기에 빠진 것을 두고, 우파 이론가들은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일시적 불안정을 겪고 있는 것이므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선동일 뿐이다. 1970년대 이후 40년 동안에 일어난 위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마지막 궁여지책으로 택한 신자유주의마저 파산위기를 몰고 왔으니 이제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살 길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존재근거를 상실한 자본주의시장경제는 절망과 파국의 심연으로 천천히 침몰하는 중이다.


침몰하는 한국 경제

누구나 알고 있듯이, 세계 각국의 자본주의시장경제는 균일하게 생성되고 균등하게 발전되어온 것이 아니다. 나라마다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생성원인은 서로 다르며, 그것의 발전도 매우 불균등하다. 따라서 당연히 자본주의시장경제의 파국도 동일하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먼저 급격하게 파국에 빠지는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있을 것이고, 나중에 점차적으로 파국에 빠지는 자본주의시장경제가 있을 것이다. 전자는 현상유지력이 비교적 약한 자본주의시장경제이고, 후자는 현상유지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자본주의시장경제다.
 
이 문제는 사회성격론으로 해명된다. 식민지반자본주의 성격을 지닌 사회의 자본주의시장경제는 현상유지력이 약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급속히 파국에 빠질 것이고, 독점자본주의 성격을 지닌 사회의 자본주의시장경제는 현상유지력이 강하기 때문에 나중에 점차적으로 파국에 빠질 것이다. 이를테면, 전형적인 식민지반자본주의 성격을 지닌 한국의 자본주의시장경제는 가장 먼저 급속히 파국에 빠질 것이고, 전형적인 독점자본주의 성격을 지닌 미국의 자본주의시장경제는 나중에 점차적으로 파국에 빠질 것이다.
 
한국 경제가 다른 나라 경제보다 먼저 파국에 빠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은, 좌파의 정치적 선동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로 확인된다. 객관적 사실은 아래와 같이 설명된다.

지금 세계 각국 경제전문가들은 시장경제의 파산위기를 겪고 있는 위태로운 6개국을 주시하고 있는데, 한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이 그 나라들이다. 그런데 위태로운 6개국 가운데서도 한국이 가장 위태로운 지경에 있다. 그 까닭은 이렇다.
 
한국 경제는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쓰러졌는데,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닥쳐왔을 때는 1997년보다 적은 충격을 받았다. 이것은 한국 경제가 1997년 이후 기업구조조정을 강행하여 그만큼 현상유지력을 강화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이명박 정부가 파산위기를 은폐하였기 때문이다. 2011년 2월 23일 김태동 교수가 미국 재무부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민중의 소리>와 대담한 기사에 따르면, 2008년 7월부터 2009년 2월까지 이명박 정부는 외환보유액의 22%에 이르는 약 570억 달러와 선물환 310억 달러를 투입하여 무너지는 환율을 간신히 방어하였고,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또 다시 긴급구제금융을 받는 것이 국가신용도를 폭락시키는 일이라서, 하는 수 없이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로부터 300억 달러에 이르는 긴급구제금융을 조용히 받아 파산위기를 간신히 넘겼다고 한다.

이것은 한국 경제가 1997년 외환위기와 2003년 카드대란을 겪고 나서도 2008년에 또 다시 금융위기에 빠졌음을 말해준다. 그처럼 거듭하여 파산위기에 빠지는 경우는 전 세계에서 한국 경제가 유일하다. 불행한 일이지만, 이것은 시장경제의 파산위기에 처한 다른 5개국보다 한국에서 먼저 경제파국이 일어날 것임을 예고한다.
 
침몰하는 한국 경제를 구조하기 위해 제시된 우파적 대안이 중소기업 회생안이다.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이란 종업원이 300명 미만이거나 자본금이 80억원 이하의 기업을 말하는데,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중소기업이 전반적으로 파산위기에 빠져있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 입증된다. 이를테면 2010년 12월 13일 한국무역협회가 발표한 보고서 '중소기업 수출 비중 하락과 대응전략'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수출액 가운데 중소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3년에 53.1%이었는데 2008년에는 38.8%로 떨어졌으며, 2000년에 수출액 100만 달러 이하의 기업 24,000여 개의 수출실적을 추적했더니 2009년에 현상을 유지한 소기업은 7,411개밖에 되지 않아 소기업 생존율이 30%로 나타났다.
 
우파적 대안으로 제시된 중소기업 회생안이란 파산위기에 빠진 중소기업에게 정부가 정책자금을 싼 이자로 빌려주어 그들을 회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채무가 급증하는 재정위기상황에서 정부가 중소기업에게 빌려주는 정책자금의 한계는 너무 뻔하다. 한국조세연구원에 따르면, 국가채무는 2008년 309조원, 2010년 407조1,000억원이었고, 2012년 474조7,000억원, 2014년 5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되는데, 정부만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이 아니라, 기업과 가계도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다. 2009년 말 기준으로 정부, 기업, 가계의 금융부채 총액은 2,447조4,000억원에 이르렀다. 말하자면 한국 경제는 지난 10년 동안 빚을 얻어 '최후의 잔치'를 벌여온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 회생을 위한 정책자금을 얼마나 동원할 수 있겠는가. 우파적 대안은 해결책이 아니다.


진보정치가 구조한다

경제파국이 한국에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까닭은, 한국 자본주의체제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식민지반자본주의 성격을 지녔으므로 경제부문에서 대미예속성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대미예속성은 통계적으로 입증된다. 이를테면,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ESCAP)는 2008년 3월 27일에 발표한 보고서 '2008년도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 조사'에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고 달러화 약세가 더욱 심화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한국, 대만, 싱가포르가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한국 경제와 마찬가지로, 대만 경제와 싱가포르 경제도 대미예속성이 심화되어 있으니, 그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또한 2008년 4월 3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미국의 경제부진과 한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 포인트 내려가면 1분기 정도의 시차를 두고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0.83% 포인트 떨어지고, 한국의 수출 증가율은 1.8% 포인트나 떨어진다. 우파 이론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이른바 '세계화 시대'에 흔히 일어나는 동조현상인 것처럼 가볍게 보아넘기지만, 진보정치의 시각으로 보면 그러한 현상은 명백하게도 한국 경제의 대미예속성을 드러내는 현상인 것이다.
 
물론 중국 경제와 미국 경제 또는 일본 경제와 미국 경제 사이에서도 위와 같은 동조현상이 나타나지만, 미중 경제관계나 미일 경제관계에 존재하는 상호의존성과 한미 경제관계에 존재하는 대미예속성은 전혀 다르다. 똑같은 동조현상이 나타난다고 해서, 상호의존성과 예속성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오류다.
 
그런데 우파 이론가들은 삼성, 현대, 포스코 같은 대기업들이 국제시장에서 미국의 세계적인 대기업들과 당당히 겨루고 있는 판이므로, 한국 경제의 대미예속성은 좌파의 정치선동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대미예속성을 판별하는 기준은 개별기업의 생산력 수준이 어느 정도로 높아졌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경제체제와 미국 경제체제의 관계가 수직적 도급관계인가 수평적 의존관계인가 하는 문제로 결정되는 것이다.

예컨대, 740억달러 재산을 가진 세계 최고 거부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 Hel )이 멕시코 자본가라고 해서 멕시코가 부유한 나라로 될 수 없는 것처럼, 한국의 몇몇 대기업들이 미국의 대기업들과 경쟁할 정도로 고도의 생산력을 가졌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수직적 도급관계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사회적 생산력의 발전과 수직적 도급관계의 예속화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파국적 위기에 빠진 한국 경제가 살 길은 경제부문에서 대미예속성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수직적 도급관계를 철폐하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파국적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낡은 경제체제에 여기저기 미봉책을 들이대는 우파정권의 무능한 땜질처방으로는 어림도 없고, 진보정당이 집권하여 낡은 경제체제의 대미예속성을 청산하는 그야말로 혁명적 경제정책을 강행하는 길밖에 없다. 침몰하는 한국 경제는 진보정치가 구조할 수 있으며, 또 반드시 구조해야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정치부문에서 예속성을 청산하는 것을 자주화라 하고, 경제부문에서 예속성을 청산하는 것을 자립화라 한다. 예속성을 청산하는 정치적 자주화와 경제적 자립화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면, 정치적 자주권을 가져야 경제부문에서 예속성을 청산하고 자립할 수 있는 것이다.
 
경제적 자립화란 낡은 예속경제체제를 개조하여 새로운 자립경제체제를 건설하는 일련의 정치활동을 뜻한다. 자립경제 건설은 진보적 경제정책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적 경제건설노선에 속하는 문제로 된다.
낡은 예속경제체제를 개조하여 새로운 자립경제체제를 건설하려면, 기업경제 자립화, 주요산업 국유화, 민생경제 복지화를 추진해야 한다. 줄여서 표현하면, 경제의 자립화, 국유화, 복지화를 추진한다는 말이다.
 
첫째, 기업경제 자립화란 생산활동에 요구되는 원료, 소재, 부품, 기술의 국산화를 추진하여 경제적 자력을 강화해나가는 것이다. 국내에서 나지 않는 석유 같은 필수불가결한 원료는 불가피하게 외국에서 수입해야 하지만, 외국산 원료의 수요범위를 축소하고 자국산 원료의 수요범위를 결정적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외국산 원료를 쓰지 않는 새로운 생산체제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서는 자립적인 원천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2009년 7월 26일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일본 과학기술진흥기구(JST)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과학기술은 미국, 일본, 유럽의 선진국들의 과학기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뒤떨어졌으며, 어떤 부문에서는 중국보다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조건에서 기업경제 자립화는 불가능하므로, 과학기술의 자립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기업경제를 자립화하는 방도는 기업을 국유화하는 것이다. 기업을 국유화하지 않고 기업을 자립화하는 길은 없다. 명백하게도, 국유화와 자립화는 비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의 지름길이다. 국유기업이라고 해서 반드시 자립화된 것은 아니므로, 자본주의세계시장의 지배권에서 벗어나 자립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전에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논한 것처럼, 현 시기 진보적 민주주의 발전단계에서는 주요산업부문의 대기업을 국유화, 자립화하고, 자립적 중소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당면과제로 나선다.

셋째, 주요산업 국유화는 민생경제 복지화와 맞물려야 한다. 민생경제 복지화와 무관하게 운영되는 중국의 국유기업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기업경제 자립화, 주요산업 국유화, 민생경제 복지화는 진보적 민주주의의 3대 경제강령이며, 자주적 민주정부의 3대 경제건설노선이다. 경제부문의 우리식 사회변혁은 3대 경제건설노선에 따라 수행될 것이다. (2011년 3월 2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