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9)
 
우리식 변혁담론의 당건설 이론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당건설은 사회변혁 승리의 열쇠다

 
낡고 썩은 세상을 새롭고 올바른 세상으로 바꾸는 사회변혁은 누구의 과업일까? 물어보나 마나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민중의 과업이라고 나온다. 사회변혁의 주체를 민중이라고 정의한 명제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다만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그 명제를 좀 더 다듬는다면, 사회변혁의 주체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라고 재정의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회변혁의 주체를 민중이라고 정의한 명제만 가지고서는 우리식 변혁담론을 깊이있게 전개할 수 없어서, 그 명제에 대한 이론적 해명이 더 요구된다는 점이다. 사회변혁의 주체를 민중이라고 정의한 명제를 이론적으로 해명할 때 첫 번째로 나오는 물음은, 사회변혁의 핵심역량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만일 사회변혁의 핵심역량이 무엇인지 이론적으로 해명하지 못하면, 사회변혁의 주체를 민중이라고 정의한 명제만 남게 되는데, 그 명제만 가지고서는 사회변혁은커녕 아무 것도 이뤄내지 못한다.
 
사회변혁을 밀고 나가는 핵심역량은 무엇일까? 우리식 변혁담론은 사회변혁강령을 추구하는 정당이 사회변혁의 핵심역량이라고 말한다. 이 말을 다시 정리하면, 사회변혁강령을 추구하는 정당이 사회변혁을 밀고 나간다는 명제가 성립된다. 그러므로 사회변혁의 실현여부를 좌우하는 사활적 요인은 사회변혁강령을 추구하는 정당에게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은 우리식 변혁담론에서 당건설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웅변적으로 말해준다.

 
만일 변혁담론의 당건설 이론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거나 또는 알고 있더라도 잘못 알고 있으면, 사회변혁이 요구하는 당을 건설할 수 없고, 또한 사회변혁이 요구하는 당을 건설하지 못하면, 사회변혁도 실현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당건설을 사회변혁 승리의 열쇠라고 표현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우리식 변혁담론은 민주주의변혁에 대한 담론이므로, 그 담론에서 논하는 당건설 이론은 당연히 민주주의변혁의 당건설 이론이다. 민주주의변혁의 핵심역량인 당은 어떻게 건설되는 것일까? 민주주의변혁의 당건설 문제를 새로운 눈높이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변혁과 당건설 문제

 
민주주의변혁을 포함한 모든 유형의 사회변혁을 밀고 나가는 핵심역량은 전위정당(vanguard party)이다. 전위정당과 대중정당(mass party)은 서로 대칭되는 개념이다. 전위정당이 사회변혁의 핵심역량으로 되는 까닭은, 전위정당이야말로 사회변혁강령을 추구하는 가장 강력한 정치조직이기 때문이다. 전위라는 말 자체가 선봉, 선구, 선진이라는 뜻을 지닌다. 전위정당이 사회변혁의 핵심역량이라는 논지는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명백하다.

 
그렇다면, 여러 유형의 사회변혁들 가운데서 특정한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가는 핵심역량은 무엇일까? 위의 설명에 따르면, 민주주의변혁의 핵심역량도 예외가 아니므로 당연히 전위정당이 그 핵심역량으로 된다. 우리식 변혁담론은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한다고 단언한다. 이것은 전위정당을 건설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주의변혁의 실현여부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전위정당 건설인 것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가는 전위정당이 구체적으로 어떤 당인가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가는 전위정당의 지위와 성격, 역할과 임무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현실 속에 존재하는 형형색색 정당을 정치성격으로 분류하면, 좌파정당, 중도정당, 우파정당으로 대별되는데, 전위정당의 지위는 좌파정당의 성격과 일치한다. 전위정당의 지위와 좌파정당의 성격을 가진 정당은 어떠한 역할과 임무를 수행하는 것일까? 그런 정당의 역할은 사회주의강령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런 정당의 임무는 사회주의변혁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전위정당이란 곧 좌파 전위정당을 뜻한다.

 
그런데 이처럼 좌파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간다고 정의하는 경우, 민주주의변혁과 사회주의변혁의 차별성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다시 말해서, 두 단계 사회변혁론이 무의미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의문에는 두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얽혀있다.
 
첫째, 좌파 전위정당을 용인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좌파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민주주의변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닐까? 또한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을 요구하지 않는 오늘의 현실에서, 좌파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민주주의변혁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뜻이 아닐까?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사회주의라는 말을 공개적으로 꺼내기만 해도 잡아가는 만고의 악법 '국가보안법'이 존치되는 한, 우리 사회에서 좌파 전위정당은 존재할 수 없다. 또한 장차 우리 사회에서 정치적 민주주의 질서가 공고화되어 만고의 악법이 철폐되거나 사문화된다고 해도, 우리 사회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의 출현을 여전히 외면한다면, 좌파 전위정당을 건설할 수도 없고 또 건설해서도 안 된다.

 
만고의 악법이 철폐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의식이 전위정당의 출현을 요구할만큼 급진화된 상황에서, 오직 그런 변혁적 상황에서만 좌파 전위정당은 건설되는 것이다. 그런 정세가 조성되지 않았는데도, 막무가내로 좌파 전위정당을 건설한다면 그것은 조급증에 사로잡힌 급진주의자들이 정치적 고립과 실패를 자초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만고의 악법이 존치되어 있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의 출현을 외면하는 오늘,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변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만고의 악법이 존치되어 있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의 출현을 외면하니까 민주주의변혁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백해무익한 패배주의에 물드는 것이다.

 
우리식 변혁담론은 민주주의변혁을 위해 어떠한 정당이 건설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좌파 전위정당을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정당을 건설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정당은 전위정당의 지위가 아니라 대중정당의 지위를, 좌파정당의 성격이 아니라 중도좌파정당의 성격을 갖는다.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정당은 중도좌파 대중정당인 것이다. 우리식 변혁담론의 당건설 이론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을 건설하는 정치과업을 제시한다.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을 흔히 진보정당이라 부르지만, 진보정당이라는 개념은 너무 통속적이어서 그런 통속적 개념만 가지고서는 중도좌파 대중정당과 중도우파 대중정당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중도좌파 대중정당이라는 특정개념을 쓰는 것이다.
   
둘째, 우리식 변혁담론의 당건설 이론에서 좌파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한다고 단언하는 것은, 좌파 전위정당이 민주주의변혁의 핵심역량이라는 뜻일까?
 
좌파 전위정당이 사회주의변혁의 핵심역량이라는 논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그 당이 민주주의변혁의 핵심역량이라는 논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더 요구된다.

 
우리 사회에 만고의 악법이 존재하지 않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의 출현을 요구하는 수준으로 정세가 성숙하였다고 가정할 때, 그런 조건에서도 좌파 전위정당은 사회주의변혁이 아니라 민주주의변혁을 밀고 나가야 한다.

 
지난 번에 쓴 나의 글들에서 논한 바 있는 두 단계 사회변혁은, 만고의 악법 존재유무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정치적 요구와 무관하게 오직 사회성격에 의해서 규정되기 때문에 그러하다. 물론 만고의 악법이 철폐되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치적으로 성숙한 조건에서는 민주주의변혁을 수행하는 기간이 크게 단축될 것이다.

 
중도좌파 대중정당은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예비한다. 민주주의변혁을 실현하는 것은 좌파 전위정당의 임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이 좌파 전위정당 같은 인상을 대중에게 줄 필요는 없다.

 
만고의 악법이 존치되어 있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좌파 전위정당을 요구하지 않는 오늘의 정치현실에서, 중도좌파 대중정당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면서 사회주의적 지향(socialist orientation)을 내포하게 된다.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포하는 공간은 중도좌파 대중정당 안에 마련된다. 중도좌파 대중정당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면서, 자기 안에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포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도좌파 대중정당이 자기 안에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포한다고 해서, 사회주의강령을 표방하는 정치활동에 나서는 것은 물론 아니다. 당의 내포적 지향과 당의 정치활동은 서로 구분된다. 사회주의강령을 추구하는 좌파 전위정당과 다르게, 중도좌파 대중정당은 민주주의강령을 제시하고 그것을 일관되게 추구하여야 한다.

 
그런데 만일 중도좌파 대중정당이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포하지 않는 경우, 그런 대중정당은 중도우파 대중정당과의 차별성을 잃어버리고, 사회민주주의정당으로 전락하게 된다.

 

 
단 하나 뿐인 중도좌파 대중정당

 
전세계 정당분포를 살펴보면, 중도좌파 대중정당이 있는 곳은 우리 사회가 유일하다. 유럽 각국에 좌파 전위정당이나 중도우파 대중정당은 있지만, 중도좌파 대중정당은 없다. 우리 사회에 중도좌파 대중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른다.

 
유럽 각국의 좌파 전위정당들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졌으면서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한 채 약체정당의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 그리스, 이탈리아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대규모 총파업투쟁을 격렬하게 일으켰는 데도, 그 세 나라 좌파정당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며, 좌파정당들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을 이끌지 못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보면, 유럽 각국에서 좌파 전위정당이 단독으로 집권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보인다.

 
다른 한 편, 유럽 각국의 중도우파 대중정당들은 단독집권은 하지 못해도 녹색당 등과 손잡고 연립정부를 세우는 집권성공사례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 정당들은 태생적으로 사회민주주의에 묶여있기 때문에 민주주의변혁에는 관심이 없다. 이처럼 유럽 각국에서 사회변혁의 길이 너무 멀게 느껴지는 까닭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을 건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고, 그 당을 중심으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단결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유럽 각국의 좌파정당들은 민주주의변혁의 당건설 이론을 알지 못하는 한계에 놓여있는 것이다.

 
현실이 이러한 데도, 유럽식 좌파 전위정당을 모방한 당을 건설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유럽식 중도우파 대중정당을 모방한 당을 건설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다. 당건설 문제를 주체적으로 사고하지 못하고, 우리의 사회정치현실에 잘 맞지도 않는 남의 경험과 이론을 수입하여 모방하려는 것은 실패를 자초하는 무모한 짓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성격에 기초한 우리식 변혁담론을 논해야 하며, 우리식 당건설 이론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식 변혁담론이 말하는,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의 실체는 민주노동당이다.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간 진보신당도 있지만, 우리식 변혁담론을 판단기준으로 삼고 바라보면, 진보신당을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중도좌파 대중정당이라고 인정하기 힘들다. 유럽식 좌파 전위정당을 모방하거나 또는 유럽식 중도우파 대중정당을 모방하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풍조가 그 당 안에 혼재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다. 다른 한편, 민주당과 국민참여당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는, 중도우파 대중정당의 전형이다.

 
우리 사회에서 유일무이한 중도좌파 대중정당인 민주노동당이 올해로 창당 10주년을 맞았다. 당의 역사에 10년 연륜이 쌓였는데도,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어제를 반성하고, 오늘을 분석하고, 내일을 전망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안정적이지 못하다. 민주노동당의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갖가지 물음이 꼬리를 문다. 

 
10년 전, 창당주역들은 과연 민주주의변혁의 당건설 이론을 생각하며 당을 건설하였을까? 지난 10년 동안 민주노동당은 민주주의변혁을 예비하는 임무에 얼마나 충실하였을까? 민주노동당이 사회주의적 지향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까? 민주노동당은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2010년 10월 29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