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은 광주학생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80년전인 1929년 10월말 광주-나주사이의 열차안에서 일본인 남학생은 조선여학생을 희롱하고 모욕적인 언사를 던졌다. 이에 격분한 조선인 학생들은 광주역에 내리자 오만무례한 일본인중학생들에게 응당한 보복타격을 주었다.

이것은 오래동안 쌓이고 쌓인 침략자들에 대한 조선청년학생들의 울분과 적개심의 대중적 폭발이었다.

하지만 사무라이들은 응당 처벌해야 일본인 학생들을 보호하고 도둑이 매를 드는 격으로 조선학생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체포구금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뿐만 아니라 11월 1일에는 군사교원의 지휘하에 일본인중학교의 교직원, 학생 300여명을 광주역으로 내몰아 조선인 통학생들을 불의에 습격하였다.

분노한 광주시안의 청년학생들은 11월 3일 일제히 동맹휴학을 단행하고 『일제를 타도하자!』 ,『식민지 노예교육을 철폐하라!』, 『조선독립만세!』 등의 구호를 외치며 일제의 식민지 통치기관들을 습격하고 달려드는 일제군경들과 맞서 용감히 싸웠다.

광주의 청년학생들이 지펴 올린 반일투쟁의 불길은 전국도처에로 번져 근 6개월 동안이나 계속 타올랐다.

전국각지의 194개학교 6만여명의 학생들과 각계각층이 참가한 반일애국항쟁은 일제의 식민지통치에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외세의 지배와 간섭, 침략행위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우리 민족의 불굴의 기개와 애국적 의지를 뚜렷이 과시했다.

80년전 항쟁참가자들이 피나게 절규하고 바란 것은 다름 아닌 민족적 독립과 자주권확립이었다.

그러나 8.15해방후 패망한 일제를 대신하여 이 땅을 강점한 미국에 의해 우리 민중은 60여년 동안이나 민족분열의 고통 속에서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 당하고 있으며 민족적 자주권을 무참히 유린 당하고 있다.

주한미군은 오늘도 이 땅에서 치외법권적 특혜를 누리면서 살인, 강도, 강간, 폭행 등 온갖 범죄적 만행을 거리낌 없이 감행하면서 북침전쟁책동에 광분하고 있다.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반환」이니 「주한미군차출가능성」이니 하는 등의 여론을 내돌리고 있는 것은 결코 이 땅에 대한 군사적 지배권과 북침전쟁책동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 땅을 식민지 군사기지로 계속 존속시키면서 그것을 발판으로 한반도 전체를 가로타고 앉으려는 미국의 침략야망에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일본반동들도 과거 저들의 치떨리는 죄악에 대한 사죄와 응분의 배상을 할 대신 오히려 침략의 역사를 미화분식하면서 미국과 한짝이 되어 「대동아공영권」의 옛 꿈을 실현하기 위한 재침의 칼을 벼리고 있다.

미일제국주의자들의 침략책동을 짓부수고 자주통일을 실현함으로써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적 자주권을 수립하는 것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초미의 과제이다.

반외세자주화는 민족문제해결의 핵이며 조국통일운동의 생명선이다.

외래침략자들이 이 땅을 강점하고 주인행세를 하면서 온갖 전횡과 만행을 일삼고 있는 한 우리 민족은 천대와 멸시,비참한 죽음을 면할 수 없으며 침략자들을 반대하기는 전민중적인 대중항쟁을 끝까지 벌이지 않고서는 민족적 자주권을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광주학생사건이 보여주는 피의 교훈이다.

각계 애국민중은 반외세자주화에 대한 입장과 자세는 자주와 예속, 평화와 전쟁을 가르는 시금석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반외세자주화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려 이 땅에서 미국의 군사적 강점과 지배를 종식시키고 일본반동들의 재침책동을 단호히 저지 분쇄해야 한다.

대중운동단체들과 각계 민중이 연대연합을 강화하는 것은 반외세자주화투쟁에서 승리를 이룩하기 위한 기본담보이다.

광주학생운동이 서울과 평양, 부산과 신의주 등 전국도처에서 가열차게 벌어졌지만 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일부 계층에 국한되었던 것을 보아도 오늘 반외세자주화투쟁에서 청년학생들과 노동자, 농어민 그리고 인텔리와 상공업자 등 각이한 계급과 계층의 모든 근로대중이 연대연합을 통한 대중투쟁을 힘차게 벌이는 것은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바라는 각계 민중은 사상과 이념 정견과 신앙, 재산의 차이를 초월하여 하나로 굳게 뭉쳐 반외세자주화투쟁을 힘차게 전개해 나감으로써 조국통일의 역사적 위업을 하루 빨리 성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