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은 어떻게 가능한가?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정권퇴진운동과 인민주권사상

민주노동당은 2009년 6월 20일과 21일 부산에 있는 전시 및 집회시설인 벡스코(BEXCO)에서 창당 9년만에 처음으로 정책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를 언급하는 까닭은, 민주노동당이 그 대회에서 이명박 정권에게 정면대결을 선포하였기 때문이다. 정면대결이란 정권퇴진운동을 추진한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반정부투쟁은 정책반대→내각사퇴→정권퇴진→정권타도로 상향발전하는데, 민주노동당의 정권퇴진운동 추진선언은 반정부투쟁을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는 결의표명으로 이해된다.

결의표명에는 행동이 뒤따른다. 2009년 7월 13일에 나온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제430호 기사에 따르면, 2009년 7월 2일에 남측 전역의 시, 군, 구 지역위원장들이 모인 ‘전국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정권퇴진운동에 관해 논의한 결과를 반영하여 당지도부는 탄핵서명운동과 정권퇴진운동본부 구성을 정권퇴진투쟁 1단계 종료시점인 2009년 7월 25일까지 유보하기로 하였으며, 그 대신 광역권을 순회하는 시국대회를 개최하고 계층별 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투쟁에 주력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민주노동당이 주최하는 ‘민주회복 민생살리기 이명박 정권퇴진 시국대회’는 6월 28일 부산, 7월 5일 대전, 7월 18일 광주, 7월 19일 서울, 7월 22일 울산, 7월 25일 경기도 순으로 진행되는 중이다. 정권퇴진운동 초기의 추동전술이 돋보인다.

민주노동당이 정권퇴진운동을 결의하고 행동에 나선 까닭은, 이명박 정권을 국민과 소통할 줄 모르는 불통정권만으로 규정한 것에서 더 나아가 강압통치를 자행하는 독재정권이라고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이명박 정권을 독재정권으로 규정한 것은, 자의적인 규정이 아니라 합헌적인 규정이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세상이 다 알고 있지만, 민주주의 정치이념의 근간을 이루는 인민주권사상은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한 현행 헌법 제2조에 담겨있다. 인민주권사상은 현행 헌법 제1조에 있는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밝혀주는 근본사상이다. 이 땅의 헌정질서는 제1조와 제2조에 법제화된 인민주권사상 위에 성립되고 유지된다. 인민주권사상의 견지에서 볼 때, 그 사상이 밝혀주는 헌정질서를 충실히 따르는 정권은 민주정권이고, 그 질서를 강압통치로 훼손하는 정권은 독재정권이다.

이명박 정권이 인민주권사상이 밝혀주는 헌정질서를 훼손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 각계각층 근로대중을 저버리고 극소수 특권부유층을 위하여 권력을 행사하면서, 각당각파 각계각층의 정당한 요구를 억누르고, 악법제정에 열을 내는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강압통치야말로 인민주권사상이 밝혀주는 헌정질서를 훼손하는 독재의 전형이다.

요즈음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이명박 정권을 부자정권이라고 맹비난하는 것은 그냥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이 각계각층 근로대중의 이익을 앗아가는 특권부유층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터져나오는 원성이다. 불통정권, 부자정권, 독재정권으로 줄줄이 낙인이 찍힌 이명박 정권은 국민대중으로부터 나온 권력을 특권부유층의 탐욕적인 이익추구를 위해 행사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독재가 아니고 무엇일까. 사태가 오죽 심각하면, 이명박 정권을 지지해온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마저도 이명박 정권을 규탄하기 시작하겠는가. 2009년 7월 18일 서울 여의도에서 2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한국노총 공공부문 공동투쟁본부 조합원 결의대회’에서 이명박 정권에 대한 강한 규탄발언이 쏟아져나온 것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모든 민주공화국에서 정권은 민주적 선거를 통하여 합법성을 획득하는데, 정권의 합법성을 판단하는 데서 선거라는 집권절차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집권 이후의 국정운영이다. 아무리 선거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집권한 정권이라 할지라도, 집권한 뒤에 반민주적 강압통치에 나선다면 그러한 정권은 당연히 합법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국민대중이 합법성을 잃은 정권에게 퇴진을 요구하는 권리는, 인민주권사상이 밝혀주는 헌정질서가 보장해주는 정당한 권리다.

진보정당의 정권퇴진운동과 각당각파 각계각층의 정권퇴진 범국민운동

새삼스럽게 강조하는 말이 되겠지만, 민주노동당이 정권퇴진운동을 자기의 전략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일 민주노동당이 정권퇴진운동을 추동하지 않는다면, 진보정당의 기치를 내려야 하며, 진보정치의 책임을 방기하였다는 질책을 받아 마땅하다. 인민주권사상의 견지에서 보면, 각당각파 정치세력에게는 정권퇴진을 요구할 책임이 있고, 각계각층 근로대중에게는 정권퇴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정권퇴진운동이 대중항쟁 형태로 폭발하기를 기다리는 식의 대기론에 빠지거나, 대중항쟁은 기대할 수 없으므로 정권퇴진운동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식의 불가론에 빠져서는 안 되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그 운동을 자기의 전략사업으로 추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몇몇 비판자들은 이명박 정권퇴진운동이 현실에 맞지 않는 너무 급진적인 운동이라느니, 또는 준비역량도 마련하지 못하였으면서 언제나 강경투쟁만 선포한다느니 하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종류의 비판은 현실의 어느 한 측면만 바라보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첫째, 정권퇴진운동이 아직 범국민운동으로 확대되지 않는 까닭은, 헌정질서에 대한 안착감이 각당각파 각계각층에게 퍼져있기 때문이 아니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정치세력이 정권퇴진운동의 기폭계기를 조성하는 투쟁전술을 개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인분석의 촛점을 객관현실이 아니라 주체역량에 맞춰야 정세를 과학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둘째, 민주노동당이 추동하기 시작한 이명박 정권퇴진운동은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폭넓은 연합전선을 형성한 이후, 그때에 가서 비로소 대중항쟁 형태로 폭발할 지름길을 열어놓게 될 것이다. 연합전선전략과 대중항쟁전략, 정권퇴진운동의 발전경로와 2012년의 집권전략을 종합적으로 보면서 분석하지 않으면, 몇몇 비판자들처럼 대기론이나 불가론의 논리적 함정에 빠지기 쉽다.

셋째, 정작 열띤 토론을 벌어야 할 논제는 따로 있다. 그 논제는 민주노동당이 자기의 전략사업으로 추동하기 시작한 정권퇴진운동을 어떻게 해야 위력적인 범국민운동으로 확대발전시킬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정권퇴진운동을 당사업으로 밀고 나가는 것은 당원들의 의사를 반영하여 당지도부가 결정하는 것이지만,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당사업은 당지도부가 결정하지만, 범국민운동은 당지도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당각파 각계각층의 공감대에서 시작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선진적인 정치의식을 지닌 당원들로 구성된 민주노동당은 당지도부가 당원의 의사를 반영하여 정권퇴진구호를 들고 반정부투쟁을 벌이자고 결정하면 되지만, 사회계급관계와 정치세력관계에 이중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에 나서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에 나선다는 말은, 그들이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운동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운동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투쟁이 아니라, 주체적-객관적 조건이 맞아떨어진 어느 특정시기에 급진적으로 전개되는, 그리하여 폭발한다는 표현에 걸맞는 투쟁이다. 여기서 제기되는 물음은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운동이 어떤 조건에서 일어나는가 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이론적으로 해명하여야, 민주노동당이 추동하기 시작한 정권퇴진운동을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으로 확대발전시킬 방도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이 일어나는 조건들

지난 몇 해 사이에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을 살펴보면, 그 운동이 일어나는 조건을 파악할 수 있다.

2006년 7월 2일 멕시코에서 실시된 대선에서 중도좌파정당인 민주혁명당(PRD)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뻬즈 오브라돌(Andres Manuel Lopez Obrador) 후보는 4천100만 유효투표수 가운데서 불과 0.6%밖에 되지 않는 24만4천 표 차이로 낙선하자 즉각 재검표를 요구하였고, 대선결과에 불복한 지지자들이 거리와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운동이 일어났다.

그루지야에서는 2007년 11월 2일부터 7일까지 사카슈빌리 정권의 독재와 부패를 비난하는 반정부투쟁이 대중항쟁 형태로 폭발하였다. 그 투쟁은 조기대선을 실시하는 성과를 거뒀다. 2008년 1월 5일에 실시된 조기대선에서 미하일 사카슈빌리(Mikhail Saakashvili) 대통령이 52.8%의 높은 득표율을 얻어 재집권에 성공하였으나, 2009년 4월부터 반정부투쟁이 재개되었다.

2009년 6월 12일 이란에서 대선이 실시되었는데, 지난 시기 총리를 역임한 미르-호세인 무사비(Mir-Hossein Mousavi)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Mahmoud Ahmadinejad) 대통령에게 패하자 무사비 지지자들이 선거부정 의혹을 제기하며 거리로 쏟아져나와 반정부투쟁을 벌였고 며칠 사이에 대중항쟁 형태로 격화되었다.

태국에서는 전 총리 탁신(Thakshin)의 지지세력인 반독재민주주의통일전선(United Front of Democracy Against Dictatorship, UDD)이 2006년부터 격렬한 반정부투쟁을 벌이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네 나라에서 각각 폭발한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운동이 보여주는 특징을 아래와 같이 추려낼 수 있다.

첫째,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은 정치문제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여 일어났다. 각계각층 근로대중이 자기 생계마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하면 누가 선동하지 않아도 자연발생적으로 생존권투쟁을 벌이지만, 정권퇴진운동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생존권투쟁이 자동적으로 정권퇴진운동으로 상향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현실에서 입증된 것이 아니다.

둘째,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이 노동자 총파업이나 농민의 상경투쟁에 의해서 폭발하지 않았다. 멕시코에서 유일한 민주노조인 전국노동조합(UNT)마저도 민주혁명당의 반정부투쟁에 적극 참가하지 않았다. 그 밖의 다른 나라에는 민주노조가 없어서 총파업이 일어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위의 네 나라에서 각각 폭발한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에 그 나라 노동자와 농민이 개별적으로 얼마나 많이 참가하였는지를 밝혀놓은 자료가 없어서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지만, 노농항쟁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은 노동자, 농민, 서민, 도시중산층이 모두 참가한 다계급(multi-class) 대중항쟁으로 전개된 것이었다.

셋째,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을 이끈 주도자는 야당이었다. 멕시코에서 반정부투쟁을 주도한 민주혁명당은 중도좌파정당이지만, 그 밖의 다른 나라에서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을 주도한 정당들은 중도우파정당으로 분류된다.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에 도시중산층이 참가하였다는 점과 도시중산층을 지지기반으로 삼은 중도우파정당이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의 주도자로 등장하였다는 사실은 상통한다.

넷째, 정권퇴진운동이 대중항쟁 형태로 폭발하였지만, 정권퇴진에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이 성공하지 못한 원인은 각 나라의 구체적 실정에 따라 서로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적인 원인을 지적한다면 야당을 중심으로 한 폭넓은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못하여 투쟁역량이 약하였다는 점이다.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은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못한 조건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연합전선 없는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이 한때 격렬하게 전개될 수도 있지만, 연합전선 없는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은 승리하지 못한다. 이것은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의 승패여부를 결정하는 가장 주된 요인이 연합전선 형성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다른 나라 정권퇴진운동이 이명박 정권퇴진운동에 주는 의미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논제를 가지고 오늘 민주노동당이 추동하기 시작한 정권퇴진운동을 분석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우리 사회의 민생경제파탄은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지 않지만, 민생경제파탄을 겪는 각계각층 근로대중은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의 폭발성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민주노동당이 추동하기 시작한 정권퇴진운동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에서 어떤 기폭계기를 만나면, 각계각층 근로대중 속에 잠재된 힘을 분출시킬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이 땅의 노동자, 농민, 서민, 그리고 도시중산층에게 존재하는 잠재력은 민생경제파탄의 악화정도에 정비례하여 그 폭발성을 차츰 키우고 있다.

민생경제파탄은 통계수치로 계측할 수 있지만, 항쟁폭발의 잠재력은 통계수치로 계측할 수 없다. 통계수치로 계측할 수 없다고 해서, 정세인식에서 항쟁폭발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오류다. 지금 예측과 전망을 요구하는 핵심문제는, 민주노동당이 추동하기 시작한 정권퇴진운동이 거대한 잠재력을 분출시킬 기폭계기를 언제 어떻게 만나느냐 하는 것이다.

둘째, 위에서 언급한 네 나라 가운데서 민주노조와 중도좌파정당이 자리를 잡은 나라는 멕시코밖에 없다. 민주노조와 중도좌파정당이 자리를 잡았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의 정권퇴진운동과 민주혁명당의 정권퇴진운동은 유사성을 지닌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만이 아니라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으로부터도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전체 노동계급 가운데서 민주노총이 포괄하는 범위가 약 5%밖에 되지 않고, 전체 농민 가운데서 전농이 포괄하는 범위도 그 정도 수준으로 짐작되지만, 민주노동당이 민주노총이나 전농과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멕시코와 달리 우리 사회에서 노동계급과 농민이 집단적으로 참가하는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이 일어날 것임을 말해준다.

셋째, 우리 사회의 도시중산층은 멕시코, 그루지야, 이란, 태국 같은 나라의 도시중산층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모두 도시중산층이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서비스업 비중과 도시중산층 비중은 상당부분 맞물려있는데, 67.7%(2007년)에 이른 우리 사회의 서비스업 비율은 멕시코 59.0%(2005년), 그루지야 58.8%(2008년), 이란 45.0%(2007년), 태국 37.1%(2005년)보다 월등히 높다.

사회계급관계에서 차지하는 도시중산층 비중이 우리 사회보다 훨씬 적은 멕시코, 그루지야, 이란, 태국에서 폭발한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운동에 도시중산층이 적극 참가하였다면, 도시중산층 비중이 매우 높은 우리 사회에서 도시중산층이 참가하지 않고 노동계급과 농민만 참가하는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발상이다.

대중항쟁 형태의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에 도시중산층이 참가하는 문제를 인식하면, 근로대중 정당인 민주노동당과 도시중산층 정당인 민주당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공동투쟁을 전개할 필요성을 알 수 있다.

넷째, 근로대중의 산발적인 생존권투쟁이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으로 상향발전하는 시나리오가 현실에서 입증되지 않았다면, 민생문제를 제기하는 생존권투쟁에서 정권퇴진운동을 시작하는 시나리오보다는 처음부터 정치문제를 전면에 제기하는 반정부투쟁을 시작하는 시나리오가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에게 더 현실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이 민생문제를 외면하거나 생존권투쟁을 배제하는 것은 있을 수 없지만,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에서 민생문제보다 정치문제를 더 중시할 필요가 있는 말이다.

예컨대, 위에서 언급한 네 나라에서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이 시작될 때, 전면에 제기된 정치문제는 권력형 부정축재, 정부가 저지른 선거부정, 야당인사 의문사, 야당 지도자의 해외축출 등이었다. 현 시기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하여 부정축재나 선거부정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사실상 일어나기 힘들 것이므로, 그러한 사건이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을 일으키는 정치문제로 제기될 가능성은 전무하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진 군사독재정권 시기에는 야당인사(장준하)가 의문사를 당하거나 야당 지도자(김대중)가 해외로 쫓겨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가능성이 없다.

그렇다면 오늘날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을 일으킬 정치문제는 어떤 것이 있을까? 만일 이명박 정권과 야당의 대결국면이 격화되어 이명박 정권이 야당 지도부를 구속하는 경우, 야당탄압사건은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을 일으키는 정치문제로 제기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야당 지도부를 구속하여 자기들에게 화를 불러들일 만큼 어리석지 않으며, 보수야당 지도부는 구속당할 만큼 격렬하게 반정부투쟁을 벌이지 않는다. 이명박 정권과 보수야당 지도부 사이에서 팽팽한 대치상태가 조성되었다가도 얼마 가지 않아 ‘적절한 선’에서 양자가 타협하는 협상이 되풀이된다.

그렇지만 보수야당 지도부가 스스로 바라지는 않는데도 어쩔 수 없이 격렬한 반정부투쟁에 끌려들어가는 경우, 다시 말해서, 반이명박 연합전선이 형성되어 반정부투쟁이 격렬하게 전개되는 경우, 그 연합전선에 참가한 보수야당 지도부는 전면적인 탄압을 받게 될 것이다.

다섯째, 위에서 언급한 네 나라에서 일어난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은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못하여 정권퇴진에 성공하지 못하였지만, 민주노동당이 추동하기 시작한 정권퇴진운동이 승리하려면 무엇보다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여야 한다.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않고 정권퇴진운동을 벌이는 것은 패배가 예정된 싸움을 벌이는 것과 같다. 민주노동당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에서 정권퇴진구호를 들고 앞장서 싸울 때, 그때 비로소 정권퇴진운동은 강력한 힘을 내게 될 것이다.

소연합전선이 아니라 대연합전선이다

요즈음 대중언론에서도 보도용어로 사용되곤 하는 ‘반MB 전선’이라는 개념은, 이명박 개인을 반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여 수립된 이명박 정부와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을 반대한다는 뜻이다.

쟁점은,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진보대연합으로 형성할 것인가 민주대연합으로 형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진보대연합을 추구하는 민주노동당은, ‘배반과 타협의 명수’인 민주당을 배제하고, 도시중산층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면서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진보정당과 진보적 사회단체들이 형성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당의 집권전략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진보대연합은 “신자유주의 반대, 민족자주, 6.15정신에 입각한 평화통일실현에 동의하는 각계각층을 민중전선체로 결집”시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각계각층 근로대중을 주축으로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려고 하고, 민주당은 도시중산층을 주축으로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려고 한다. 또한 민주노동당은 진보적 사회단체들과 손잡고 진보대연합을 형성하려 하고, 민주당은 중도적 사회단체들과 손잡고 민주대연합을 형성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권퇴진운동을 승리로 이끌 위력적인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려면,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정치이념적 차이를 불문하고 총결집하는 존이구동(存異求同)의 원칙을 따라야 할 것이다. 존이구동의 원칙에서 ‘존이’해야 할 상이한 과제는 근로대중 정당과 도시중산층 정당의 이념적 차이에서 나오는 정치과제들이고, 그 원칙에서 ‘구동’해야 할 공통적 과제는 양당이 일치하는 이명박 정권 반대투쟁이다.

그런데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한다고 하면서, 근로대중 정당과 도시중산층 정당의 이념적 차이에서 오는 계급정치과제를 전선형성의 기준으로 꺼내놓는 것은 오류다. 이념적 차이에서 오는 계급정치과제를 일단 뒤에 남겨두고, 이명박 정권을 반대하는 대중정치과제를 앞세우면서 더 많은 정당과 사회단체들이 총결집한 것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이다. 그러므로 존이구동의 원칙에서 볼 때,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을 대치시키는 것은 분리주의적 발상이다. 민주노동당이 존이구동의 원칙을 받아들이면, 진보대연합을 중심으로 민주대연합을 형성함으로써 명실공히 폭넓은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민주당이 존이구동의 원칙을 받아들이면, 진보대연합과 정치적으로 연합하여 민주대연합의 투쟁역량을 더욱 강하게 키울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6월 10일에 이어 7월 19일에도 야당과 사회단체들이 총결집한 ‘민주회복 민생살리기 2차 범국민대회’가 서울역 광장에서 1만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는데, 이것은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이 분리될 수 없음을 현실로 입증하는 것이다.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으로 갈라지면 폭넓은 대연합이 아니라 반쪽짜리 소연합이 된다. 반쪽짜리 소연합전선을 형성하고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을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진보대연합을 중심에 세우고 각당각파 각계각층이 총결집하는 민주대연합을 형성해도 정권퇴진의 성공여부를 장담하기 힘든데,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으로 갈라져 각기 투쟁역량을 조직하려는 것은 패배를 자초하는 일이다.

물론 진보대연합은 처음부터 정권퇴진운동을 밀고 나가지만, 민주당과 중도적 사회단체들이 참가하는 민주대연합은 처음부터 정권퇴진운동을 밀고 나가기 힘들고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역행을 저지하는 한 단계 낮은 투쟁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지금 야당과 사회단체들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민주회복 민생살리기 범국민대회’는 정권퇴진구호를 내걸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역행을 저지하는 반이명박 연합전선의 투쟁이 차츰 격화되고, 마침내 어떤 기폭계기를 만나는 순간, 민주대연합이 정권퇴진운동으로 넘어가는 것은 필연적이다.

중요한 것은, 기폭계기를 우연사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의 반민주적 역행을 저지하는 투쟁을 이끌면서, 민주대연합을 정권퇴진운동으로 힘껏 떠밀어줄 기폭계기는 누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 두말할 나위 없이, 민주노동당이 만들어내야 하고, 또 만들어낼 수 있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대연합 안에서 어떻게 투쟁하느냐에 따라서 민주대연합이 정권퇴진운동으로 넘어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결정된다.

반이명박 연합전선과 반한나라당 선거연합

민주노동당이 추동하기 시작한 정권퇴진운동은 이명박 정권을 퇴진시킨 뒤에 새로운 정권을 세우는 집권전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이 집권전략도 제시하지 않고 정권을 퇴진시키겠다고 하는 것은, 피땀을 흘려 이명박 정권을 퇴진시킨 뒤에 어이없게도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당선되거나 아니면 민주당이 정권을 탈환하여 정권퇴진운동의 성과를 거둬가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런데 정권퇴진운동을 추동하기 시작한 민주노동당은 2012년의 집권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2009년 6월 21일에 발표한 정책당대회 선언문에서 “2012년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를 달성하며,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수권정당으로 도약하겠다”는 결의를 표명하였다. 그 당의 집권전략위원회 보고서가 2012년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20%와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강조한 대목은, 정책당대회 선언문과 일맥상통하는 결의표명으로 보인다.

집권전략이라는 민감한 사안과 관련해서, 우선 민주노동당이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독주를 저지할 방도부터 논할 필요가 있다. 명백하게도,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을 형성하여 공동대응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을 길이 없다.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당이 단독으로는 한나라당의 독주를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해주는 근거는 아래와 같다.

각계각층의 정치의식은 여론조사결과에 일정하게 반영되기 때문에 정세분석에서 여론조사결과를 무시할 수 없는데, 여론조사결과는 한나라당의 독주를 예고하는 쪽으로 심하게 쏠려있다. 이를테면, 2009년 6월 19일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보수성향 33.3%, 중도성향 39.8%, 진보성향 21.9%로 나타났다. 자신이 중도성향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10년 전보다 17%가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한나라당은 중도우파를 ‘좌파’라고 공격하고, 이명박 대통령마저 ‘중도실용’이라는 해괴한 신조어를 꺼내는 판이므로, 설문조사에 나온 중도성향이라는 기준이 모호해서 실제로는 보수성향에 속한 응답자도 자신을 중도성향에 속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전략적 지지층이 35%대에서 오르내리는 것은, 총선이 오는 8월 30일로 예정된 일본에서 자민당 지지율이 15%대로 급락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40%대로 급등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또한 한나라당이 2005년에 도입한, 월 2천원 이상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제에 망라된 당원수는 15만명이나 된다. 한나라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전략적 지지층이 생각보다 공고하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반한나라당 선거연합을 형성하여 한나라당의 독주를 막는다고 해도, 선거연합의 성과는 대부분 민주당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그 까닭은 민주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가 민주노동당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보다 높기 때문이다. 반한나라당 선거연합 성과의 대부분을 민주당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는 민주노동당으로서는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고 그 전선의 투쟁에 헌신적으로 참가함으로써 자기의 낮은 대중적 지지도를 끌어올리는 길밖에 없을 것이다.

공동집권전략을 내와야 할 필연성

반한나라당 선거연합보다 더 중요한 과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2012년 대선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2012년 대선을 바라보는 객관정세의 전개방향은 한나라당에게 매우 유리한 쪽으로 쏠리고 있다. 이를테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30% 밑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2009년 6월 중순, 일본에서 아소다로(麻生太郞)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10%대로 폭락한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2009년 6월 초 <한국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으로 적합한 인물이 누구인지를 물은 설문항목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지목한 응답자가 31.4%로 1위를 기록하였다. 서거정국의 영향으로 갑자기 2위에 껑충 올라선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지율을 10.6%밖에 얻지 못했다. 1위와 2위 사이의 격차가 너무 벌어졌음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에게는 우울한 소식이 되겠지만, 그처럼 엄청난 추모열기를 뿜어냈던 서거정국마저도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을 끌어내리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지역, 연령층, 교육수준과 무관하게 모든 계급계층에서 골고루 높은 지지를 받으며 부동의 안정세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게 우울한 소식이 되겠지만, 자신이 진보성향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응답자 가운데서 무려 20.6%가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하였으며, 월소득이 100만 원 이하로 생계위협을 받는 민생경제파탄의 피해자들 가운데 38.0%가 그를 지지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 선언문에 나오는,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수권정당으로 도약하겠다는 말은, 201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정권탈환을 용인하고 민주노동당은 제1야당으로 올라서는 것으로 만족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의 정권탈환을 용인하는 것은 반이명박 연합전선의 성과를 민주당에게 넘겨주는 꼴이다.

민주노동당이 한나라당의 재집권과 민주당의 정권탈환을 모두 저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도는 이전에 내가 발표한 몇 편의 글에서 논한 공동집권전략밖에 없다.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의 공동집권전략을 외면하고 반이명박 연합전선에서 투쟁하는 경우, 그 투쟁은 결과적으로 민주당의 정권탈환을 도와주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설마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일 민주노동당이 민주당의 정권탈환을 결과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외면하는 경우, 201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재집권은 확실해질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할 필연성, 정권퇴진 범국민운동을 밀고 나가야 할 불가피성, 그리고 2012년 대선을 위한 공동집권전략을 내와야 할 필연성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시나리오

민주노동당은 2012년을 향후 단독집권을 위한 중간단계로 설정하고 2017년에 가서 민주노동당의 단독집권이 가능하다고 예상하였다. 그 당의 집권전략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대선에서 (줄임) 민주노동당이 집권하려면 20% 지지층을 바탕으로 15% 이상의 동조층을 추가로 확보하는 득표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지층과 동조층을 모호하게 구분한 것도 문제로 보이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2007년 대선에서 얻었던 저조한 득표율 3%를 2012년 대선에서 세 배 이상의 높은 득표율 10%로 끌어올리고 더 나아가 2017년 대선에서 최다 득표율 35%로 끌어올릴 득표전략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노동당이 예상하는 2017년 단독집권 시나리오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동반분열하고,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합당하여 진보대통합당을 창당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제조건으로 달아놓았지만,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동반분열이나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합당은 어떤 객관적 근거가 뒷받침해주는 예상이 아니라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주관적인 희망처럼 들린다. 그렇게 보는 까닭은 아래와 같다.

한나라당은 분당이 아니라 합당의 길을 걸어왔다. 1990년 1월 22일 3당 합당으로 창당된 민주자유당→1995년 12월 신한국당으로 당명개칭→1997년 11월 21일 신한국당과 통합민주당의 합당으로 한나라당 창당까지 이어진 경력이 있다. 현재 당 안에서 이명박계, 박근혜계, 소장파계가 갈등을 빚고 있으나 분당사태로 비화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분당과 합당이 교차되는 길을 걸어왔다. 2007년 8월 18일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에 흡수합당되었고, 2008년 2월 11일 대통합민주신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합당하여 민주당으로 되었다. 민주당도 한나라당처럼 몇몇 계파로 나뉘어져 있으나, 대선을 앞두고 분당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편, 분당사태로 깊은 상처를 입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양당이 힘쓰면 합당할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양당이 합당하기 위해 넘어야 할 ‘험준한 산악’이 너무도 많다. 진보신당 일각에서 민주노동당을 겨냥한 도발적인 종북주의 중상비방을 완전히 중단하지 않는 것만 보더라도 양당합당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직감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동반분열에 기대를 걸거나 진보신당과의 힘겨운 합당을 위해서 노력하다가 2012년의 결정적인 시기를 그냥 넘어가는 치명적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공동으로 집권하는 중도연립정부를 세우면 민주노동당의 진보적 정체성이 훼손되고 우경화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오해다. 민주노동당이 추구하는 진보적 민주주의는 도시중산층을 해체하는 것도 아니고, 진보적 민주주의체제 안에서 도시중산층이 억압당하는 것도 아니므로, 도시중산층 정당인 민주당과 공동으로 집권한다고 해서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 진보적 민주주의가 도시중산층을 해체하지 않으므로, 근로대중 정당과 중산층 정당이 공동집권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다른 나라의 정당들은 공동집권으로 연립정부를 잘도 세운다는데, 유독 우리 사회에서는 연립정부를 세울 수 없다고 하거나 세워서는 안 된다고 하는 주장은 납득하기 힘들다. 중도연립정부 수립론은 근로대중 정당의 진보적 정체성을 훼손하면서 도시중산층 정당의 ‘제2중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양당이 반이명박 연합전선을 형성하여 공통투쟁을 벌이고, 공동투쟁에 기초하여 공동집권전략을 합의하고, 특권부유층 정당의 재집권을 막고 공동으로 집권하자는 것이다.

공동집권전략을 추진하는 경우, 정작 해결하기 힘든 난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의 원내의석 불균형이 공동집권의 의의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2012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민주당과 맞먹는 비율로 승리하지 못하면, 원내의석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어째든 2012년에 중도연립정부를 세우는 것은, 2017년에 가서도 중도연립정부를 계속 연장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민주노동당의 2017년 단독집권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공동집권을 단독집권을 위한 중간단계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2012년에 중도연립정부를 세우지 못하면, 2017년에 민주노동당의 단독집권 가능성이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진보대연합과 민주대연합을 갈라놓지 말고 총결집하여 대폭강화된 반이명박 연합전선 형성→연합전선에 의거한 정권퇴진 범국민운동 전개→근로대중 정당과 도시중산층 정당의 공동집권전략 합의→사상 최초의 중도연립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