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동지사랑, 병사사랑, 민중사랑과 믿음의 화신이다


 

김호민 2008년 2월 25일 


 

혁명과 동지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혁명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동지가 있어야 한다. 동지를 떠나서 혁명에 대해 생각할 수 없다. 동지들이 있어야 혁명을 할 수 있고 동지들이 단합되어야 변혁운동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 나갈 수 있다. 때문에 혁명가에게 있어 동지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으며 숭고한 동지애는 혁명가가 지녀야할 제일 덕목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치는 사랑의 정치, 동지애의 정치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온 사회를 하나의 동지애의 세계로 만들고 혁명적 동지애로 뭉친 단결의 위력으로 주체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 나갈 것이라고 천명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래도 동지애의 노래를 가장 사랑한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난의 행군길에 들어선 1995년 1월 1일 다박솔초소 현지지도를 마친 새해 첫 밤 일꾼들과 함께 동지애의 노래를 불렀고 96년 새해 첫 아침에도 비장한 마음으로 동지애의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동지애의 노래와 함께, 동지들과 함께 시련의 고비를 넘으며 제국주의자들의 고립, 압살 광풍을 강경 진압해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바로 그 동지애의 노래로 만난을 이겨내며 오늘도 북한을 사회주의강성대국의 높은 영마루로 이끌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1. 천만금으로도 살 수 없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지사랑


 

김일성 주석의 서거 후 집무실 금고에서는 혁명가 김책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만이 발견되어 만 사람은 그 높이를 다 알 수 없고,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숭고하고 거룩한 동지애의 세계에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생전에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것이 바로 동지이고 동지애라며 동지를 얻으면 천하를 얻고 동지를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고 강조하여 왔다. 집무실 금고에서 발견된 한 장의 사진은 동지를 그 어떤 보물보다 더 귀중히 여겼던 김일성 주석의 숭고한 동지애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같은 김일성 주석의 숭고한 동지애를 그대로 체현한 최고, 최상의 동지애의 모범이자 전형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혁명의 1세대인 항일투사들과 해방 후 당과 혁명에 충실한 일꾼들을 언제나 존대하고 그들에게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 주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꾼들에게 국제공산주의운동사에는 후배가 선배를 비방 중상하고 모독하는 현상이 적지 않게 있다며 조선노동당에서는 앞으로 몇 십년, 몇 백년이 가도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동지들 중에서도 언제나 혁명선배들을 존경하고 내세워주며 그들의 사업과 생활을 돌봐주었다.

항일투사 최현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랑은 혁명 1세대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뜨거운 동지애를 잘 보여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유명한 항일독립운동가인 최현이 큰병으로 민족보위상의 직무를 수행하기 어렵게 되자 우리 곁에 앉아 있어 주기만 하여도 마음이 든든하고 힘이 된다고 하면서 보약도 보내주고 경치가 좋은 휴양소에서 온천치료도 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직접 병상을 찾아 어떻게든 몇 시간만이라도 생명을 연장시키려 온갖 노고를 다 바치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현이 한생을 군복을 입고 당과 수령을 무장으로 받들어온 충신이었다며 그를 원형으로 한 혁명가라는 영화를 만들어 민중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있게 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오백룡, 김일, 오진우, 임춘추, 최광 등 김일성 주석과 혈전만리를 함께 하였던 혁명 1세대들을 극진히 보살폈고 그들의 생명을 조금이나마 연장하기 위하여 심혈을 아끼지 않았다. 오백룡이 뜻밖의 일로 생명이 위급하게 된 때에는 이미 소집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회의까지 미루고 30분 간격으로 여덟 차례나 담당의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병상태를 살폈다고 한다. 김일 부주석이 임종을 앞두고 맏손자를 불러 앉히고 내가 김일성 주석님을 모셔온 것처럼 너희들이 김정일 영도자를 잘 받들어 모시라고 당부했다는 일화는 혁명 1세대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지애가 빚어낸 감동적인 화폭으로 알려져 있다.


 

일꾼들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랑도 각별하다.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이었던 허담의 환갑날을 앞두고 <나는 정일 너는 허담>이라는 친필 문구가 담긴 수첩을 보내준 일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지사랑, 일꾼사랑의 깊이를 가늠케 하는 일화 중 하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병상에 누운 허담을 구원하기 위하여 온 세상을 다 뒤져 명의라는 명의는 다 찾아보고 명약이라는 명약을 모두 써보면서 요양 중인 그의 건강도 매일 손수 살피었다고 한다. 허담은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하늘같은 사랑을 받으며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하여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 바치었다. 중앙기관에서 일하던 한 일꾼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보고받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폭우 속의 밤길을 헤치며 평양으로 달려갔다는 일화도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꾼들을 잃었을 때마다 그들이 다 일밖에 모르는 진짜배기 일꾼들이었다고 내세워주며 그들의 후대들의 앞날까지 염려하여 세심하게 보살폈다.


 

비전향장기수에 대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극진한 사랑은 진정한 동지애의 표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를 언제나 조국통일운동에서 나서는 가장 첫 번째 과업으로 내세우고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위해 헌신적으로 투쟁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결국 반민족, 반통일정권으로 민중의 심판을 받은 김영삼 정권을 기어이 굴복시켜 이인모 선생의 송환을 이끌어 낸 사랑의 신화는 전세계에 얼마나 크나큰 파문을 일으켰던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 당시에도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내었고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분단의 장벽을 넘는 전대미문의 감동서사시를 연출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뜨거운 사랑의 품에 안긴 비전향장기수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세심한 배려와 관심 속에서 잃어버린 청춘을 다시 되찾고 조국을 위해 마지막 생을 불태우고 있다고 한다.


 

이렇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지애는 동서고금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각별한 것이다. 이 같은 동지애의 정치가 있었기에 북한의 조선노동당은 세계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일심단결의 당, 강위력한 불패의 당으로 강화 발전될 수 있었다.


 

2. 친부모와 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사사랑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병사들을 언제나 친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생사운명을 같이할 동지로, 전우로 믿고 있다고 강조하여 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인품과 덕망, 뜨거운 사랑은 인민군대를 자기의 최고사령관에 대한 절대적 숭배심을 지닌 혼연일체의 대오, 무적강군으로 키워낸 힘의 원천이며 선군정치의 강력한 추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실록은 병사사랑의 실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사사랑 대장정은 사나운 파도도, 험산준령도, 적들의 총구도 막을 수 없었다.


 

1996년 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느 날 최전선의 한 고지를 찾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초소식당에 들러 직접 간장 맛을 보았다. 그런데 간장 맛이 시원치 않았고 색깔도 좋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안색이 흐려져 말이 없었다. 그날 저녁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낮에 초소식당에서 맞본 간장 맛을 상기하며 간장은 예로부터 조선민족의 기초식료품이며 필수식료품이다, 음식 맛은 간장 맛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간장 맛이 좋아야 모든 음식이 제 맛을 낼 수 있다며 귀중한 전사들에게 제일 맛좋고 색깔 고운 간장을 공급하여야겠다며 그날로 병사들에게 공급할 새로운 간장 연구 사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얼마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꾼들에게 손수 창안한 간장견본을 내놓았다. 직접 마련하여 맛도 보고 색깔까지 파악하여 말린 간장이었다. 이 말린 간장은 곧 병사들에게 지급되어 최고사령관의 뜨거운 사랑이 담긴 음식을 모든 병사들이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는 이름난 명장들이 많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같이 병사들의 먹거리와 소소한 생활세부까지 세심하게 보살피고 돌봐주는 그런 최고사령관은 동서고금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이 같은 병사사랑의 일화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느 해 겨울 최전선 고지위에서 두 병사를 만나고 그들이 입고 있는 솜동복과 솜신의 상태를 직접 살펴보았다. 병사들도 별다른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솜동복이 얇고 솜신발에 솜이 적게 들어가 발이 시리고 오래 신지도 못할 것이라고 걱정하면서, 바로 군대의 책임일꾼과 경공업부문 일꾼을 불러 군인들의 솜동복에 솜을 더 두툼히 넣어주며 이제부터는 군인들에게 바늘구멍으로 바람이 새는 누빈 솜동복이 아니라 누비지 않은 솜동복을 공급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리하여 머지않아 병사들은 최고사령관의 사랑이 가득한 새로운 솜동복과 솜신을 받아 안게 되었다.


 

이처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우리의 전사들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보배들이라며 그들이 사소한 불편이라도 느낄세라 언제나 세심하게 따뜻이 돌봐주어야 한다고 일꾼들에게 당부하였다고 한다. 그러기에 북한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사사랑은 친어버이의 사랑보다 더 세심하고 따사롭다고 칭송되고 있다. 친아버지도 무심코 지나칠만한 사소한 생활의 불편까지 두루 살피며 병사들을 사랑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는 이런 병사사랑의 정치, 민중사랑의 정치이다. 이 같은 뜨거운 사랑이 있기에 북한의 병사들은 최고사령관을 친아버지처럼 따르며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목숨으로 관철하는 무적의 강군으로 자라났다. 용장 밑에 약졸 없다는 말이 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병사사랑은 북한의 조선인민군을 세계 최강의 군대로 키워낸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3. 타산을 모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사랑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숭고한 동지애의 세계는 민중사랑으로 집약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민중을 하늘처럼 받들고 동지로 삼고 스승으로 여기며 불면불휴 민중사랑의 대장정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1975년 2월 북한의 서해 해상에서 한 처녀어부가 조개잡이를 하러 바다에 나갔다가 조난을 당한 적이 있었다. 항구에서는 순식간에 소동이 일어나고 마을 사람들 모두가 안타까이 소리쳤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관련부문에서 이 보고를 듣고, 왜 이제야 보고하는가고 엄하게 일꾼들을 책망하면서 만사를 제쳐놓고 처녀어부의 구조작업을 진두에서 지휘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즉시 전화로 공군부대를 출동시키고 주변의 부대들과 경비대들까지 총동원하도록 비상조치를 취하였다. 한 처녀어부를 구하기 위한 세계에 유례없는 육해공 입체전이 전개되었으며 이런 극진한 노력에 처녀어부는 결국 구원되었다.

단 한 명의 처녀어부를 구조하기 위한 사업을 최고지도자가 직접 지휘하면서 군대가 동원되고 헬기까지 떠 구조한 사례는 일찍이 들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이는 민중의 생명을 파리 목숨으로도 여기지 않는 자본주의 정치현실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일이 아니라 저 천당에서나 있을 법한 기적과 같은 사랑의 정치일화이다.


 

이러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사랑은 단 1m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말 그대로 마이크로미터의 정밀한 사랑이다.

평양의 창광거리에 현대적인 고층 아파트들을 한창 건설하던 때의 일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새로 건설된 아파트 구역을 돌아보고 어느 한 집에 들렀다. 주택 내부를 구석구석까지 세세히 살펴본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베란다로 나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갑자기 한 일꾼을 불러 가까이 오라고 하여 베란다의 한쪽 모서리를 가리켰다. 무슨 흠이 없는가 자세히 살펴보라는 뜻이었다. 그렇지만 그 일꾼은 아무리 살펴보아도 미흡한 점을 찾지 못하였다. 일꾼이 결함을 찾지 못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배수구를 밑바닥에 바싹 붙여서 내야지 이렇게 올려놓으면 어떻게 하는가고 훈계를 하였다고 한다. 그제야 일꾼이 자세히 보니 베란다의 배수구가 바닥보다 미세하게 약간 높이 나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비록 사소하고 하찮은 것 같지만 일꾼들의 일본새와 마음씨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며 옥에 티는 허용될 수 있어도 민중을 위한 일꾼들의 마음의 태는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고 준엄히 꾸짖었다고 한다.

후에 일꾼들이 배수구의 위치가 바닥보다 얼마나 높은가 재어보니 그것은 고작 1mm였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꾼들에게 어머니와 같이 타산을 모르는 사랑을 가져야 민중들에게 하나라도 더 해줄 수 있다며 사람들은 흔히 밑지는 장사는 하지 말자고 하지만 민중을 위하여서는 밑지는 장사도 해야 한다, 민중을 위하여서는 타산을 앞세우지 말자 이것이 나의 산수이고 우리 당의 계산방법이라고 힘주어 강조하여 왔다고 한다. 타산을 모르는 사랑.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사랑이다. 1mm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사랑은 전 세계 모든 정치인의 귀감이며 사표이다. 이 같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민중사랑의 정치가 있었기에 북한은 고난의 행군과 같은 대국난을 군대와 민중이 혼연일체가 되어 일말의 동요도 없이 이겨낼 수 있었으며 오늘날 사회주의강성대국으로 나래 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도자는 민중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민중은 지도자만을 무조건 믿고 따르는 북한의 놀라운 정치현실은 동지애의 위력, 위대한 사랑의 힘은 무한대라는 진리를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지애가 대화원처럼 꽃피고 하나의 대가정과 같은 사랑이 차 넘치는 오늘날 북한의 사회주의는 한마디로 사랑의 사회주의, 동지애의 사회주의, 인류가 오랜기간 꿈꾸어온 사랑과 믿음이 넘치는 이상향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숭고한 동지애는 오늘의 북한을 이끌어나가는 자양분이자 원동력이다. 사랑의 성인(聖人),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숭고한 동지애의 실록, 사랑의 대장정이 계속되는 한 북한의 사회주의는 민중 복락의 낙원, 세계정치의 모범, 불패의 강국으로 그 이름을 떨쳐 나갈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