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자주적 민주주의를 향한 새로운 진군

박경순(한국진보운동연구소 소장  6월 16일)

 

6월 항쟁 21주년을 맞는 2008년 6월 10일, 광화문 사거리 광장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우렁찬 선율이 하늘 높이 메아리쳤다. 광화문 사거리를 꽉 메운 수 십 만 명의 대중들은 심장의 고동 소리를 함께 나누면서 그 노래를 소리 높이 따라 불렀다. 21년 전 ‘독재타도, 직선제 쟁취’ 구호가 메아리쳤던 바로 그 공간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구호가 울려 퍼지고 있다.

1.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미친 소 파동’으로 시작된 ‘2008 촛불시위’는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면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한 달 동안 진행되어 왔던 ‘2008 촛불시위’는 6월 항쟁 21주년을 맞는 6월 10일을 기해 정점에 달했다. 이날 전국적으로 백만에 가까운 민중들이 촛불시위에 참여함으로서 21년 전 6월 항쟁에 버금가는 범국민적 항쟁을 연출했다.

지난 한 달 동안 진행되어 온 ‘2008 촛불시위’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기 때문에, 그 본질과 성격, 그 추동력을 한마디로 단정하기 어렵다. 현상적으로 보면 미친 소고기 수입 굴욕협상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표출이며, 국민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지키기 위한 생존권 투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것은 분명 이번 투쟁의 본질적 요소의 한 부분으로, 이번 투쟁의 중심적 추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만 이번 투쟁을 규정하는 것은 너무 협소하다.

이번 투쟁은 국민들의 생명권과 건강권을 수호하기 위한 생존권 투쟁에서 출발했지만, 그것을 뛰어넘어 ‘제2의 6월 민주항쟁’으로 발전했다. 혹자는 ‘군부독재 타도, 직선제 쟁취’라는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정치적 요구를 내세운 87년 6월 민주항쟁과 ‘소고기 재협상’이라는 부분적이고 생존권적 요구를 내세운 2008년 촛불시위를 동렬에 놓고 ‘제2의 6월 민주항쟁’이라고 부를 수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현재 촛불시위에 참여한 대중들의 분노와 지향을 깊이 있게 통찰하지 못한 단견이다. 이번 촛불시위에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가 주제곡으로 불리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이번 시위의 본질적 성격을 명료히 드러내고 있는 상징코드이다.

이번 촛불시위는 생존권과 건강권 수호차원을 뛰어넘어, 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과거 군부독재시절로 되돌리려는 데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며,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의지의 결집인 것이다. 이에 대해 한신대학교 김종엽 교수가 지적한 바는 매우 시사적이다.

김 교수는 창작과비평 주간논평에서 “현재의 상황은 후진기어를 넣고 역진하는 ‘불도저’를 시민들이 촛불을 밝혀 막아선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민주적 정부 아래서는 민주화가 밥 먹여주냐는 냉소가 흘렀다. 하지만 마치 사장이 구내식당에 납품될 쇠고기를 수의계약 하듯이 미국에 간 대통령이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했을 때, 시민들은 민주화의 역진이 밥상 자체를 위협한다는 것을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은 더불어 영어몰입교육에서부터 4·15 교육규제 철폐, ‘고소영 강부자’ 내각, 대운하 추진 같은 선행하던 사건들 그리고 수돗물과 건강보험을 비롯한 각종 민영화 같은 다가올 사건들의 의미 또한 또렷하게 해주었다”고 이번 투쟁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처럼 이번 촛불시위의 기본 추동력은 민주화 역진에 대한 분노와 저항, ‘민주수호’의 강렬한 의지에 있다.

하지만 이번 촛불시위를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분노와 저항으로만 보는 것은 협소하다. 이번 촛불시위는 ‘과거로의 회귀’에 대한 저항이면서도, 단순히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촛불시위는 87년 6월 항쟁으로 쟁취한 대의 민주주의(절차적 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강렬한 지향과 열망, 그것을 쟁취하려는 적극적 의지의 표현이다.

‘길거리 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라는 표현이 언론지상을 난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네티즌들은 ‘촛불은 어디로 향해서 나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촛불에 참여한 대중들은 대의민주주의의 대변자 행세를 해왔던 통합민주당에 싸늘한 냉소를 던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촛불시위’는 ‘제2의 6월 민주항쟁’으로, 대의민주주의(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의 한계로 인해 대중들 속에 퍼져 있었던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와 냉소를 일소시키면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앞서 인용한 한신대 김종엽 교수의 말을 좀 더 인용해 보자. 김 교수는 이번 사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지난 대선을 경유하며 87년 체제와 민주화의 시효만료를 선언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한편에는 민주화가 끝나고 선진화가 시작되었다는 우파적 판본이, 다른 한편에는 87년 체제가 신자유주의적 97년 체제로 전환되었다는 좌파적 판본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촛불항쟁은 그런 주장들을 기각하고 있다. 87년 체제의 극복과 민주화 프로젝트는 끝나지 않았으며, 오직 민주화에 뒤이은 감수성의 혁신에 힘입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여전히 우리사회에서는 민주주의를 향한 투쟁은 끝나지 않았으며, 87년 6월 항쟁에서 제시한 민주화 과제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번 투쟁이 이를 대중적으로 입증해 주었다고 밝히고 있다. 김 교수는 이번 투쟁의 본질을 명쾌히 꿰뚫어 본 것이다.

2. 새로운 민주주의 - 그것은 ‘자주적 민주주의’이다

‘촛불은 어디로 향해 나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민주주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같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역시 해답은 민주주의 에 있다’는 것이 촛불에 참여한 대중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민주주의는 어떤 민주주의이며, 어떻게 쟁취될 수 있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 있다.

하지만 새로운 민주주의는 책 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대중의 현실과 실천 속에서 나온다고 볼 때 이번 촛불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밖에 없다. 이번 촛불시위와 87년 6월 항쟁은 똑같이 민주주의를 외치면서도, 그 내용에서는 사뭇 다르다.

87년 6월 항쟁 때는 ‘군부독재타도와 직선제 쟁취’라는 구호에서 잘 드러나듯이 정치적 절차적 민주화를 요구했다면, 이번 촛불시위에서는 ‘검역주권 확보’ ‘미친 소 수입반대’ ‘0교시반대, 교육 시장화 반대’ ‘의료민영화 반대’ ‘공기업민영화 반대’ 등 생활적 내용적 민주화를 요구하고 있다. 즉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 요구를 뛰어넘어 ‘내용적 민주주의’ 요구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어 ‘직접 민주주의’ 요구로 나가고 있다.

이것은 대중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민 직선으로 당선되어 대통령이 된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독재자로 규정하고 독재타도를 외치는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금 촛불을 든 대중들에게는 ‘직선이냐 아니냐’라는 형식적 절차적 측면이 중요치 않다. 국민 대중들의 민주적 요구와 지향을 수용하느냐 거부하느냐라는 내용적 측면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을 거부한다면 그것은 곧 독재자라는 것이 촛불을 든 국민 대중들의 인식이며 판단인 것이다.

오늘날 촛불을 든 대중들의 힘으로 새롭게 전진하고 있는 새로운 민주주의는 어떤 내용과 특징을 갖고 있는가?

첫째, 촛불에 참여한 대중들의 한결같은 요구와 염원은 이 땅의 주인으로서 주인답게 살아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주인으로서 주인답게 살아갈 수 있는 권리, 즉 자주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라고 외치고 있다. 2008년 촛불시위는 이 땅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주인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자주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의 폭발이다. 무엇 때문에 주인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주인답게 살아갈 수 없는가? 미국과 이명박 정부 때문이다.

지난 6월 10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석한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전남대 객원교수)는 “조지 부시와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대기업의 경제적 이윤을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이것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고 한국 노동력을 착취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고 외쳤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미국 대기업의 경제적 이익, 더나가 미국의 군사적 이익 때문에 민중들의 민주주의적 삶이 여지없이 파괴되고 있다. 불평등하고 예속적 한미관계는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통로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굴욕적이며 굴종적 외교 행각의 바탕에는 이러한 비대칭적 한미관계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대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나라 민중들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치가 민주주의이며, 이를 위해서는 미국 대기업 이익의 일방적 관철 통로로 작동하고 있는 종속적이며 예속적인 한미관계를 타파하고, 민족자주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당면 민주주의의 최고의 목표는 민족자주의 실현이며, 이것이 바로 새로운 민주주의의 핵으로 된다. 민족자주를 핵으로 하는 민주주의, 이것이 바로 자주적 민주주의이다.

둘째, 새로운 민주주의는 민중들의 자주적 참여를 본질로 하는 민중주체 민주주의이다.

촛불에 참여한 대중들은 더 이상 정치의 대상, 객체가 되는 것을 거부하였다. 이제는 대의 민주주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하자!’, ‘그 어떤 정치세력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의 힘으로 우리들의 민주주의를 실현하자!’라는 게 촛불의 민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촛불을 통해 직접민주주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하는 것은 결코 허언이 아니다. 스스로 주인이 되어 판단하고 결정하며, 스스로의 힘으로 실현해 나가는 민주주의, 이것이 바로 민중주체의 새로운 민주주의이다. 따라서 새로운 민주주의는 민중의 자주적 힘에 의해서 발전하는 민주주의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자주적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셋째, 새로운 민주주의는 민중들의 자주적 삶(민중생존권)의 실현을 중심과제로 내세우는 민생민주주의이다.

87년 6월 항쟁이후 지금까지 대의 민주주의는 민중들의 밥(민중생존권)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 절름발이 민주주의였다. 그러다보니, ‘민주주의가 밥 먹여 주냐’라는 냉소가 퍼졌고, 이것이 민주주의의 기반을 위축시켰다. 이명박 정부 등장이후 대중들은 ‘밥’ 문제와 민주주의의 내적 연관성을 새롭게 깨닫고, ‘밥’ 문제 해결을 위해 민주주의 기치를 들고 광장으로 달려 나왔다. ‘밥’ 문제란 민중들의 생존권 문제이며, 민생문제는 인간다운 자주적 삶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질적 조건문제이다.

특히 종속적 신자유주의 체제 등장으로 초국적 독점자본에 의해 국부가 끊임없이 해외(미국)로 유출되고, 민중생존권이 파탄상태에 빠져들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민생문제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는 없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바로 이러한 민생문제 해결을 앞세우는 민생민주주의여야 한다.

민생문제 해결을 앞세우는 오늘의 민주주의는 그것이 인간다운 자주적 삶의 실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자주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넷째, 새로운 민주주의는 민족의 화해와 단합, 자주적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단합의 민주주의이다.

분단의 현실을 그대로 놓고 그 어떠한 민주주의도 없다. 분단은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외세와 낡은 반민주세력들은 분단구조에 기생한다. 분단구조는 이들의 숙주이다. 기생충들은 숙주 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이 외세와 낡은 반민주세력들도 분단구조 없이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이어갈 수 없다.

역으로 분단구조라는 숙주가 존재하는 한 그 어떤 형태로든 외세와 낡은 반민주세력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생명을 연명해 나가면서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오늘날 여전히 낡은 반민주세력들이 살아남아 다시 정권을 틀어쥐고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있는 것도 다 분단구조의 잔존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민주주의는 분단구조를 타파하고 분단세력들을 청소하며, 민족의 화해와 단합, 민족의 자주적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단합의 민주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이 땅의 민주주의의 발전사는 분단과 통일의 변증법적 대결과정에서 통일의 진전과정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민족의 단합과 단결, 평화와 통일의 진전과정 속에서만 이 땅의 민주주의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고 쑥쑥 자라나는 것이다.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지향하는 민족단합의 민주주의는 민족의 자주적 삶의 구현과 발전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자주적 민주주의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새로운 민주주의는 민족자주, 민중주체, 민중생존권 보장,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기본 특징으로 하는 민주주의이며, 이 땅의 민중들의 자주적 삶을 지향하고, 민중들의 자주적 힘을 기본 동력으로 발전하는 민주주의, 즉 자주적 민주주의이다.

3. ‘자주적 민주주의’를 향해 힘차게 진군하자

‘소고기 촛불시위는 어디로 향해 나가야 하는가?’

이것이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대다수 민중들의 화두이다. 그리고 이를 둘러싸고 논쟁과 토론도 활발하다. 각각의 주장들은 특색도 있고, 매우 발랄하기도 하고, 신선하기도 하고, 놀라운 상상력과 예지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어느 주장 하나 틀린 게 없고 버릴 게 없다. 그것이 바로 촛불에 참여한 대중들의 염원이며 마음이고, 민주주의이다.

소고기 촛불시위는 그러한 모든 사람들의 뜻과 마음을 하나로 묶어내야 하며, 그것들을 통일적으로 담아내고 실현할 수 있는 바로 그러한 길로 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이란 바로 낡은 시민민주주의(절차적 민주주의)를 뛰어넘는 새로운 민주주의 즉 자주적 민주주의의 실현을 향해 뚜벅뚜벅 앞으로 전진해 나가야 한다.

자주적 민주주의를 이 땅위에 꽃피워 참다운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데에 있어서 넘어야 할 장벽도 많고, 갖추어야 할 것도 많다.

무엇보다도 ‘민족자주’ 없이 민주주의 없다는 데에 대한 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친미’와 ‘반미’라는 이분법적 접근, 이데올로기적 접근을 극복해야 한다. 전통적 ‘친미, 반미’의 논쟁시대는 끝났다. 지금은 지구촌이 하나가 되고 있는 21세기이지 냉전시대가 아니다. ‘친미, 반미’의 프레임을 뛰어넘어 우리 민족의 자주적 ‘삶’과 ‘발전’의 보장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고, 대등하고 평등한 한미관계를 구축하는 것, 이것이 오늘날의 민족자주이다.

진정한 한미우호협력관계는 민족자주에 기초한 자주적이며 대등한 한미관계에서 나오는 것이지, 불평등하고 예속적인 정치경제 군사관계아래에서는 나올 수 없다. 이번 한미 소고기 협상은 이것을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번처럼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의 요구에 굴종할 수밖에 없는 예속적 한미관계가 계속되는 한, 국민 대중들의 민주주의적 요구는 묵살되고, 민주주의는 파괴될 수밖에 없다. 즉 대등하고 자주적인 한미관계 수립 없이 민주주의는 없다. 이것이 오늘날 새로운 민주주의 실현의 핵심과제이다.

대등하고 자주적 한미관계를 수립하는 문제도 위정자에게 맡겨 둘 수 없으며, 민중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전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기반으로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극복하기 위한 지속적인 대중운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 이 점이 자주적 민주주의 실현에서 중심 고리로 된다. 그렇기 때문에 촛불시위는 민족자주를 지향하는 범국민적 운동으로 발전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촛불시위는 ‘자주적 민주주의 쟁취’를 향한 범국민적 정치투쟁역량을 결집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새로운 민주주의 실현’의 기치아래 모든 국민 대중들이 단결 단합해서, ‘자주적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범국민적 정치투쟁을 펼쳐나가야 한다. 자주적 민주정치가 활짝 꽃피는 그날까지 멈추지 말고 완강하게 ‘제2의 민주화 투쟁’을 벌여나가야 한다.

부분적 요구투쟁, 정책반대 투쟁에 머물러서 해결될 것이라고는 없다. 이러한 투쟁들을 반민주세력들을 척결하기 위한 총체적인 정치투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반민주세력들과는 생산적인 토론과 협상이 불가능하다. 오로지 비타협적 투쟁을 통해서 반민주세력들을 척결해야만 민주주의는 발전한다. 제2의 민주화 투쟁을 활발히 펼쳐 낡은 반민주세력들을 정치권으로부터 퇴출시키고, 자주적 민주주의를 펼쳐나갈 민주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

다음으로 촛불시위는 ‘미친 소 반대’ 투쟁을 출발로 삼아, 각종 반민중적, 반민주적 정책(대운하 정책, 공기업 민영화 정책, 미친 교육정책 등등)들을 폭로 규탄, 저지하기 위한 투쟁으로 확산시켜 나가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모든 정책들은 다 서민대중들을 죽이고 부자들만 잘살기 위한 반민중적 정책들이다. 이러한 정책들을 저지하지 않고서는 민주주의도 서민대중들의 인간적 삶도 없다. 무너져 내리고 있는 서민대중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이명박 정부와 치열하게 투쟁을 벌어야 한다.

우리들은 자주적 민주주의를 위한 당면 세 가지 과제(민족자주 실현운동, 제2민주화 운동, 민중생존권 수호운동)를 통일적으로 펼쳐, 촛불에 담긴 국민 대중들의 열망에 부응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촛불에 대한 예의이며, 도덕적 의무이다. 촛불의 힘으로 앞으로 전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