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반영]

여수군인폭동이 있은 때로부터 60년의 세월이 흘렀으나 민중탄압과 학살만행을 반대한 항쟁용사들의 의로운 장거는 반미 투쟁사와 더불어 빛나고 있다.

이 투쟁이 일어나게 된 것은 국군장병들 속에서 자주와 통일을 지향하는 기운이 드높아 가는 가운데 당시 미제와 이승만도당이 제주도 민중항쟁을 탄압하기 위해 전라남도 여수주둔 국군 제14연대에 출동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국군장병들은 자기들을 조국의 자유와 통일을 위해 싸우는 부모형제들을 살육하는 데로 내모는 미제와 이승만도당에 대한 치솟는 분노를 누를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제주도의 부모형제들에게 총부리를 돌려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하면서 동족학살에로 내모는 미제와 이승만 괴뢰도당을 반대하여 과감히 분기하였던 것이다.

항쟁용사들의 그 날의 의기는 아직도 살아 힘차게 맥박치고 있다.

지금 이명박패당이 이른바 「불온서적」을 선정한다, 군에 대한 수사를 진행한다 하면서 국군장병들 속에 드높아가는 자주통일, 연북 기운을 차단하려 하지만 그것은 굴러가는 수레바퀴를 저지하려는 소똥벌레의 몸부림에 불과할 뿐이다.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이 아니라 반세기 이상 이 땅을 강점하고 우리 민중에게 헤아릴 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는 미제침략자들에게 총부리를 돌리려는 국군장병들의 의기는 결코 막지 못할 것이다.

(통일운동가 최 우 철)

1948년 10월 20일부터 27일에 걸쳐 여수와 순천 일대에서 벌어진 여수군인폭동은 미제와 이승만도당을 반대하는 애국적 군인들의 무장폭동으로 시작되었고 시민들이 합류함으로써 지역적 범위에서의 민중항쟁을 동반한 반미반정부 애국투쟁이었다.

당시 폭동군인들과 민중들은 절세의 애국자이시고 항일의 전설적 영장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열렬히 흠모하면서 『남조선단독정부를 분쇄하자!』, 『미군은 남조선에서 즉시 철거하라!』, 『북조선과 같은 민주개혁을 실시하자!』등의 구호를 들고 끝까지 용감히 싸웠다.

군인폭동이 자주적 삶과 통일을 위한 정의의 투쟁이었기에 그에 동조하여 청장년들은 물론 홍안의 여학생들까지 투쟁에 떨쳐 나섰다. 심지어 소학교학생들도 탄약운반과 연락임무를 해냈다.

그들의 가슴 속에는 오로지 이 땅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민중학살에 피 눈이 되어 돌아 치는 새로운 식민지통치자 미군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가득 차 있었으며 한편 마음 속에는 민중이 주인된 이북에 대한 연민의 정이 넘쳐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그들의 염원은 아직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의로운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도 반미자주화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이겠다.

(반미운동가 신 철준)

미제와 이승만 괴뢰도당의 학정을 반대하여 일어난 여수군인폭동은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짓부수고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달성하려는 애국적 군인들과 민중들의 대규모적인 무장폭동으로서 민중투쟁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그들은 미제침략군 즉시 철수를 요구하는 온 겨레의 굳센 의지와 불굴의 기개를 과시하며 끝까지 견결히 싸워 미제와 이승만역도를 전율케 했다.

폭동참가자들은 미제의 지원하에 달려드는 토벌대들을 불사신의 기개로 물리치며 1주일이 넘게 여수, 순천일대를 민중해방구로 만들었다.

비록 그들의 염원은 좌절되었지만 우리 민족의 불굴의 투지, 숭고한 구국정신과 애국적 기개를 남김 없이 보여 주었다.

오늘도 그들의 투쟁은 진행형이다. 미제침략자들이 이 땅에 있는 한, 근로대중을 경시하고 민중에 대한 폭압을 자행하는 반민중적 정권이 존속되는 한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애국, 애족, 애민의 의지를 안고 용사들의 염원을 반드시 실현하겠다.

(노동운동가 박 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