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지원국 해제’는 한반도 평화의 주춧돌

박경순 (한국진보운동연구소 소장)

 

‘대화냐? 대결이냐?’

정치적 선택의 갈림길에 선 부시 행정부는 내부의 격렬한 논쟁 끝에 대화를 선택했다. 워싱턴포스트지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해제는 10월 10일 금요일 오전(미국시간)에 라이스 국무장관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한다는 문서에 공식서명했으며, 금요일 저녁에 부시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10월 11일 오전 11시(한국시각 10월 12일 0시)에 이를 공식 발표했다. 숀 맥코맥(Sean McCormack) 미국무부 대변인은 이 특별기자회견에서 “미국이 추구했던 모든 요소가 핵 검증 패키지에 포함됐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대파들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 지도자인 김정일의 ‘벼랑 끝 전술에 굴복했다’고 비판했다.

1. ‘테러지원국 해제’의 정치적 배경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를 놓고, 북한의 벼랑 끝 전술의 ‘또 하나의 성공작’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10월 10일자 인터넷 판에서 “부시 행정부가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굴복해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한 것은 엄격한 검증보다, 암초에 부딪힌 북한의 핵폐기 프로세스 재개를 우선하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포스트지도 10월 12일자 인터넷판에서 테러지원국 해제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부시행정부가 북한 지도자 김정일의 전형적인 벼랑 끝 전술에 굴복했다고 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형적인 친미신문인 조선일보조차도 ‘북한, 벼랑끝 전술 20년 숙원해결’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북한은 대미 협상의 기본인 ’동시행동’ 원칙을 바탕으로 한 벼랑 끝 전술을 통해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해제라는 20년 숙원을 해결했을 뿐 아니라 핵 검증 체계도 미국이 당초 요구한 ’국제기준’ 대신 이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6자회담 기준’을 관철시켰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분석이 아니더라도, 8월11일 이후 북미 핵 대결전의 전개과정을 재음미해 보면, 이번 테러지원국 해제 결정이 어떻게 내려졌는가를 명쾌히 알 수 있다. 부시 행정부는 ‘국제적 기준에 따른 핵 검증 의정서 합의 없이 테러지원국 명단을 삭제할 수 없다’면서, 8월 11일에 취하기로 했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무기한 유예시켜 버렸다. 미국으로서는 대북압박을 통해 사실상 패전국에게나 강요할 수 있는 국제적 기준에 따른 검증의정서를 관철하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검증의정서를 핑계 삼아 10.3합의 이행과정을 질질 끌면서 시간을 벌어보자는 속셈이었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등장 이후 한미군사동맹 강화와 대북 군사적 압박 확대에 매달리던 미국의 군부세력, 10.3합의 이행과정에 불만을 품고 있는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내외의 강경대결세력들, 메케인 공화당 대통령 후보 진영은 테러지원국 해제에 강력히 반발했고, 이들 세력들이 연합해서 패전국에게나 강요할 수 있는 국제적 기준에 입각한 엄격한 검증의정서 초안을 밀어붙였던 것이다.

미국의 이러한 행동에는 자기들이 테러지원국 해제조치를 유예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를 때까지는 북한이 판을 깨는 과감한 행동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미국의 판단은 오산이었다. 미국이 약속했던 날짜(8월 11일)에 테러지원국 해제조치를 하지 않자, 더 이상 테러지원국 명단삭제에 미련을 갖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아무런 미련 없이 핵시설 불능화 중단조치와 복구조치에 들어갔다.

북한은 약속시한인 8월 11일이 지나자 곧 바로 미국에게 핵 불능화 작업 중단을 통보했고, 8월 14일부터 실제로 핵 불능화 작업을 중단했다. 그리고 더 나가 핵시설의 복구 작업을 통보하고 지체 없이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10.3합의와 2.13합의사항을 무력화시키는 행동조치들을 단계적으로 밟아나갔다. 9월 24일에는 영변 재처리 시설을 일주일내에 재가동하겠다고 IAEA검증 팀에게 통보하고, 재처리 시설에 대한 감시요원 접근을 차단했고, 급기야는 영변에 있는 모든 원자로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였다. 그 결과 2.13합의와 10.3합의는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이게 됐고, 6자회담 자체가 붕괴되고 전면적 핵 대결전이 펼쳐졌던 2003-4년 상황으로 되돌아 갈 긴박한 상황에 다다르게 됐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과감하고 신속한 행동에 놀라 부랴부랴 크리스토퍼 힐을 평양에 파견했고, 일련의 합의를 갖고 돌아왔다. 하지만 평양에서의 합의는 미 국내외의 강력한 반발에 직면했고, 워싱턴은 북핵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과 대결이 전개됐다. 양측을 대표하는 행정부 내 관료들은 익명을 내세워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를 언론에 흘렸으며, 그에 따라 언론들은 갈팡질팡하지 않을 수 없었다. 10월 10일게 테러지원국 해제를 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던 폭스뉴스는 몇 시간 뒤에는 부시 대통령이 테러지원국 해제를 단호히 거부했다는 상반된 보도를 하는 등 허둥지둥 했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한 메케인은 10월 10일 금요일(미국시간) 오후 성명을 발표해, 테러지원국 해제방침에 대해 노골적인 반대의사를 밝히기까지 했다. 이것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해제를 둘러싸고 미 행정부 내에서 얼마나 대립이 심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징표이다.

보수강경론자였던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 방침에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만큼 북한의 반격이 치명적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것이 핵심 포인트이다. 만약에 북한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면, 북한은 핵시설 복구와 재가동, 무기급 플루토늄 재생산에 나섰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6자회담 체제 자체가 붕괴되었을 것이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파산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이것이 미국의 냉정한 현실이다.

결국 북한의 강력한 반격이 부시 행정부의 결단을 촉진시켰고, 이것이 내부의 반발을 누르고 테러지원국 해제를 결행하도록 추동했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에서 이번 사태를 북한이 거둔 또 하나의 성과(승리)라고 평가하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며, 미국무부가 조용하게 테러지원국 해제 방침을 발표한 까닭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결국 테러지원국 해제는 북한의 강력한 반격이 만들어낸 작품이며, 북미대결전에서 북한이 거둔 또 하나의 성과(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성과의 동인은 소위 벼랑 끝 전술이라 불리어지는 비타협적 북한식 자주외교이다.

2. ‘테러지원국 해제’의 정치 경제적 의미

북한은 미국정부가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를 공식 발표함에 따라 20년 9개월 만에 테러지원국의 오명에서 벗어나게 됐다. 일부에서는 테러지원국 해제가 구체적이고 실질적 효과보다는 상징적 의미에 그친다고 폄하하고 있지만, 그것이 갖는 정치경제적 의미는 결코 작다고 말할 수 없다.

우선 그것이 갖고 있는 경제적 측면의 효과가 매우 크다. 미국무부 당국자들은 테러지원국에 대한 경제제재 외에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수단이 많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자위적 외침에 불과하다.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수단 중에 가장 포괄적이고 전면적이며, 핵심적 경제제재 수단은 ‘대북적성국 교역금지법’과 ‘테러지원국에 대한 경제제재’이다. 그런데 지난 6월 대북적성국 교역금지법 적용을 종료하는 조치를 취하고, 이번에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함에 따라 미국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의 핵심 기둥이 무너지게 됐는데, 이것은 북한의 대외경제관계 확대와 경제 활성화에 매우 유리한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대북적성국 교역금지법과 테러지원국 해제조치는 북한 경제발전과 대외경제협력 확대를 가로막고 있었던 핵심적 장애물을 없애줘 북한의 대외무역과 외국인 투자 유치, 국제기구 및 선진국과의 경제협력 등 대외경제부문에서 매우 유리한 조건이 만들어질 것이다. 적성국 교역법이 해제되면서 대외자산통제규정에 따라 실시되고 있는 수입승인제와 자산동결이 해제되고, 무역거래시 미국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또 테러지원국 해제로 무기수출통제법, 수출관리법, 국제금융기관법, 대외원조법, 적성국교역법등 5개 법률에 의거한 그동안의 제재에서 벗어나게 됐다.

이로서 전략물자 거래에 대한 제한이 완화되고, 수출관리령에 의한 수출 통제도 해제되는데, 이것은 북한의 무역확대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또한 북한의 외자유치 및 차관도입도 보다 손쉬워진다. 여기에서 앞으로 주목해 봐야 할 부분은 국제 금융기구 가입과 해당 기구로부터 차관도입 여부이다. 이것은 단기간에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볼 수 없으나 테러지원국 해제로 인해 그러한 기구에 대한 접근 제한은 사라지게 됐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 측면의 효과는 곧바로 나타난다고 볼 수 없다. 앞으로 북미관계 정상화가 이루어져야만 경제적 측면의 효과가 제대로 살아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현재에는 이러한 경제적 측면의 효과보다, 테러지원국 해제가 갖는 정치적 측면의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북적성국 교역금지법 적용종료와 테러지원국 명단삭제 조치로 인해 북미관계정상화를 가로막고 있었던 정치경제적 측면에서의 핵심장애물이 제거됨으로서 북미관계정상화의 주춧돌이 놓이게 됐다.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고립 압살, 붕괴정책)은 군사적 측면에서 대북적대정책과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대북적대정책으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대북적대정책을 관철하는 중심수단은 각종 경제제재인데, 이중에서 핵심기둥은 대북적성국 교역금지법과 테러지원국에 대한 경제제재조치이다. 기타의 경제제재 수단은 부분적이며, 특정 목적에 국한된 제한적인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북적성국 교역금지법 적용이 종료되고,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된다면, 미국은 더 이상 경제적 제재 수단을 매개로 한 대북적대시 정책을 수행할 수 없을 것이다. 미 당국자들은 아직도 북한에 대한 효과적인 경제제재 수단이 많이 남아 있다고 떠벌이지만 이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사실 대북적성국 교역금지법과 테러지원국에 대한 경제재재 조차도 대북 경제재재 수단으로서 유효성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두 가지 핵심적인 경제제재 수단이 없어진다면, 북한에 대한 유효한 경제제재 수단은 더 이상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북미양국은 관계정상화(평화적 공존)를 향해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갈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리비아 방식과 북한방식의 본질적 차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비아 방식은 본질적으로 선핵폐기노선(무장해제노선)을 수용한 대가로 체제보장(테러지원국 해제)을 베풀어 주는 것으로서 어디까지나 미국의 정치적 군사적 주도권과 영향력을 철저히 인정하고 여기에 굴종함으로서 생존을 보장 받는 타협노선, 굴복노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미국의 눈치를 보고, 미국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아야 살아갈 수 있다.

반면에 북한 방식은 선핵폐기노선을 단호히 거부하고, 자체의 힘으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테러지원국 해제를 쟁취해 냄으로서 자신의 생존을 지켜 나가는 비타협적 노선이다. 따라서 미국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며, 미국의 비위에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다.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향후 다시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에 떨 필요가 없으며, 역으로 미국도 현재의 힘의 역관계가 뒤바뀌지 않는다면 절대로 테러지원국 명단에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것을 뜻한다. 미 국무부 당국은 현재의 테러지원국 해제가 잠정적 조치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공허한 외침으로 들리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바로 이점에서 리비아식과 북한식의 본질적 차이가 존재한다.

3.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북미군사회담

미국은 북한에게 국제적 기준에 의한 검증의정서 수용을 요구하면서 테러지원국 해제 의무를 거부했었다. 그리고 8월 11일부터 10월 11일까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북미대결전을 펼쳐졌다. 6자회담의 생사존망을 걸고 펼쳐졌던 대결전은 평양에서의 북미담판을 통해 가까스로 활로를 찾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은 스스로 놓은 덫에 자기 자신이 걸려들고 말았다.

미국무부에서 밝힌 검증에 관한 북미합의문을 보면, ‘전문가들은 신고된 모든 시설에 접근할 수 있으며, 신고되지 않은 시설에 대해서는 상호 동의에 의해 접근한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것이 이번 북미합의의 핵심이다. 이것은 검증을 두 단계로 나눠 현 단계에서는 북한이 신고한 내용(불능화 대상)에 대해서만 검증을 실시하고, 나머지는 다음 단계에서 실시하는데, 그것도 협상을 통해 상호 합의된 대상들에 대해서만 검증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북한의 기본적 입장이 관철된 것일 뿐만 아니라, ‘북미군사회담’을 전제로 한 합의인 것이다.

문제의 미신고 시설(미국의 의심시설)은 대부분 군사시설이거나 군사기지 내에 있는 시설이며,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북한이 군사시설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시설들이다. 이러한 미신고시설을 방문하려면 반드시 북미양국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대상지역 설정에서부터 치열한 협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군사시설이거나 군사기지 방문문제를 협상하려면 불가피하게 제반 군사적 문제들과 함께 논의 협상해야 하며, 군사당국자들이 회담 당사자로 나서야 한다. 제반 다른 군사문제들과 함께 논의되고 협상되며, 군사당국자들이 당사자로 참가하는 회담형태는 군사회담일 수밖에 없다. 즉 미국이 미신고시설에 접근하려면 군사회담을 거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뿐만 아니라, 10.3합의(한반도 비핵화 2단계 행동조치)이행이 완료되고 다음 단계(핵폐기 단계)로 나가게 되면, 미국의 군사적 대북적대정책 문제(한반도 평화체제 문제)가 주의제로 부상될 수밖에 없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른 한반도 비핵화과정에서 북한의 핵폐기에 상응하는 미국의 보상조치는 북한의 군사적 안전보장문제일 수밖에 없다. 북한으로서는 군사적 안전보장이 확고히 담보되지 않는다면 절대로 핵 폐기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북한의 군사적 안전보장문제는 미국의 대북 군사적 적대정책을 포기하는 문제인데, 여기에서는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문제, 북한을 겨냥한 한미군사동맹체제의 재편 또는 해체하는 문제 등 각종 군사적 현안문제들이 포괄적으로 다뤄지고 해결되어야 한다.

크리스토퍼 힐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미사이에서 가장 깊숙하게 논의된 문제는 바로 이러한 군사회담에 관한 것들이었을 것이며, 북한 측이 제시했다는 중대제안도 이에 관련된 것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한반도 핵문제에서 북미군사문제가 본격적인 협상의 테이블 위로 올라왔고, 이번 크리스토퍼 힐의 평양방문 때 이를 명백히 한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토퍼 힐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군부의 협상책임자 격인 이찬복 판문점 대표부 대표를 만난 사실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군부책임자를 만났다는 것은 군사문제가 본격적인 협상테이블위에 올라왔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코드이다.

그렇다면 북한 측이 제안했다는 중대제안의 구체적 형태와 내용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서는 북미양국이 아직 함구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 전모를 알 수 없다. 첫째는 종전선언을 위한 3,4자 정상회담일 가능성이 있으며, 둘째는 상호 핵사찰을 포함한 북미군사 현안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고위급 군사회담일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분석으로서는 두 번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미국 측이 제시한 분리 검증안을 수용하는 대신 고위급 군사회담에서 논의할 것을 역 제의한 것으로 보인다.

그 구체적 형태와 내용은 여전히 미지수이지만 한반도 군사문제를 다룰 군사회담이 개최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치군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북미군사회담이 개최된다면, 대북 공격적인 한미합동군사훈련문제, 공세적인 각종 대북 작전계획 문제, 주한미군의 전력증강문제, 정전협정 처리문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문제, 주한미군 운명문제 등 북미간 현안으로 되고 있는 제반 문제들이 협상의 테이블위에 올라가게 될 것이며,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들이 심도 있게 논의되고, 해결의 가능성이 탐색될 것이다. 그것은 이제야말로 한반도 평화실현의 가장 기본적이며 핵심적이며 본질적인 문제들이 협상의 테이블위에 올려 지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4. 테러지원국 해제 이후 남북관계 전망과 과제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조치는 대결과 협상의 갈림길에서 협상을 선택했다는 것을 뜻하며, 이것은 북미관계 개선과 6자회담, 한반도 평화에 매우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난파직전까지 몰렸었던 6자회담이 다시 동력을 되찾음으로서 머지않아 6자회담이 개최돼 북미합의를 공식화하고, 2단계 행동조치(10.3합의)를 완료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미 간에 다양한 대화 틀이 만들어지면서 대화와 협상이 더욱 활성화될 것이다. 그리고 6자회담과 다양한 형태의 북미대화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미국의 군사적 대북적대정책 철회문제)가 주 의제로 다뤄질 것이다.

또한 테러지원국 해제는 남북관계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대결과 대립으로 치달아가던 한반도 지역에 새로운 대화와 협상 분위기가 확산될 것이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또한 북핵문제를 빌미삼아 냉전적 대결을 부추기던 반평화세력들의 준동도 일정정도 제한되고 약화될 것이다. 또한 북미대화 확대는 남북대화와 화해협력에 대한 대중적 요구를 확대시켜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북미대화 촉진이 곧바로 남북대화 촉진으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고민이 있는 것이다. 테러지원국 해제로 모처럼 맞은 매우 유리한 기회를 잘 살려나가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남북 당국과 국민 대중들에게 달려 있다. 남북 정부 당국자들이 이 기회를 잘 활용해 남북대화와 화해협력을 획기적으로 증진시켜 나가려는 정책적 의지가 있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을 갖고 있다면, 북미관계 개선과 남북관계 개선이 병행 발전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모처럼 맞은 호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남북관계 발전과 북미관계 개선이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남북관계가 오히려 북미관계 개선에 걸림돌로 되고, 그렇게 되면 소위 김영삼 대통령 때와 같은 ‘통미봉남’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통미봉남이란 원래 북한의 의도적 전술이 아니라, 남측 당국자들이 북한으로 하여금 그럴 수밖에 없도록 밀어붙인 결과일 따름이다. ‘통미통남’하려는 북한에게 ‘통미봉남’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남측 당국자들의 대결주의적이며 반평화적인 대북정책인 것이다. 통미통남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통미봉남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남측 당국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테러지원국 해제사태가 보여주는 교훈은 북미관계 개선은 시대의 기본흐름이며, 미국 내 강경대결세력들의 반북대결노선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기본 흐름에 저항하고 엇서서는 얻을 게 아무것도 없으며, 국제사회에서 미아가 될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이 같은 당 대통령 후보(메케인)와 충돌하면서까지 테러지원국 해제를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저간 사정에 대해 심사숙고해 봐야 한다. 우리들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읽지 못한 채 시대착오적인 대북 대결노선을 고집함으로서 국제사회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린 일본의 처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들은 테러지원국 해제 국면을 적극 활용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아 가고 있는 남북관계 악화상태를 해소하고 새로운 화해협력 흐름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정부당국자들의 적극적인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데, 특히 남측 당국자들의 전향적인 태도변화가 절박하게 요구된다.

현재 남북관계가 이렇게 악화된 데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결합되어 있지만 핵심적인 것은 남측 정부당국자들의 시대착오적인 냉전적이며 대결주의적인 대북정책 문제인 것이다. 남측정부당국자들의 시대착오적 대북정책의 구체적 내용은 다양하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실천하려는 태도와 의지의 결여문제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모든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으로 통한다. 6.15 공동선언, 10.4선언이야말로 남북관계의 알파요 오메가인 것이다. 6.15공동선언, 10.4선언이행에서 출발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협력이란 없다.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협력 문제를 남북 정부당국자들의 손에만 맡겨 둘 수 없다. 당국자들이 국민 대중들의 요구와 지향에 맞게 움직인다면 다행이되, 그렇지 않는다면 국민대중 스스로 주인, 주체가 되어 남북관계 개선과 화해협력의 길을 열어나가야 한다. 남북 칠천만 민중 전체가 주인 주체가 되어 6.15공동선언 10.4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거대한 대중의 함성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남북정부 당국자들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이행에 나서지 않을 수 없도록 아래로부터 대중적 강제를 관철해 나가야 한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기치를 한손에 들고, 한반도 평화 실현을 다른 한손에 들고 거족적인 반전평화, 자주통일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 올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