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과 진보 (2)
 
변혁담론이 제기한 두 가지 논점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이론적 해명을 요구하는 논점들


 
유럽에서 정립된 두 단계 사회변혁론은 사회성격을 개변시키는 변혁에 대해 논하지 않으며,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변혁에 대해서만 논한다. 다시 말해서,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의 핵심내용은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변혁이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변혁으로 이행한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유럽에서 정립된 변혁론들 가운데는 두 단계 사회변혁을 부정하는 변혁론도 있는데, 이러한 급진주의 변혁론은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변혁마저 논하지 않고,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변혁만 논한다. 유럽식 변혁론이 두 단계 변혁론과 급진주의 변혁론으로 갈라져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 주변에는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에 심취한 사람들도 있고, 급진주의 변혁론에 심취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이나 급진주의 변혁론은 우리의 사회변혁운동에 맞지 않는다. 우리는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이나 급진주의 변혁론을 참고하기 위해 살펴볼 필요는 있지만, 거기에 심취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식 변혁론을 탐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식 변혁론을 탐구해야 한다는 말은 민족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어설픈 주장이 아니다. 그것은 동일한 자본주의체제에 의해 규정된 사회현실이라 해도, 우리의 사회현실과 유럽의 사회현실 사이에 발생근원의 차이, 발전경로의 차이, 발전수준의 차이가 중첩적으로 개재되어 있으므로, 유럽의 사회현실과 크게 다른 우리의 사회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식 변혁론을 탐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식 변혁론을 탐구하기 위해서 우선 두 가지 이론적 해명이 요구된다. 

 
첫째,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은 왜 사회성격을 개변시키는 변혁에 대해 논하지 않고,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변혁에 대해서만 논하였는지 알아보고, 그런 식의 변혁론이 왜 우리의 사회변혁운동에 들어맞지 않는지를 이론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둘째,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변혁만 논하는 유럽식 급진주의 변혁론이 왜 우리의 사회변혁운동에 들어맞지 않는지를 이론적으로 해명할 필요가 있다. 

 
위의 두 가지 논점을 해명해야, 우리식 변혁론이 왜 사회성격의 개변시키는 변혁과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변혁을 상호결합한 변혁론으로 정립되는지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의 맹점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이 사회성격을 개변시키는 변혁에 대해 논하지 않고,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변혁에 대해서만 논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 까닭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와 달리, 유럽에서는 사회성격을 개변시키는 변혁이 요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2일에 작성한 나의 글 '과학적 변혁담론과 두 단계의 변혁'에서 논한 대로, 우리의 사회변혁운동이 개변시켜야 할 사회성격이란 구체적으로 대미예속성을 뜻하는데, 유럽은 역사적으로 그러한 사회성격을 지닌 적이 없었다. 도리어 유럽 주요국들은 미국보다 한 발 앞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를 침략하고 3개 대륙을 자기들의 식민지로 분할, 강점, 예속하였다. 이처럼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예속한 경험밖에 없고, 다른 제국주의 강대국에게 예속당한 경험이 전혀 없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러시아 같은 유럽 주요국들에서 일어난 사회변혁운동은 사회성격을 개변시키는 변혁을 거론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였고 오직 사회체제를 개변시키는 변혁을 정립할 필요만 느꼈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의 변혁담론에서 반제국주의 민족해방 과업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였을 것이다. 1930년대 유럽의 사회변혁운동이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변혁에서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변혁으로 이행하는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을 정립한 것은 그들로서는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하면,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에 심취한 사람들이 그 변혁론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도 않은 채 통째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두 단계 변혁론이라 해도,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은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에 관심이 없고,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에만 관심을 두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은 반제국주의 민족해방에 대해 논하지 않고,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을 실현하는 두 단계 경로만을 논증하였던 것이다.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그러한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은 우리의 사회변혁운동에 맞지 않는다. 비유로 말하면, 자기 체질에 맞지 않는 음식물과 자기 체질에 맞는 음식물을 가려 먹지 못하고, 주어진 음식물을 통째로 삼키는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법이다.

 
우리의 사회변혁운동에 들어맞는 우리식 변혁론은 사회성격을 개변시키는 변혁과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변혁을 상호결합한 두 단계 변혁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식 사회변혁은 반제국주의 민족해방과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을 동반적으로 추구하는 우리식 두 단계 변혁인 것이다.

 

 
급진주의 변혁론의 맹점

 
유럽식 급진주의 변혁론이 두 단계 변혁론을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무단계 변혁만 논한 까닭은 무엇일까? 유럽식 급진주의 변혁론이 부정한 것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정립된 두 단계 변혁론이 아니라, 유럽에서 정립된 두 단계 변혁론이다. 유럽의 급진주의 변혁론자들은 3개 대륙에서 정립된 두 단계 변혁론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관심조차 없었으므로, 유럽에서 정립된 두 단계 변혁론만 부정한 것이다.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을 사회변혁의 강령으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유럽식 급진주의 변혁론이나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이나 똑같지만, 그 강령을 어떤 경로로 실현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이론을 제시하였다. 이를테면, 유럽식 두 단계 변혁론은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변혁경로를 중시하는 데 반해, 유럽식 급진주의 변혁론은 그 경로를 부정한다. 따라서 사회변혁의 강령이 같아도 사회변혁의 경로가 서로 다르다는 데 쟁점이 있는 것이다. 

 
유럽식 급진주의 변혁론이 근로대중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변혁경로를 부정하는 까닭은,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을 실현하는 변혁경로를 단선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유럽식 급진주의 변혁론은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이 단계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무단계적으로, 급진적으로 실현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처럼 급진주의 변혁론과 두 단계 변혁론은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의 실현경로문제를 놓고 갈라서게 된다. 급진주의 변혁론은 급진적 실현경로를 주장하고, 두 단계 변혁론은 단계적 실현경로를 주장한다.

 
어느 쪽이 옳은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을 간명하게 표현하면,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은 급진적으로도 실현될 수 있고, 단계적으로도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모호한 답변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사회성격과 사회계급관계에 따라 급진적으로 실현될 수도 있고, 단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주목하는 것은, 해당사회의 사회성격과 사회계급관계가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의 실현경로를 결정한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제국주의 강대국에게 예속되지 않았을 뿐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역량이 자본가계급과 그 동맹세력의 지배력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사회에서는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이 급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 그에 비하여, 제국주의 강대국에게 예속되었을 뿐아니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역량이 아직 취약하여 자본가계급과 그 동맹세력의 지배력에 정면으로 맞설 수 없는 사회에서는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이 단계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이 어느 사회에서나 급진적으로 실현될 수 있다는 급진주의 변혁론은, 각 사회마다 사회성격과 사회계급관계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론적 맹점을 안고 있다.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을 실현한다는 말을 정치경제학 개념으로 표현하면 가치법칙의 폐절이라는 뜻이고, 통속적으로 표현하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철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쟁점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급진적으로 철폐하여야 하는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철폐하여야 하는가 문제로 집약된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두 가지 논거에 따라 판단을 내려야 한다.

 
첫째, 사회계급관계를 분석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사회계급관계에서 노동계급 및 근로대중 대 중산층의 비중에 눈길을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체제가 높은 수준으로 발달하여 중산층의 사회정치적 비중이 증대한 사회에서는 시장경제를 급진적으로 철폐할 수 없으므로 단계적으로 철폐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중산층은 시장경제의 철폐를 완강하게 반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정치적 비중이 커진 중산층이 독자적 정치세력화에 성공하여 중도우파 성향의 집권당을 출현시키는 사회에서 중산층을 자본가계급의 편으로 떠밀어 내고, 나머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힘만으로 반자본주의 계급해방을 실현하겠다는 생각은 과학적 판단을 버리고 패배를 자초하는 모험주의자의 무모한 발상이다. 

 
둘째,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의식 수준을 파악하고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양적으로 자본가계급과 그 동맹세력을 압도하는 사회라고 해도,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의존심리가 강하고 투쟁의지가 박약하다면 시장경제를 급진적으로 철폐할 수 없으므로 단계적으로 철폐하여야 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자발적, 주체적으로 수행하는 사회변혁운동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그들의 사회정치의식이다.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심하고 반사회주의 선전선동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의식이 질곡에 빠진 사회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진보적 정치활동가들이 시장경제를 철폐하라는 급진적 요구를 제기하고 싶어도 제기하지 못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시장경제 철폐라는 급진적 요구에 무관심한데, 급진주의자들이 정권의 탄압을 무릅쓰고 "시장경제 철폐만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살 길"이라는 옳은 명제를 아무리 외쳐도 그 외침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생소하고 공허한 구호로 들린다. 

 
눈길을 우리 사회로 돌리면, 오늘 우리 사회에서 중산층의 사회정치적 비중은 매우 커졌으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각국과 비교해봐도 중산층의 사회정치적 비중이 가장 큰 사회로 손꼽힌다. 또한 오늘 우리 사회는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극심하고 반사회주의 선전선동이 장기간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사회정치의식이 질곡에 빠진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변혁운동이 급진주의 변혁론을 따라간다면, 그 결과는 보나마나 뻔하다. (2010년 9월 13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