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13)

 범야권 정당연합과 진보대통합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길은 정해졌다

여론지지율이 5%를 밑도는 정당이 언젠가는 집권할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감에 젖어있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민주노동당의 단독집권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건에서 집권역량을 강화하는 정치, 조직적 사업이 요구된다. 한반도 정세를 살펴보면, 그 요구는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절실하고 시급한 것이다. 이 요구를 충족하는 문제의 핵심은 집권역량을 강화하는 정치, 조직적 사업을 어떻게 밀고 나갈 것인가 하는 방법론에 있다.
 
민주노동당이 선택할 방도는 두 가지다. 한 가지 방도는 단독으로 집권역량을 강화하는 독자강화다. 다른 한 가지 방도는 다른 정당들과 연합하여 집권역량을 강화하는 정당연합이다. 이 두 가지 방도 가운데서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우월한 방도라는 점은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여론지지율이 5%를 밑도는 정당에게 단독존립은 강화는커녕 고립을 자초하는 함정이고, 그와 반대로 정당연합은 고립에서 벗어나는 활로다. 민주노동당의 길은 단독존립이 아니라 정당연합이다. 길은 정해졌다.
 
그런데 다른 정치활동에서도 그러한 것처럼, 정당연합을 실현하는 정치, 조직적 사업에서도 좌우경적 오류가 나타나게 된다. 정당연합을 선거연합전술로 협소하게 규정하려는 것은 우경적 오류이고, 정당연합을 야권단일야당 건설로 급진전시키려는 것은 좌경적 오류다.
 
지난 시기 경험한 바와 같이, 선거연합전술로는 전략적 목표를 쟁취할 수 없다. 집권역량을 강화하는 정치, 조직적 사업은 선거국면에서 추진하다가 선거국면이 지나면 그만두는 전술목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하는 전략과업이다.
 
다른 한 편, 야권단일야당을 건설하려는 급진적 전략은 매우 복잡다단한 정치정세를 심사숙고하지 않고 일단 헤쳐 모여보자는 식의 위험한 발상으로 보인다. 정작 당사자들인 다섯 야당들은 헤쳐 모일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데, 답답함을 참지 못한 '우국지사들'이 헤쳐 모이자고 하면, 실현가능성이 없는 공허한 전략과업을 놓고 설왕설래하다가 집권기회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정당연합을 실현하는 데서 좌우경적 오류를 피하면, 가장 합리적인 방도는 정당연합체 결성이다. 다섯 야당들이 각자 독자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공동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당연합체를 결성하는 것이다. 현 시기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말하는 공동전선의 의미는 곧 정당연합체 결성이다. 우리의 진보정치는 공동전선 구축으로 실현할 수 있으며, 우리의 공동전선은 정당연합체 결성으로 실현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우파정권과 맞서 싸우며 각기 활로를 찾고 있는 다섯 야당들은 분산된 역량을 각개전투에 투입하는 오류에서 벗어나,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주체적으로 대응할 범야권 정당연합체를 하루빨리 결성해야 한다. 범야권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앉힌 까닭은, 다섯 야당들만 정당연합체에 결집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견해를 같이하는 각계층 비정당 정치세력들도 결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2012년 총선과 대선에 주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민주노동당이 가야 할 길은 범야권 정당연합체 건설로 정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진보대통합을 실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범야권 정당연합체를 결성하는 경우, 민주노동당이 또 다른 정치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당세가 약한 민주노동당이 범야권 정당연합체 안에서 자기의 정치적 요구를 관철하기 힘들고, 당세가 강한 민주당에게 휘둘리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구심이 생기는 것이다. 냉혹한 정치현실을 살펴보면, 그것은 기우가 아니다.
 
그런 의구심을 가시게 하는 방도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진보대통합을 실현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건설하고, 그 진보정당이 범야권 정당연합체에 참가하는 것이다. 물론 진보대통합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만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에 뜻을 같이하는 각계층 정치세력이 동참하게 된다.

지금으로서는, 진보대통합을 실현하고 나서 범야권 정당연합체 결성에 참가하는 것이 민주노동당이 선택할 가장 모범적인 답안이다. 그래서 지금 민주노동당은 진보대통합 실현에 힘쓰는 중이다.
 
그런데 그와 달리, 진보신당은 진보대통합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진보신당을 이끄는 독자파가 그런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오래 전부터 진보신당 안에서 통합파와 독자파의 당내 논쟁이 벌어졌지만, 통합파는 당내 의견집단도 아직 구성하지 못하고, 겨우 제안자 모임을 시작한 단계다. 진보신당의 통합파가 독자파와의 논쟁에서 승리할 것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이 힘든 것만큼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도 힘들다.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의 관계에는 영도권 갈등문제가 놓여있긴 하나 두 당의 정치이념이 충돌하는 것은 아닌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관계에는 영도권 갈등문제가 놓여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당과의 관계에서나 대북관계에서도 두 당은 정면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하는데,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이 제기한 진보대통합을 끝내 외면하면 아무 것도 실현되기 힘들다. 지금으로서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적 사회단체들로부터 압박을 받은 진보신당이 대세에 밀려 진보대통합에 나서는 길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식 변혁담론에 따르면, 민주노동당이 추진하는 진보대통합은 진보적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매우 중대한 당건설 과업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당건설 과업은 민주주의변혁의 요구와 이익에 맞게 추진되어야 한다. 만일 2012년이라는 격변기를 눈 앞에 두고 당건설을 부실하게 졸속으로 추진하면, 그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진보대통합을 추진할 때, 아래와 같은 문제를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민주노동당에게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과제가 너무 벅차다. 2011년 안에 진보대통합을 실현하고 범야권 정당연합체를 건설하는 것이 과연 물리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일반 상식으로 판단하면, 민주노동당이 앞으로 1년 안에 진보대통합 실현과 범야권 정당연합체 건설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2010년에 진작 진보대통합을 실현하였어야 하는데, 때를 놓친 것이다.

둘째, 민주노동당은 진보대통합 실현과 범야권 정당연합체 건설을 일관되고 연속적인 하나의 흐름으로 인식하는 데 반해, 진보신당은 그 양자를 단절시킨다. 지금 진보대통합을 외면하는 그들이, 진보대통합이 실현되는 경우 범야권 정당연합체 건설로 태도를 바꿀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보대통합을 실현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하였다 해도, 범야권 정당연합체에 참가하는 문제를 놓고 새로운 진보정당은 극심한 내홍을 겪을 것이다. 이 난관을 뚫고 나갈 방도를 예비하지 못하고, 일단 진보대통합만 실현해놓으면 만사형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발상이다.

셋째, 새로운 진보정당이 출범한 경우, 그 정당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범야권 정당연합체에 참가하는 문제를 놓고 극심한 내홍을 겪으면서 여론지지율을 과연 어느 정도 끌어올릴 수 있을까? 국민대중이 내홍에 빠진 새로운 진보정당을 지금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 이상으로 지지하게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는다.
 
민주노동당이 힘들고 어려운 진보대통합에만 열중하다가 때를 놓쳐 범야권 정당연합체를 결성할 기회까지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누구나 공감하는 것처럼, 민주노동당은 진보대통합 실현과 범야권 정당연합체 건설에서 모두 실패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극력 피해야 한다. 생각하기조차 싫은 이야기로 들리지만, 만일 민주노동당이 그 두 가지 과업에서 모두 실패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게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려면, 진보대통합을 추진하는 시한을 미리 정해놓고 추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만일 시한을 넘겨, 어느 하나를 불가피하게 포기할 수밖에 없는 마지막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경우, 진보대통합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범야권 정당연합체 건설에 매진하여야 할 것이다.


두 가지 커다란 난제

범야권 정당연합체 결성은 한나라당 재집권과 민주당 단독집권을 저지하기 위해서 민주노동당이 실현해야 할 최고 정치과업이다.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 재집권과 민주당 단독집권을 모두 저지할 수 있는 방략은 범야권 정당연합체 결성밖에 없다.
 
그런데 진보대통합을 실현하는 것이 힘들고 어려운 것만큼, 범야권 정당연합체를 결성하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두 가지 커다란 난제가 가로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첫째, 당세의 불균형이다. 당세가 엇비슷해야 정당연합체를 결성하는 데서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데, 민주노동당의 당세와 민주당의 당세는 너무 큰 차이를 보인다. 범야권 정당연합체 결성과정에서 민주당은 제1야당의 기득권을 강하게 요구하면서 패권주의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불과 몇 달만에 당세를 크게 강화하여 야당들 사이의 당세 불균형을 개선할 여지는 보이지 않는다. 범야권 정당연합체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당의 패권주의를 견제하기 위한 여러 가지 전술을 택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과 전농 같은 진보적 사회단체들로부터 가시적 지원을 받는 전술도 있고, 민주당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국민참여당과 공조하는 전술도 있다. 견제전술은 그 밖에도 더 찾아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민주당의 패권주의를 견제하여야 범야권 정당연합체 결성공동전선전략에 맞게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둘째, 정치이념적 상충성이다. 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변혁(democratic revolution)을 추구하는 중도좌파정당이고,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은 민주개혁(democratic reform)을 추구하는 중도우파정당이다. 범야권 정당연합체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의 좌파적 성향과 민주당 및 국민참여당의 우파적 성향이 갈등을 일으킬 것이다. 예를 들면, 신자유주의를 대하는 중도좌파정당의 태도와 중도우파정당의 태도는 상충적이어서 갈등요인으로 되었다.
 
이러한 정치이념적 상충성이 범야권 정당연합체 결성을 가로막지 않도록 방지해주는 중요한 요인은,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한나라당 재집권을 저지하려는 정치적 요구가 서로 같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범야권 정당연합체는 한나라당 재집권 저지라는 정치적 요구의 공통성에 의거하여 결성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2012년 단독집권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해서 범야권 정당연합체에 대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지만, 민주당에 대한 여론지지율이 지진부진한 상태가 계속될수록, 한나라당 재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단독집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범야권 정당연합체를 결성해야 한다는 민주당 내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또한 정치이념적 상충성이 범야권 정당연합체 결성을 가로막지 않도록 방지해주는 다른 한 가지 요인은, 복지사회담론이다. 복지사회담론이라는 공통분모 위에서 범야권 정당연합체를 결성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 일각에서 복지사회담론을 제기하는 것은 범야권 정당연합체 결성을 고무해주는 현상이다. 남측에서 민생경제파탄과 빈부격차가 날로 극단화되는 때에 중도우파정당들도 그 동안 외면하였던 복지사회담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민주노동당의 복지사회담론과 민주당 및 국민참여당의 복지사회담론은 각론적 차이가 있지만, 총론적 공통성을 중심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복지사회담론의 총론적 공통성을 중심에 두고 범야권 정당연합체의 공동강령을 이끌어낼 수 있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국민대중에게 제시할 정치구호를 작성할 수 있다.
 
당세의 불균형과 정치이념적 상충성이 심해도, 범야권 정당연합체를 결성하는 데서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추진주체의 의지와 결단과 노력이다. 지금 민주노동당에게 필요한 것은 그러한 의지와 결단과 노력이다. (2010년 12월 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