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제민전 대변인 2.10 논평

 

2월10일은 6.25전쟁시기 미제침략군이 거창양민대학살만행을 자행한 때로부터 59년이 되는 날이다.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해방자」, 「원조자」의 탈을 쓰고 이남 땅을 강점한 미제는 한반도 전체를 가로 타고 앉을 야심아래   1950년 6월 25일 친미독재집단을 사촉하여 북침전쟁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인민군의 재진격에 거듭 패배를 당하자 미군은 인민군으로 쏠리는 민심을 돌려 세울 목적아래 이른 바 「후방안전」이라는 계책을 꾸며가지고 가는 곳 마다에서 우리 국민들을 닥치는대로 죽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거창양민학살이다.

미군은 1950년 말부터 거창의 양민들이 「공산게릴라」와 내통하였다는 황당한 구실을 붙여 국군 한개 대대를 내몰아 북상면일대에서 1,200여호의 집을 불 사르고 무고한 국민들을 학살하였다.

특히 1951년 2월 10일과 11일 양일간에 걸쳐 신원면의 6개 리에서 괴뢰졸개들을 시켜 700여호의 가구를 불사르고 109명의 청장년들을 기관총으로 란사하여 죽이도록 한 미군은 이어 1,000여명의 양민들을 신원국민학교에 가두어 넣고 그중 537명을 박산골로 끌고 가 집단적으로 학살한 후 시체에 휘발유를 뿌려 불 태워 버리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였다.

노인들과 어린이들까지 「빨갱이연루자」로 몰아 잔인하게 학살하게 한 미군은 저들의 만행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산을 폭파시키는 행위까지 감행하였다.

실로 이것은 사람잡이를 도락으로 삼는 양키식인종들만이 자행할 수 있는 인간도살행위가 아닐 수 없다.

거창에서만이 아니다.

미군은 충청북도 노근리에서는 양민 700여명을 철길 및 쌍굴다리에 몰아 넣고 기총사격으로 300여명, 폭격으로 100여명을 죽였을 뿐 아니라 평택에서는 600여명, 부여에서는 2,000여명, 대전에서는 8,644명, 청주에서는 2,000여명, 전주에서는 4,000여명을 학살하였다 . 이렇게 미군에 의해 6.25전쟁 1년간에만도 무려 1백여만명의 양민들이 억울하게 생죽음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미제침략자들이 감행한 6.25양민학살만행의 진상은 역사문서들과 학살가담자들, 그리고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의 증언에 의해 지금도 계속 드러나고 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저들의 학살만행을 인정하지 않고 도리여 제2의 거창양민학살을 불러올 침략전쟁연습에 미쳐 날뛰고 있다.

더욱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미국의 침략전쟁의 돌격대로 나서고 있는 현 보수집권패당의 망동이다.

집권초기부터 「한미동맹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운 현 보수집권세력은 미국행각시에도『전략적 동맹관계』를 운운하면서 주한미군이 그 무슨 『억제력』이라느니,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고 있다느니 뭐니 하는 망발을 줴쳤다.

그런가 하면 국회에 제출된 거창, 함양, 산청학살사건관련자의 배상 등에 관한 법률안을 지금까지도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금도 미군야수들에 의해 눈도 채 감지 못하고 간 무고한 영혼들이 우리 민중에게 피의 복수를 절규하고 있다.

각계 민중은 양민학살의 원흉이고 우리 민족의 온갖 불행과 고통의 화근인 주한미군을 이 땅에서 몰아 내며 민족을 등지고 적대시하면서 전쟁의 불구름을 몰아오는 사대매국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반미자주화, 반보수투쟁을 더욱 강도 높게 벌여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