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개혁강령의 파산과 진보적 정권교체의 가능성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차례>
1. 김대중-노무현정권 10년

2. 6월항쟁 좌절 이후 20년

3. 진보적 정권교체의 가능성

1. 김대중-노무현정권 10년

언제부터인가 남(한국)사회에서는 민주화와 6월항쟁을 결부시킨 고정관념이 자리잡았다. 6월항쟁이 승리하여 민주화되기 시작하였고, 항쟁승리 이후 20년 동안 민주주의가 정착되어왔다는 식의 통속적인 인식은, 누가 만들어내어 퍼뜨린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사리에 맞지 않는 소리이다.

1987년 6월항쟁은 군사독재정권을 퇴출시키지도 중도개혁세력을 집권시키지도 군사독재정권의 연장을 저지하지도 못하였는데, 그 항쟁의 승리로 남(한국)사회가 민주화되기 시작하였다는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이다. 6월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하였다는 '민주화 바람'에 모든 유권자들이 들떠있을 때, 광주학살원흉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12.12 군사반란 주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수구반동세력의 대선후보가 대선승리를 거머쥐면서 군사독재정권을 연장하였다. 그렇게 등장한 노태우정권은 임기를 마치고 순순히 물러간 것이 아니라, 기만적인 3당야합을 추진하여 문민정권이라는 그럴듯한 간판을 내건 김영삼정권을 등장시키고 나서 물러갔다. 3당야합은 노태우정권과 김영삼정권의 내적 연속성을 입증한 것이었다. 노태우정권의 연장선에 놓였던 김영삼정권은 1997년에 닥친 금융위기 속에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민생파탄이라는 미증유의 재앙을 들씌우고 막을 내렸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87년 6월항쟁부터 1997년 금융위기까지 10년 기간은 군사독재정권이 퇴출되면서 중도개혁세력에게 권력을 넘겨준 점진적 이행기였다. 군사독재정권의 퇴출과 중도개혁세력의 진출이 10년이라는 기나긴 점진적 이행기를 거쳐서 실현되었다는 것 자체가 6월항쟁이 좌절하였음을 말해준다. 만일 6월항쟁이 승리하였다면 10년의 점진적 이행기는 없었을 것이고, 항쟁승리가 곧바로 중도개혁세력 집권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6월항쟁과 결부시킨 민주화라는 고정관념은 군사독재정권의 점진적 퇴출과 중도개혁세력의 점진적 진출을 뜻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10년의 점진적 이행기를 거친 뒤에도 중도개혁세력은 '유신잔당'으로 불렸던 수구반동세력과 야합하는 정치적 추태를 보이면서 집권의 길에 들어섰다. 중도개혁세력과 수구반동세력의 야합으로 출현한 것이 김대중정권이다. 군사독재정권의 점진적 퇴출, 중도개혁세력의 점진적 진출, 수구반동세력과 중도개혁세력의 야합을 민주주의의 정착이라고 말하는 것은,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전혀 다른 뜻으로 곡해하는 것이 아니면 사실을 고의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중도개혁세력은 집권한 뒤에 '중도개혁'이라는 간판을 내걸었으나, 김대중-노무현정권으로 이어진 지난 10년 동안 중도개혁정권이 추진한 중도개혁의 결과는 민생경제 회복불능, 진보정치세력 억압, 관료집단의 부정부패, 수구반동세력과의 타협이다.

김대중-노무현정권이 선전해온 중도개혁강령은, 한 마디로 말해서, 정치개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경제개혁으로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구조조정이다. 중도개혁으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은 중도개혁정권의 집권연장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중도개혁으로 시장경제를 발전시키는 것은 신자유주의세계화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는 시장경제에 의해서 발전하고, 시장경제만이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중도개혁강령의 논리는, 중도개혁정권이 신자유주의세계화에 의해서 집권을 연장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세계화만이 그 정권의 집권을 연장시킬 수 있다는 논리이다.

주목하는 것은, 김대중-노무현정권이 10년 동안 적극적으로 추종해온 신자유주의세계화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주의체제에 대한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정치군사적 지배와 사회경제적 이윤수탈의 자유화, 그리고 그것이 몰고 오는 절망과 고통의 세계화라는 점이다. 유럽지역 일부나라들에 성립된 중도개혁정권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통일적으로 실현한 민주적 시장경제를 추구하는데 비해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서 중도개혁의 간판을 내건 신식민주의정권들은 제국주의세계체제의 신자유주의세계화정책을 추종한다. 따라서 남(한국)의 중도개혁정권이 신자유주의세계화정책을 추종하여 집권을 연장할수록 그들이 내놓은 중도개혁강령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신식민주의체제의 모순이 심화되는 것뿐이다.

노무현정권이 내놓은 중도개혁강령은 유럽지역 일부나라들에 성립된 중도개혁정권이 추구하는 중도개혁강령과 다른데도, 노무현정권은 마치 양자가 동일한 것처럼 허위선전을 되풀이해왔다. 노무현정권은 정권탈환을 노리는 한나라당의 집요한 도전에 맞서서 자신과 수구반동세력의 전략적 차별성을 부각시켜야 하므로 자기의 중도개혁강령에 관한 허위선전을 벌여야 하였던 것이다. 노무현정권의 국정연설, 정책선전, 선거공약, 언론담화가 현실과 동떨어진 허구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노무현정권의 허위선전에 나오는 중도개혁강령과 유럽지역 일부나라들의 중도개혁정권이 추진하는 중도개혁강령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은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점을 지적하면 더욱 분명해진다.

1-1) 원래 중도개혁강령은 자본계급의 물질경제적 양보로 실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본계급이 물질경제적으로 양보할 때, 비교적 공평한 사회적 이윤분배, 노동임금제도 개혁과 사회보장제도 발전이 실현되고, 그 결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다수가 중산층화되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다수가 중산층화되면 중도개혁정권의 정치적 기반은 공고해지고, 그 정권의 집권연장이 안정적으로 보장된다.

1-2) 원래 중도개혁강령은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의 사회적 타협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김대중-노무현정권이 사회적 타협을 실현해보려고 만들어낸 장치가 노사정위원회이다. 자본계급이 노동계급에게 물질경제적으로 양보함으로써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이 사회적으로 타협할 때, 중도개혁강령에서 말하는 이른바 노사관계의 선진화, 노동조합의 기업경영참여, 자본가와 노동자의 공동경영이 실현된다. 그로써 사회민주주의적 계급협조가 본격화되는 것이다. 계급협조는 생산관계에서 계급적 착취를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분배관계를 조절하여 사회복지(social welfare)를 향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도개혁강령이 실현된 사회를 통속적으로 '복지사회'라 부른다.

그러나 김대중정권에서 노무현정권으로 이어진 중도개혁세력의 집권기간 10년은 위에서 논한 비교적 공평한 사회적 이윤분배, 노동임금제도 개혁, 사회보장제도 발전, 노사관계의 선진화, 노동조합의 기업경영참여, 자본가와 노동자의 공동경영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실현하지 못한 실패의 연속과정이었을 뿐 아니라 거꾸로 뒷걸음질치는 퇴행과정이었다. 자본계급이 물질경제적으로 양보하기는커녕 노동자를 길거리로 쫓아내어 실업자와 노숙자, 비정규직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로 전략시키면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피땀을 쥐어짜는 대량착취를 더욱 가중시켰고,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이 사회적으로 타협하기는커녕 계급적 대립이 더욱 적대적인 양상을 띄게 되었다.

노무현정권에 대한 '민심이반'이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언론의 지적이나, 노무현정권의 '국정파탄'이 회복불능상태에 빠졌다는 야당의 비난은 과장이 아니다. 주목하는 것은, 남(한국)의 중도개혁정권 10년 동안 중도개혁강령이 실현되기는커녕 정반대로 그 정권을 '민심이반'과 '국정파탄'의 퇴출위기로 떠밀어간 원인이다.

그렇게 된 원인을 논하면서 김대중-노무현정권이 중도개혁강령을 실현하는 데서 준비가 미흡했다거나 정치적으로 무능했다고 말하는 것은 중학생 수준의 지능에 어울리는 판단착오이다. 그 원인은 특정정권의 미흡한 준비나 정치적 무능 따위로 설명할 수 있는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원인이 아니라 체제의 구조적 모순에서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노무현정권을 퇴출위기로 몰아넣는 근본원인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은 설명이 요구된다.

중도개혁강령을 실현하려면 자본계급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물질경제적으로 일정부분을 양보해야 하는데, 남(한국)의 자본계급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 대한 그 무슨 양보를 생각하기는커녕 대량착취의 올가미를 더욱 조여대는 중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사회경제동향에 나타난 실업률의 지속적 증가, 비정규직의 지속적 확산, 실질임금의 지속적 하락, 물가의 지속적 상승, 빈곤계층의 지속적 증대, 소득격차의 지속적 확대야말로 자본계급이 대량착취의 올가미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을 조여대고 있는 증거가 아니면 무엇인가.

남(한국)의 자본계급은 양보심이 없어서 대량착취의 올가미를 조여대는 것이 아니고, 이른바 '복지사회'를 건설한 유럽지역 일부나라들의 자본계급은 남(한국)의 자본계급보다 양보심이 많아서 민주적 시장경제를 실현한 것이 아니다. 남(한국)의 자본계급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의 제국주의독점자본에 기생하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예속자본을 소유하였으므로 노동계급에게 물질경제적으로 아무 것도 양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되레 대량착취의 올가미를 더욱 조여댈 수밖에 없다. 그와 더불어 다른 한쪽에서는 제국주의독점자본이 자기에게 기생하는 남(한국)의 예속자본이 긁어모은 이윤 가운데서 남(한국)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분배되어야 할 막대한 이윤을 교역관계와 환율변동에서 생기는 차익, 기업의 인수합병과 부동산 매각으로 생기는 시세차익, 주식시장 지배로 생기는 배당금 등으로 마구 수탈해 가는 것이다. 기생적 예속자본의 대량착취와 제국주의독점자본의 대량수탈은 남(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존재하는 신식민주의시장경제의 작동원리이자 존재이유이다.

이처럼 기생적 예속자본을 소유한 남(한국)의 자본계급이 노동계급에게 아무 것도 양보하지 않으므로 남(한국)에서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이 사회적으로 타협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바로 이것이 남(한국)에서 중도개혁강령이 파산할 수밖에 없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남(한국)의 신식민주의체제에서 민주적 시장경제의 실현이나 사회민주주의의 발전전망을 논하는 것 자체가 환상 중의 환상이다. 김대중-노무현정권의 집권 10년이 그것을 현실로 입증하였다.

그런데도 남(한국)에서 민주적 시장경제와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까닭은, 1997년 금융위기 이후 신식민주의경제파탄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사회구성원들이 경제활동인구의 약 절반을 차지할 만큼 비대한 사회집단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며, 중산층 가운데서도 공공부문 종사자와 전문기술직 종사자를 비롯한 신흥중산층이 거의 몰락하지 않는 가장 안정적인 집단으로 자리를 지키면서 민주적 시장경제에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한 희망담론을 빚어내기 때문이다. 특히 대중언론매체들과 시민운동단체들이 손잡고 신흥중산층의 대변인 노릇을 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만일 남(한국)의 신식민주의시장경제가 폐절되는 경우, 남(한국)에서도 민주적 시장경제가 성립되고 사회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은 두말한 나위 없이 아니오이다.

남(한국)에서 신식민주의시장경제가 폐절되었는데도 민주적 시장경제가 성립될 수 없고 사회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없는 까닭은, 남(한국)의 신식민주의시장경제가 시장경제의 정상적 발전을 통해서 자본주의시장경제로 점진적으로 교체되지 않고, 제국주의세계체제와 단절하고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민주주의혁명에 의해서 급진적으로 폐절되기 때문이다. 남(한국)만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주의시장경제가 폐절되는 것은 신식민주의체제를 뒤집어엎는 사회변혁 곧 민주주의혁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2. 6월항쟁 좌절 이후 20년

무릇 모든 종류의 사회변혁은 사상, 조직, 항쟁을 절묘하게 일체화하고, 급진적으로 전개한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사상, 조직, 항쟁을 절묘하게 일체화시킨 거대한 창조력을 분출할 때, 사회변혁이 일어난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는 점에서 혁명은 인류역사가 빚어내는 최고의 종합예술이다. 오늘날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곳곳에서 진행중인 민주주의혁명도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수준은 사상, 조직, 항쟁의 발전수준을 가늠해야 파악할 수 있다.

2-1) 사회변혁사상은 사회변혁의 발전수준에 조응하고, 사회역사발전의 과학적 전망을 제시한다. 사회변혁사상의 발전수준을 가늠하는 객관적 지표는 강령이다. 강령이 없으면, 사회변혁운동을 전진시킬 수 없다.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강령 곧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이다.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은 몇몇 진보적 지식인들이 머리 속에서 고안하는 작품이 아니라 현 단계 사회변혁운동의 주객관적 조건을 반영하고 그 운동의 요구와 지향을 담아낸 결정체이다. 현 단계 사회변혁운동의 주객관적 조건을 반영하고 그 운동의 요구와 지향을 집약적으로 담은 강령을 작성하려면 사회변혁운동 안에서 집체적인 연구, 학습, 토론을 진행해야 한다.

전민련, 전국연합, 민중연대를 거쳐 진보연대로 이어진 각이한 수준의 통일전선체들이 작성한 초보적 수준의 강령도 있고 민주노동당이 집권전략으로 제시한 미완의 강령도 있지만, 현 단계 남(한국) 사회변혁운동의 주객관적인 조건을 반영하고 그 운동의 요구와 지향을 집약한 진보적 민주주의강령의 표본은 이번에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제시한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안에 담겨있는 10대 강령이다.

10대 강령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변혁세력들이 작성한 다종다양한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에 견주어 손색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20년 전, 제대로 된 강령을 갖지도 못한 채 포악한 군사독재정권과 맨주먹으로 맞서 싸웠던 원시적 경험에서 출발하였던 남(한국)의 사회변혁운동이 발전을 거듭한 끝에 민주주의혁명의 강령을 작성하는 수준에 이르렀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10대 강령은 진보정당의 강령도 아니고 진보정치연합의 강령도 아니다. 그것은 진보정당 대선후보가 제시하였으나 진보변혁세력 전체가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강령이다. 강령의 제목을 코리아연방공화국 건설안으로 정한 것은, 10대 강령이 사회변혁강령이 아니라 조국통일강령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 조국통일강령에 거부감을 느끼는 정파들에게 불필요한 논쟁거리를 내주는 것이다. 또한 올해 대선정국에서는 한(조선)민족의 통일문제가 아니라 남(한국)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민생문제가 최대 쟁점으로 제기되었는데도, 조국통일강령의 인상을 주는 제목을 내건 것은 실수로 보인다. 10대 강령은 진보변혁세력 안에서 연구, 학습, 토론을 심화시키면서 수정, 보완해야 할 것이다. 남(한국) 민주주의혁명에서 강령의 발전수준을 가늠하는 평가지점이 여기에 있다.

2-2) 사회변혁이란 격론을 벌이는 말싸움판이 아니라, 새로운 세력과 낡은 세력이 여러 형태의 물리력을 총동원하여 맞붙는 힘의 대결이다. 사회변혁에 동원되는 물리력의 기본은 조직역량이다. 진보변혁세력은 자기의 조직역량을 동원하여 낡고 썩은 체제를 무너뜨리는 총공세에 나서게 되며, 그에 맞서 신식민주의정권은 정보기구, 군대, 경찰 같은 정권기관을 동원하여 낡고 썩은 체제를 지키려는 총반격에 나서게 된다. 그러므로 진보변혁세력이 조직화되지 못하면 신식민주의정권과 싸울 수도 없으며 민주주의혁명을 전진시킬 수도 없다.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는 조직이란 그 혁명의 주체역량을 결집하고 육성하여 건설한 전투력 있는 조직을 말한다. 진보변혁세력을 육성하여 건설한 진보정당이 그러한 조직이고, 진보적 대중단체들이 결집한, 통일전선체라고도 부르는 진보정치연합체가 그러한 조직이다.

진보정치연합은 신식민주의정권과 거리를 두고 대치한 전선이 아니라 그 정권과 끊임없이 공방전을 벌이는 전선이다. 그러므로 진보정치연합을 형성하는 것은 진보변혁세력을 중심으로 결집한 노동계급과 각계층 근로대중이 신식민주의정권에 맞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는 뜻이다. 진보정치연합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현장에서 형성된다는 말은 그런 뜻에서 이해될 수 있다.

20년 전,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싸울 때는 진보정당이라는 말조차 알지 못하였으니 진보변혁세력을 육성할 수 없었고, 진보적 대중단체도 거의 없었으니 진보정치연합을 형성할 수도 없었다. 그에 비해 오늘에는 진보정당도 건설하였고 진보정치연합도 형성하였으니 민주주의혁명의 주체역량이 그만큼 강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은 아직 8만 명 당원밖에 갖지 못한 소수정당에 지나지 않고, 진보정치연합은 이제 막 출발점을 떠난 수준이어서 아직 완성된 전선체로 나서지 못하는 실정이다. 남(한국)에서 민주주의혁명의 조직적 발전수준을 가늠하는 평가지점이 여기에 있다.

2-3) 항쟁이 없으면 민주주의혁명을 전진시킬 수 없다. 민주주의혁명을 전진시키는 것은 사회변혁사상과 진보변혁조직에 의거하는 항쟁이다. 여기서 말하는 항쟁이란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을 뜻한다. 1960년의 4월항쟁, 1980년의 5월항쟁, 1987년의 6월항쟁이 한결같이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인데도, 중도개혁세력과 수구반동세력은 대중항쟁을 민란이라 낮추어 부르면서 혐오하고 반대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주의체제에서 일어나는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은 반제투쟁과제와 계급투쟁과제를 제기한다. 반제투쟁과제와 계급투쟁과제를 제기한다는 점에서 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는 대중항쟁은 약탈과 방화가 난무하는 군중폭동과 질적으로 다르다. 신식민주의체제에서 일어나는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은 반제투쟁과 계급투쟁이 결합되면서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항쟁이다.

민주주의혁명이 선거에 의해서 수행된다는 이른바 평화적 이행론은 혁명과 선거를 혼동하는 무지와 편견의 소산이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식민주의체제에서는 선거혁명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대중항쟁의 가능성만 존재한다. 1970년대 초 칠레의 아옌데정부가 선거혁명으로 평화적 이행을 시도한 적이 있었고, 오늘 베네주엘라의 챠베스정부 역시 선거혁명에서 승리하여 평화적 이행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례를 지적하면서 평화적 이행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칠레혁명은 대중항쟁의 실패로 좌절하였고, 베네주엘라혁명은 대중항쟁으로 반혁명공세를 막아내었음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만일 칠레혁명이 대중항쟁에서 승리하였다면 좌절하지 않았을 것이며, 베네주엘라혁명이 대중항쟁에서 패하였다면 곧바로 좌절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주의혁명에서 대중항쟁은 선차적이고 결정적인 요인이며, 선거전은 부차적이고 보조적인 요인이다.

진보변혁세력은 선거혁명승리와 의회정치발전으로 평화적 이행을 실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비과학적인 공상에서 벗어나야 하며, 특히 진보정당은 마땅히 의회정치와 선거전을 넘어서는 사회변혁운동의 집권전략을 내와야 한다.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연합에게는 공상적 집권전략에서 현실적 집권전략으로 나아가는 발상의 전환이 요구된다.

20년 전에 일어난 6월항쟁은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과 유사한 양상으로 전개되기는 하였으나 반제투쟁과제와 계급투쟁과제를 제기하지 못한 채 폭발력이 급속히 소진되었으며, 선거혁명으로 연결되지도 못하였다.

6월항쟁으로부터 20년이 지난 2006년 11월 22일과 11월 29일에 있었던 두 차례의 민중대회, 그리고 2007년 11월 11일에 진행된 민중대회를 대중항쟁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2006년에 있었던 민중대회의 의의에 대해서는 2006년 11월 30일에 작성한 나의 글 '11월 대중항쟁의 사회변혁적 의의에 대하여'에서 논하였으므로 재론하지 않는다.

2006년 11월에 있었던 두 차례의 민중대회, 그리고 2007년 11월 11일에 진행된 민중대회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민중대회들에서 반제투쟁과제와 계급투쟁과제가 어떻게 제기되었는가 하는 문제이다. 반제투쟁과제와 계급투쟁과제를 제기하는 문제를 중시하는 까닭은, 민중대회의 성패가 그 과제를 어떻게 제기하느냐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반제투쟁과제와 계급투쟁과제는 투쟁구호로 집약되므로, 민중대회의 투쟁구호를 살펴보면 그 과제들이 어떻게 제기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번에 열린 민중대회의 투쟁구호는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비정규직 철폐, 반전평화 실현, 삼성재벌 해체였다. 그 투쟁구호들이 말해주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민중대회는 민주주의혁명의 투쟁과제를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언어로 표현하였다. 민주주의혁명의 투쟁과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마음속에 있으므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마음과 통하는 언어로 그 과제를 표현할 때 그들을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소통하는 절실한 언어로 표현되지 못한 투쟁과제는, 어느 정파의 투쟁과제로 될 수는 있겠지만 민주주의혁명의 투쟁과제로 될 수는 없다.

민중대회의 투쟁구호는 반영과 지향의 두 측면을 지닌다. 그 구호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생존권사수투쟁에서 일상적으로 제기되는 투쟁과제를 반영하면서 민주주의혁명의 전략목표를 지향하는 것이다. 생존권사수투쟁에서 제기된 투쟁과제를 민주주의혁명의 전략목표로 지향시키는 투쟁구호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을 움직일 때, 생존권사수투쟁은 민주주의혁명으로 급속히 성장, 발전해 가는 것이다.

둘째, 진보의식화된 선진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그렇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신식민주의체제의 실질적 지배자인 주한미국대사 벌쉬바우나 주한미국군사령관 바월 벨보다 이랜드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질자본가 박성수나 인천 전기원 노동자를 착취하는 악질자본가 유해성에게 분노를 느낀다. 그 까닭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분노가 그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에서 촉발되기 때문이다. 진보의식화된 선진적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신식민주의체제의 실질적 지배자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에 반제투쟁과제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생존권사수투쟁 이상의 전망을 내다보지 못하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자기들을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악질자본가들에게 분노를 느끼기 때문에 계급투쟁과제를 전면에 내세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주한미국군 철군과 한미동맹 해체, 제국주의독점자본 몰수와 국유화 같은 반제투쟁과제를 자기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와 무관한 것으로 여기는 조건에서, 민중대회가 반제투쟁과제를 전면적으로 제기한다고 해서 그 대회의 승리를 보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에 나서는 것은 더욱 아니다. 민중대회가 내거는 투쟁과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일상적인 생존권사수투쟁에서 소통하는 절실한 언어로 표현될 때,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고 그들 자신의 투쟁과제로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중대회는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비정규직 철폐, 반전평화 실현, 삼성재벌 해체 같은 생존권사수투쟁의 구호를 전면에 제기하고 투쟁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그와 더불어 생존권사수투쟁의 구호를 들고 궐기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투쟁을 민주주의혁명의 전략목표로 지향시키는 임무를 지닌다. 여기서 말하는 민주주의혁명의 전략목표란 신식민주의정권의 퇴출과 새로운 정권의 수립이다. 민주주의혁명의 전략목표는 기존의 낡은 입법기구, 행정기구, 사법기구를 개량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입법기구, 행정기구, 사법기구를 내옴으로써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지금 민중대회에 참가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은 한미자유무역협정 저지, 비정규직 철폐, 반전평화 실현, 삼성재벌 해체 같은 생존권사수투쟁의 구호를 들고 싸우지만, 앞으로 그 대회가 투쟁력을 비상히 축적하게 될 때 정권퇴출과 정부수립이라는 전략적 투쟁구호를 들 것이다.

민중대회에 참가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정권퇴출투쟁을 끝까지 밀고 나가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을 일으킴으로써 신식민주의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계급투쟁과제와 반제투쟁과제를 한꺼번에 실현하는 것이다.

3. 진보적 정권교체의 가능성

일반적으로, 민주주의혁명정세의 성숙도는 다음과 같은 요인으로 판별할 수 있다.

첫째, 노동계급과 각계층 근로대중이 연합하여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연합을 결성한다.

둘째,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연합이 정치활동과 대중투쟁을 강화한다.

셋째, 수구반동세력이 내분과 혼란에 빠져 무력화된다.

넷째, 중도개혁정권이 진보변혁세력과 수구반동세력의 대결구도 속에서 동요한다.

다섯째, 중도개혁정권이 분열, 약화되고, 그 일부세력을 진보변혁세력이 포섭한다.

현 시기 남(한국)에서 민주주의혁명정세의 성숙도는 위에 적은 판별요인들 가운데서 두 번째에 나오는, 진보정당과 진보정치연합이 정치활동과 대중투쟁을 강화하는 요인과 맞아떨어진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연대가 정치활동과 대중투쟁을 강화하기 위해서 힘쓰고 있는 중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연대가 정치활동과 대중투쟁을 강화하기 위한 방도는 수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단연 돋보이는 방도는 민중대회이다. 올해 민중대회는 민중총궐기를 촉구하는 군중정치집회로 추진되었다.

위에서 논한 대로, 민주주의혁명을 전진시키는 것은 사회변혁사상과 진보변혁조직에 의거하는 항쟁인데, 그러한 항쟁을 직접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민중총궐기를 촉구하는 민중대회이다. 민중대회는 민중총궐기를 촉구함으로써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을 준비하는 것이다. 민중대회가 촉구하는 민중총궐기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총파업과 민중대회로의 총집결을 뜻한다. 총궐기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민중대회는 총파업 민중대회로 된다.

신식민주의정권은 민중대회를 '불법집회' 또는 '폭력시위'라고 비난하면서 '공권력'을 투입하여 마구 탄압하지만, 민중대회는 진보변혁세력의 분산과 소수화를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이며, 신식민주의체제의 모순심화로 쇠퇴, 방황하는 중산층 가운데 일부를 전선으로 끌어들이는 유일한 대안이다. 민중대회의 승리에 의해서 진보변혁세력의 분산과 소수화가 극복되고 세력관계가 뒤집어져 진보변혁세력이 우세해질 때, 중산층이 분해되고 그 일부가 전선으로 넘어오게 될 것이며, 그때 비로소 진보정치연합이 최종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남(한국)의 진보변혁세력은 해마다 11월에 민중총궐기를 촉구하는 민중대회를 진행해왔다. 특히 올해 진행하는 두 차례의 민중대회는 12월 19일에 실시될 대통령선거와 맞물리면서 그 중요성이 더 커졌다.

그런데 올해의 민중대회는 총파업 민중대회로 되지 못하였다. 민중대회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총파업투쟁과 결합되지 못한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월 11일에 열린 민중대회에 참가한 인원은 4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민중대회 현장으로 올라오는 각 지방의 노동자들과 농민들,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경찰봉쇄에 막혀 참가인원이 크게 줄었지만, 그 인원까지 더해도 민중대회의 동원력은 10만 명을 훨씬 밑돈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에게 100만 민중대회를 호소하였으나 실제로는 10만 명을 훨씬 밑도는 민중대회로 진행한 것은, 민주주의혁명의 발전수준을 보여주는 객관적 지표이다. 이것은 남(한국)의 민주주의혁명을 책임질 선진적이며 조직화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아직 소수이고, 진보변혁세력의 활동이 아직 약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민주노동당과 진보연대는 집권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07년 11월 6일에 작성한 나의 글 '쇠퇴하는 신식민주의시장경제의 마지막 선택'에서 논한 대로, 남(한국)에서 지난 10년 동안 신식민주의경제침체가 날로 악화되어 거의 파탄상태에 빠졌고 그에 따라 신식민주의정권에 대한 대중의 정치적 불신과 절망이 만연되었지만, 그러한 상태가 곧 민주주의혁명정세가 성숙된 것은 아니다. 정치적 불신과 사회적 절망은 분노와 투지를 체념과 포기의 용액으로 희석시킬 뿐이다.

주목하는 것은, 민중대회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총파업투쟁과 결합할 때 정치적 급진화(political radicalization)가 실현되고,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중대회가 정치적 급진화에 의해서 대중항쟁으로 성장, 발전하는 과정은 돌비현상(突沸現象, bumping)에 비유된다.

돌비현상이란 물에 열을 가하여 섭씨 100도 끓는점에 이르렀는데도 끓지 않고 있다가, 어떤 충격이 가해지거나 이물질이 들어갈 때 펑하는 소리와 함께 끓는 물이 솟구치며 갑자기 수증기와 물거품을 분출하는 물리현상이다. 돌비현상에서 주목하는 것은 가열지속→기폭행동→폭발적 분출로 이어지는 급진적인 변화이다.

그러한 물리현상에 빗대어 민주주의혁명의 진전과정을 논하면, 민중대회는 가열지속이고, 정치적 급진화는 기폭행동이며, 폭발적 분출은 대중항쟁이다. 돌비현상이 일어나려면 물에 열을 가해서 물이 끓어야 하는 것처럼, 민주주의혁명이 일어나려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분노가 끊임없이 가열되어야 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분노가 집단적으로 가열되는 현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민중대회이다. 민중대회는 진보변혁세력이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가열된 분노로부터 투쟁동력을 공급받음으로써 자기의 정치적 무력증과 소심증을 단번에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이다.

그런데 민중봉기형태의 대중항쟁을 일으키는 정치적 급진화는 아무런 조건 없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급진화는 진보변혁세력의 민중대회와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총파업투쟁이 만날 때 실현된다. 이 땅의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총파업 깃발을 들고 민중대회에 집결할 때 대중항쟁을 일으키는 정치적 급진화가 실현되는 것이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총파업투쟁과 결합된 민중대회만이 결정적인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총파업 깃발을 든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이 집결하여 정당하고, 절실한 요구를 제기하는 민중대회를 신식민주의정권이 잔인한 폭력으로 짓누를 때, 민중대회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덧쌓인 분노를 폭발시켜 생존권사수투쟁을 정권퇴출투쟁으로 급진화한다. 민주주의혁명을 일으키는 정치적 급진화는 그렇게 실현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민중대회는 진보변혁세력의 연례행사가 아니라 민주주의혁명의 승리를 준비하는 불패의 요인이며, 정권퇴출투쟁은 총파업 민중대회와 민주주의혁명을 직접적으로 이어주는 전략적 기동전인 것이다. 민중대회와 총파업투쟁이 결합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문제가 정권퇴출투쟁의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총파업 민중대회의 승리는 민주주의혁명의 승리에 직결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총파업 민중대회는 민주주의혁명을 밀고 나가는 최강의 기동전략이다.

진보적 정권교체를 상정한 가장 근사한 시나리오는, 총파업 민중대회→정치적 급진화→대중항쟁→정권퇴출→과도정부 수립→선거실시→진보정당 집권→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밟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진보적 정권교체 시나리오에서 가장 주목하는 것은, 대중항쟁 폭발→정권퇴출→과도정부 수립→선거실시로 이어지는 집권과정보다도 진보정당이 집권하여 자주적 민주정부를 세운 집권 이후의 과정이다. 민주주의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대중항쟁을 어떻게 정권퇴출로 연결하느냐 하는 문제보다 진보정당 집권과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반동적 공세를 막아내고 어떻게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호하느냐 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진보정당이 집권한 베네주엘라, 볼리비아, 에꾸아돌, 니까라과 같은 나라들에서 자주적 민주정부를 뒤집어엎으려는 제국주의반동정권의 은밀한 집중공세와 그 정권의 배후조종을 받는 수구반동세력의 노골적인 정권전복기도가 날로 격화되면서 위태로운 상황이 조성된 것은, 진보정당이 집권 이후에 겪게 될 어려움이 어떠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진보정당 집권과 자주적 민주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반동적 공세를 막아내고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호하는 과제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만이 해결할 수 있다. 자주적 민주정부는 민주주의혁명에 참가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힘에 전적으로 의거하여야 반동적 공세로부터 자기의 안전을 지킬 수 있으며 공고하게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제국주의반동정권과 수구반동세력의 집요한 반동공세를 막아내는 것은, 선거혁명과 평화적 이행의 환상에 젖어있는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지지와 성원이 아니라 피와 땀을 흘린 총파업 민중대회와 대중항쟁에서 불굴의 투지로 단련된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결사전이다. 그런 까닭에 총파업 민중대회와 대중항쟁은 민주주의혁명의 필수불가결한 요인으로 된다.

노동계급과 근로대중의 총파업과 결합함으로써 대선국면을 정면돌파하는 민중대회는 진보적 정권교체의 시나리오를 시작하는 민주주의혁명의 개막식이다. 이 땅의 진보변혁세력이 민중대회에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2007년 11월 16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