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출명장 김정일 국방위원장 <2>

김정일장군연구서울시민위원회 (2007년 9월 28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두의 담력으로 세계를 뒤흔드는 용장 중에 용장이다.>

18세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백두산을 8도의 모든 산이 다 이 산에서 일어났으니 이 산은 곧 우리나라 산의 조종이라고 일컬었다.
백두산은 영역이 광범하고 산세가 웅건하며 경관이 이채로워 예로부터 신비의 산으로 불려왔다. 사시사철 흰 눈을 머리에 이고 거연히 솟아올라 기암절벽과 천리수해를 펼치고 있는 백두산의 웅장한 자태는 무비의 배짱과 담력의 소유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풍모 그대로이다.

세계사를 돌이켜보면 이름을 떨친 명장들은 모두가 한 결 같이 용장이었다. 지략이 모자라고 인덕이 부족한 명장은 있어도 비겁한 명장은 없었다. 따라서 용맹성은 장수가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5대 명장, 10대 명장들이 저마다 용장으로 이름을 떨쳤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같이 백두산 그대로의 담력과 배짱을 가진 용장 중에 용장, 명장 중에 명장은 일찍이 없었다.

1.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은 백두산을 그대로 닮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두의 혹한이 아직도 맹위를 떨치던 1942년 2월 16일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가 자리 잡은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제 백만 관동군을 공포에 떨게 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숙 여사의 애국, 애족, 애민의 가르침 속에서 백두의 담력과 기질을 체득하였다.
1942년 6월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김일성 주석은 김정숙 여사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광복된 조국 땅위에 민중의 낙원을 일떠세울 혁명의 계승자로 억세게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김정숙 여사는 이러한 김일성 주석의 뜻을 받들어 후대들을 따뜻한 온실에서가 아니라 항일대전의 포성 속에서 설한풍이 휘몰아치는 백두의 폭풍우 속에서 억세게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그들이 해방된 조국에서 부러움 없이 살 때에도 오늘을 돌이켜보면서 혁명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며 유아 때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억세고 강의하게 이끌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생의 첫 걸음을 뗀 한 살도 채 되지 않은 1942년 늦가을의 일이었다.
첫 걸음은 떼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몇 걸음 못 가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 때 항일유격대의 한 여성대원이 자꾸만 넘어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 모포를 깔려고 했다. 그러자 김정숙 여사가 그러지 마세요, 좀 넘어져 아프면 뭐랍니까, 앞으로 가야 할 우리 혁명의 길은 이보다 더 험할 거예요, 라고 말하면서 그 여대원을 만류했다고 한다.

이렇듯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혁명의 앞날을 내다보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숙 여사의 뜻 깊은 가르침 속에서 백절불굴의 백두혁명정신을 모태로 백두산 장군의 배짱과 담력을 체득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두의 북풍한설을 요람으로 항일무장투쟁의 총포성을 자장가 삼아 빨치산 전사들의 거친 품속에서 생의 첫 발자국을 떼었다. 백두산에서 태어나 백두영웅들의 품속에서 백두산형 장군으로 성장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은 백두산 장군분들과 백두산의 기상과 정기를 그대로 물려 받은 것이다.

2.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에 소련군 대장도 감탄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유년기부터 남다른 비범한 배짱과 담력의 소유자였다.

소련군 스티코프 대장과의 일화는 유년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일화이다.
당시 조선주둔 소련군 사령관 스티코프 대장은 김일성 주석을 접견하기 위해 자택을 방문하였다. 그 시각 김일성 주석은 점심식사 이후 짧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짧은 휴식을 방해할지도 모를 소련군 대장의 방문을 대담하게 가로막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스티코프가 소련군 대장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김일성 주석의 휴식을 보장하기 위해 대담하게 그의 앞길을 막아 나선 것이다. 스티코프 대장은 내가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난 겁쟁이가 아니라고 대답하고 그에게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스티코프는 밖에서 김일성 주석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후에 스티코프 대장은 김일성 주석에게 어린아이답지 않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에 감복하여 소년장군이라 격찬했다고 한다.
이렇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린 시절부터 백두산을 빼어 닮은 배짱과 담력으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여느 아이들 같으면 따뜻한 부모의 품속에서 응석이나 부릴 어린 나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며 용장의 담력을 키워 나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세도 되기 전인 1949년 9월 어머니 김정숙 여사가 32세를 일기로 갑작스럽게 서거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어머님의 죽음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크나큰 상실이었다. 이 청천벽력 같은 상실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일성 주석의 품마저 떠나 나 어린 동생과 함께 장자산 기슭의 설매골로 옮겨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어른들도 이겨내기 힘든 참혹한 전화의 나날들을 동생분과 함께 홀로 이겨내야만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상실의 아픔과 전쟁의 시련은 오히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용장 중에 용장으로 이끄는 자양분이 되었다.
1952년 6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년만에 만난 김일성 주석에게 나도 이제 최고사령부에 가 있겠다고 청했다고 한다. 김일성 주석은 나라와 민중의 고통을 최전선에서 직접 체험하려는 어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청을 기특하게 여겨 이때부터 1952년 8월까지 두 달 여 동안 최고사령부에 머물게 했다고 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고사령부에서 백두의 영장 김일성 주석의 지략과 담력을 직접 익힐 수 있었고 백두산 호랑이의 담력이 무엇인가를 체득할 수 있었다. 최고사령부 작전대 앞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용장의 길로 이끈 값진 체험을 쌓았다. 유년기의 모진 시련과 고난 속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은 더욱 굳세진 것이다.

6.25 전쟁과 함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년시절은 이미 끝나고 있었다. 어머님을 잃은 슬픔과 한국전쟁의 시련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더욱 강의하게 이끌었다. 10대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어떤 어른도 흉내 낼 수 없는 배짱과 담력의 소유자, 용장의 자질을 갖추고 있다.
전후 어느 날 새벽 김일성 주석은 정원을 거닐다가 지금 적들은 사면팔방에서 달려들고 있는데 나라를 책임졌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물었다고 한다. 1950년 소련의 수정주의자들을 등에 업은 반당 종파주의자들의 책동을 염두에 둔 질문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조금도 주저 없이 그자들을 무자비하게 박멸해 버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나이는 불과 14세였다. 이는 그 어떤 대국의 압력도 두려워하지 않고 단호하게 맞받아나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웅호걸다운 담력과 배짱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어머님을 잃은 상실의 슬픔 속에서도, 아귀 떼처럼 밀려드는 침략자들 앞에서도 조금도 굴하지 않는 견인불발의 투지와 담력으로 유년기의 고난과 시련들을 모두 이겨냈다.
보통사람이라면 열 백 번을 더 좌절하였을 참담한 시련의 나날들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두산의 기개와 담력으로 헤쳐 나가며 7천만 겨레에게 행복을 안겨줄 높은 웅지와 큰 포부를 품은 것이다.

3. 미국과 총포성 없는 대결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의 승리였다.

6.25 전쟁 이후 미국과의 60년 대결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으로 개척하고 승리한 백전백승의 역사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사업을 시작한 6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미국과의 대결전을 진두에서 지휘하며 역사에 유례가 없는 백승의 명장으로 그 이름을 전 세계에 떨치게 되었다.

1976년 판문점사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용장다운 배짱과 담력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례가운데 하나이다.
1976년 8월 18일 미군장교를 비롯한 14명이 화물차와 짚차를 타고와 판문교 부근의 북측지역에 있는 미루나무를 무작정 도끼로 베기 시작하였다. 마침 순찰 중이던 북한군 병사들이 미군들에게 중단을 요구했지만 미군은 도발행위를 중단하기는커녕 오히려 나무를 찍던 도끼를 휘두르며 일제히 덤벼들었다. 대기하고 있던 30여 명의 미군 경비병들까지 합세하여 4명의 북한군을 공격하였다. 결국 이 싸움 과정에서 미군장교 2명이 죽고 여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미국은 이를 빌미로 북침전쟁의 불을 지르려 광분하였다. 미국은 방대한 침략무력을 한반도에 전개해 놓고 북한을 압박하였다. 미국의 전쟁도발책동에 의해 한반도에는 그야말로 언제 전쟁이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조성되었다.
하지만 그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작전지휘실이 아니라 집무실에서 배포 유하게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의 도발은 코흘리개의 으름장만큼도 여기지 않는다며 미국의 호전세력들이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며 출격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결전의 시각에 여유있게 낙원의 노래라는 음악무용극을 지도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북한의 한 일꾼은, 나는 그날 대극장의 좌석에 앉으시어 출연자들과 호흡을 같이하시며 예술창조사업을 지도하고 계시는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그 태연한 모습을 보며 우리는 이겼구나하는 확신을 새삼스럽게 가지게 되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전쟁을 눈앞에 두고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담력에 김일성 주석조차 감탄에 마지않았다.
결국 북미 판문점대결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완승으로 끝나게 되었다. 미국은 당장이라도 북한을 집어삼킬 것처럼 날뛰었지만 수 십 만의 대군을 동원한 후 겨우 나무 한 그루를 베고 퇴각하는 정치희극을 연출하여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90년대 북미핵대결사는 한마디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에 의한 민족자주 승리의 연대기였다.
미국은 동구 사회주의권의 붕괴 이후 북한을 고립, 압살하기 위한 책동에 더욱 열을 올리었다. 전 세계가 북한의 장래를 걱정하며 시시각각 다가오는 전쟁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승리를 확신하고 미래를 준비하였다.
1993년 핵사찰 소동으로 한반도에는 또다시 전쟁의 먹구름이 밀려들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일말의 주저도 없이 미국의 특별사찰 요구를 단호히 거부하고 93년 3월 8일 전국, 전민, 전군이 준전시상태로 넘어갈 데 대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리고 3월 12일 민족의 자주권과 나라의 최고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자위적 조치로써 핵확산금지조약의 탈퇴를 선언하였다.
이제 제2의 한국전쟁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졌다. 전 세계의 눈과 귀는 평양으로 모아졌다.
그러나 전 세계가 전쟁을 예감하고 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미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6년 판문점사건 때처럼 작전지휘실이 아니라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원산의 국제소년단야영소를 현지지도 하였다. 전쟁이 눈앞에 다가왔다지만 미국 같은 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9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용장다운 배짱과 담력을 보여주는 일화는 그 수를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수히 많다.
미국은 전세계의 미국화가 다된 것처럼 여기고 세계자주화의 보루인 북한을 압살하기 위해 미쳐 날뛰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폭풍처럼 밀려드는 전쟁의 파고를 강의한 신념과 의지, 무비의 배짱과 담력으로 정면 돌파하며 북미대결전을 연전연승으로 이끌었다.

4. 용장 중의 용장이고 선군명장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7천만 겨레를 자주통일 시대로 이끌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에 의해 이제 한반도에는 자주통일과 평화번영의 새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 선군정치는 용장 중의 용장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념, 의지, 배짱의 결정체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대 미국과의 역사적인 최후대결전을 펼치며 이를 승리로 이끌면서 7천만 겨레를 통일강성대국의 찬란한 미래로 인도하고 있다.

2003년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부시 정권은 침략의 예봉을 한반도로 집중시키고 북한을 공격, 고립, 압살하기 위해 광분하였다. 그러나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태어나 60년대부터 반미대결전을 진두에서 이끌어온 노숙한 총사령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 업고 미국 정치의 후진성에 힘입어 말 그대로 우연히 대통령 자리를 상속받은 정치미숙아 부시의 대결은 이미 승패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다.

2001년 출범한 부시 정권은 북한을 소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핵선제공격전략을 채택하는 등 북침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부시의 어설픈 야심을 미리 꿰뚫어 보고 강력한 선군의 힘에 기초한 대담한 외교전으로 미국을 포위, 압박하였다.
2001년 7, 8월 24일간의 러시아대장정은 백두의 용장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2000년대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2001년 새로 집권한 부시 정권의 침략정책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 세계는 북미관계가 또다시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기 시작하였다.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전쟁위기설이 떠돌았다. 전 세계가 북한의 앞날을 걱정하고 있던 2001년 7월 26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3박 24일의 사상 유례 없는 러시아방문길에 올랐다.
세계 어느 지도자도 전쟁의 위기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예민한 시점에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나라를 비울 만큼 배포를 가진 인물은 없으며 그만큼 정치가 안정된 나라도 없다. 현대 정치사에 그 유례가 없는 24일의 해외방문은 백두의 배짱과 담력을 타고난 김정일 국방위원장만이 펼칠 수 있는 세기적인 위인의 대담한 정치 행보였다.
전 세계 언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소식을 연일 속보로 타전하였다. 부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담한 정치행보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역사적인 시기에 부시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일은 한 달 동안 휴가를 떠나는 것뿐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방문길에서 레닌 묘소를 공식 참배하였다.
소련의 붕괴 이후 10여 년 만에 처음 있는 국빈급 참배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레닌 묘소 참배는 전 세계를 격동시켰다. 그 누구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역사의 어두운 그늘 속에 쓸쓸히 서 있는 레닌 묘소를 참배하리라고는 생각지 못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웅인 레닌 묘소 참배를 통해 사회의 진보는 승리하며 세계진보운동의 중심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이는 세계진보운동의 말살책동에 골몰하고 있던 부시 정권에 대한 준엄한 경고장과도 같은 것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드디어 미국과의 대결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대담한 총공세를 단행하였다. 2000년대 북미대결전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이 세계를 뒤흔든 격동의 연대기였다.
2002년 10월 미국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 핵개발을 시인했다며 제네바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였다. 이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3년 1월 10일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으로 맞받아쳤다. 다음날인 1월 11일 북한은 바로 핵확산금지조약을 탈퇴하고 평양에는 100만의 군중이 집결하여 미국과의 최후대결전을 선포하였다. 북한은 2003년 2월 영변 5MW 원자로를 재가동하고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개시한 3월 전 세계가 보란듯이 폐연료봉 교체작업을 개시하였다. 그리고 2003년 6월 추출된 플루토늄의 핵무기로의 용도변경을 시작하여 하반기에 이를 완료하고 2005년 2월 10일 핵무기 보유를 공식 선언하였다.
미국과의 대결전에 종지부를 찍을 단호한 결심을 굳힌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숨 돌릴 틈조차 없는 연속타격으로 부시와 네오콘들의 얼을 빼놓았다. 단 두 달 만에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린 미국은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담한 공세를 방어하기 급급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백두의 용장만이 할 수 있는 대담한 연속 타격의 전법으로 미국의 전쟁책동을 무력화시키고 핵무장에 성공하였다.

부시 정권은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여 세계 평화를 위협했다는 구실로 불법적으로 이라크를 침략하였다. 하지만 이라크에서는 그 어떤 대량살상무기도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북한은 부시의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면서 그 추진과정을 단계별로 모두 공표하였지만 미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결국 북한은 이렇다할 저항 없이 핵보유국의 높은 지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백악관의 호전광들은 말로는 선제공격을 외쳐댔지만 총성 한 방 울리지 못하고 비명만 질러댔다.

2006년 가을 핵시험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짱과 담력의 정화인 선군정치의 결실이자 반미대결전의 최후 승리를 알리는 축포였다.
북한의 핵시험 이후 한반도의 역학구도가 근본적으로 전환되고 자주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유리한 정세가 펼쳐지고 있다. 미국 중심의 한반도, 동북아 냉전 질서의 해체가 시작되고 자주와 평화를 지향하는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선군의 힘으로 우리 민족과 인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나가고 있다.
부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드센 연속 타격에 맥을 못 추고 마침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전쟁에 미쳐 날뛰던 역사상 가장 반동적인 정권 중 하나인 부시 정권은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백두영장의 배짱과 담력 앞에 백기를 들었다. 이제 우리 민족의 승리는 확정적이며 조국통일의 대사변이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미국과의 대결전을 승리로 이끌고 이제 7천만 겨레를 통일강성대국의 찬란한 내일로 인도하고 있다. 용장 중의 용장이고 선군명장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수위에 모신 우리 민족의 장래는 한없이 밝다.
김일성 주석은 21세기는 김정일 세기로 빛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김일성 주석의 예언은 신묘하게도 그대로 적중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1세기의 세계 모든 정치지도자들을 압도하면서 위인 중에 위인으로 60억 인류의 앞길에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고 있다.
김일성 주석의 예언처럼 21세기는 김정일 장군의 세기, 우리 민족의 세기가 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