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 단]

이 글에서는 이명박 집권 전, 후 남북관계를 비교 분석으로 「실용」 정부의 대북정책이 국민들의 생명권과 한반도 평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해부하고자 한다.

6.15와 10.4공동선언 시대의 남북관계와 한반도 평화

6.15와 10.4공동선언은 50년 분단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열었다.

2000년 6월 13일 우리 민족은 평양수뇌상봉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역사적인 6.15남북공동발표에서 우리민족끼리 힘을 합치면 통일은 문제없음을 폐부로 절감하였었다.

조국통일의 이정표인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선언을 계기로 교류협력이 양, 질적으로 발전하였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당국자 간 회담은 100여 차례가 넘었으며 채택된 합의서만도 총169건이나 된다.

또 남북 왕래인원은 2000년 7천 986명에서 2007년 15만 9천 214명으로 거의 20배가 증가됐으며 선박 운항은 2000년 2천 73회에서 2007년 1만 1천 891회, 항공기 운항은 19회에서 153회로 크게 늘어났다.

지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정부, 정당을 비롯한 민간인 교류 숫자는 총 2백만명이 넘었다.

유신과 군부독재정권에서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북을 정부, 정당을 비롯한 민간인까지 2백만명 넘게 오갔다는 것은 분단장벽을 허문 일대 사변이 아닐 수 없다.

지난 2000년 6.15공동선언 합의에 기초한 이산가족 상봉모임은 인도주의 차원의 혈맥을 잇는 교류협력의 대표적 사업이었다.

강토가 갈라지면서 친혈육마저 갈라져 지내야 했던 분단의 상처는 6.15공동선언에 의해 치유될 수 있었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 교류협력은 분단 강토의 바닷길, 땅길을 열어냄으로써 분단 장벽을 허문 일등 공신이다.

금강산 관광객의 경우 관광 자체의 의미뿐 아니라 분단으로 금기시된 북녘 땅을 직접 밟음으로써 갖는 민족애도 크게 고취되었다.

사회문화적 교류도 질, 양적으로 발전했다.

예술, 청년, 여성, 학술, 민속, 법률, 언론, 종교 등으로 교류 범위가 확장되었다. 양적 확대는 일회성, 이벤트성 교류에서 차츰 지속적으로 안착되면서 질적 성과로 이어졌다.

지난 시절 국가권력기관 소수의 독점물로 왜곡, 남용되었던 북에 대한 정보가 사회문화적 교류가 확대되면서 올바른 인식으로 바로 잡혔다.

교류협력을 통해 확인된 정보가 국민들에게도 소개됨으로써 이북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높이고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보탬이 되었다.

6.15와 10.4공동선언은 민간통일운동을 활성화시켰다.

6.15공동위원회를 비롯한 다양한 통일운동단체들이 결성되었고 광범위한 교류협력사업을 통해 국민들의 통일의식은 비할 바 없이 높아졌다.

남북 정부가 경협 추진주체로 등장하면서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다.

개성공단으로 대표되는 남북경협은 상호 긴장을 완화하고 화해와 협력 분위기를 촉진시켰다. 그리고 이남의 중소기업 경쟁력 제고 등에 실질적인 보탬을 주었다.

개성공단 생산도 2005년 1천 491만 달러 (18개 입주업체)에서 2009년 2억 5천 647만 달러(117개 업체)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남북 경협 활성화를 위한 철도, 도로 연결사업 또한 교류협력의 중요한 성과로 꼽을 수 있겠다.

6.15와 10.4공동선언은 한반도 평화, 안보 측면에서 상호 신뢰구축과 평화 담보에 이바지하였다.

6.15와 10.4공동선언 합의 이후 남북 장관급 회담 21회, 국방장관급 회담 2회, 장성급 회담 7회, 군사실무회담 35회 등 분단으로 인해 조성된 군사적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당국자간 대화가 지속되었다.

특히 2007년에 합의한 10.4공동선언 3항과 4항에서는 남북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이 마련되었다.

최근 연평도 포격사건에서도 확인되었지만 서해는 한반도 전쟁의 화약고다. 때문에 연평도 사건과 같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남북 간 긴밀한 협조와 대화가 절실하다.

10.4공동선언 3항에서는 연평도 포격사건과 같은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서해를 공동어로수역으로 지정하고 이 수역을 평화수역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과 각종 협력 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문제 등 군사적 신뢰구축조치를 협의하기 위해 군당국간 회담을 개최』하기로 하였다.

4항에서는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정전협정 직접 관련국인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 협력』키로 하였다.

반세기 넘게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군사적 긴장감을 일시에 해소하기란 쉽지 않다. 그나마 6.15와 10.4공동선언이 이행됨으로써 지난날처럼 극도로 악화되었던 군사적 대결과 긴장감은 해소될 수 있었다.

「남북공동선언 부정」, 「대결」과 「파탄」으로
집약된 「실용」정부의 대북정책

집권자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혹은 집권 유지 수단으로 악용했던 정치적 아픔, 『남침』이니 『북풍』이니 주요 정치일정 때마다 색깔논쟁으로 민중을 기만하며 눈가리고 아웅하던 국민 갈등의 아픔이 10년만에 반복되고 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북정책은 6.15와 10.4공동선언 전면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남북 화해협력의 성과를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며 특히 올해 5월 천안함 사건에 따른 대북 교류협력 전면 중단을 골자로 한 대북조치는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내몰았다.

남북 교류협력이 최초로 시작됐던 지난 1988년 7.7공동선언 이전 상황으로 사실상 2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대북정책은 「비핵, 개방, 3 000」이다.

이것은 북에 대한 적대성에 기반을 두고 북 고립 및 굴복 그리고 향후 급변사태 가능성이라는 주관적 희망에 근거한 적대적인 대북정책이다.

「비핵, 개방, 3 000」의 모조품인 「그랜드 바긴」은 『핵 완전폐기를 전제로 북 체제의 안전보장과 국제사회의 지원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호존중과 체제를 인정하는 조건에서 남북관계발전과 평화번영을 이루자는 6.15와 10.4공동선언 정신과는 전면 위배된다. 다시말해 지난 군사독재정권이 취했던 「흡수통일」의 무늬만 바뀐 것이다.

이로 하여 가져온 후과는 참으로 크다.

경제발전의 주요 거점이었던 개성공단은 애초 계획의 20%도 채 달성하지 못하였는가 하면 서해는 전쟁 열풍지대로 변하였다.

이명박 정부 3년의 대북정책 결과는 한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 상황」, 이슈는 「연평도 포격사건」, 교역 「전면 중단」, 민간교류 「전면 금지」, 대북 인도적 지원 「최소화」, 금강산 관광 「폐쇄」, 개성공단 「사실상 폐쇄」, 남북 당국 간 회담 「전망 불투명」, 6.15와 10.4공동선언 이행세력에 대한 「광란적인 공안탄압」, 남북관계는 「대결과 파탄」으로 집약된다.

「실용」정부의 반북대결 정책은 심각한 국민 불안감을 조성시키고 있다.

지난 6월 동아시아 연구원의 국민 안보의식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의 66.7%가 안보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는가 하면 11월 23일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한국사회 여론연구소가 만19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전쟁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가 60.6%, 연평도 해결 방안으로는 『남북 당사자가 대화와 협상으로 해결해야 한다』가 59.3%로 드러났다.

국민여론 결과는 지난 이명박 정부 3년의 대결적인 대북정책이 국민 불안감을 가중시켰으며 상호 존중과 대화로 남북관계를 해결하길 바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현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출로는 6.15와 10.4공동선언 이행뿐이다.

상호 존중과 대화의 출로는 이미 마련되어 있다.

바로 6.15와 10.4공동선언이다.

문제는 6.15와 10.4공동선언 이행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면서 반북대결책동에 광분하고 있는 현 정부이다.

일촉즉발의 전쟁위험이 가중되고 있는 요즘 현 정부는 하루라도 빨리 6.15와 10.4공동선언 정신을 존중하고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의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