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통일의 서광을 밝혀주는 선군영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맞이하며


2007.9.17 손혁철

 

  60여년 남북 분열의 역사위에 조국통일의 서광이 밝아오고 있다.

 2000년 6월 15일, 우리 민족이 분열된 지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마련되고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것은 우리 민족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새로운 신심과 희망을 안겨준 민족사적 대 경사였으며 조국통일운동에서 획기적인 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은 일대 사변이었다.

 민족자주의 이념이며 민족대단결의 이념인 〈우리 민족끼리〉는 오늘날 시대의 이념으로 되어 남,북,해외의 전 민족적 운동으로 확고히 자리 잡고 있으며 한반도에 통일시대를 불러온 6.15공동선언은 민족적 단합, 통일에 대한 낙관과 신념을 불러일으켜 그 생활력을 끊임없이 자랑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통일의지에 내외반통일 세력들의 반통일적 행각과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먹구름은 사라지고 조국통일의 찬란한 서광이 비쳐오고 있는 것이다.

 필승의 선군정치로 우리 민족의 자주적 운명을 개척해 오셨던 장군님께서는 이제 다시한번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 위업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시려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결심하시었다.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합의서(2007.8.5)에는 〈6.15 공동선언과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을 바탕으로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에로 확대, 발전시켜 한반도의 평화와 민족 공동의 번영,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는데서 중대한 의의를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합의서에서 보여주는 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미와 전망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6.15자주통일시대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 가는데서 또 한 번의 획기적인 사변이 될 것임을 강력히 예고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다가오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맞이하여 지난 기간 미제와의 치열한 핵대결전 속에서도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 위업을 이끌어 오셨던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영도에 대해 살펴보고 제2차 남북정상회담으로 새롭게 열리게 될 민족자주통일 위업 앞에 나서는 우리의 자세를 다시한번 다잡아 보고자 한다.


1. 장군님께서는 우리 대에 기어이 조국통일의 위업을 이룩할 의지를 지니시고
탁월한 사상이론적 예지와 영도로 자주통일 위업의 승리를 이룩해 나가고 계신다.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 조국통일은 우리에게 있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대의 민족적 과업입니다. 만난을 무릅쓰고 조국을 통일하여 민족 분열의 비극의 역사, 치욕의 역사를 끝장내야 합니다.》

 조국통일은 절대로 외면할 수 없고 한시도 미룰 수 없는 절박한 민족사적 과제이다. 외세의 지배와 예속을 끝장내고 민족적 자주권을 회복하며 전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이루려는 것은 온 겨레의 한결같은 열망이다.

 장군님께서는 일찍부터 조선은 둘로 갈라져서는 살 수 없는 유기체와 같으며 조선은 둘이 아니라 영원히 하나라는 신념을 가지고 계셨다. 조국통일은 애국이며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은 최대의 애국투쟁이라고 하신 장군님의 가르치심에는 조국통일을 민족최대의 애국위업으로, 반드시 실현해야할 민족적 과제로 여기시는 통일관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리하여 장군님께서는 어떤 장애가 놓인다 하더라도 우리 세대에 기어이 조국을 통일하여 민족 분열의 역사, 치욕의 역사를 끝장내실 결심을 현실화하고 계신다.

 수령님의 유훈관철을 자신의 혁명적 의무인 동시에 숭고한 도덕적 의지로 가지고 계신 장군님께서는 역사적인 노작〈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조국통일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자〉에서 그 신념과 의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계신다. 노작에서는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 3대 원칙과 전 민족 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을 조국통일 3대헌장으로 정식화하이었으며 수령님의 조국통일 위업을 최상의 높이에로 올려놓으셨다. 수령님의  조국통일에 대한 사상과 의지를 그대로 지니신 장군님께서는 역사적인 남북 평양상봉과 6.15 남북공동선언의 채택이라는 대 업적을 가져오신 것이다.

조국통일을 이룩하자면 통일문제 해결의 근본원칙과 방도가 제시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상과 제도, 정견과 신앙을 달리하는 온 겨레가 조국통일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실현할 수 있다.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 3대 원칙과 전 민족 대단결 10대강령, 고려민주연방 공화국 창립방안은 민족 자주 정신으로 일관되어 있으며,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가 존재하는 현실조건에서 하루 빨리 조국통일을 실현할 수 있는 최상의 방도를 제시하고 있다.

장군님께서는 이를 계승하여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통일시대를 개척할 민족대단결 강령인 민족대단결 5대 방침을 밝히혔다. 장군님께서는 민족의 단합실현을 조국통일의 근본전제로 내세우고 온 민족의 단결을 위해 사상과 제도, 계급과 계층에 관계없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포섭하고 안아주는 광폭정치를 펼치셨다. 이는 민족의 모든 계급, 계층을 조국통일의 기치 밑에 묶어세우는 폭넓은 애국, 애족의 정치이다.

21세기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 위업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으며 그 힘의 원천은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정치에 있다.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었다.
《 선군혁명의 길에 강성대국건설도 조국통일도 있고 주체혁명위업의 승리가 있습니다.》

역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남북공동선언이 마련되고 그에 의해 오늘 자주통일의 새로운 역사적시대가 펼쳐진 것은 장군님의 선군정치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7년 전의 역사적인 평양상봉도, 6.15남북공동선언 채택도, 6.15자주통일시대의 탄생도 김정일장군님께서 펼치시는 위대한 선군정치가 안아온 귀중한 결실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군정치는 6.15자주통일시대를 안아오고 통일의 새 시대를 추동하는 힘의 원천이고 승리의 보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선군정치는 제국주의세력의 반북, 반사회주의 고립압살 전략으로부터 체제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전술적 조치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선군정치는 총대의 위력으로 민족의 자주권을 수호하고 사회주의 강성대국건설의 활로를 열어놓았으며 역사적인 남북공동선언의 채택을 통해 6.15자주통일시대를 탄생시키고 그것을 힘있게 전진시켜나가는 애국애족의 정치이다.

위대한 선군정치로 마련된 역사적인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민족자주를 중심으로 하는 6.15 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됨으로써 남북관계와 조국통일 운동에 밝은 전망이 열렸다.

역사적인 평양상봉과 6.15남북공동선언이 채택된 때로부터 어언 7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반세기이상의 민족분열의 역사에서 7년이란 한순간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지난 몇 해 동안 우리 민족은 통일위업수행에서 반백년동안 이루지 못한 경이적인 성과들을 이룩하였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마련된 새 세기 조국통일의 이정표를 따라 민족적 화해와 단합이 강화되었고 남북사이의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가 활성화되어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남북사이의 오해와 불신, 반목과 대결의식은 점차 해소되어 가고 있다. 민족의 한이 서린 분열시대는 막을 내리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통일의 새 아침을 마중해가는 화해와 협력의 새시대, 6.15자주통일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은 대세로 되어 〈우리민족끼리〉이념에 기초한 민족공조가 폭넓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위한 대중투쟁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2. 장군님께서는 무적 필승의 위대한 선군정치로
  한반도와 우리민족의 평화를 담보해주고 계신다.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 우리 당의 선군정치에 의하여 조국통일의 전환적 국면이 열리고 우리 공화국의 국제적 지위가 전례없이 높아졌습니다. 》

선군정치는 6.15자주통일시대를 떠밀어나가는 위력한 힘의 원천이다.
선군정치는 김일성주석께서 혁명활동의 전 기간 구현해 오신 선군사상과 선군혁명영도에 기초하고 있다.

군대를 앞세우고 엄혹한 도전과 시련을 이겨내며 주체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는 준엄한 선군혁명영도의 길에서 총대이자 혁명이고 사회주의의 승리이라는 혁명철학이 나오고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은 군대의 핵심적이며 주도적인 역할에 의해서만 승리한다는 선군의 혁명원리가 밝혀지게 되였으며 선군정치가 사회주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완성되었다.

선군정치는 군사를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인민군대를 주력으로 하여 나라와 민족, 사회주의를 보위하고 전반적 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는 가장 위력한 사회주의정치방식이다.
장군님께서는 총대중시, 군사중시의 선군정치를 펼치시어 무적필승의 방위력과 수령, 당, 대중이 일심단결 된 혁명의 주체를 백방으로 다지셨고 북은 이 선군의 위력으로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고 주체의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였을 뿐 아니라 강성대국건설의 활로를 마련하는 역사의 기적을 창조하였다.

북과 미국은 인구나 영토 크기에 대해 대비조차 할 수 없는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영토가 936만㎢인 것에 비해 북은 12만㎢밖에 안 되며 인구도 북은 미국의 1/10밖에 안된다. 세계는 냉전종식 이후 세계최대 유일 강대국인 미국과 북의 대결전을 지켜보며 북이 자신의 운명을 지킬 것인가에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세계는 선군정치의 위대성을 확인하며 비로소 그 의문을 풀게 되었다.
 
1차 핵 대결전, 1993년 3월 12일 조선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의 핵무기전파방지조약 탈퇴 선언이 발표된 후 미국은 더 이상 북에 대한 〈제재〉〈압력〉이 소용이 없음을 깨닫고 북미회담장에 나와 앉았다. 회담에서는 핵무기를 포함한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어떠한 무력으로도 위협하지 않음을 담보하며,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며 상대방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으며,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지지한다는 북미공동성명을 발표하였다.(1993.6.11) 공동성명에서 미국은 북에 대한 불가침 약속과 북의 주권에 대한 존중, 북의 평화통일 정책에 대해 지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해인 1994년 10월 21일 미국은 북의 흑연로체계를 경수로로 교체하고 북미사이의 정치 및 경제관계의 정상화,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등을 약속한 <북미제네바 기본합의문>에 서명하게 된다. 또한 미대통령 클린턴의 북미기본합의문 이행을 위한 담보서한을 함께 보내왔다. 이 담보 서한은 세계유일 초강대국 미국의 항복문서와 다름없었으며, 이는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북미기본합의문을 채택한 것은 미국과의 대결에서 첫 승리였을 뿐 그 이후의 북미대결전은 더욱 첨예하게 되었다. 장군님께서는 북미기본합의문이 채택되었다고 해서 제국주의자들과의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며,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압박은 더욱 강화될 것이니 이에 대한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을 지시하셨다.
장군님의 예상대로 북에 대한 압박봉쇄 정책을 포기하지 않던 미국의 강경보수 세력들은 1998년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을 들고 나왔다. 평안북도 대관군 금창리에 있는 민수용 지하 구조물을 지하핵시설이라 의심하며 북미 제네바 합의문을 먼저 파기했다며 검증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금창리 핵시설에 대한 사찰요구에 대해 외무성은 단호히 대응하였다. 제네바합의를 제대로 이행 준수하고 있는 북에 대한 인신공격에 대해 사찰을 하려거든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북미 사이의 회담이 진행되고 금창리 핵시설 참관을 허용하고 미국은 그 대가로 3억 달러의 참관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을 합의하였다. 결국 〈금창리 지하 핵시설 의혹〉은 1999년 5월 미국이 참관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클린턴 행정부는 조미 핵대결에서 굴복하였고, 북미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방향전환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2000년 10월 조명록 차수의 미국방문이 이루어졌고, 방문기간 클린턴 대통령과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코헨국방장관을 비롯한 미행정부의 고위 관리들과 북미관계를 개선할 데에 대한 문제를 토의하였으며 긍정적인 합의를 이루었다. 2000년 10월 12일에 워싱턴에서 마침내 북미공동커뮤니케가 발표되었다. 이것은 힘으로 북을 붕괴코자 했던 미국의 강경보수 세력에게는 커다란 타격이 되었고, 20세기 90년대 미국과의 대결에서 북이 거둔 역사적 승리였다.

북미간 관계정상화라는 긍정적 흐름이 상승하고 있었던 때에 미국에서는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게 된다. 부시는 대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북과의 모든 대화와 협상을 중단해 버렸다. 2002년 1월 〈연두교서〉에서 북을 〈악의축〉으로 규정하였으며 그해 3월에는 〈핵선제공격대상 명단〉에 올려놓았다.
2002년 10월초 미국무부 차관보 켈리는 미국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였는데 처음부터 대북강경 자세를 취했다. 자신들의 우려 사항이 해소되지 않는 한 북미대화도 관계개선도 없다며 남북관계도 파국을 맞게 될 것이라고 협박을 하였다. 그에 대한 북의 입장은 분명하였다.
《부시 대통령은 우리를 악의 축으로 지목하였다. 부시 행정부가 미국의 적으로 여기는 국가나 테러조직에 대해 선제공격을 가한다는 새로운 안보전략을 발표한 것은 결국 우리에게 선제공격을 가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북미 사이의 기본합의문과 북미 공동 커뮤니케를 위반하였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핵전파방지조약에 얽매이지 않겠다. 우리는 미국의 핵전쟁 위협에 대응하여 핵무기보다 더한 것도 갖게 되어있다. 만일 미국이 일본과 남한을 끌어들여 한반도에 전쟁을 하려 한다면 우리도 대응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미국은 북이 농축우라늄 계획을 시인하였다며, 북의 핵개발 계획을 국제 여론화 시켜 나갔다. 북은 한반도에 조성된 엄중한 사태를 타개하기 위해 북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할 것을 제안하였다. 미국이 핵 불사용을 비롯한 북에 대한 불가침을 담보한다면 북도 미국의 안보상 우려를 해소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미국은 북의 합리적인 제안을 거부하고 2002년 11월 14일에는 북미 기본 합의문에 따른 중유제공을 중단할 것을 발표함으로써 북미 기본 합의 사항을 파기시켜 버렸다. 또한 국제원자력 기구를 통해 2002년 11월 29일 북을 반대한 〈결의〉를  채택하게 하였다.

장군님께서는 핵문제를 둘러싼 정세변화를 예리하게 통찰하시면서 북이 핵무기전파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할 데 대한 결단을 내리셨다. 2003년 1월 10일 미국의 전쟁책동과 더불어 찾아온 제 2의 핵 위기로부터 우리 민족의 존엄이 극도로 위협당하는 사태에 대처하여 북은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핵무기 전파방지조약(NPT)에서 탈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핵무기전파방지 조약에서의 탈퇴는 북에 대한 미국의 압살책동과 국제원자력 기구의 부당한 처사에 대한 자위적 조치였다.
그러면서 북은 최대한의 아량을 보여주었다. 즉 북미 핵문제는 쌍방이 상호 존중하고 신뢰하는 평등한 입장에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 방법으로 해결할 데 대한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과 한반도의 비핵화가 총적 목표라는데 대하여 여러 차례 강조하였다. 한반도 비핵화를 시종일관 주장하고 있었던 북은 여러 차례 6자회담장에서 국가 관계의 공정성에 기초하여 〈말 대 말〉〈행동 대 행동〉원칙에 기초한 〈동결 대 보상〉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국은 〈선핵포기〉주장을 되풀이 하며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려 세울 수 없는 완전한 핵폐기〉(CIVD)를 한 다음에야 논의할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고 나섰다. 이것은 북미간 정전협정이 북미평화협정으로 대체되지 않는 상태에서 교전 상대로 되어있는 미국이 항복을 받겠다는 강도적 논리와 다름없었다.
부시 행정부에게 6자회담은 처음부터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이 미국은 〈대화〉뒤에서 북을 압살하기 위한 핵전쟁 계획들을 갱신해 나가면서 한반도 주변에 대대적으로 무력을 증강해 왔다. 부시 행정부의 북에 대한 〈핵선제 공격전략〉은 현실화라는 엄중한 단계에 들어섰다.
미국이 2003년 초부터 착수하여 그해 말까지 완성한 《신작전계획 5026》은 미국의 신작전 개념을 구현한 것으로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거쳐 새롭게 마련된 부시 행정부의 신국방전략을 한반도에 적용한다는 위험한 전쟁계획이다. 《신작전계획 5026》의 내용을 살펴보면 유사시 전방지역에 있는 이북 군대의 장거리포에 대한 정밀공격과 북의 수뇌부에 대한 집중공격으로 〈북의 전쟁지휘 능력을 조기에 무력화〉시키며 북의 핵 및 생화학무기, 미사일 기지, 공군기지, 지휘소 및 통신 시설 등 북의 전쟁능력을 조기에 파괴해 버린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또한 2004년 미국은 극비에 《작전계획 8022-02》를 작성하였는데 그것 역시 북에 대한 핵선제공격계획이었다. 지금까지 북에 대한 여러 가지 북침전쟁계획들을 작성하였지만 핵선제공격을 작전계획으로 구체화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는 북이 미사일로 미국본토를 공격하거나 공격에 임박했다는 징후가 있을 경우에 대비한 대책이라고 밝히고 있어 미국의 자의적 판단의 순간에 북에 대한 핵선제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북침전쟁계획이었다. 앞서 미국이 작성한 작전계획들은 모두 그 내용과 형식에서 차이가 있을 뿐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기정사실화한 전쟁계획으로 매우 위험천만한 것들이었다.

현실적으로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핵무기로 위협도 하지 않을 데 대한 북미기본합의문을 파기하고 북에 대한 핵전쟁 위협을 끊임없이 확대하며 핵전쟁 도발을 계획함에 따라 북은 자체 방위를 위한 핵억제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과 교전 상태에 있는 북은 미국의 핵압살정책에 대해 핵무기전파 방지 조약에서 탈퇴하고 국제 조약의 규제 없이 정당하게 핵무기를 만들었다.
2005년 2월 10일 북 외무성은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의 가중되는 핵위협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생존을 위해 자체 방위를 위한 핵무기를 생산보유 하였음을 선언하였다.
《…미국이 핵몽둥이를 휘두르면서 우리 제도를 기어이 없애버리겠다는 기도를 명백히 드러낸 이상 우리 인민이 선택한 사상과 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고를 더욱 늘이기 위한 대책을 취할 것이다.》
성명에서 선의에는 선의로, 힘에는 힘으로 북의 핵무기는 어디까지나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남을 것이며, 오늘의 현실은 강력한 힘만이 정의를 지키고 진리를 수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자 6자 회담장에서 억지를 부려오던 미국은 7월 9일 “조선이 주권국가라는 것을 인정”했으며 “침공의사가 없으며 6자회담 틀거리 안에서 쌍무회담을 할 입장을 공식 표명”하였다. 7월 9일 베이징에서의 북미 접촉은 미국의 ‘백기 투항’을 의미하며 북이 6자회담 복귀를 결정한 것은 “미국의 입장 표시를 폭정의 전초기지 발언 철회로 이해”하고 미국의 ‘백기 투항’을 수용한 것이다.

그리하여 제 4차 6자회담장에서 제2의 제네바 합의문이라고 불리는 9.19 공동성명이 발표되게 된다. 이 기본합의문은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북과 미 양자의 의무사항과 다른 나라들의 의무사항을 포괄적으로 밝혀 놓은 것으로 구체적 이행계획은 담겨져 있지 않은 ‘말 대말’ 공약에 해당된다.
각 나라별로 의무사항들을 정리해보면 우선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의무사항은 ▲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의 포기 ▲조속한 시일 내에 핵무기비확산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안전조치 복귀 ▲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준수 이행이며, 이에 반해 미국(한중일러포함)측 의무사항은 ▲ 평화적 핵 이용권 존중과 경수로 제공문제 협의 ▲ 에너지 제공과 경제협력증진 ▲ 핵과 재래식 무기로 북 공격하지 않을 것 공약 ▲ 북미, 북일 관계정상화실현 ▲ 한반도 평화체제에 관한 협상 추진 등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9.19공동성명 이행 과정에 난관과 장애를 조성하고 궁극적으로는 6자회담 파탄과 9.19공동성명 파기를 위한 행동전에 돌입했다.
방코델타아시아은행에 대한 금융제재를 시작으로 북한선박에 대한 제재로까지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계단식으로 확대하였는가 하면, 화폐위조, 마약밀매등의 온갖 불법 여론전을 진행함으로써 이를 정당화 시켰다. 게다가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음모를 적극 부추기며 주일미군의 재배치를 비롯한 미일간의 군사적 일체화를 완성하였고, 노무현 정부를 강박하며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실현하며 평택기지로의 이전을 속도 있게 진행하는가 하면, 유엔군사령부 회의를 통해 특수부대 운영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켜왔다. 이처럼 미국은 북한에 대한 끊임없는 군사적 압력을 강화함으로써 한반도 전쟁위기를 고조시켰다. 끊임없는 정탐행위를 통해 미사일 발사 시험설을 한껏 부풀림으로써 지상배치 미사일 요격시스템을 실험 모드에서 실전 모드로 전환하였고, 미국과 일본은 미사일 요격용 패트리어트(PAC3)를 연내에 일본에 실전 배치하는 등 미사일방어(MD)협력을 앞당기는 방안을 논의하였다. 또한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론이 등장하는가 하면, 미일정상회담에서는 ‘더 강경한 조치’를 합의하였다. 그리고, 북한을 겨냥한 역대 최대규모의 림팩훈련이 진행되었다.
북은 미국이 대화를 원하지 않으며, 의사도 없음을 최종 판단하고, 더 이상 미국을 기다리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란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 이를 행동으로 옮긴 것이 2006년 7월 4일 미사일 발사였다. 또한 10월 3일 미국의 극단적인 핵전쟁 위협과 제재압력 책동에 대해 핵억제력 확보의 필수적 요구인 핵시험을 진행할 것이라는 외무성 성명을 발표하였고, 10월 9일 핵시험을 단행했다. 이러한  북의 핵시험은 사회주의를 없애기 위해 덤벼드는 제국주의자들에게 무자비한 징벌을 가하기 위한 자위적 핵억제력의 성격을 지닌다.

이로 인해 9.19공동성명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2007년 2.13 합의문이 발표되게 되었다. 현재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1단계 조치가 합의, 실현되었으며 북미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에서는 핵시설 불능화와 정치, 경제적 보상조치에 합의하는 등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실제 정치적 보상조치란 북을 적대시하는 정책을 바꾸며, 평화공존을 구축하기 위한 제도적, 법률적 장치를 마련하다는 뜻이며 경제적 보상조치란 이미 약속한대로 100만여 톤의 중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에서의 부시 미 대통령의 인터뷰 내용과 크리스토퍼 미국무부 차관보의 방북직후 기자회견에서의 발언을 보면 자신들의 임기 내에 북한의 비핵화와 북미관계정상화를 언급하는 등 북미관계는 북의 핵시험이후 빠른 속도로 평화공존,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해서 나서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20세기, 21세기 북미 핵대결의 승자는 북이다. 북의 핵을 무력화하고 북의 붕괴를 꿈꾸었던 미국의 의도는 미국과의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각오와 미국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을 보유한 이북의 선군사상, 총대정신에 굴복당했다. 1905년 화승총밖에 없어 일제에게 자국의 자주권을 강탈당하고 땅을 치며 통곡했던 우리 민족이 그 때로부터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핵무기를 보유한 강위력한 민족이 된 것이다. 이로써 전 세계는 민족의 운명과 존엄은 막강한 군력에 의해 담보되고 빛이 난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다.


3. 새 세기 미제와의 핵대결전에서 승리로 마련된 한반도 평화,
  그 속에서 조국통일운동의 새로운 위업이  창출될 것이다.

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 혁명의 실천적 경험은 군사를 앞세우고 혁명무력을 주력으로 하는 선군정치야말로 그 어떤 강적도 물리치고 그 어떤 난관과 시련도 이겨내며 혁명위업의 승리적 전진을 확고히 보장할 수 있는 우리시대, 우리 혁명의 가장 위력한 정치방식이라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군사를 앞세우고 인민군대를 정치의 주도적 역량으로 내세우는 선군정치는 제국주의의 그 어떤 강적도 물리치고 그 어떤 난관과 시련도 이겨내며 승리를 담보하는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의 위력은 앞선 북미 핵대결사에서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21세기 새로운 세계질서 수립이라는 미국의 패권전략을 파탄 냈으며 미국의 핵전쟁위협도 무용지물이 되게 하였다. 북의 강위력한 전쟁억제력은 평화의 담보로 실질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선군정치에 의해 보장된 한반도의 평화속에서 조국통일 운동은 그 정당성과 생활력을 입증해 왔으며 2007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전변적 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후 지난 7년은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민족끼리》이념의 정당성과 불패의 생활력을 과시한 승리의 7년이고 민족화해와 단합의 시대, 자주통일의 새 시대를 열어놓은 영광과 긍지의 7년이다.
《우리민족끼리》이념은 조국통일운동을 남과 북, 해외를 포괄하는 전 민족적인 운동으로, 사상과 정견, 소속의 차이를 초월한 광범위한 각계각층이 망라된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대발전 되었다.

2001년 6월 역사적인 6.15공동선언 발표 1돌을 맞으며 금강산에서 진행된 민족통일 대토론회, 그해 8월 15일 남북해외 3자가 평양에서 진행한 민족통일대축전, 2002년 8월 15일 남북의 참가 하에 서울에서 열린 민족통일대회를 비롯하여 6.15와 8.15등의 계기에 남, 북, 해외의 여러 단체와 사람들이 평양과 금강산, 서울과 인천 등에서 진행한 대규모 민족공동행사는 10여 차례에 달한다. 특히 2005년 6월 15일과 8월 15일, 그리고 2006년 6월 15일 평양과 서울, 광주에서 열린 민족통일 대축전에 남북해외의 대표들과 남북 당국자대표자들이 참가한 것은 《우리민족끼리》이념 밑에 조국통일운동이 명실 공히 전민족적운동으로 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6.15공동선언 발표이후 남과 북. 해외의 부문별, 계층별 통일운동도 활발히 진행되었다. 2001년 5월과 2004년 5월, 2007년 5월 금강산과 평양, 남의 창원에서 진행된 6.15공동선언 관철을 위한 남북노동자 통일대회를 비롯하여 남북노동자대토론회, 상봉모임, 통일수련회가 진행된 것만도 26차에 달한다. 또한 2001년 남북, 해외 청년학생통일대회와 남북대학생 상봉모임, 2002년 10월의 남북여성 통일대회등 농민, 청년학생, 여성, 언론인, 문학인, 종교인들의 계층별 통일대회들과 상봉모임, 토론회과 광범위하게 벌어졌다. 2005년 여름에는 남북 작가들이 평양에 모여 6.15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를 진행한데 이어 가을에는 6.15민족문학인협회를 결성하였다.

특히 2005년 3월 남과 북, 해외의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을 망라한 전 민족적 통일기구인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된 것은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6.15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겨레의 통일 지향과 의지를 하나로 모을 수 있는 민족대단결의 모체, 강력한 조직을 가지게 되었으며 남, 북, 해외가 조직적 힘으로 자주통일의 새 역사를 개척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민족끼리》이념은 반세기 이상 지속되어온 불신과 대결의 역사를 화해와 협력의 새 역사로 바꾸고 끊어진 혈맥과 지맥을 하나로 이으며 통일교류 협력을 활성화시키는 등 남북관계에서 획기적인 진전을 가져왔다.

2000년 8월 남쪽의 언론사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한데 이어 그해 10월에는 조선노동당 창건 55돌을 계기로 남쪽의 14개 정당, 단체 대표들과 각계인사들이 평양을 방북하였다. 특히 2000년 9월 철창 속에서 신념과 의지를 지켜 싸운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북송된 것은 6.15가 안아온 또 하나의 사변이었다.

2002년 9월 북의 대규모 선수단과 응원단이 부산아시안 경기에서 통일의 바람을 일으키는가하면 2003년 제주도에서 남북민족통일평화 체육문화축전이 개최되고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채화된 성화가 경기봉화대에 통일의 횃불로 타올랐다. 2003년 대구에서 진행된 제 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와 2005년 인천에서 진행된 제 16차 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 남북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하는 등 체육 분야에서도 교류가 활발하였다.
2000년 8월 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 2002년 9월 남쪽의 KBS교향악단과 MBC공연단의 평양방문공연을 비롯한 남북 예술인들의 합동공연과 합동 연주회 등 통일음악무대들도 펼쳐졌다.
2001년 6월 평양에서 진행된 민족 옷 전시회, 2002년 9,10월 평양과 서울에서 진행된 태권도시범출연, 남북역사학자들의 평양과 서울, 금강산토론회와 공동자료전시회 및 사진전시회등을 통해 우리 민족은 핏줄과 언어, 역사와 문화도 하나이며 갈라져 살수 없는 단일민족임을 과시하였다. 2005년에는 평양에서 개최된 대집단체조와 예술 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기 위해 수천 명의 남쪽 사람들이 북을 방문하였다.

남북 사이에 하늘길, 바다길이 열리고 수십 년간 끊어져 있던 도로와 철도가 이어졌다. 동서해선 철도와 도로연결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 2003년 개성과 금강산에서 남북도로가 개통되었으며, 2007년 5월에는 동,서해의 철도연결구간에 대한 남북열차시험운행이 있었다.
외세와 남의 보수 세력들의 방해책동에도 불구하고 개성공업지구건설이 추진되고 금강산관광 사업이 확대되었다.

남북 사이에 《우리민족끼리》에 기초한 여러 갈래의 대화와 접촉들이 적극 추진되었다.
지난 7년간 21차의 남북장관급회담과 13차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그리고 남북장성급회담을 비롯하여 무려 140여 차례의 회담과 접촉들이 진행되었다. 또한 민간급 부문별, 계층별 단체들과 각계 인사들이 대화와 체육, 문화, 과학,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 민족교류협력사업들이 폭넓게 이루어졌다. 비록 우여곡절과 시련을 겪었지만 《우리민족끼리》이념 밑에 끊임없이 이루어졌으며 좋은 합의들도 이루어졌다.

6.15공동선언 발표이후 지난 7년간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은 크게 전진하였으며 거대한 전변의 역사와 기적적인 현실을 가져왔다. 오늘날의 이러한 벅찬 현실은 《우리 민족끼리》이념이야말로 우리 민족이 들고나갈 공동의 이념이고 이 기치 따라 나가는 길에 자주도 평화도 통일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민족끼리》는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의 근본 핵으로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데서 나서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데서 외세의 허용함 없이 우리 민족이 주인이 되어 민족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철저한 민족자주의 이념으로써 우리 민족이 주인으로서의 지위와 역할을 다해 나갈 수 있게 한다. 또한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지켜 나갈 수 있게 하는 투철한 민족자주의 이념을 기본으로 하여 자주통일을 염원하는 온 민족의 지지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6.15통일시대의 자주통일의 이념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2007년 지금, 우리 민족은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으로 6.15통일시대를 빛내기 위한 투쟁을 줄기차게 벌이고 있으며 6.15통일시대의 전성기를 펼쳐나가기 위한 투쟁에서 《우리민족끼리》라는 시대의 이념을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민족끼리》는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의 3대 과업을 성과적으로 수행해 나가고  조국통일 실현을 위한 투쟁에서 구현해 나가야할 애국적 이념이다.
올해 진행하고 있는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의 3대 과업 수행을 위한 투쟁은 조성된 정세 속에서 우리 민족의 평화와 안전, 이익을 수호하고 민족의 운명을 성공적으로 개척해 나가기 위한 성스러운 애국사업이다. 3대 과업수행을 위해 투쟁하는 길에 우리 민족의 삶과 존엄이 담보되어 있고 민족의 미래가 있으며 자주통일이 있다.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의 3대과업수행을 위한 투쟁은 《우리 민족끼리》기치 밑에 자주통일위업을 하루빨리 완성하기 위한 투쟁이다. 그것은 6.15공동선언을 성과적으로 이행하기 위한 투쟁이며 6.15통일시대를 빛내기 위한 운동이다. 6.15공동선언을 구현해나가는 데서 나서는 어려움을 타개하고 자주통일위업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놓기 위하여 우리 민족은 3대과업수행의 기치를 높이 든 것이다. 따라서 3대과업수행은 시대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이념에 기초하여 벌어지는 시대적, 대중적운동이다.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은 《우리 민족끼리》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며 동시에 《우리민족끼리》를 직접적으로 실현하는 방도가 된다. 3대과업수행은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민족의 존엄과 나라의 평화를 지키고 단합하여 통일을 이룩하자는 《우리 민족끼리》이념에 부합된다. 《우리 민족끼리》를 근본이념으로, 사상적 바탕으로 하고 있는 바로 여기에 3대과업수행을 위한 투쟁의 생명력이 있고 생활력이 있다.

민족중시, 평화수호, 단합실현의 3대과업수행을 위한 투쟁은 외세의 침략과 간섭을 반대하고 민족의 운명을 지켜나가기 위한 전 민족적 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주체는 다름 아닌 우리 민족이며 투쟁대상은 우리 민족의 자주권과 이익, 안전을 침해하고 위협하는 외세와 그 추종세력이다. 3대과업수행을 위한 투쟁은 우리 민족끼리 힘과 지혜를 합쳐야 소기의 성과를 이룩할 수 있다. 민족중시도 우리 민족끼리 하고 평화수호도 우리 민족끼리 하며 단합실현도 우리 민족끼리 해야 한다. 우리 민족끼리 손잡고 투쟁하면 못해낼 일이 없으며 외세와 그 추종세력의 책동을 부수고 3대과업수행을 위한 투쟁에서 반드시 승리를 이룩할 수 있다.


4. 6.15 자주통일시대를 지켜준 불멸의 기치이자 필승의 보검인
  장군님의 선군정치를 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지, 옹호, 관철하자.

장군님께서는 수령님께서 창시하신 선군사상을 체계화하시고 정식화하였다.
이러한 탁월한 사상 이론적 예지와 빛나는 선군 영도로 사회주의 강성대국건설의 위업을 수행하시었고, 90년대 미제의 고립 압살 정책 속에서도 고난의 행군을 낙원의 행군으로 결속 지으시며 나아가 새 세기 조국통일운동이 자주의 궤도를 따라 힘있게 전진해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 주시었다.

먼저 장군님께서는 북의 사회주의를 고립말살 하려는 제국주의와의 전쟁에서 사회주의의 우월성과 강건함을 전 세계에 과시하시었다. 반제 대결전에서 그 중심은 핵 대결이었다. 장군님께서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의 핵 대결전에서 선군영도의 예술성과 위대함을 보여주셨으며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하고 동북아의 평화질서를 새롭게 재편시키셨다. 이처럼 선군영도의 위대성은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존엄을 지키며 우리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실제적으로 담보하고 있다.

위대한 선군정치가 있었기에 미제와의 대결과 전쟁책동이 극심했던 시기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남북공동선언이 마련될 수 있었으며 <우리민족끼리>이념 밑에 화해와 단합, 자주 통일의 새 역사가 펼쳐질 수 있었다. 선군정치가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자주통일시대의 현실은 고사하고 제국주의와의 대결과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우리민족은 그 존재조차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영도로 조국통일의 일대 전성기가 펼쳐지고 있으며 통일강성대국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백두의 기상인양 도도히 흐르는 이 역사의 전진은 그 어떤 힘으로도 멈춰 세울 수 없다.
지난 7년간 조국통일운동의 흐름에서 쌓여온 모든 성과들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 안아온 자랑스러운 결실이며 ‘역사의 기적’을 창조하신 절세의 애국자 김정일장군님의 탁월한 영도력이 낳은 고귀한 결정체이다.

2007년 10월 2일~4일! 평양에서의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목전에 다가왔다.
(이 글에서 구체적인 2차 남북정상회담의 의제 전망에 대한 서술은 생략한다.)
7년만에 개최되는 2차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물들은 분명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 대진군에 획기적인 사변이 될 것이며 6.15공동선언이 6.15자주통일시대를 추동해온 것처럼 다시한번 조국통일 운동의 비약적 변화와 발전을 추동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2차 정상회담의 성과물들을 대중적으로 확산하고 합의하여 〈우리민족끼리〉의 이념이 누구도 훼손시키지 못할 우리시대 자주통일의 기치와 이념이 된 것처럼 조국통일운동에 변치 않을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약속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다음 차례 우리의 몫이다.

이미 한나라당을 비롯한 반통일 세력들의 2차 정상회담 관련한 발언들은 정상회담의 본래적 의미와 본질을 심각히 훼손시키고 있으며 정상회담 자체를 흠집내기에 혈안이 되어있다. 만약 이들이 정권을 장악한다면 제일 먼저 6.15공동선언을 전면 부정하고 제2차 정상회담의 성과들마저 무효화시킬 것이(이전 대북송금 특검의 사례처럼)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6.15공동선언과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은 반통일세력들의 온갖 방해책동에도 불구하고 7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의 기치로 굳건히 자리잡고 있으며 다가오는 제 2차 정상회담에서 다시한번 그 의의와 중요성이 빛을 발할 것이다.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 위업의 승리가 멀지 않았음을 온 세계와 우리 겨레는 알고 있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가 그 어떤 형태로 귀결되어 나타나든 우리는 그 소중한 결과물들을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중들 속에 깊이 뿌리내릴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후 정권이 어떻게 바뀌고 정세가 어떻게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외세와 반통일 세력들의 준동에 훼손치 못할 통일의 약속이며 돌이키지 못할 행동지침이 되게끔 만들어야 한다. 또한 이 모든 것을 직접 영도하고 계시는 김정일 장군님의 선군정치의 위대함을 널리 알려야 한다.

정녕 민족통일사에 쌓으신 장군님의 조국통일영도업적은 민족사에 길이 빛날 것이다.
오늘 장군님의 불멸의 조국통일 영도업적을 심장에 깊이 체득하고 장군님께서 이끄시는 통일대장정에 한결같이 떨쳐나서는 것은 우리시대의 요구이며 민족의 장래를 위한 7천만겨레의 공동의 애국애족과제이다.

조국통일의 서광이 밝아오고 있다. 자주통일위업의 승리가 멀지 않았다.
무적필승의 선군정치로 북미대결전을 승리로 이끄시고 조국통일을 영도하시는 장군님께서 계시고  7천만 겨레의 뜨거운 통일애국열정이 있기에 조국통일은 확정적이다.

남과 북, 해외의 우리 민족 모두는 조국통일승리의 보검인 장군님의 위대한 선군정치를 절대적으로 지지, 옹호하며 조국통일의 새로운 활로를 열어나가자. (끝)